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 엇갈린 한·중·일 경제 삼국지
올 하반기 글로벌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아시아 3강(한·중·일)의 경제 성적표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과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밀접하다. 최근 미·중 간 경제패권 싸움이 장기화되면서 중국과 일본을 이웃으로 둔 한국 경제에도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한국을 둘러싼 대외적 경제 상황이 갈수록 녹록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면서 투자자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코로나19 엔데믹과 맞물려 중국 리오프닝(경제 재개) 기대감에 중국 관련주들이 들썩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소비가 주춤하면서 리오프닝 효과가 줄어든 데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출 경기가 부진하자 중국 경제가 다시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반면 반대쪽 이웃 나라인 일본 경제는 한·중·일 삼국 중에 나 홀로 호황기를 보내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환경은 일본이 경제적 수혜를 입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미국이 강력한 긴축 흐름을 유지하면서 중국에 대한 견제를 이어 나가고 있는 것도 일본 경제에는 반사이익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환율 샌드위치 코리아…‘버팀목’ 수출 경쟁력도 흔들
한국이 수출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환율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올 들어 달러화 대비 원화와 중국의 위안화, 일본 엔화가 동반 약세를 보이면서 올 하반기 원·달러 환율의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동시에 통화 약세를 막기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서고 있는 것도 한국에는 불리한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은 1조6733억 달러로 전 세계 13위 수준에 그친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 국가부채가 많은 이탈리아, 브라질보다 뒤처진 세계 13위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한국의 명목 GDP는 1조6733억 달러로 전년 대비 7.9% 감소했다. 이처럼 지난해 명목 GDP 하락은 환율 상승으로 달러표시 가격이 하락한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 경제에 잇따라 경고음이 나오는 이유로 수출 부진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132억 달러 적자) 이후 14년 만에 연간 적자를 냈고, 올해는 대(對)중 수출 부진까지 겹치며 무역적자가 계속 쌓이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7월 1∼10일 수출은 1년 전보다 14.8% 감소한 132억67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8월 이후 줄곧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는 반도체 수출도 같은 기간 36.8% 급감했다. 국내외 주요 금융기관들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1.3%를 제시했다. 이는 국내외 기관 중에 가장 낮은 전망치로, 기존 대비 0.2%포인트 하향 조정한 수치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주요 해외 기관들이 제시한 1.5% 성장률에 이어, 정부와 한국은행이 1.4%의 성장률을 제시했다. ADB가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낮춘 배경에는 중국 리오프닝의 제한적 영향으로 수출이 타격을 받았고, 고금리 여파로 민간 소비와 투자가 약세를 보이는 등 각종 부작용을 원인으로 짚었다.
한국은 올해 초부터 5월까지 대중국 수출이 감소하면서 전체 수출이 13.6% 줄었고, 반도체 수출은 39.4% 감소세를 보였다. 올해 물가 상승률도 3.5%로 종전보다 0.3%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중국 경제지표 부진 흐름…하반기도 불투명
지난해 말부터 기대를 모았던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사실상 소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2분기에 중국이 상하이 등 주요 경제권에 봉쇄조치를 내린 데 따른 기저효과는 사실상 미미했다. 외수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중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도 시장 전망치를 밑돌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2분기 GDP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6.3%가 증가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시장 전망치인 7.1%보다는 못 미친 수준이다. 중국의 경제 심리가 둔화되면서 투자와 소비 성장세가 완만해지고, 글로벌 경기 둔화와 미·중 갈등 지속 등으로 수출 부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주요 산업인 부동산 시장도 빠르게 위축되면서 가계의 지출 여력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5월 공업 부문 기업이익은 전년 대비 18.8% 줄면서 하반기 신규 투자 역시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제조업 위축으로 1~5월 중국의 대미 수출은 25%가 감소했다. 이로써 중국은 대미 수출국 1위에서 3위로 하락하면서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7%에서 올해 –1.3%로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주요 투자은행(IB)들도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5월 5.8%에서 7월 5.5%로 하향 조정했다.
노무라증권은 부동산 시장의 위축으로 투자가 저하된 가운데 지정학적 갈등 및 대외 수요 둔화에 따른 수출 감소를 반영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5.5%에서 5.1%로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경제 부진 흐름을 보고 일본식 대차대조표 불황 리스크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차대조표 불황은 이른바 빚이 늘어나면 소비와 투자가 줄면서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부채가 줄고 소비와 투자가 줄면서 불황이 발생하는 형태를 말하는데 중국이 이같은 모습을 띨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가 부진하면서 한국의 대중 수출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대중국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감소한 602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 기간 대중 무역수지는 올해 상반기 전체 무역적자(263억 달러)의 절반에 해당하는 131억 달러 적자를 냈다.
이로써 한국의 대중 수출액은 6월까지 13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또 중국의 수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1%로 5위까지 하락했다.
백진규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중국 경제는 대내외 수요가 약화되면서 올해 성장률이 5% 초중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 당국의 부양책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부활, 글로벌 투자 행렬 호재…하반기 전망은
최근 일본의 기세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중국, 한국과 달리 글로벌 인플레이션 환경이 오히려 경제적 수혜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이 강력한 긴축 흐름을 유지하면서 중국에 대한 견제를 이어 나가고 있는 것도 일본 경제에는 반사이익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워런 버핏이 2020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일본 5대 종합상사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수하자 일본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일본 주식 시장은 올해만 25%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했고, 1990년 5월 이래 23년 만에 처음으로 니케이 지수는 3만3000선을 회복했다.
버핏이 투자한 일본 5대 종합상사 주식도 대부분 50% 이상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일본 주식 매수 건수가 급증하면서 일본에 대한 투자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일본 증시의 강한 랠리와 엔화 초약세의 가장 큰 원인으로 유동성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며 “지난 4월 기준 일본은행(BOJ)의 자산 규모는 GDP 대비 약 124%에 육박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일본의 GDP 성장률 전망치는 내년에 미국 GDP 성장률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기대감에 힘입어 일본 증시로 외국인 자금이 급격하게 유입되고 있다. 아울러 초엔저 현상도 일본 경제와 기업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초엔저와 초완화적 통화정책은 일본 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 연구위원은 “일본은행의 초완화적 통화정책에 대한 지속적 기대감과 엔화 약세, 경제 펀더멘털 개선은 증시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일본 증시가 당분간 한국 증시보다는 매력 우위 현상을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하반기 일본은행의 초완화적인 통화정책 출구전략 가시화와 함께 엔화 강세 전환 가능성으로 경제적 변수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반기에 엔화가 강세로 전환할 경우 원화의 추가 절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향후 미국의 신공급망 구축 전략이 한국과 일본 교역 사이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