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우리 증시의 고질병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발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시장 안팎에서는 이번 지수를 향한 혹평이 쏟아졌다. 왜일까.

[커버스토리]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의 주식 시세판. 사진=한국경제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의 주식 시세판. 사진=한국경제
올해 한국 코스닥 지수는 세계 국내총생산(GDP) 상위 20개국 주요 증시 가운데 수익률 꼴찌를 기록했다. 코스피 지수 역시 글로벌 지수 하락률 4위다. 주요 국가 증시가 기술주 랠리와 금리 인하 기조 등에 힘입어 대부분 두 자릿수 수익률을 내는 동안 한국 증시만 유독 소외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거래소(KRX)는 이 같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9월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개발, 발표했다. 주주 환원 등을 통해 증시에서 기업 가치를 높이고 성장성까지 갖춘 기업 100개를 뽑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수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동안 주주 환원을 위해 애써 온 기업이 잇따라 탈락한 반면 기업 가치 제고에 소극적이었던 기업이 대거 편입되면서다. 지나치게 높은 시가총액 기준, 단순화한 배당 기준, 시장과의 적극적인 소통 등 정성적 지표 배제 등도 문제가 됐다. 한국거래소는 급히 연내 지수 구성 종목을 바꾸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지난 9월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코리아 밸류업 지수 발표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
지난 9월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코리아 밸류업 지수 발표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
고배당 대표주 빠지고 주가 폭락 기업 포함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한국 증시의 저평가 현상(코리아 디스카운트)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거래소가 개발한 지수다. 기업 가치가 우수한 기업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투자금도 유입되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한국거래소는 지수를 발표하면서 지수에 편입되기 위한 요건으로 시장 대표성, 수익성, 주주 환원, 시장 평가, 자본 효율성 등을 내세웠다. 우선 시총 상위 400위 종목 중에서 최근 2년 연속 적자(2년 합산 손익 적자 포함)가 아닌 기업을 추렸다. 이후 2년 연속 배당 또는 자사주 소각(주주 환원), 주가순자산비율(PBR) 순위 해당 산업군 내 50% 이내(시장 관심도)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기업 중에서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우수한 순서로 100곳을 선정했다.
출발부터 삐끗한 ‘밸류업 지수’, 리밸런싱 고심
그러나 한국거래소가 지수를 공개한 직후 시장참여자 사이에선 잇따른 불만이 터져나왔다. 밸류업 지수의 구성 종목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최근 2년 평균 PBR 상위 50%’, ‘최근 2년 평균 ROE 산업군별 상위 100위’ 등의 기준 때문에 대표 고배당 종목인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가 지수에서 제외된 게 가장 문제가 됐다.

KB금융의 연간 배당금은 총 1조2000억 원으로 분기당 3000억 원 규모다. 이에 더해 1분기 3200억 원, 2분기 4000억 원 자사주 매입·소각을 단행하면서 올해 추진한 주주 환원 규모만 1조9200억 원 수준이다. 하나금융지주도 주주환원율을 5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번 돈의 50%를 주주에게 돌려주겠다고까지 공언한 회사가 밸류업 지수에는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 여부만 고려한 다소 단순한 기준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iM증권에 따르면 지수 편입 종목 100개 중 배당 수익률 2%에 미치지 못하는 종목은 53개로 절반을 넘는다. 배당 성향 20%를 밑도는 종목도 54%에 달한다. 배당 수익률 최소 기준을 세우거나 최소 2~3년간 연속으로 배당을 늘렸는지 여부를 살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희철 iM증권 연구원은 “주주 환원의 질적 부분이 고려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출발부터 삐끗한 ‘밸류업 지수’, 리밸런싱 고심
기업 가치를 올리는 데 큰 관심이 없고 주주 환원에도 인색한 기업이 대거 포함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대표적 종목이 엔씨소프트다. 실적 부진으로 주가는 고점 대비 5분의 1 토막이 났지만 김택진 대표는 지난해 72억 원에 달하는 연봉과 성과급을 수령했다. 1조 원 이상의 순현금을 가지고 있지만 주주 환원 대신 5800억 원을 들여 신사옥을 짓겠다고 나선 상태다.
출발부터 삐끗한 ‘밸류업 지수’, 리밸런싱 고심
반도체 지수와 차별화 어려워

물적분할, 자사주 소각 등을 놓고 소액주주와 설전을 벌여온 DB하이텍이 포함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는 지난 4월 “DB하이텍 주가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어 자사주 소각 같은 주주 환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DB하이텍은 사실상 거부했다. 두산그룹의 합병 시도로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두산밥캣 등도 편입됐다. SM엔터, JYP엔터 등 그동안 주주 환원에 소극적이었던 엔터 기업도 포함됐다.

지나치게 고평가를 받고 있는 기업들이 포함된 것도 논란이다. PBR이 약 19배에 달하는 한미반도체, 8.87배인 포스코DX 등이 편입됐다. HPSP(PBR 9.54배), HD현대일렉트릭(8.6배), 클래시스(12.03배) 등도 지수에 들어갔다. PBR 4배 이상인 기업이 17개에 달한다.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란히 편입되면서 향후 밸류업 지수가 반도체 지수와 유사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비중이 30%에 가깝고, 반도체 장비·소배 관련 중형주까지 합하면 지수의 상관관계는 더욱 커진다. 특히 SK하이닉스는 거래소가 제시한 실적 기준을 맞추지 못했는데도 특례편입이 되면서 “꼭 반도체 ‘투톱’을 지수에 포함시켜서 반도체 지수나 코스피200과 비슷하게 만들어야만 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를 제외해야 반도체 지수와 차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발부터 삐끗한 ‘밸류업 지수’, 리밸런싱 고심
출발부터 삐끗한 ‘밸류업 지수’, 리밸런싱 고심
이 밖에 시가총액 기준(400위 이내)을 낮추고, 과거 2~3년간 연속으로 배당을 늘렸는지 여부를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처럼 지수에 대한 시장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같은 업종 중 지수에 포함된 기업보다 지수 편입에 실패한 기업 주가가 더 오르는 촌극도 벌어졌다. 금융 업종 가운데 지수에 포함된 우리금융지주는 지수 발표 이후 지난 10월 16일까지 4.57% 올랐다. 같은 기간 신한지주는 주가 움직임이 동일했다. 반면 편입에 실패한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는 같은 기간 각각 16.34%, 10.4% 급등했다.

아세아시멘트·KCC·KT 포함됐어야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밸류업 지수에 대한 혹평이 이어지자 일부 증권사는 자체적으로 밸류업 지수에 적합한 종목을 제시하기도 했다. 신영증권은 최근 ‘밸류업 지수, 우리가 만든다면?’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밸류업 지수에 편입된 100개 종목 중 55개 종목에 대한 정성적 평가를 진행한 결과 24개 종목이 편입되기 부적합한 종목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신영증권은 높은 PBR과 ROE를 주요 기준으로 내세우면서 정작 기업지배구조나 중장기 성장 전략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실적이 일시적으로 양호했던 기업이 편입되는 부작용도 생겼다고 분석했다.

특히 주주 환원에 관심이 없는 기업들이 대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2대주주와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완수해야 하는 대한항공 등은 적극적인 주주 환원을 고려할 여력이 없다고 분석했다. 한국항공우주, HMM 등 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포함된 것도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서정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나노신소재는 주주 환원과 관련한 소통을 하지 않는 기업이고 솔브레인이나 해성디에스는 보유한 현금 유동성을 사업 확장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고 지적했다.

신영증권은 실적과 주주 환원에 대한 의지, 주주와의 적극적인 소통 등을 기준으로 10개 밸류업 기업을 자체적으로 선정했다. 아세아시멘트와 KCC, HD한국조선해양, LS일렉트릭, DN오토모티브, 서부T&D, KT, 네이버, 유한양행, HK이노엔 등이다. 아세아시멘트는 그룹 차원에서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적극적인 데다 양호한 실적으로 코스피 평균 ROE를 상회하고 있다. KCC는 꾸준히 배당을 실시하고 있는 데다 신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기업 가치 제고에 주력하고 있다는 평가다.

혹평에 놀란 거래소 “연내 구성 종목 변경”

시장 반발이 거세지자 한국거래소는 지난 9월 26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해명에 나섰다. 배당 수익률이 낮은 종목이 포함됐다는 지적에 대해 양태영 유가증권시장 본부장은 “주주 환원 규모만을 선정 기준으로 하면 배당보다는 미래 사업 투자 등을 통한 기업 가치 성장이 중요한 고성장 기업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지속적인 주주 환원 문화를 정착시키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하에 배당 규모나 배당 성향은 고려하지 않고, 주주 환원의 지속성(2년 연속 실시 여부)을 기준으로 평가했다는 설명이다.
지난 8월 열린 현대차 CEO 인베스터 데이. 현대차는 밸류업 조기공시 특례로 밸류업 지수에 편입됐다. 사진=한국경제
지난 8월 열린 현대차 CEO 인베스터 데이. 현대차는 밸류업 조기공시 특례로 밸류업 지수에 편입됐다. 사진=한국경제
시장 예상과 달리 저PBR 종목이 빠지고 고PBR 종목이 다수 편입됐다는 지적에는 “밸류업 지수 개발의 주요 취지가 저평가 또는 고배당 기업을 발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지수는 수익성과 PBR, ROE 등 질적 지표가 우수한 대표 기업들로 구성된 시장 대표 지수라는 것이다.

2025년 6월 정기 변경부터는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기업만으로 지수를 구성할 것이라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양 본부장은 “이번에 지수에 편입됐지만 공시를 아직 하지 않은 기업들은 반드시 공시를 해야만 지수에 잔류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거래소는 연내 지수 구성 종목을 변경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양 본부장은 “각계 의견을 반영해 내년 6월 정기 변경에 앞서 올해 안에 구성 종목을 변경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기업 가치 상승 여력이 있는 저평가주, 중소형주 등 다양한 신규 지수 수요를 반영해 후속 지수를 순차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밸류업 ETF 성공할까

지수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내달 출시될 ‘밸류업 상장지수펀드(ETF)’의 성공 여부에도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내달 4일 열리는 ‘자본시장 컨퍼런스(Korea Capital Market Conference)’에서 밸류업 ETF를 발표한다. 현재 자산운용사 가운데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12개사가 밸류업 ETF 출시를 준비 중이다. 한국거래소는 운용사 당 밸류업 ETF 1개만 내놓을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패시브 ETF를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내 밸류업 지수가 리밸런싱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만큼 구성 종목이 바뀌기 전까지는 밸류업 ETF에 대한 시장 호응도 높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홍콩계 증권사 CLSA는 ‘밸류 다운?’이라는 제목의 밸류업 지수 논평 보고서를 통해 “종목 구성이 바뀌지 않으면 향후 출시될 ETF에 흘러갈 자금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연내 진행될 리밸런싱에서 편입될 종목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 SK텔레콤, KT 등 높은 수준의 주주환원을 약속한 기업이 편입될지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낮은 수준의 주주환원을 해왔던 기업이나 일부 코스닥 시장 상장 종목이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임원은 “밸류업 ETF의 성공 여부는 결국 국민연금의 참여 여부에 달렸다”며 “규모가 큰 추종 자금이 들어와야 ETF도 유의미한 수익률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심성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