2023년은 액티브하게, 오늘의 나를 사랑하며 살기를.
새해에는 자신을 추앙하라
깜깜한 밤. 구름을 뚫고 나와 하늘을 밝히는 ‘슈퍼문’의 빛과 에너지를 보면 그야말로 ‘액티브(active)’하다고 느껴진다. 그동안 액티브라 하면, ‘하고 싶은 일을 즐겁고 열정적으로 한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요즘에는 이 액티브의 의미가 좀 바뀐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 무기력감이 세상에 퍼지다 보니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지금의 액티브다. 그만큼 고압의 스트레스와 무기력이 꽉 찬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럴 땐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우선 액티브하게 실행에 옮기는 편이 오히려 낫다.
예를 들어 어느 눈 내리는 날,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친구나 가족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나갔을 때 ‘의외로 괜찮네’ 하며 감정이 바뀐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뿐 아니라 ‘종종 산책 해야겠네’라고 생각이 바뀌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은 행동을 먼저하고 그 뒤에 자연스럽게 감정과 생각이 따라오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심리 기법 중 ‘행동활성화기법(behavioral activation)’이라는 것이 있다. 번아웃 등으로 무기력이 나를 움직이지 못할 때 먼저 행동하자는 내용이다.

타인에게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
요즘 리더들이 호소하는 대표적 고민은 ‘최선을 다해 코칭했는데, 팀원에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스스로 무능력한 리더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팩트 체크가 필요한데, 타인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노력’만으로 가능하냐는 것이다. 마음에는 여러 욕구가 있지만 가장 강력한 2개를 꼽자면, 바로 친밀감과 자유다.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동시에 자유에 대한 욕구도 존재한다. 누군가 나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나의 자율성을 건드리는 자극이기 때문에 변화에 대해 저항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리더십이란 영역이 만만치 않다. 목표를 계획하고 전략을 세우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구성원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에는 강력한 저항이 뒤따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리더십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구성원에게 변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자신을 무능한 리더로 몰 필요는 없다. 과도한 자기비판은 오히려 리더십의 힘을 약화시키기 쉽다.
포스트 코로나와 디지털 전환,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등 굵직한 이슈들이 변화를 주도해야 하는 리더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활동적 타성(activeinertia)’은, 사회는 변화를 요구하지만 개인과 조직은 기존의 틀에서 안락감을 찾으려는 경향을 이야기할 때 사용한다. 변화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에는 수많은 조언과 기법이 존재한다. 여기에서는 수십 년 전 이론이지만 지금까지도 거론되는 다소 상반된 내용의 2가지 ‘전략’을 소개해본다.
하나는 ‘풋 인 더 도어(foot in the door)’ 기법이다. 이름처럼 일단 ‘발을 문 안으로 살짝 들여보내자’는 전략이다. 저항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 작은 변화 계획을 제안하고 실행해보자는 것이다. 작지만 첫 성공의 경험은 변화에 대한 마음의 저항을 조금씩 줄이고 더 큰 변화 행동으로 나갈 수 있다. 의료 영역에선 꾸준한 운동 등 건강 행동 변화의 동기부여를 할 때 활용한다.
또 다른 하나는 ‘도어 인 더 페이스(door in the face)’ 기법이다. 앞서 설명한 ‘풋 인 더 도어’와는 반대로 리더가 실제 달성하긴 어렵지만 강력하고 드라마틱한 변화 목표를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이다. 저항엔 보통 미안한 마음이 동반된다. 거대한 목표에는 저항했지만 리더가 차선책으로, 상대적으로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제시하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속임수처럼 이 기법을 쓰면 오히려 저항을 더 크게 일으킬 수 있지만 리더가 꾸준히 높은 수준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 자체는 변화 촉진 측면에서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새해에는 자신을 추앙하라
새해에는 자기 미움 대신 자기 추앙을
‘나이 탓인지 예전 같지 않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말을 쓰는 연령의 폭이 꽤나 넓다는 것이다. 아흔이신 인생 선배부터 20대 후반의 젊은 후배도 컨디션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한다. 동안 얼굴에 실제 연령은 50대 후반인 분이 대화 중 끊임없이 ‘옛날 같지 않다’고 해서 그 말을 자주 쓰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지 물으니 몰랐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의식적으로 내뱉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전 같지 않다’란 말을 자주 사용하면 ‘라떼(나 때)는 말이야’처럼 내 매력도를 떨어트리는 소통일 수 있으니 줄이라고 권했다.
문득 나는 어떤지 궁금해 후배들과 저녁 모임에서 셀프 모니터링을 해봤다. 그런데 나 역시 ‘나이 들어 어떻다’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막아보려고 해도 툭툭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이 말을 하고픈 심리적 욕구가 꽤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젊고 강해 보이고 싶은 것이 본질적 욕구일 텐데 스스로 나이가 드니 한심해졌다고 셀프 디스를 하는 상황이다.
‘살 만큼 살았다’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정말 멋있게 사셨어요’라 답한 며느리가 꾸중을 크게 들었다는 라디오 사연을 접한 적이 있다. 앞의 ‘살 만큼 살았다’란 표현은 ‘무슨 말씀을요, 아직 한창이시죠’란 답을 듣고 싶은 우회적 소통인 것이다. ‘예전 같지 않다’란 말을 쓰는 마음엔 ‘아니다’란 답을 상대방에게 듣고 싶은 욕구가 작동한다.
그런데 혼자 있을 때도 주문처럼 ‘몇 년 전과 다르다’라는 말은 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말을 쓰는 연령대가 넓어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 바이러스, 경제적 우울 등과 전투를 치르며 실제로 에너지가 격하게 소진됐기 때문이다. 이제 힘을 내야 할 때인데 영 맥을 못 추는 자기가 한심하다는 호소를 자주 접한다. 몇 년 전 자신과 비교하면 ‘예전 같지 않다’며 스스로를 탓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미움’이 아닌 ‘자기 추앙’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적절한 자기비판은 자기 인식에 근간이 되고 성숙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나를 주인공과 관객으로 분리해, 마치 나를 리얼리티 쇼에 출연자로 바라보며 핀잔을 주면서 잠시 현실에서 도피하게 만드는 자기 미움은 가뜩이나 지친 마음에 한 번 더 내상(內傷)을 줄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은 바로 오늘이다. 그리고 오늘이 수년 전보다 못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쳐 있는 것이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내 마음에 ‘예전 같지 않다’는 핀잔보다는 사랑이 필요하다. 2023년 새해에는 스스로에게 ‘내가 너를 추앙한다’고 말해주기를. 나 스스로를 강력하게 안아주기를.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