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노트]비움과 채움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동네 인근의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를 위해 10년 가까이 쌓아 두었던 집 안 곳곳의 짐들을 치워봅니다. 그때마다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불쑥 튀어나오네요. 중학교 때 학생증, 영화 잡지의 브로마이드, 대학 시절의 편지 꾸러미, 빛바랜 사진과 낙서 가득한 노트들까지. 소중했지만 한동안 방치됐던 추억들이 그렇게 와르르 쏟아집니다.

비움은 미련을 버리는 과정일 테죠. ‘혹시라도 나중에…’를 차단하지 않는다면 감당할 수 없는 과거들과 끝없는 동거를 이어 가야 할 테니까요. 비워진 자리엔 새로운 무엇이 채워질 것이고, 그 또한 먼 훗날에는 먼지 쌓인 추억이 되겠죠.

투자도 비움과 채움의 연속일 겁니다. 비워내지 않고서는 채울 수도 없겠죠. 또 너무 과도하게 한 곳에만 채워 넣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는 게 투자입니다.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비우고 제대로 채워 넣어야 수익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보상 받죠.

한동안 사람들이 비워냈던 가상자산이 최근 들어 다시 뜨겁게 달궈지고 있습니다. 지난 2021년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자산이 폭등하며, 그해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약 3조 달러를 기록했었습니다. 이는 당시 글로벌 사모펀드 시장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고 하죠. 하지만 이내 급등락을 반복하며 뒤늦게 가상자산으로 재미를 보려던 사람들에게 깊은 좌절을 안겼던 기억이 납니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의 ‘2023 국가별 가상자산 수익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실현수익 93억6000만 달러(약 12조4338억 원)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가운데 한국은 10억4000만 달러(약 1조3815억 원)로 8위에 자리매김했습니다. 또 정부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600만 명 이상이 참여해 매일 3조 원 넘게 거래를 한다고 하네요. 누군가가 투자 바구니에서 비워냈을 가상자산을 누군가는 또 열심히 채워 담았던 겁니다.

2024년은 가상자산의 판이 크게 바뀌는 원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올해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승인하고, 한국에서는 오는 7월부터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키로 하는 등 점차 각국에서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수용하는 분위기입니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가상자산 제도 개선을 공약으로 내놓는 등 과열 양상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시장도 뜨겁게 화답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4일 비트코인의 개당 가격이 사상 최고점인 7만3750달러를 기록한 바 있는데 최근에는 가격이 다소 주춤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이죠. 일부에서는 들썩이는 가상자산 시장을 지켜보며 ‘좋은 기회를 놓칠까 봐 노심초사’하는 ‘포모(FOMO) 증후군’까지 보입니다.

한경 머니는 4월 빅 스토리 ‘가상자산 투자, 판이 바뀐다’를 통해 최근 가상자산 시장 현황과 향후 달라지는 규제와 제도들을 점검해 전합니다. 또 전문가들의 시선으로 냉철한 투자 포인트를 점검해봤습니다. 너무 가득 채운 물잔은 사소한 흔들림에도 취약합니다. 비워야 할 때와 채울 때를 제대로 아는 것이 투자의 기본입니다.

글 한용섭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