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료제는 질병을 예방·관리하기 위해 제공하는 소프트웨어(SW) 의료 기기를 뜻한다.
다소 생소할 수 있다.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치료제는 먹거나 몸 안에 투입하는 물질로 생각한다. 알약 등 경구용 투약제를 먼저 떠올리는 것. 쉽게 말해 이러한 치료제의 범주가 SW로 확대됐다고 보면 된다.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의료 기기는 무엇일까. 흔히 디지털 헬스케어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건강 증대가 목표다. 반면 디지털 치료제는 치료 효과가 입증된 디지털 기술로 환자 질병과 장애를 치료하고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치료제가 적용되는 분야는 치매, 알츠하이머, 뇌졸중,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 분야가 대표적이다. 이들 질병은 신약 개발이 쉽지 않은 중추신경계 질환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뇌 손상으로 인한 시야 장애를 가상현실(VR) 기술로 치료하는 뉴냅비전이 첫 임상연구 승인을 받았고 호흡기 질환 재활을 돕는 디지털 치료제와 노인성 질환인 근감소증 치료 애플리케이션 등이 개발 중이다. 수명 연장의 꿈을 IT 기술로 이룰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방증이다. 디지털 치료제와 일반 약의 차이는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라는 용어는 2010년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2017년 미국 페어 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약물중독 치료용 모바일 앱이 디지털 치료제 효시로 불린다. 세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이를 일컬어 3세대 치료제 등장이라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구심이 든다. 디지털 치료제와 일반 약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디지털 치료제는 일반 의약품과 달리 의료 기기로 분류한다. 실시간 환자 모니터링이 가능하고 신약 대비 개발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다른 3세대 치료제인 전자약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전달 형태와 기술 측면에서는 전혀 다른 분야라고 봐야 한다.
전자약이 하드웨어 의료 기기라면 디지털 치료제는 소프트웨어 의료 기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비임상시험 단계가 없고, 임상시험 역시 임상 1상·2상에 해당하는 탐색 임상과 3상에 해당하는 확증 임상 두 단계의 개발 단계로 이뤄진다. 기존 제약사가 치매, 알츠하이머 등의 분야에서 신약 개발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만큼 디지털 치료제의 관심과 전망은 어느 때보다 밝다고 할 수 있다.
모바일 앱 등을 통해 특정 행동을 통제하고 조정해 중추신경 질환 치료를 도모하는 방식이 디지털 치료제의 콘셉트이기 때문에 종전 신약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히기도 한다. VR·모바일, 신경정신과 질환 등에 활용
현재 디지털 치료제는 일부 만성질환과 신경정신과 질환에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약물중독, 수면장애, 조현병, ADHD 등에서부터 우울증, 치매 등에 이르기까지 SW로 뇌의 정상적 동작을 저해하는 다양한 질환의 원인을 밝혀내고 이를 치료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의 근간이 되는 기술은 모바일, PC 기반 앱, 가상·증강현실, 게임 그리고 마이데이터다. 이 때문에 많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뿐 아니라 핀테크 기업까지 마이데이터 등의 분야에 디지털 치료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디지털 치료제 시장이 부상하자 각국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25년 6570억 달러로 연평균 24.7%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2025년 89억 달러 규모로 연평균 20.5%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 또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2025년 5288억 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한다.
유관 분야 투자도 급증세다. 글로벌 프라이빗에쿼티(PE)와 벤처캐피털 중심으로 관련 투자가 확대되고 있는데, 2015년 1억9810만 달러를 기록했던 투자액은 2021년 20억5000만 달러까지 증가했다. 페어 테라퓨틱스, 아킬리 등 일부 해외 기업은 디지털 치료제 개발 초기 단계로 시리즈 D 이상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에임메드, 뉴냅스 등 국내 기업 또한 대부분 시리즈 A·B 투자를 받았다. 다만 한국의 경우 해외에 비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해외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서는 유관 기업 인수·합병(M&A)과 스팩(SPAC) 합병을 통한 상장 지원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제약사의 투자 증가, 전통 바이오 시장에 주목하던 벤처캐피털의 관심 확대 정도로 투자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ICT와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 발달로 의료 및 제약 기술과 융합되며 디지털 치료제라는 새로운 분야를 또 하나 만들어냈고 다양한 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핀테크와의 빅블러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향후 디지털 치료제는 마이데이터와 결합해 더욱 개인화될 것으로 보인다. 헬스케어 데이터뿐만 아니라 금융 데이터를 포함해 생활 식습관 등과 관련된 마이데이터와 결합함으로써 더욱 정밀한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정부 지원도 절실하다. 미국은 FDA 인허가 단계에서 소프트웨어 의료 기기의 빠른 시장 진입을 위해 사전인증제를 도입했다. 지난해 4월 미국보험청(CMS)은 처방 디지털 치료제에 새로운 코드를 부여하고 일반 의약품과 유사한 처방·조제 시스템의 권한을 갖게 했다. 독일은 디지털 치료제를 3개월 내 임시 승인할 수 있는 디지털건강앱(DiGA)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도 혁신 의료 기기 조건부 승인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한국도 ‘뉴딜 2.0 바이오·디지털 헬스 글로벌 중심 국가 도약’을 기치로 내걸고, 유관 정부부처가 관련 예산을 편성하며 산업 육성 촉진에 나서고 있다.
글 길재식 전자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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