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최근 몇 달 째 갑갑한 박스권 장세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등 대형 주도주들의 모멘텀도 약화되는 추세다. 김승현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3~4년 소외된 여행, 엔터테인먼트, 건설 등 소비 관련 종목들에 대해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리서치센터장 인터뷰]
“글로벌 경기 둔화 구간…수출보다 내수·소비 관련주에 주목”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형주들의 3분기 실적이 증권가의 전망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코스피가 답답한 흐름을 이어 가고 있다. 여기에 일각에선 ‘반도체 겨울론’까지 나오면서 코스피 지수가 반등 모멘텀을 찾는 데 당분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제조사인 ASML이 10월 15일 시장 예상치를 하회하는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반도체주 전반의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날 공개된 ASML의 3분기 주문량은 26억 유로로 블룸버그가 집계한 추정치인 53억9000만 유로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통상 ASML의 실적은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중요한 지표로 여겨지는 만큼 이날 국내외 주요 반도체 종목들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특히, 국내 시가총액 1위 종목이자 대표적인 반도체주인 삼성전자의 경우 주가가 또다시 5만 원대(10월 16일 기준)로 내려앉는 등 체면을 구겼다. 김승현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삼성전자 주가 부진은 매우 이례적인 수준”이라며 “하반기 단기 모멘텀은 다소 약해질 수 있지만 계속해서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만큼 밸류에이션 지지는 확실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앞으로 그동안 소외됐던 내수와 소비 관련주에 관심 둘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반기 주식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남은 하반기 증시의 핵심 이슈는 ‘모멘텀 둔화 vs 밸류에이션 지지’가 될 것입니다. 선행 지표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기 사이클과 수출액, 주당순이익(EPS) 증감률 등 주요 모멘텀 지표의 하락세는 적어도 내년 1분기까지 이어질 전망입니다. 다만 한국 증시는 이러한 변화를 이미 상당 부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코스피 주가수익비율(PER)이 팬데믹 당시 수준까지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당분간 코스피는 상하단이 막힌 흐름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내년 하반기에는 재차 3000포인트 대에 안착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올해 주도주는 단연 인공지능(AI), 반도체였습니다. 지금 엔비디아에 투자해도 될까요.

“AI, 반도체 관련주의 경우 지난해에는 동반 상승, 올해는 차별화가 특징입니다. 미국에선 AMD와 인텔, 한국에선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대표적입니다. 엔비디아는 관련 대장주로 아직 추세가 유효한 종목이지만, 실적 서프라이즈의 강도와 성장률은 둔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중장기 고점 판단은 이르지만 최근 1년 수익률이 200%에 달하는 만큼 신규 매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올해 4분기보다는 대선 이후, 차세대 AI 가속기 블랙웰의 실적이 가시화되는 내년 1분기를 추천합니다.”

삼성전자가 어닝쇼크 이후 주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추세 전환의 모멘텀이 남아 있나요.

“스마트해진 투자자들로 인해 동일 업종 내 종목별 주가 차별화가 흔한 일이 됐고, 주가의 반영 속도도 예전보다 빨라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3분기 어닝쇼크는 이미 8월부터 반영돼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단기적으로 주목할 점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하회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삼성전자의 PBR은 미·중 무역분쟁이 정점이던 2018년 말~2019년 초 4주 동안 1배를 하회한 경험이 있습니다. 현재 주가 부진이 매우 이례적인 수준임을 보여줍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지난해 6조 원대였던 영업이익이 올해 30조 원대 후반, 내년에는 40조 원대 후반이 예상된다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시점에선 어떤 종목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당장 글로벌 경기 사이클의 둔화 구간에서는 수출주가 아웃퍼폼(outperform: 특정 주식의 상승률이 시장 평균보다 더 클 것으로 예측하기 때문에 해당 주식을 매입하라는 의견)하기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오히려 연말까지는 3~4년간 소외돼 왔던 내수와 소비 관련주에 관심을 둘만합니다. 실제로 내년 상반기까지는 소비 지표의 성장률 회복이 예상됩니다. 패션에서 감성코퍼레이션, 미디어·엔터에서 하이브, 여행에서 하나투어, 건설에서 GS건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금리 하락, 경기 방어 콘셉트로 이미 주목받고 있는 헬스케어도 연말, 연초까지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밸류업 관련해서는 어떤 종목에 주목하십니까.

“예상을 벗어난 밸류업 지수 발표로 인해 동력이 주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밸류업 프로그램은 중장기 관점에서 한국 증시의 저평가 해소에 분명 도움이 될 재료입니다. 외국인 순매수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대표 수출주이지만 2025~2027년 3년 동안 총주주환원율 35% 이상 목표로 주주 가치 제고에 가장 앞장서는 기업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번 지수 편입 여부를 떠나 대형 은행주는 수익성과 주주 환원 관리의 지침이 생기고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 수혜주 자리를 지켜낼 것으로 전망합니다.”
“글로벌 경기 둔화 구간…수출보다 내수·소비 관련주에 주목”
방산주 인기가 뜨겁습니다. 지금이라도 매수하는 게 좋을까요.

“한국 증시에서 방산주의 포지션은 단기 이벤트가 아닌 중장기 관점에서 유효한 콘셉트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방산 관련주는 국제적인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어 포트폴리오 구성 차원에서 꾸준한 관심이 예상됩니다. 저희는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윳돈 10억이 있는 자산가들에게 투자 전략을 해주신다면.

“당분간 주식, 채권을 절반씩 보유하고 순환적 경기 둔화가 마무리되는 내년 2분기 이후 주식 비중을 높여 나가는 전략을 제안합니다. 국가별로는 올해 부진했던 한국 증시의 비중이 낮거나, 혹은 주가 부진으로 낮아졌다면 연말, 연초부터 조금씩 높이는 전략을 추천합니다.”

중국 시장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반기에 반등 가능성이 있나요.

“중국은 장기간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부양을 의도했지만, 아직 성과는 확인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경기부양책이 이전과 다른 점은 기관 주식 매수 자금 지원, 자사주 매입을 위한 저금리 대출 등 직접적인 증시 부양책을 내놓았다는 점입니다. 다만 중국은 극심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부동산 경기가 핵심 지표입니다. 급등 구간을 놓쳤다면 관련 지표의 저점 확인 이후 접근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국내 주식 시장의 선진화에 필요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하반기 외국인의 순매도가 증시 하락을 주도하고 있지만, 한국은 올해 연간으로 보면 인도와 함께 신흥국 중 외국인 순매수 최상위 국가입니다. 삼성전자의 과도한 시총 비중, 지배구조 이슈, 낮은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단기간에 해결이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지만, 올해 한국 증시의 부진은 취약해진 내부 수급이 주된 원인으로 보입니다. 해외 투자가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글 김수정 기자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