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그룹 ‘진옥동 호’가 출항한 지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어려운 시기에 더욱 강조되는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격언처럼, 진 회장은 저성장 시대의 성장과 혁신을 이끌기 위해 ‘신한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스페셜] 대한민국 금융그룹 대해부-신한금융 2022년 12월 8일, 신한금융지주는 ‘깜짝 세대교체’를 발표했다. 서울 중구 태평로 소재 본사에서 열린 신한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만장일치로 진옥동 후보를 차기 신한금융그룹 회장으로 내정한 것이다. 당초 3연임이 유력했던 조용병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용퇴를 결정하면서, 세 명의 후보 중 진 회장이 최종적으로 낙점됐다.그날 오후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는 기업혁신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신한은행은 금융권 최초로 상생형 배달 플랫폼 ‘땡겨요’를 통해 상생 문화와 사회공헌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땡겨요’는 진 회장이 은행장 재임 당시 기획부터 출시까지 직접 챙긴 그의 작품이다. 진 회장은 회추위 면접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수상자로 무대에 올랐다. 같은 날 회장 선임·대통령상 수상의 두 영예를 안으며, 이로써 ‘진옥동 시대’의 서막을 알리게 됐다.
진 회장의 취임 일성은 ‘고객 중심 경영’이었다. 2023년 3월 23일, 회장 취임식에서 진 회장은 “창업과 성장의 기반이 됐던 고객 중심의 가치를 고객 자긍심으로 확장시켜 나가자”며 은행장 시절부터 강조해 온 경영 철학을 더욱 확고히 했다. 이어 같은 해 7월 열린 ‘신한컬쳐위크’에서도 “재무적 1등보다 고객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진정한 일류”라며 “한 단계 높은 내부통제를 기반으로 고객과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일류 신한을 지향점으로 삼자”고 천명했다. ‘정통성’ 부여받은 진 회장…‘창업 정신’ 되새겨
진 회장은 약 20년 가까이 일본 오사카 지점에서 근무한 그룹의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힌다. 1986년 신한은행에 입행하고 1997년 오사카 지점으로 발령받은 후, 거의 대부분의 이력을 일본에서 쌓았다. 2015년 일본 현지법인 SBJ 대표, 2017년 신한금융지주 부사장, 2019년 신한은행장을 역임하고, 2023년 3월 신한금융그룹 회장에 올랐다. 실제 신한금융지주 제4대 회장 선임의 배경에는 진 회장에 대한 재일교포 주주들의 상당한 신뢰가 자리한 것으로 알려진다.
진 회장은 신한은행의 ‘정통성’을 부여받았다는 평가를 얻는다. 신한금융그룹의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있다면 신한은행 설립자인 고(故)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이다. 오사카 출신의 재일교포로, 피땀 어린 돈 250억 원을 모아 1982년 신한은행을 창업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이 명예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이가 바로 진 회장이다. 진 회장은 이 명예회장이 2011년 노환으로 별세할 때 마지막까지 병상을 지키며, 신한의 ‘창업자 정신’을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진 회장이 취임 후 ‘신한 문화’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한 문화는 곧 파운더들이 가졌던 생각과 맞닿아 있다. 신한은행은 초창기 세 개의 지점을 운영하며 고객 가까이에서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했다. 당시만 해도 은행은 일반 서민에게 문턱이 매우 높았지만, 상인 출신 재일교포들이 출자해 ‘미니 뱅크’로 출발한 신한은행은 친절한 금융 서비스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비스 중심 금융기관’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를 얻는다. 진 회장은 신한 문화의 정수를 여기에서 찾았다. 초창기 직원들은 끈끈하게 연대하며 ‘파이팅 스피릿’, ‘주인 정신’을 가지고 신설 은행에서 우량 은행으로의 기반을 쌓아 나갔다. 그 DNA를 되살려, 오늘날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면서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게 진 회장의 강조점이다.
주식 저평가…강력한 주주 환원 정책으로 타개
진 회장 체제의 성적표는 무엇보다 ‘실적’이 말해준다. 신한금융지주는 ‘리딩금융’ 타이틀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 왔다. ‘누가 1등인가’의 경쟁에서 신한금융지주는 올해 1분기 순이익 기준으로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여기에는 홍콩H 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배상 비용 등 일회성 요인이 반영된 측면이 있다. 김인 BN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전체 이익은 큰 차이가 없는 선에서 일회성 요인들에 따라 KB금융지주와 순위가 바뀌고 있다”며 “지난해 이익을 기준으로 보면 손해보험이 없는 신한금융이 이 부분에서 약 8000억 원 정도 뒤처지면서 전체 순위를 갈랐다”고 말했다. 특히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에 따라 손해보험사들의 이익이 늘어나면서 차이를 보였다. 김 애널리스트는 “신한금융지주가 탄탄한 이익을 내고 있는 데 비해 시가총액은 두 회사가 2020년 2분기 이후 격차를 벌려 8.2조 원까지 벌어진 점에서 그만큼 저평가 됐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 가치 ‘저평가’ 현상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 가치로 나눈 것이다. PBR이 1배 미만이면 주가 수준이 기업의 자산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신한금융의 PBR은 0.46배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로는 오버행(잠재적 과잉 물량) 우려가 있다.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어피니티에퀴티파트너스와 베어링PEA는 지난 2020년 신한금융이 진행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과정에서 신한금융 지분 각각 3.9%, 3.6%를 획득했다. 올해 들어 이들 운용사가 대량 매매(블록딜)로 지분을 일부 정리했지만, 잠재 매도 물량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신한금융은 저PBR을 타개하기 위해 주주 가치 제고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모든 이해관계자와 함께 그룹의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시장을 선도하는 주주 환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2021년 2분기부터 국내 금융지주 최초로 분기배당을 실시한 이후 현금배당 확대 및 자사주 매입, 소각 등을 통한 총주주환원율(TSR)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2023년부터 주주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균등한 금액의 분기배당을 실시하고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또한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자본관리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 계획에 따라 2023년에는 매분기 525원을 균등하게 분기배당하고, 총 4859억 원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실시함으로써 전년보다 6%포인트 상승한 총주주환원율 36%를 달성했다.
진 회장은 지난 5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업설명회(IR) 행사에서 “앞으로 재무 정책은 자기자본이익률(ROE) 10%를 목표로 손실 흡수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발행 주식을 줄여 나갈 것”이라고 강조하며, 향후 지속적이고 탄력적인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통한 주주 가치 제고 계획을 피력했다. 지난 6월 말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애널리스트 데이’에서는 저녁 만찬에 깜짝 등장해 “한국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후대에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선물하기 위한 중요한 과업”이라며 “사명감을 갖고 밸류업 프로그램을 선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한금융은 올해부터 매분기 540원씩의 현금배당을 균등하게 실시할 예정이다. 1분기 1500억 원에 이어 2~3분기에도 3000억 원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7개 분기 연속)을 이어 나가는 등 시장 상황을 고려해 탄력적인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의 병행을 통해 총주주환원율을 더욱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강점 살려 사업 다변화 추진
신한금융그룹은 글로벌 진출에 성공하며 타 금융지주사와 차별화된 지점을 만들었다. 많은 금융사들이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실제로 수익을 거둬들이는 성공 모델을 만들기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신한금융은 베트남과 일본에서 괄목할 만한 실적을 내고 있어 주목된다.
진 회장은 ‘선택과 집중’으로 글로벌 성장 전략을 다각화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글로벌 경기 변동성 확대로 시중은행들의 성장세가 둔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SBJ 중심의 성장세를 유지하며 글로벌 연간 당기순이익 5638억 원을 달성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올해 1분기에는 외형 성장과 함께 대손비용 관리 노력에 힘입어 글로벌 손익 2150억 원을 시현하며, 전년 동기 대비 35.4% 성장, 그룹 손익 비중 16.3%를 차지하는 등 손익 증가세를 지속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중 무역분쟁 및 공급망 재편 영향, 중동 정세 불안 등 글로벌 금융 시장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신한금융은 차별화된 성과 창출을 위해 성장 유망 지역에 대한 영업 커버리지를 확대하고 있으며, 국내외 간, 해외 점포 간 연결과 확장을 통한 글로벌 사업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업종 등 국내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북미지역에는 진출 기업을 대상으로 원활한 금융 지원을 위해 미국 조지아주에 대표사무소를 연내 개소할 준비를 하고 있다.
또한 동유럽 지역에 전기차 및 2차전지 업종의 밸류체인이 형성됨에 따라 헝가리, 폴란드 사무소에 인력 충원을 통해 현지 금융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그 외 인도, 아프리카 등 성장 가능성 유망 지역에는 기존의 채널 확장 방식 외 지분 투자 등 다양한 방식의 시장 참여 기회도 검토, 진행하고 있다. 박스1/ 신한금융 디지털 플랫폼…‘신한 SOL’ 브랜드 통합
진 회장은 하반기 핵심 의제로 ‘디지털 혁신’을 꼽았다. 신한금융그룹은 그룹의 비전인 ‘더 쉽고 편안한, 더 새로운 금융’을 실천하기 위해 주요 그룹사 애플리케이션의 금융 소비자 편의성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21년과 2022년 각각 전면 개편을 완료한 신한 쏠(SOL)뱅크와 신한 SOL페이는 그룹의 대표 플랫폼으로서 일상의 모든 영역을 케어하고 생애주기 전체의 금융을 지원하는 라이프 플랫폼으로 확장을 꾀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 주요 앱 월간활성이용자수(MAU) 현황
슈퍼SOL 160만 명
SOL뱅크 963만 명
SOL페이 886만 명
자료 신한금융지주, 2024년 6월 말 기준
이 일환으로 신한금융그룹은 2023년 11월부터 신한은행, 신한카드, 신한투자증권, 신한라이프 등 4대 주요 그룹사의 디지털 앱 브랜드를 ‘신한 SOL’로 통합했다. 신한금융그룹은 2022년 신한은행의 모바일뱅킹 앱인 ‘뉴 쏠’을 선보인 이후, 1년여의 노력 끝에 2023년 12월 '금융을 새롭게, 신한이 한다'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개발한 슈퍼 앱 ‘신한 슈퍼SOL’을 출시해 디지털 플랫폼 경쟁력 강화에 더욱 힘쓰고 있다.
‘신한 슈퍼SOL’은 신한금융의 주요 그룹사인 은행, 카드, 증권, 라이프, 저축은행 등 5개사 금융 앱의 핵심 기능을 결합해 ‘한곳에서 빠르게’, ‘다양한 기능을 융합해 편리하게’ 금융 업무를 볼 수 있는 통합 앱이다.
신한금융은 슈퍼SOL을 그룹의 대표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슈퍼SOL 중심의 그룹 디지털 플랫폼 전략(슈퍼SOL First)을 추진하고 있다. 박스2/ '비용 효율화' 너머 '진짜 성장 전략' 마련이 과제
진옥동 회장은 직원들에게 재무적 1등을 강조하진 않았지만, 리딩금융 타이틀을 되찾기 위한 고민은 꽤 짙은 것으로 알려진다. 회장 취임 이후 잠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다는 전언이다. 견고했던 리딩금융의 자리가 위태로워지는 한편, 그룹의 추가적인 성장 동력 찾기는 만만치 않은 환경이다. 무엇보다, 저성장 시대 미래 성장 전략을 마련하는 게 과제로 꼽힌다. 또한 '1등주의'보다 '고객만족'을 강조하는 경영 철학이 취지와 달리, 자칫 임직원들의 절박함이 사그라드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까지의 신한금융은 M&A를 통해 몸집을 키우는 전략으로, 조흥은행, LG카드 등 국내 굴지의 금융사들을 인수하며 업계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신한금융은 비은행 부문을 확대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얻는다. 경쟁사에 비해 손보의 부재가 약점으로 꼽히지만, 현재의 손보사 과점 체제에서 추가 M&A는 손실을 따져봐야 한다. 문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이익을 늘리며 성장하는 게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 회장이 어떠한 카드를 꺼내들지 관심이 쏠린다. 우선은 ‘비용 효율화’ 전략이 돋보인다. 진 회장 취임 이후 단행된 ‘조직 슬림화’ 및 ‘내부 통제’ 작업이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잘하던 것을 잘 지키는 전략'에 더해, 진짜 성장 전략을 마련하는 게 신한금융뿐만 아니라 금융지주사들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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