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플레이션 시대를 대비하는 스마트 팜

엘니뇨가 곡물 생산에 미치는 영향
올해만큼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 현상이 대량 발생한 적이 없었다.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홍수, 가뭄, 폭염, 산불 등 각종 기상재해가 인류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상 낙원이라 불리는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일어난 산불은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발생했고, 때마침 불어닥친 허리케인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미국 애리조나에서는 40℃를 웃도는 폭염이 한 달 넘게 계속되자 그곳의 명물인 대형 선인장들이 말라버렸다. 한밤중까지 지속되는 폭염으로 플로리다주 앞 바닷물이 38℃가 넘는 등 바다도 백화현상이 일어나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보다 내년을 더 걱정한다. 미국 기후예측센터CPC는 내년 1월부터 3월까지 겨울 동안 엘니뇨 기상 패턴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고, 세계기상기구WMO도 올 하반기부터 내년 초까지 이상기후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엘니뇨를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는 곡물 생산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주 기술 회사 막사Maxar의 기상학자 크리스 하이드가 엘니뇨의 수준이 강력해질수록 작물 생산 프로세스에 변화가 올 것이라고 분석한것과 무관하지 않다. 인도를 비롯해 동남아시아, 호주 및 아프리카의 주요 곡물 수출국들이 커피·팜유· 설탕· 밀·초콜릿· 쌀 등의 선적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다는 뉴스도 흘러나오고 있다. 기후 위기가 식량에 미치는 영향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지구 열대화 시대, 쌀이 위험해

특히 쌀은 지구 열대화 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쌀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변화하는 날씨 때문에 모내기 일정을 바꾸고 있다. 모종에 물이 필요할 때 비가 충분하지 않거나 반대로 비가 너무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올라와 염분으로 농작물을 망치기도 하고, 따뜻해진 밤 기온 또한 수확량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다.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극심한 강우로 인해 쌀 수확량이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인도는 자국민을 먹여 살릴 식량의 부족을 우려해 쌀 수출을 제한했다. 캘리포니아는 오랜 가뭄으로 인해 많은 농부가 밭을 휴경했다.
애그플레이션 시대를 대비하는 스마트 팜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새로운 농업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마트 팜Smart Farm’은 계절적 한계,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신기술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커피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경북 김천에서는 멕시코 고추라 불리는 할라페뇨를, 전남 영광에서는 열대 과일 애플망고가 재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국토 면적이 절반 정도인 네덜란드는 스마트 팜 보급률이 99%에 달하며, 이 같은 첨단 농업으로 세계에서 미국과 브라질에 이어 제3위의 농산물 수출국이 되었다. IMF와 세계은행의 미래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 인구 증가, 도시화가 확대될 2050년대 3대 산업 메가트렌드는 ‘모빌리티’, ‘헬스케어’ 그리고 ‘애그테크(농업+기술)’다.
모빌리티나 헬스케어는 충분히 예상했겠지만, 애그테크는 좀 의외로 생각될 것이다. 그런데 빌 게이츠나 짐 로저스 같은 투자의 달인들이 이미 농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미래 농업은 기후변화나 물 부족, 식량 부족으로 인해 매우 중요한 산업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우리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시간과 공간적 제약 없이 고부가가치의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애그테크를 적극 개발·지원하고 있다. 기존 농업기술에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해 농업의 지능화를 꾀하는 애그테크의 중요성이 스마트 팜을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정보 통신 기술ICT 기반의 스마트 팜은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대신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등 농업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스마트 팜의 규모화, 집적화, 청년 창업, 기술혁신, 판로 개척을 농업인과 산업계 및 연구 기관의 협업을 통해 주도하는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전북 김제, 경북 상주, 전남 고흥, 경남 밀양에 조성되고 있다.
스마트 팜의 진화

초기의 스마트 팜 기술은 원격으로 시설을 제어하는 농장을 의미했다. 스마트폰으로 비닐하우스 문을 자동으로 개폐하거나 실시간으로 농장의 온도를 확인하는 작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기술을 활용해 보다 면밀하게 농작물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인공지능 같은 기술로 비료와 물을 언제 주고, 어떤 해충을 대비해야 하는지의 정보를 스마트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향후에는 농민이 하는 작업을 아예 로봇이나 기계가 대신하는 기술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작물 재배를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기술은 사막뿐 아니라 미래의 우주 시대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익히 영화 <마션>이나 <패신저스>에서 많이 보았던 스마트 팜 장면을 현실에서도 마주할 날이 머지않았다.
위기의 가을이다. 날씨만 원망할 것이 아니라 기후 위기 속에서 우리의 밥상을 지키고 미래 세대를 위한 안전한 식탁을 꾸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선진국 중에 농업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한국도 좁은 국토 면적에서 한국의 강한 정보 통신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팜 등의 애그테크를 통해 밝은 미래를 향한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글. 남재철(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특임교수, 전 기상청장)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