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까지만 해도1946년 만들어진 졸업식 노래(윤석중 작사·정순철 작곡)가 흘러나올 때면 콧잔등이 시큰해질 정도 눈물 없이 부를 수 없는 곡이었다. 입학식은 어떠했는가. 운동장에 삼삼오오모여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의 만남이 마냥 설랬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최근 졸업식과 입학식은 매우 간소화됐다. 이런 변화 속에 졸업이나 입학 선물 역시 실용적인 물건들이 대세가 됐다.
국가기록원 나라기록원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제강점기가 끝난 1950년대는 한국전쟁까지 겹친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선물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도 힘든 때였다. 따라서 졸업·입학 선물은 그 시대의 경제 상황과 사회가 맞닿아 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어려웠던 경제 사정으로 졸업식에 부모님과 함께 짜장면이나 먹을 수 있으면 다행으로 여겼다.
한국은행 국민계정 자료에 따르면 1960년대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은 133만 원이었다. 2021년 기준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이 3656만 원인 것에 비하면 약 2658% 증액된 수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졸업·입학 선물도 국민소득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에 따라 큰 변화를 겪고 있다. 1960년대, 가난했지만 교육열은 뜨거워
…졸업장 보관통
전쟁 이후 못 먹던 시절 1960년대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는 전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 뚱뚱한 사람은 모두 부자라는 인식이 있던 터. 우량 아기는 당시 자녀를 가진 모든 부모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입학식에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왼쪽 가슴에 명찰과 하얀 ‘콧수건’을 달고 등교했기 때문이다. 콧물 흘리는 애들이 많아 명찰 아래 하얀 손수건 윗부분을 접어서 옷핀으로 꽂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중학교도 입학시험을 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년 더 공부를 하는 ‘13살 재수생’이 서울에만 6000명이 넘었다고 알려졌다.
그래서일까. 당시 졸업 선물로는 졸업장을 소중히 보관할 수 있는 졸업장 보관통이 1순위였다.
1970년대, 경제 개발·중동 건설 붐
...만년필·구두 인기
19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다. 또한 경제개발계획과 중동건설 붐으로 국민소득이 오르고 국민들의 교육열도 높아졌다.
1973년에는 ‘고등학교 입시제도 개혁안’이 발표되면서 1974년부터 시도별로 연합고사를 실시했다. 지금은 평준화돼 전산 추첨으로 학교가 정해진 것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에는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자식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우리의 높은 교육열 덕분에 졸업 선물 1위는 만년필이었다. 특히 잉크만 갈면 평생 간직할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 사회로 진출하는 졸업생들에게는 구두도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1980년대, 정치적 격동기에 청년 문화는 꽃 피고
...손목시계·통키타·고급 운동화가 주류
1980년대는 격동의 시기였다. 정치적·사회적 이슈가 많았다. 전국은 비상계엄의 즉각 해제, 전두환 등 유신잔당의 퇴진 등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로 들끓었다. 이에 반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1988년에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되기도 했다.
386세대로 불리는 학력고사 세대의 졸업·입학 선물은 손목시계와 통기타였다. 통기타의 인기는 당시 청바지와 포크송으로 대표되는 청년 문화였다. 또한 외국의 고가 스포츠 브랜드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고급 운동화도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선물로 떠올랐다.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대표되던 졸업·입학 외식 메뉴도 점차 다양해졌다. 돈까스가 주 메뉴인 경양식집이 생겨났고 1980년대 말 햄버거 등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도 등장했다. 1990년대, 휴대용 전자기기 인기몰이
...워크맨· CD플레이어· 삐삐 등 선호
1990년대는 '힙'하고 '핫'한 대중문화의 본격적인 태동기였다. 가장 대표적인 가수는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이들의 노래는 길거리, 찻집, 술집 등 한번도 안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어본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패션은 어떠했나. 어깨에는 큼직한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으며 허리춤에는 삐삐를 길게 늘어뜨려야 '힙하다'는 칭송(?)도 받았다.
이런 분위기와 함께 전자 산업이 성장하면서 졸업·입학 선물도 전자제품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1990년대 초반에는 ‘워크맨’으로 대표되는 휴대용 미니카세트, 후반에는 CD 플레이어, 전자사전, 삐삐 등이 인기 있는 선물로 등장했다. 1990년대 말에는 당시 5만 원이면 개통할 수 있는 보급형 휴대전화 PCS가 출시되면서 삐삐가 사라졌다.
2000년대,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
...휴대전화·디카·노트북·MP3 등 인기
2000년대에는 졸업 입학 외식으로 씨즐러, TGIF, 베니건스, 마르쉐 등 패밀리레스토랑이 인기를 끌었다. 졸업 시즌의 경우 1시간 대기는 필수였다. 여기에 초고속 인터넷이 상용화되면서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 노트북, MP3 플레이어 등이 선물 앞자리를 차지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 플랫폼의 등장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후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자리를 내줬다.
2010년대, 아이폰 출시...스마트 시대 개막
...스마트폰·태블릿 등 우선순위
2010년대에는 졸업·입학 선물로 스마트폰, 태블릿 PC와 스마트 폰이나 PC를 연결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기가 선물의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2010년대부터는 그야말로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스마트폰의 파워는 막강했다. 수많은 대리점을 양산했으며 ‘폰 팔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무가지를 사라지게 했고 스포츠 신문 역시 가판대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또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으로 스마트폰이 본격 대중화됐으며 최신 폰 출시 경쟁 역시 치열해져 2년마다 기기를 변경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또한 졸업·입학 선물로 성형수술도 인기를 끌었으며 활용도가 높은 다양한 상품권은 받는 이로 부터 환영을 받았다.
2020년대, 엔터테인먼트 기기에 명품까지
...닌텐도·에어팟, 가방 등 명품 선호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한 2020년대 학생들의 졸업·입학 선물은 실용성도 추구하지만 엔터테인먼트에도 관심이 많아 이를 활용하는 선물들이 주를 이뤘다.
시장조사 전문 업체인 엠브레인의 ‘입학 및 졸업 시즌 선물 선호도’에 따르면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정보기술(IT) 기기를 꼽았다.
특히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청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에어팟, 갤럭시 버즈 등 무선 이어폰을 선호하게 됐다. 또 PC방보다 비대면에 가까운 개인형 게임기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도 인기를 끌었다.
이베이코리아 옥션은 새헉기 선물 관련 설문을 진행한 결과 1위는 노트북·PC·태블릿이었다. 2위는 신발, 가방이 차지했으며 의류, 도서 E-쿠폰이 그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가구·침구, 악기·게임용품, 화장품, 향수, 액세서리, 주얼리 순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플렉스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20대 대학생이 명품을 선물로 주고받는 풍경도 흔해졌다. 명품 쇼핑 플랫폼 트렌비에 따르면 졸업·입학 선물로 가장 많이 구매한 명품으로 여성은 ‘백’, 남성은 ‘지갑’이라고 밝혔다.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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