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정말이다. 국내 뷰티 스타트업 본작이 전개하는 니치 향수 브랜드 ‘셀바티코’는 프랑스에서 만든다. 그것도 국내를 넘어 아시아 최초로 프랑스 최고 조향 회사와 함께.

[인터뷰]
어쩌면 가장 프랑스적인, K-향수
‘셀바티코(Selvatico)’는 2022년 5월에 론칭한 신생 뷰티 브랜드다. 향수와 핸드크림, 리퀴드 솝(액상 비누)과 향초 등을 선보인다. 이제 갓 2년을 넘긴 브랜드지만,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못해 가히 폭발적이다. 일례로 대표 제품 중 하나인 ‘퍼퓸 핸드크림 솔루션’은 별다른 마케팅 없이 입소문만으로 6만 개 이상 판매됐을 정도다. 나아가 론칭 이후 매월 판매액이 전월 대비 평균 38%씩 증가하는 등 높은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어디 그뿐인가. ‘콧대’ 높은 백화점들이 잇달아 러브콜을 보내 스무 번 이상 팝업 스토어를 개최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롯데 및 현대백화점 등 주요 백화점에 정식 매장을 오픈했다. 일부 제품은 현대백화점 VIP 고객에게 제공되는 시그너처 향으로 독점 계약을 맺기도 했다.
많은 신생 뷰티 브랜드 중 셀바티코가 주목받는 이유는 역시 제품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셀바티코의 모든 제품은 프랑스에서 생산한다. 리퀴드 솝은 프랑스 리빙 헤리티지 컴퍼니인 프로벤디(Provendi), 핸드크림과 향수는 세계적 향료 회사 로베르테(Robertet)와 함께 만든다. 특히 셀바티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향기를 책임지는 로베르테는 향료 제작에 필요한 식물 재배부터 향료 추출, 조향까지 모든 공정을 관리하는 세계 유일의 기업이다. 바이레도와 불리 1803, 트루동 등 럭셔리 니치 향수 브랜드에 향료를 공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계적 기업이라고 해서, 혹은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로베르테와 향료 개발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로베르테는 협력 브랜드를 선정하는 기준이 매우 깐깐하고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엄격한’ 업체가 한국의 작은 스타트업인 셀바티코와 손을 잡은 것이다. 더 놀라운 건 국내를 넘어 무려 아시아 브랜드로도 최초라는 점이다.
셀바티코와 로베르테의 파트너십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지난 7월 셀바티코는 로베르테의 투자 자회사 빌라 블루(Villa Blu)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 앞으로 셀바티코는 빌라 블루와 로베르테로부터 유통, 지적재산(IP) 관련 운영 서비스와 기술 및 제품 개발, 글로벌 뷰티 기업 및 벤처 캐피털(VC) 네트워킹, 유럽 후속 투자 유치 등을 지원받는다. 해외시장에서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한경 <나인투나인>과 만난 배형진 본작 대표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국내시장의 성장과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며 “한국을 넘어 세계적 향수 전문 기업으로 꾸준히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이유는.
“셀바티코는 사업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에 방점을 두고 시작했다. 다시 말해 세계에서 통할 만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계 최고와 일할 것이 아니면 안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프랑스를 선택한 이유는 향수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농업부터 조향까지(Seed to Scent)’라는 로베르테의 철학이 마음에 와닿았다.”

- 로베르테는 세계 최고 조향 회사 중 하나다. 주로 명품 브랜드와 일하고 아시아 기업에는 향료를 제공한 전례가 없다. 변방, 그것도 작은 스타트업 회사에 처음부터 호의적이진 않았을 텐데.
“사업 계획서와 브랜드 기획서를 보여주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메일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현지 시간에 맞춰 전화하거나 줌 미팅을 요청하기도 했다. 연락만 수백 번은 한 것 같다. 그 과정이 6개월 걸렸다. 로베르테가 받아주지 않으면 사업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기다리다 지칠 무렵, 마케팅 부서 담당자로부터 ‘너희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 로베르테가 본작과 손잡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협업을 진행하면서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제안한 아이디어가 공감됐고, 동양의 작은 기업이 열정적으로 연락하는 것을 높이 샀다고 하더라. 특히 개인적으로 ‘되찾다’, ‘발견하다’, ‘회복하다’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 ‘르트루베(retrouver)’라는 말을 좋아해 이 단어를 중심으로 브랜드 계획서를 작성했는데, 가장 프랑스적 콘셉트를 한국 사람이 쓴 것에 놀랐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들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모습에 ‘이 사람은 뭘 해도 하겠구나’ 싶었다고.(웃음)”

- 로베르테로부터 투자 유치 과정은 어땠나.
“로베르테 창업주 일가이자 현재 빌라 블루 대표인 모베르(Maubert)가 셀바티코 팝업 스토어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로베르테가 투자 회사를 만들었다며 피칭을 제안했다. 화상으로 진행을 권유했는데, 그럴 수 있나. 그길로 비행기 티켓을 사서 프랑스로 갔다. 1박 3일의 일정이었다. 모베르가 이 점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 듯하다. 로베르테 회장이 직접 고마움을 전했을 정도다. 그렇게 다시 한번 신뢰를 얻었고, 결국 비유럽권 브랜드 최초로 투자를 이끌어냈다.”

- 그동안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브랜드를 론칭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고객과의 소통이었다. 그래서 오프라인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얼굴도 모르는 온라인 판매보다는 고객을 직접 만나 공들여 만든 우리 제품을 알리기로 한 것이다. 성수동에서 3일짜리 렌트 프리 팝업 스토어를 열고 제품에 담긴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와 철학 등을 성심성의껏 설명했다. 그런데 팝업 스토어를 다녀간 한 고객이 며칠 뒤 친구와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사장님, 지난번 했던 도슨트 좀 다시 해주세요’라고 말하더라. 아, 이거구나 싶었다. 고객이 단순히 우리 제품을 구매만 한 것이 아니라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우리의 스토리를 함께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제품에 대해 도슨트를 해주는 셀바티코만의 문화가 형성됐다.”

- 한국에서는 수많은 뷰티 브랜드가 경쟁한다. 셀바티코와 비슷한 포지셔닝을 구축한 브랜드도 많다. 그중 셀바티코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우선 프랑스 헤리티지와 깊이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셀바티코는 단순히 프랑스에서 영감받는 것을 넘어 실제로 프랑스 조향사, 프랑스 장인과 협업한 제품을 선보인다.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셀바티코만의 경쟁력이다. 또 브랜드 디렉팅과 감각적 접근법을 꼽고 싶다. 셀바티코는 제품 하나하나에 세심한 디렉팅을 더한다. 고객의 감각을 자극하는 향뿐 아니라, 그에 걸맞은 제품별 스토리 라인, 그리고 브랜드의 모든 요소가 일관되게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한국 시장에 빠르게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지난 9월 새로 오픈한 셀바티코 현대백화점 천호점
지난 9월 새로 오픈한 셀바티코 현대백화점 천호점
- 올해 초에는 향수 라인을 론칭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프랑스 인상주의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향수를 네 가지 제품으로 구성했다. 각 제품마다 스토리가 있는데, 예를 들어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표현한 향수 ‘수 보아 드 생제르맹’은 가을 숲 향기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제품의 모티브가 된 미술 작품이 생제르맹 숲 밑에서 그려진 만큼 이를 향수로 구현한 것이다. 또 ‘살롱 드 파리’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프랑스가 가장 찬란한 문화를 뽐낸 벨 에포크 시절의 사교 문화인 ‘살롱’을 표현했다. 당시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층에서 즐겨 사용하던 시프레 향의 19세기 레시피를 복각한 것으로, 신선하고 활기찬 베르가모트 향에서 시작해 바닐라와 통카 빈의 쌉쌀한 잔향으로 마무리돼 세련되고 노블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 제품을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향기 레이어가 얼마나 다층적인지가 고급 향수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요리에 비유하면, 입에서 다양한 식재료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고급스러운 풍미라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다행히 프랑스에는 희귀 향료가 많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특히 로베르테는 이러한 작업에 특화된 기업이다. 향기 레이어를 촘촘히 쌓아 다층적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지속력도 중요하다. 냄새 분자가 오래 붙어 있을 수 있는 제형, 그와 어울리는 최적의 조향 비율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 셀바티코 제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향이 있다면.
“셀바티코의 모든 향을 사랑한다. 질문을 조금 바꿔 가장 자주 사용하는 제품을 묻는다면 ‘포레 드 퐁텐블로’다. 이 향수는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을 여행하던 중 자연 속에서 느낀 감동적 순간을 모티프로 만든 제품이다. 당시 내가 느낀 숲의 신선한 공기를 담았는데, 하루의 시작을 이 향과 함께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긍정적 에너지를 얻게 된다.”

- 최근 프랑스 그라스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그라스(Grasse)는 프랑스 향수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자회사 설립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지는 것이 목표다. 또 K-뷰티 열기가 높은 도쿄와 상하이 같은 아시아 시장에도 우리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 현재 한국에서 향수와 핸드크림, 리퀴드 솝, 향초를 선보이고 있다. 다른 제품군도 출시할 계획이 있는지.
“로베르테의 투자를 계기로 몇 가지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보습력이 뛰어난 핸드 & 보디 크림과 일상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헤어 & 보디 오일, 셀바티코만의 향을 담은 디퓨저 와 하루 종일 향기가 지속되는 보디 스프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각 제품별로 새로운 향을 개발 중인데, 자연에서 영감받은 독특하면서 감각적인 향기를 담을 예정이다. 아, 그리고 이탈리아 장인들과 협업해 패키지를 새롭게 제작 중이다.”

- 앞으로 브랜드를 어떻게 전개해나갈지 궁금하다.
“프리 시리즈 A 투자 유치가 마무리되는 올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제품 라인업이 갖춰질 예정이다. 앞서 말한 제품을 모두 출시한다. 장기 계획은 해외시장에 안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셀바티코가 단순한 뷰티 브랜드가 아닌 프랑스와 대한민국, 양국의 문화와 예술을 담은 하나의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고객의 삶 속에 특별한 순간을 선사하고, 나아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브랜드가 되는 것. 고객의 삶에 깊이 스며드는 브랜드로 자리 잡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