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으로서 부동산은 유지, 변경은 물론이고, 매매 시에도 복잡한 세법이 적용된다. 더 나아가 부동산을 상속, 증여할 경우에도 골머리를 앓기 일쑤인데, 이때 신탁을 활용하면 어떤 이점을 얻을 수 있을까.

[상속 플래닝]
세대생략·신탁으로 부동산 상속 묘수 찾기
올해 여름은 평년보다 덥고 비가 많이 올 것이라는 날씨 예보에 A씨는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1980년대에 시어머니와 남편이 공동으로 매입한 서울 소재의 부동산을 보유 중인데 비가 많은 장마철이면 누수를 잡지 못해 늘 고전하기 때문이다.

한 해를 잘 넘겼다 싶으면 다음 해는 꼭 말썽이곤 했다. 다행히 10년을 넘게 한 자리에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임차인은 건물의 사정을 이해하면서 영업을 해 오고 있다. A씨는 그런 임차인이 고마워 10년째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 있다. 올해 A씨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로 한다. 건물을 보유하는 동안 늘 고민이었던 부동산 신축을 실행하기로 했다. 노후화된 부동산을 신축해서 자산 가치를 높이기로 맘먹은 것이다.

매각 대신 신축 후 증여 고민

A씨 부부는 수년간 건물을 신축하는 방안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과 함께 준비해 왔다. 예전부터 구상했던 디자인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확정했다. 멋진 모습으로 탈바뀜될 것 같은 기대가 든다. 신축될 부동산은 7층 높이로 지어질 수 있는데 자자손손 물려줄 것 같은 뿌듯함도 느껴지지만 오랫동안 함께했던 임차인에게 명도 통보를 완료했을 땐 왠지 모를 서운함도 밀려온다. A씨는 또 다른 중대 결정을 위해 필자를 찾았다. 부동산 신축을 위해서는 건축에 대한 결정이 우선일 텐데 지금껏 정작 해결하지 못했던 중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A씨 부부는 신축하려는 부동산이 자신들 가족의 핵심 자산이기에 신축 이후에도 두 딸들과 그 자손들이 공평하게 재산을 보유하며 영속하길 바라고 있다. 이것이 A씨 부부가 세운 ‘가족의 원칙’이다. A씨 가족을 위해 4세대를 잇는 자산 이전 플랜이 절실했고 부동산 개발, 세제, 법률을 통합적으로 구성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필자를 찾은 것이다. A씨는 신축뿐 아니라 매각 고민도 털어놓았다. 건물을 지으면 10년이 늙는다는 말에 신축을 포기할까도 생각해봤다. 지금의 부동산을 남편과 함께 구입했던 시어머니는 20년 전 A씨의 첫째 딸에게 보유 중이던 지분 전체를 증여했다. 그래서 현재 부동산 소유자는 첫째 딸과 남편이다.

건물의 최초 취득 시기와 시어머니가 A씨 첫째 딸에게 증여해준 시기 각각의 취득가액은 기준시가로 산정됐다. 결국 현 상태에서 건물을 매각하면 양도소득세 부담이 매우 큰 상황이다. 또 매각 후 남은 금전은 상속세 대상이 되므로 가족 전체에 발생하는 세금 부담이 만만치 않다. A씨는 세금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한 끝에 결국 자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부동산을 신축하기로 결정했다.
세대생략·신탁으로 부동산 상속 묘수 찾기
A씨 부부와 자녀들 모두 상당한 양도세, 상속세를 부담하는 대신 부동산 개발을 통해 부의 가치를 증대하는 방향으로 정한 것이다. 신축하기 전 남편의 지분 중 70%는 둘째 딸에게 증여하기로 하고 남은 30%는 상속하기로 결정한다. A씨 첫째 딸이 증여받을 때에는 세금 비용이 적었지만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른 지금은 남편 지분 전체를 둘째 딸에게 증여하면 부담할 비용이 너무 컸다.

세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건물의 가격인데 과거와 다르게 남편 지분을 공시지가로 증여할 수 없다. 비주거용 부동산은 감정평가 필수 대상으로 결국 감정평가기관에 의뢰해 감정가액을 받아야 한다.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민이다. 가치 상승이 예상되는 재산은 미리 증여함으로써 다음 세대를 위해 부동산 가치 상승 폭만큼의 비과세 효과를 보는 절세 전략이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 시세에 가까운 가격으로 증여해야 하는 만큼 고민이 깊어지는 것이다.

할증 세금보다 절세액이 더 큰 세대생략

A씨처럼 증여와 상속 플랜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상속에 대비하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A씨의 시어머니는 손자녀를 활용해 세대를 건너뛴 증여 플랜을 실행했다. 세대생략을 활용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시어머니의 전략이 주효했다. A씨는 시어머니가 증여할 때 남편의 지분도 증여하지 못한 점이 후회스러웠다. A씨 부부도 시어머니처럼 증여·상속 플랜을 수립할 때 세대생략을 활용할 계획이다.
A씨 남편이 보유한 지분 중 상속으로 계획한 30% 지분은 둘째 딸의 손주 2명에게 상속할 계획이다. 시어머니는 손자녀에게 증여를 실행하고, A씨 부부도 손자녀에게 증여와 상속 계획을 통해 절세 플랜을 달성하려고 한다. 상속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증여를 실행하면 실행 순간부터 수증자인 자녀세대들의 증여세 부담이 시작된다. 부동산 증여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과거보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증여와 부분 상속 등 잘 짜여진 상속 설계는 특히 부동산 보유자에겐 매우 중요하다.

A씨 부부의 첫째는 미혼이지만 둘째는 손주 2명이 있어 세대생략을 통한 상속 계획이 가능하다. 증여나 상속 시 손주들에게 이전하면 세대할증에 따른 30~40%의 추가적인 세금이 발생하지만 세대생략으로 인한 절세액은 더 크다. 자산 가치가 낮을 때 세대 이전이 된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이다. 먼저 선행돼야 할 것은 부동산 소유자인 A씨 남편의 상속 준비다. 만약 아무런 준비 없이 사망하게 되면 손주들은 민법상 상속인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들이 생각했던 세대생략 이전은 실행이 불가능하다.

증여를 실행했던 시어머니의 경우와 달리 손주와 같이 민법상 상속인이 아닌 자에게 재산을 상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상속인의 유언이 필요하다. 즉, 다섯 가지(공정증서·자필증서·녹음·비밀증서·구수증서)의 민법상 유언을 하거나 신탁법상의 유언대용신탁을 통한 상속 설계가 필요하다.

A씨 가족은 유언대용신탁을 통한 ‘신탁상속’을 설정하기로 했다. A씨는 유언장 방식과 달리 유언대용신탁이라는 신탁상속제도가 익숙하지 않았다. 신탁이란 재산을 가진 위탁자가 믿을 만한 자에게 재산을 맡겨 위탁자가 지정한 수익자를 위해 목적에 맞게 관리와 처분을 맡기는 것이다.

A씨 가족의 신탁 구조는 재산을 보유한 남편이 위탁자로서 본인 사후 1차 수익자로 손자녀 2명을 지정하고, 사후 2차 수익자는 2명의 손자녀를 맞바꿔 지정했다. 본인 사후에 사후 수익자들인 손주들의 나이가 어리다면 최소한 30세가 될 때까지 안전하게 보전해 관리하고 운용하는 내용도 신탁에 추가했다.

‘가족의 원칙’을 지켜주는 신탁상속

위탁자가 사망해 신탁을 집행할 시점에 손주들이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혹여 먼저 유고가 발생하는 경우까지 대비하는 전략을 함께 구사한 것이다. 이처럼 유언장과 확연히 다른 신탁제도를 통해 가족의 원칙을 지킬 나갈 수 있는 플랜을 설정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가족의 원칙’을 지킬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무엇인지 늘 고민한다. A씨도 주변의 유해요소에 방해받지 않으면서 자녀들을 위한 자산 분배 고민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가족의 원칙을 늘 강조했다. A씨는 ‘가족의 원칙을 위한 신탁’이라는 가상의 재단을 설립해 본인, 자녀, 그리고 손주세대에 이르는 상속 설계를 지혜롭게 구성한 것이다. 요즘처럼 고령화가 심화되는 다사(多事)의 시대에 상속 설계 방안으로 신탁이 제격이라는 평가다.

박현정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