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헌법재판소가 47년간 유지돼 온 유류분 제도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법개정 논의가 본격화 되고 있다. 특히 가업승계 과정에서 유류분 분쟁이 발목을 잡아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협 다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속 플래닝] 가업승계는 기업이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경영이 지속되도록 소유권 또는 경영권을 후계자에게 물려주는 것을 말한다. 최근 발표된 여러 통계에 따르면 최고경영자(CEO)가 60세 이상인 잠재적 가업승계 기업은 전체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의 3분의 1 이상이고 그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가업승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오너는 물론 기업도 위험에 빠진다. 경영권의 이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후계자가 회사를 승계받지 못할 수 있고, 가업승계 시에 부과되는 막대한 세금 때문에 승계 자체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가업승계의 중요성을 알고 미리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여러 가지 분쟁의 소지도 크다. 회사의 의사결정, 주식의 이전과 주주권 행사, 기업구조조정 및 인수·합병(M&A)과 관련한 다양한 분쟁이 가업승계를 가로막는다.
가업승계의 열쇠, 유류분
그중 가장 많이 일어나는 분쟁은 경영권을 포함한 상속재산 분쟁과 세금 관련 분쟁이며, 특히 후계자와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유류분 분쟁은 큰 변수가 된다. 그래서 유류분을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기업 소유권이 분산되고 심할 경우 가업승계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즉, 상속에서 배제됐거나 적게 물려받은 자녀나 가족이 유류분을 청구해 지분이 분산되면서 회사 경영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사태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자.
배우자와 사별하고 자녀 넷을 둔 사업가가 있다. 각자의 직업을 찾아 떠난 다른 자녀들과 달리 둘째가 일찌감치 아버지를 도우며 회사 일을 배웠다. 아버지는 똘똘한 둘째가 가업을 물려받기를 원했고 실제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회사의 주식과 부동산을 모두 생전에 둘째에게 물려줬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다른 형제들은 받은 것이 없다면서 둘째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했다. 둘째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지(遺志)대로 가업을 잘 승계할 수 있을까. 우리 민법은 유언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친족 중 한 사람에게 모든 재산을 다 몰아주거나, 친족이 아닌 제3자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줌으로써 나머지 친족에게 상속될 재산이 전혀 없게 만드는 극단적인 상황도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부모 사후에 당연히 일정한 몫을 물려받을 것이라 기대했던 자녀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망인의 재산에 기대어 살던 배우자나 도움이 필요한 가족 구성원은 생활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유류분 제도다. 피상속인(사망한 사람으로서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의 유언이나 생전 증여가 있더라도 상속재산 중 일정한 비율은 피상속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상속인을 위해 반드시 남겨 두게 된다. 이같이 ‘유보되는 몫’을 유류분이라고 한다.
유류분보다 적게 상속받게 된 상속인은 자신의 몫보다 많이 받은 상속인이나 제3자를 상대로 부족한 만큼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다. 피상속인은 유류분을 고려하지 않아 유산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온전히 실현하는 데 실패할 수 있고, 상속인은 유류분 때문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 증여나 유증으로 받은 재산을 반환해야 할 수 있다. 이처럼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과 상속인 모두에게 중요한 상속의 요소다.
우리 법은 유류분 권리를 가진 사람을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배우자, 직계존속, 형제자매로 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4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유류분 권리자에서 제외됐다. 유류분 비율은 직계비속이나 배우자의 경우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이며, 직계존속은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이다.
사례로 돌아가 보면, 네 자녀의 법정상속분은 각각 4분의 1이고, 직계비속의 유류분 비율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이므로 주식 외 상속재산의 배분과 생전 증여재산 등의 특별수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형제들은 각각 8분의 1씩을 유류분으로 인정받는다. 둘째를 제외한 형제 3명의 유류분을 합하면 상속 대상이 된 회사 지분의 8분의 3이 된다.
만일 피상속인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이 전체 회사 주식의 80% 이상이 아니라면, 둘째는 회사의 주식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단독으로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1~ 2%의 미세한 지분 차이로 경영권이 오가거나 외부로부터의 적대적 인수 시도가 있는 상황이라면 유류분으로 반환한 주식 때문에 경영권을 방어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유류분의 반환 방법도 가업승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유류분은 원물반환(유류분을 침해해 받은 증여나 유증 목적물 그 자체를 반환하는 것을 말한다) 원칙을 따른다. 따라서 아버지가 장남에게 모든 유산을 넘겨줬고 다른 형제들이 유류분을 청구하면 장남은 물려받은 재산 가운데 주식이면 주식, 부동산이면 부동산으로 법이 정한 비율만큼 돌려줘야 한다.
장남이 물려받은 주식 또는 부동산 가운데 유류분에 해당하는 몫을 같은 가치의 돈이나 다른 재산으로 돌려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원물반환을 하고 나면 주식이 분산되거나 부동산의 경우 소위 ‘알박기’ 현상이 발생해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원물반환만을 고수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원물반환에 대비되는 개념은 가액반환인데, 유류분에 해당하는 금액을 따져서 돈으로 반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원물반환을 기본 원칙으로 하되, 이 원칙을 따를 경우 피상속인의 의사에 반해 가업승계가 무산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면 가액반환을 허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결 방안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원물반환을 원칙으로 정한 유류분 규정이 합헌이라고 판단했지만 개정의 여지는 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한 패륜적 상속인의 유류분권 상실과 기여상속인의 기여분 고려를 다루기 위해 개선 입법이 이루어질 예정인데, 그 범위가 이 두 가지 내용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원물반환 원칙을 비롯해 공익재단이나 가업승계를 위한 증여에 대해서는 유류분 반환에 특례를 인정하는 문제도 유류분 관련 법률 개정 과정에서 심도 있게 논의될 수 있다.
유류분 미리 계산해
현금 등으로 생전 증여 그렇다면 유류분으로 주식 지분이 분산되는 것과 같은 사태를 방지함으로써 가업승계를 온전히 이루어 나갈 방법은 없을까. 우선 유산을 생전에, 또는 유언으로 배분할 때 유류분 반환 청구에 대한 가능성을 애초에 봉쇄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자식 중 한 명에게 회사 주식이나 특정 부동산을 온전히 물려주기 위해, 다른 자녀들이 청구할 수 있는 유류분의 규모를 미리 계산해 해당 금액만큼 현금성 재산이나 기타 자산 등 다른 상속재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회사 주식 또는 부동산 일부를 상속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다른 자녀들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상속받은 다른 재산의 규모가 자신의 유류분액을 넘어설 경우 유류분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다음으로 생전 증여나 유언 외에 신탁 등 다른 제도의 도움을 받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유언대용신탁을 하더라도 유류분 반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가업승계를 목적으로 주식을 신탁한 경우 가업상속공제 등 절세 효과를 얻기 어렵고, 일정한 경우 의결권 행사도 제한돼서, 세법이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일명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제가 보완, 개정되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늘날 가업승계는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개인과 가족에게는 자산과 정신의 계승이자 가정의 평화를 이루는 근본이 되고, 넓게는 기업의 존속, 고용 시장의 안정과 같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유류분 제도 자체가 가진 고유한 목적을 잘 달성하면서도 그것이 건전한 가업승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국민의 총의를 모은 입법과 지혜로운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업승계를 계획하고 있다면 유류분이나 세제 혜택 등 관련 법제를 꼼꼼히 살펴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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