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하면 밥심? 이제는 ‘맵부심’이 아닐까. 어느덧 ‘한국의 맛=매운맛’으로 인식될 만큼 유별난 한국인들의 매운맛 사랑은 왜 식지 않을까. 이제는 한류를 타고 글로벌로 확장되고 있는 ‘매운맛 열풍’의 현주소와 전망을 알아본다.
'K-빨간 맛' 비즈니스, 매운 확장 어디까지
‘불닭볶음면’, ‘엽기떡볶이’, ‘신길동 매운 짬뽕’, ‘실비 김치’ 등등.

이름만 들어도 혀가 마비될 것만 같은 매운 음식들이 수년째 MZ(밀레니얼+Z) 세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마다 관련 매운 음식들을 먹는 도전 콘텐츠도 꾸준히 인기몰이 중이다. 여기에 한국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 등 K-콘텐츠가 전 세계에 확장되면서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매운 음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양상이다.
K-컬처 미디어 전문가 박진호 뷰스컴퍼니 대표는 “마케팅 관점에서 매운 챌린지는 핫 키워드다. 유튜브 스튜디오 리서치 기능만 봐도 매운맛과 관련된 검색어는 대개 ‘높음’이라고 나온다”며 “가령, 유튜버나 인터넷 방송인(BJ)이 벌칙 게임으로 음식을 먹는 상황은 이제 익숙한 모습이다. 이처럼 매운맛과 관련해 사회적인 밈 현상이 일어나게 되면서 일종의 메가 콘텐츠가 됐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매운맛 비즈니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표주자는 역시 ‘삼양식품’이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 6690억 원을 달성했다. 그중 불닭볶음면이 3390억 원을 차지한다. 유튜브 ‘영국남자’ 채널을 시작으로 ‘불닭볶음면 먹기 챌린지’가 여러 국가에서 유행으로 이어졌다.

삼양식품은 수출 초기부터 할랄(halal) 인증을 받고, 중국의 ‘마라불닭볶음면’과 미주 지역의 ‘하바네로불닭볶음면’ 등 현지 맞춤형 제품을 확대하면서 매운맛 마케팅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최근에는 매운맛을 강조한 버거, 피자, 치킨, 육포 등 다양한 신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KFC는 시그니처 버거인 ‘징거버거’에 매운맛을 첨가한 ‘핫치즈 징거버거’를 선보였고, 피자알볼로는 바른치킨과 협업해 매콤한 맛을 강조한 ‘대새피자’를 출시했다. 샘표 역시 ‘질러 육포’에 고추의 매운맛을 더한 ‘질러 직화풍 BBQ 핫칠리’를 내놓는 등 매운맛 비즈니스 마케팅은 식지 않고 있다.
'K-빨간 맛' 비즈니스, 매운 확장 어디까지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대체 왜 이렇게 매운맛에 빠져들게 됐을까. 음식인문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한식의 매운맛이 대중화된 것은 1960~1970년대의 산업화, 도시화 시기 이후라고 말한다. 여기에 고추의 생산량이 늘면서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간 음식이 생겨났다.

특히 1980년대 일명 ‘남도 음식’의 전국적인 유행이 음식에 고춧가루를 더욱 많이 넣는 경향을 가져오면서 매운맛에 대한 선호도가 점차 강해졌다고 설명한다. 이후 1988 서울 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K-콘텐츠의 확산으로 한국 매운맛에 대한 인지도가 점차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게 된 것.

무엇보다 사람들이 매운맛을 선호하게 된 배경에는 그것이 우리 신체 감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채윤 텔로미어식단 연구소 대표는 “매운 음식을 먹을 때 고추의 캡사이신은 우리 몸에 통증을 느끼게 하는 반응을 유발하는데, 이 감각은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천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을 방출한다”고 설명했다.
'K-빨간 맛' 비즈니스, 매운 확장 어디까지
실제로 사람들이 매운맛을 찾는 데에는 스트레스와 관련이 깊다. 으레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매운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한다.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운맛은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고추), 알리신(마늘), 피페린(후추)이 섭씨 43도 이상 고온을 감지하는 수용체 ‘TRPV1’을 활성화시킬 경우, 뇌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엔도르핀을 분비하며, 진통 효과와 쾌감을 느낀다.

과도한 매운맛, 고혈압 위협 높여
하지만 과도한 매운맛 사랑은 자칫 독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개 매운 음식이 보통 짜고 달며 기름진데, 높은 나트륨 함량은 고혈압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많은 이들이 매운 음식을 먹을 때 탄산음료나 단 주스를 곁들이는데 이 또한 고혈압 위험을 높이는 습관이다.

이채윤 대표는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유의할 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매운 음식을 먹는 데 익숙하지 않다면 순한 음식부터 시작해 서서히 내성을 키워 가는 것이 좋아요. 다음으로 매운 음식은 탈수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수분 유지를 위해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복에 매운 음식을 바로 먹으면 위가 불편할 수 있으므로 매운 음식을 먹기 전에 부드럽고 가벼운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아요. 특히 위궤양이 있는 경우 매운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데 매운 음식이 위궤양을 자극해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피해야 합니다. 과도한 양의 캡사이신(매운 음식에서 열을 내는 화합물)은 속쓰림, 메스꺼움, 설사와 같은 위장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음식의 매운 정도를 잘 살펴보고 드시길 바랍니다.”

또한 매운맛이 ‘K’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메뉴 개발과 인식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주영하 교수는 “세계적으로 매운맛 음식은 멕시코나 태국 등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 음식의 매운맛은 단맛과 매운맛의 조합인데, 불닭볶음면을 통해 새로운 매운맛으로 부상한 사례”라면서도 “문제는 나날이 한국인들이 매운맛을 지나치게 더 강조하고, 그 자극에 대한 소비가 늘어 간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이 자칫 한국 음식 본래의 맛과 가치를 저하시킬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진호 대표도 “지금은 너무 캡사이신의 자극적인 매운맛만 강조된 부분이 많은데 추후에는 이것 역시 대중에게 신선하게 여겨지지 못할 것”이라며 “라이프스타일 문화도 점점 개인화가 되는 추세인 만큼 매운맛에도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소비 콘텐츠로 브랜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