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지프와 푸조를 전개하는 스텔란티스코리아가 지난 2월 방실 신임 대표를 선임하며 국내 시장과의 소통 확대에 나섰다. 판매량 부진과 들쑥날쑥한 가격 정책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 개선, 고객 서비스 불만족 등이 방 대표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INTERVIEW] 방실 스텔란티스코리아 신임 대표 "위기를 기회로"
스텔란티스는 미국과 이탈리아 합작사인 피아트·크라이슬러(FCA) 그룹과 프랑스 푸조·시트로엥(PSA) 그룹이 지난 2021년 손잡고 출범한 매머드급 자동차 기업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지프와 푸조를 비롯해 피아트와 크라이슬러, 램, 알파로메오, 시트로엥, DS 등 14개 자동차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현재 글로벌 판매량 기준 세계 5위. 특히 2023년에는 1895억 유로(약 271조9173억 원)의 매출과 186억 유로(약 26조6895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6%와 11%의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순항’ 중인 글로벌 시장과 달리 한국에서는 성장세가 주춤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21년, 수입차 브랜드의 주요 실적 지표로 꼽히는 연간 판매 ‘1만 대 클럽’에 가입하는 등 파죽지세를 이어 갔지만, 불과 2년 만에 판매량이 반 토막 났다. 스텔란티스코리아의 핵심 브랜드인 지프의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1.66% 수준. 푸조 역시 4년 만에 역성장 탈출에 성공했지만, 시장점유율은 0.75%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스텔란티스코리아는 신임 대표 선임을 계기로 전열을 가다듬는 등 반등 기회를 모색 중이다. 대표 교체로 부진을 딛고 반등을 이루겠다는 일종의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임 대표에게는 유독 ‘최초’라는 수식이 많이 붙는다. 지사 설립 이래 최초의 한국인 최고경영자(CEO)이자 첫 여성 리더인 방실 대표가 그 주인공.
방 대표는 20년 가까이 자동차 업계에서 활약하며 수입차와 국내 완성차 업계 경험을 모두 갖춘 흔치 않은 인물이다. 2005년 폭스바겐코리아의 원년 멤버로 10여 년간 홍보와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으며, 2015년부터는 르노코리아자동차(당시 르노삼성자동차)로 자리를 옮겨 마케팅, 세일즈, 애프터 세일즈, 네트워크 지원 등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축적해 왔다.
취임 후 첫 인터뷰로 한경 머니와 만난 방 대표는 “스텔란티스코리아가 당면한 과제를 잘 알고 있다”며 “기본기부터 다져나가겠다”고 말한다.

- 스텔란티스코리아의 새로운 ‘수장’이 됐다. 처음 대표직을 제안받던 순간을 떠올린다면.
“수입차 업계에서 일할 땐 감히 ‘이제 자동차 비즈니스를 좀 알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국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브랜드로 이직하고 보니 개발과 제조, 디자인 단계부터 고객 소통까지 배울 것이 참 많더라.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늘 아쉬움이 있었다. 수입차 시장이 훨씬 다이내믹하거든. 말하자면 수입차는 소비자층이 국내 제조사만큼 넓지 않기 때문에 고객의 피드백이 굉장히 빠른 편이다. 힘든 만큼 성취감도 크다. 언젠가 수입차 업계에서 다시 일해보고 싶었는데, 스텔란티스코리아와 인연이 닿았다. 무엇보다 스텔란티스코리아가 조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 오히려 긍정적인 자극제가 됐다. 책임감이 막중하지만, 지프와 푸조를 고객의 마음에 깊이 각인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20년 넘게 자동차 업계에 몸담아 왔다.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꼽자면.
“내가 처음 자동차 업계에서 일할 때만 해도 ‘승용차=가솔린’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일하던 폭스바겐은 이른바 비관세 장벽 때문에 디젤 승용차가 주력 모델이었다. 폭스바겐에서 홍보를 담당하며, 디젤 승용차에 대한 소비자의 인상을 바꾸는 첫 단추를 잘 꿰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 르노삼성자동차 시절에는 SM6 론칭을 맡았는데, ‘국산 중형 세단은 노멀한 차가 가장 잘 팔린다’는 공식을 깨고 터보 엔진을 단 프리미엄 트림을 전면에 내세웠다. 3개월 이내에 2만 대를 팔아야 했는데,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기억이 난다. 국내 제조사에서 개발과 디자인, 세일즈를 모두 경험해본 것도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중 하나다.”

- 스텔란티스에 한국 시장의 의미는.
“취임 전에는 그리 중요한 시장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국가에 비해 볼륨이 큰 편이 아니다. 그런데 스텔란티스에 들어오고 보니 한국 시장을 매우 중요시한다. 무엇보다 스텔란티스는 세계 곳곳에서 현대·기아자동차와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래서인지 현대차·기아의 모국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있다. 특히 한국은 스텔란티스 그룹 내 ‘제3의 성장 동력’으로 대변되는 인도·아시아태평양(IAP) 지역에서도 핵심 시장에 속한다.”
[INTERVIEW] 방실 스텔란티스코리아 신임 대표 "위기를 기회로"
- 현재 스텔란티스코리아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를 꼽자면 무엇일까.
“지난 몇 년 동안 불안정한 가격 정책 등으로 소비자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 이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계획은.
“물론 원가나 환율 등을 고려할 때 당장 가격을 내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혹시 이달에 차를 사면 다음 달에 몇 백만 원 할인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나 단번에 자동차 가격이 수백만 원 오르는 일은 더 이상 없도록 하겠다. 스텔란티스 글로벌 본사에서도 원가를 낮추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또 ‘눈에 안 보이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나. 최근 몇 년간 지프와 푸조의 활동이 주춤했던 것이 사실이다. 소비자들이 우리 자동차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이벤트도 늘리려고 한다. 잠시 중단한 ‘지프 캠프’도 올해부터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딜러에 대한 지원도 이전보다 늘릴 계획이다.”

- 사후관리(AS)에 대한 불만도 많다.
“취임 전 고객들이 쓴 댓글을 쭉 훑어보았다.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정말 많더라. 그만큼 손대야 할 부분이 많다. 사실 지프와 푸조 모두 판매량 대비 서비스센터 숫자가 적은 편은 아니다. 다만 서비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등의 원성이 높았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테크니션의 트레이닝을 강화할 예정이다. 또 테크니션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숙련된 기술자들이 우리 브랜드에 오래 남게 하려고 한다. 원활한 부품 수급이나 가격에 대한 부분도 본사와 논의 중이다.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은 건, 스텔란티스코리아도 이런 불만을 인지하고 있으며 보완을 약속한다는 것. 인터뷰가 진행되는 이 시간에도 본사에서 서비스 관련 임원들이 한국에 와서 개선할 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서비스를 직접 경험한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만족도 지수가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 지프와 푸조의 소구점은 무엇인가.
“요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인기가 뜨겁지 않나. SUV의 역사가 곧 지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통 SUV 브랜드로 쌓아 온 기술과 헤리티지, 온·오프로드에서 빛을 발하는 독특한 사륜구동 시스템이 지프의 최대 강점이다. 더욱이 지프는 팬덤을 지닌 몇 안 되는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로 오너들의 커뮤니티도 매우 활발하다. 반면 푸조는 독일차와는 다른 유럽차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가령 독일차가 아우토반에서 고속 주행 실력을 다졌다면, 푸조로 대표되는 프랑스차는 좁고 오래된 길을 굽이굽이 다니며 쫀쫀하고 섬세한 핸들링 실력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이른바 ‘손맛’이 일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위트 넘치는 실내 인테리어도 푸조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 현재 한국 수입차 시장은 독일차, 그중에서도 일부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쏠림 현상이 심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2015년 국산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출범하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된 것 같다. 이전에는 국산차를 타다 수입 대중 브랜드를 경험한 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같은 수입 프리미엄 브랜드로 넘어가는 고객이 많았다면, 지금은 수입 대중 브랜드의 자리를 제네시스가 대신하는 느낌이다. 특히 디젤로 편향돼 있던 수입차 파워트레인이 가솔린 혹은 하이브리드로 옮겨 가는 시간을 제네시스가 잘 메웠다고 생각한다. 제네시스가 좋은 브랜드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새로운 것을 원하는 소비자가 차츰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한다. 무엇보다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MZ(밀레니얼+Z) 세대는 다양성을 중시하지 않는가. 지프나 푸조처럼 개성 강한 브랜드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 현재 한국에서는 지프와 푸조 비즈니스만 진행한다. 스텔란티스 소속의 다른 브랜드 도입도 검토 중인가.
“스텔란티스는 브랜드의 현지화 전략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 ‘데어 포워드 2030(Dare Forward 2030)’을 비전으로 내세웠다. 그중에는 2030년까지 한국 시장에서 규모를 키우겠다는 ‘야심’도 포함돼 있다. 단 두 브랜드만으로는 본사가 원하는 만큼 판매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의 도입도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알파로메오가 될지, 램이 될지 혹은 피아트나 시트로엥을 다시 들여올지에 대한 계획은 아직 없다. 시장이 원하는 브랜드를 선보이는 데 필요한 모든 부분을 살피고 최선을 다하겠다.”

- 직접 운전하는 자동차도 궁금하다.
“그랜드 체로키를 탄다. 처음에는 워낙 크기가 압도적이라 운전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시트 포지션이 높아 편하다. 또 의외로 움직임이 민첩하다. 내가 움직이는 대로 잘 따라와 주는 느낌이랄까. 다양한 편의 및 안전 장비와 미국차 특유의 푹신한 승차감도 매력이다.”

- 마지막으로 올 한 해 스텔란티스코리아의 행보가 궁금하다.
“당장 판매를 급격히 늘리겠다는 계획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본기’다. 세일즈와 서비스, 마케팅 등 모든 부분을 다시 돌아보려 한다. 지프는 장기적으로 볼 때 랭글러를 넘어 그랜드 체로키와 왜고니어 등 다른 모델의 소비자 확장을 하는 것이 목표다. 그 일환으로 하반기에는 지프의 첫 번째 순수 전기차인 어벤저의 론칭을 준비한다. 푸조의 경우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전동화로 전환하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인데, 너무 앞서가다 보면 오히려 소비자의 선호가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에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내에서 전기차의 인기가 다소 주춤한 만큼 올해는 우선 하이브리드 쪽으로 집중하려 한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스텔란티스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