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 모(53) 씨는 셀프 스토리지를 서고로 활용 중이다. 어린 시절부터 한두 권씩 사 모은 책이 벌써 1000권을 훌쩍 넘었는데, 자택 내 서재가 수용할 수 있는 책의 수를 넘어섰다는 판단이 서자 내린 결정이다. 이 씨는 단순히 책을 짐처럼 쌓아 두는 용도로 셀프 스토리지를 빌린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매주 1~2회씩은 서고에 들러 며칠간 필요한 책을 찾아오는 식으로 셀프 스토리지를 제2의 서재처럼 활용하다가, 올 하반기부터는 책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출입문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공동 서고로 쓰기로 했다. 서로에게 없는 책을 자유롭게 빌려보는 미니 도서관처럼 이용하려는 목적에서다.
물품 보관 시설을 뜻하는 ‘셀프 스토리지(self storage)’가 부동산 업계의 틈새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셀프 스토리지는 개인이나 사업자가 임대료를 지불하고 자유롭게 물건을 보관해 둘 수 있는 일종의 ‘도심형 개인 창고 서비스’다.
셀프 스토리지는 이미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에서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성장한 시장이기도 하다. 도심 내 물리적 공간에 대한 수요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주거 환경 밖에서 물품을 따로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임대해주는 산업이 선진국 중심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글로벌 셀프 스토리지 시장은 2020년 480억 달러(약 61조5000억 원)에서 2026년 640억 달러(약 82조10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 시장 규모는 약 40조 원으로, 전 세계 셀프 스토리지 산업에서 가장 큰 규모를 이룬다. 한국 시장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지점 수는 5월 기준 약 300개로, 전년 동월 대비 56.4% 증가했다. 도심 속 나만의 보관 창고,
대형 물류창고와 차이점은
‘대형 물류창고’와 최근 떠오른 셀프 스토리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셀프 스토리지의 가장 큰 차별화 지점은 무엇보다도 ‘개인’과 ‘도심’이라는 2가지 키워드로 압축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내놓은 ‘공간의 재발견, 도심형 창고 셀프 스토리지’ 보고서를 보면, 셀프 스토리지의 주요 수요층은 수납 공간을 필요로 하는 도심 거주자, 혹은 쾌적한 업무 환경을 위해 서류, 사무용품 등을 보관할 공간을 찾는 기업이다. 미국에서는 주거비가 높고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캠핑용품, 파티용품 등을 보관하는 ‘도심 속 차고’의 개념으로 보편화됐다.
국내 시장에서는 주거 공간 확장의 의미로 셀프 스토리지에 접근하는 고객이 늘어나는 추세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셀프 스토리지 이용자 가운데 사업자가 아닌 개인고객의 지점 이용 비율은 80%가량으로 추산된다.
국내 셀프 스토리지의 경우 미국 등 해외에 비해서도 도심 지역에 포진해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만큼 개인고객이 접근하기 쉽고, 단기 계약도 유연하게 맺을 수 있어 수요자의 부담이 덜하다.
JLL 코리아는 지난 6월 내놓은 ‘공간의 재해석, 셀프 스토리지’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셀프 스토리지와 국내 셀프 스토리지는 몇 가지 차이가 존재한다. 저렴한 임대료를 지불하고 창고를 대여하는 개념이 큰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셀프 스토리지 지점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도시 외곽에 주로 위치해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비자들이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를 선호하기 때문에 오히려 유동인구가 많은 핵심 상권에서 많이 운영되고 있다. 위치에 따라 셀프 스토리지 형태도 달라지는데, 컨테이너나 팔레트(pallet)를 이용하는 경우 경기도의 나들목(IC) 혹은 분기점(JC) 근교에 주로 위치해 있는 반면, 소규모 창고를 제공하는 경우 도심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국내 셀프 스토리지 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도 보다 진화하는 추세다. 이용자가 직접 창고에 방문하지 않아도 짐 포장부터 배송, 보관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해준다거나, 사물인터넷(IoT) 시스템과 연동해 창고 문을 여닫고 온도와 습도를 조정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는 식이다.
단순히 이삿짐이나 계절성 물건을 단기 보관하는 차원의 ‘짐 보관 서비스’를 넘어, 주거지 밖에 또 다른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차원으로 접근하는 업체들이 늘어났다. 365일 원하는 시간에 방문할 수 있는 무인 운영 시스템, 보관 타입별 수납장 제공, 전용 카트 비치 등 이용자 편의성을 고려한 서비스를 상당수 셀프 스토리지 업체가 갖춘 상황이다.
셀프 스토리지의 창고 크기는 0.03평(3만6000cm³)에서 3.81평(3024만cm³)까지 다양한 편이다. 월 임대료는 서비스 업체와 공간의 크기, 임대 기간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가장 일반적인 이용 사이즈인 0.3평 공간(우체국 박스 5호 기준 약 24개까지 보관 가능)은 월 2만~26만 원 선에서 임대료가 형성된다.
주택 다운사이징으로 집세 절약…
대안 공간으로 셀프 스토리지 선택
국내 1인 가구의 증가세와 집값 상승 흐름은 셀프 스토리지 산업의 성장세를 재촉하는 요소다.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중 33.4%인 716만6000가구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가구 셋 중 하나는 1인 가구 형태인 셈이다. 이들의 연간 소득은 전체 가구(6414만 원) 소득의 42% 수준에 그친 2691만 원이다.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항목은 주거·수도·광열비(18.4%)다. 이는 필수 소비 항목인 주거비에 지출하는 1인 가구의 비용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월세 형태로 집세를 부담하는 비중이 높은 1인 가구 특성상, 주거비에 많은 돈을 쓰는 것보다는 작은 집에 살며 셀프 스토리지를 통해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셀프 스토리지 지점을 갖고 있는 다락 이용자를 살펴보면 1인 가구 이용 비중은 46%로 다가구보다 높다. 연령대를 보면 20~40대가 주 수요층이다. 20대 비중은 2018년 20%에서 지난해 27%까지 늘어나며 이용 비중이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셀프 스토리지 업계 관계자는 “국내뿐만 아니라 도시화를 겪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는 단위 면적당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평당 월 1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내고 있는 사람에게 평당 월 3만 원짜리 쾌적한 창고 공간을 제공해주겠다고 제안한다면, 긍정적으로 고려해볼 만한 유인이 많을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도시화로 인한 주거 비용 상승이 셀프 스토리지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인구밀도가 높고 주거 비용이 높은 대도시일수록 셀프 스토리지가 활성화되는 경향성도 보인다. JLL 코리아에 따르면 국내 셀프 스토리지 지점 약 300개 중 절반이 넘는 약 53%가량이 서울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기도와 부산이 각각 30.4%와 7.8%의 비율로 뒤를 이었다.
보고서는 “주거 비용이 높은 곳일수록 셀프 스토리지 이용에 호의적이고, 사업체가 많을수록 유동인구와 기업 간 거래(B2B) 수요를 기대한 (셀프 스토리지) 공급이 이뤄졌다”면서 “평균 연령이 낮은 자치구일수록 지점 수가 더 많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구독경제 문화가 익숙하고 주거 공간이 협소해 추가 저장 공간을 필요로 하는 젊은 층에서 수요가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우리나라 인구구조 특성과 부동산 산업의 흐름을 고려했을 때 국내 셀프 스토리지 시장도 향후 5~10년 내외로 일본 등에 버금가는 산업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셀프 스토리지 산업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부동산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다. 선진국형 산업인 동시에, 부동산 틈새 산업으로 봐야 한다”면서 “국민소득 수준이 높고, 인구밀도가 높으며, 부동산 가격이 높은 곳일수록 셀프 스토리지 산업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가 그렇다”고 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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