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파우스트>오는 29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

드라마, 영화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연타석 홈런이다. 여기에 5년 만에 돌아온 연극 공연도 연일 매진 행렬과 찬사가 쏟아진다. 그야말로 박해수의 전성기다. 정작 그는 몸을 낮췄다. 스크린이든, 연극 무대든 여전히 ‘무서운 건 매한가지’라고도 했다. 하지만 연극 <파우스트> 무대 위 그는 그야말로 날았다. 힘차고, 자유롭되 항상 겸손하게 무대 안팎을 비상 중인 배우 박해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막공 앞둔 박해수 "모든 것 관객 덕분...잊지 못할 것"
유인촌, 박해수, 박은석, 원진아 등 캐스팅부터 화제를 모았던 연극 <파우스트>가 올봄 국내 공연계를 뜨겁게 달궜다. 독일 문학의 거장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동명의 고전 희곡을 재해석한 이 작품은 괴테가 20대부터 집필을 시작해 죽기 직전까지 6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역작이다. 작품은 선악이 공존하는 인물이 악마와 위험한 계약을 맺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로,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한계와 실수 앞에서 좌절하던 인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내용을 담는다.

본래 원작은 1·2부로 나뉘지만, 연극은 1부 내용을 공연시간 165분에 압축해 그려냈다. 무엇보다 연극 <파우스트>는 배우들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력과 감각적인 디지털 영상이 어우러진 파격적인 무대 등 165분 내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 극의 중심에서 박해수는 단연 빛을 발했다.

대중에게는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더 잘 알려진 박해수지만, 배우로서 그의 시작은 연극이었다. 2007년 연극 <안나 푸르나>로 데뷔한 이후 <더 코러스-오이디푸스>(2011년), <됴화만발>(2011년), <프랑켄슈타인>(2014년), <유도소년>(2015년) 등 무대에서 탄탄히 연기 내공을 쌓아 온 박해수는 이후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주연을 필두로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매체 연기에 집중해 왔다. 그 사이 5년이 훌쩍 지났고, 연극 무대 밖 박해수는 그야말로 ‘대세 배우’ ‘톱 배우’ 반열에 들어섰다. 이런 그에게 다시 선 연극 무대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무대 위 연기를 보니 이렇게 하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았나 싶은데, 어떠신가요.
“참았다기보다는 아시다시피 그동안 참 많이 바빴어요. 예전에 영화 <범죄도시>가 나오기 전에 진선규 선배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매체 적응하는 것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힘들어서 형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형이 ‘공연할 때 적어도 5년 이상 힘들지 않았나’, ‘그 시간을 버텨봐야 하지 않느냐’라고 하더라고요. 한참 방송 매체를 많이 했었던 때였는데 어느 정도의 인지도, 입지를 굳히면 무대가 더 고마워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영화, 드라마를 경험하면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 행복했습니다.”

이번 작품을 선택한 계기는요.
“예전부터 <파우스트> 속 메피스토라는 역할을 꿈꿔 왔어요. 무엇보다 대본을 읽으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어요. 요즘은 악이 악으로 비춰지지 않는 세상이라는 걸 다들 인정하실 거예요. 어느 부분에선 선악 구분이 모호해지고 없어지기도 했고, 저한테도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에서 공감을 많이 하게 된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까 하는 생각도 배우라면 하기 마련이고요. 파우스트에서는 악의 시초는 무엇이고 어떻게 변질돼 악이 되는지를 보여주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 관객에게 선악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과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메피스토의 대사는 200년 전에 썼지만, 지금 더 와 닿아요. 당연한 이야기들인데 그런 부분이 저에게는 더 묘하게 다가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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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 소감도 궁금해요.
“엄청 떨리더라고요. 죽을 만큼 떨려서 ‘진짜 대사만 안 틀려야겠다’고만 생각했어요. 첫 공연 때는 정말 무슨 생각으로 올라왔는지 모를 정도로 120% 긴장하고 무대에 오른 것 같아요. 그래도 첫 공연이 끝나고 박수쳐주시는 관객들을 만나니 뭔가 풀어지는 느낌이었죠. 무엇보다 그간 코로나19라는 너무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 이렇게 저희 공연장에 찾아와 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했습니다.”

극 중에서 표정이나 몸을 되게 잘 쓰시던데 특별히 영감을 얻는 부분이 있나요.
“사실 저는 국내에서 공연됐던 <파우스트> 작품을 본 적이 없었어요. 그나마 전미도 배우가 과거 멋지게 연기했던 <메피스토>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제가 유일하게 접했던 <파우스트> 속 메피스토였죠. <메피스토>는 메피스토의 주관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 작품이었기에 양정웅 연출님과 연습을 하면서 다른 부분을 많이 찾아봤어요. 메피스토 연기를 위해 퓨마 같은 맹수의 움직임이나 세계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들 등을 참고했어요. <파우스트>의 대사들을 보면서 음률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기에 그것에 영감을 받았거든요.”

공교롭게도 이번에 파우스트 역할을 맡은 유인촌 배우가 과거 메피스토를 연기한 적이 있죠. 조언해준 점이 있다면요.
“유인촌 선생님은 우리를 후배가 아닌 동료라고 생각하고, 연출님처럼 디렉션을 주지는 않으세요. 그저 함께 운동하며 대사를 맞춰주시죠. 그래서 저도 아주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만 자주 여쭤봤어요. 가령, 선생님의 아름다운 화술에 대해 여쭤볼 때면 ‘긴 대사를 할 때 누구나 중간에 포기하고 싶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밀어붙여야 한다.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해주셨어요. 감사했죠.”

연극으로 데뷔를 하셨는데 연극을 시작한 계기는요.
“고등학교 때 연극부에 들어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특별히 무대나 배우에 대한 생각보다 그저 회피, 탈피 이런 목적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좀 더 자유로울 것 같았죠. 그러다 대학에 가서 고전을 만나면서 재미를 느꼈어요. 자극적인 재미보다 연극이 주는 좀 이상한 느낌이 있잖아요. 보고 나서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말이에요. 선배들 공연을 보면서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는데, 저게 뭔데 저렇게까지 고민하게 만들지 싶고. 그런 식으로 접근하게 됐어요.”

‘메피스토’를 연기하면서 가장 숙제 같았던 장면이 있다면.
“숙제 같은 장면은 처음 파우스트와 만나게 되는 신(scene)에서 대면할 때의 태도였어요. 또 젊은 파우스트와 만나는 신도 좀 어려웠죠. 원래 대본에선 대문호나 학자를 찾아가는 그 시절의 학생처럼 은밀하게 접근해요. 그런데 요즘의 현실적인 악이라면 어떨까 고민했어요. 은근하게 다가올까. 아닐 것 같았어요. 매력적으로 ‘내가 악’이라 얘기하고 ‘내가 마음에 든다면 너의 선택이야’라는 게 현시대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죠.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힘을 주고 다르게 표현한 부분이 있어요. 그런 걸 연출님과 만들면서 어렵지만 재밌었죠.”

연극 외에도 다양한 매체에서 활약 중인데 무대와 카메라, 어느 쪽이 더 편한가요.
“둘 다 어느 쪽도 편하진 않아요. 무서운 건 매한가지죠. 무대는 항상 두렵고 무서워요. 카메라 앞도 마찬가지고요. 그저 순간순간을 즐기려 합니다. 노력하는 그 순간, 관객을 만나기 전의 두려움까지 온전히 느끼려 해요. 내일은 잘 모르겠고요. 오늘 하루를 정말 열심히 노력하려고 해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최근 성공에 대해 “아직은 잘 모르겠다. 조금 더 들여다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겠다”고 답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어떠신가요.
“과거 아주 작은 소극장에서 관객 1명 앉혀 두고 연기하던 날이 있었어요. ‘이거 어떡하나’ 싶었지만 열심히 연기했던 시절이었죠. 그런 날들을 거쳐 힘든 코로나19 시기에 넷플릭스라는 배를 타고 많은 분들을 만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죠. 저도 의문이 들 정도의 큰 일들이 다가왔고, 많이 알아주신다는 게 공연 쪽에서도 또 어디에서든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때가 오지 않을까 해요. 양정웅 연출님께 ‘저는 평양에서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했어요. 어느 순간에 연출님의 작품을 평양에서 올리고 제가 그 무대에 배우로 서고 싶어요. 문화는 영화도 연극도 드라마도 치유와 위로의 힘이 있잖아요. 음악처럼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그런 시대가 꼭 왔으면 좋겠고 무대에서 꾸준히 연기하면서 버티는 힘을 기르고 싶어요.”

앞으로 무대 위에서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기보다는 제 시간과 관객들의 시간에 맞는 역할이면 뭐든 다 해보고 싶어요.”

나에게 파우스트는 000이다. 한마디로 하자면?
“저에게 파우스트는 ‘앙상블’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공연을 찾아준 많은 팬들에게 감사의 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공연을 찾아주신 많은 관객들 그리고 예매해주신 앞으로의 관객분들, 저희 배우들이 무대에서 전심을 다해 웃고 울고 뛰는 모든 것들은 오직 찾아와 주시는 관객분들 덕분입니다. 한없이 감사드립니다.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BH엔터테인먼트·LG아트센터·㈜샘컴퍼니·㈜ARTE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