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메리츠금융 부회장이 주도하는 메리츠의 밸류업 전략은 시장에서 ‘밸류업 교과서’로 거론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커버스토리] 밸류업 숨은 보석을 찾아라밸류업 CEO 금융 부문 1위 - 김용범 메리츠금융 부회장 ‘밸류업 모범생’, ‘미국 월스트리트 스타일의 주주 환원 대표주자’, ‘한국의 벅셔해서웨이’.
최근 메리츠금융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붙는 수식어다. 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이 부쩍 주목받는 가운데, 메리츠금융의 밸류업 전략에도 관심이 쏠린다.
실제로 메리츠금융은 국내 금융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주주 환원을 실행하는 기업이라는 평을 듣는다. 메리츠금융은 2022년 말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 즉 ‘원메리츠’ 전환과 동시에 중기 주주 환원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과 메리츠금융의 기업 가치 제고 행보가 비슷한 결을 갖고 있긴 하지만, 최근의 밸류업 열풍 이전부터 이미 메리츠금융은 이사회를 중심으로 선진 기업 가치 제고 계획에 대해 논의를 이어 왔다. 메리츠금융의 밸류업 행보를 이끌어 온 주역이 바로 지주 최고경영자(CEO)인 김용범 부회장이다. 지난 2011년 메리츠종금증권(현 메리츠증권)에 대표이사 직함으로 합류한 김 부회장은 메리츠에 둥지를 틀기 전부터 자본시장에서 잔뼈가 굵었던 인물이다. 대한생명 증권부에서 업계 경력의 첫발을 뗀 후 크레디트스위스 퍼스트보스톤(CSFB), 삼성화재, 삼성투신운용 등에서 채권 트레이딩으로 이름을 떨친 채권 운용 1세대다. 숫자로 증명해온 그의 이력 때문일까. 불필요한 격식을 걷어낸 김 부회장 특유의 경영 행보는 보수적인 보험 업계에서 흔치 않은 ‘혁신 DNA’로 회자된다.
특히 메리츠화재 대표이사로 부임한 2015년부터 눈에 띄는 실적 성장을 이끌며 업계에 반향을 불러왔다. 당시 메리츠화재는 2014년 말 기준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29% 급감한 1148억 원, 영업이익은 28.6% 줄어든 1566억 원으로 침체된 상황이었다. 위기 상황에서 투입된 김 부회장은 조직 슬림화, 공격적인 경영으로 취임 첫해 사상 최대 규모인 169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린다. 김 부회장이 CEO로 일했던 9년이라는 기간 동안 메리츠화재의 성적표는 만년 5위에서 업계 2위로 훌쩍 뛰었다.
말이 아닌 성과로 증명하는 김 부회장의 뚝심은 메리츠금융그룹 전반을 이끄는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믿을맨’이기도 한 김 부회장은 지난해 말 인사 및 조직 개편을 기점으로 화재에서 손을 떼고 현재 지주 CEO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메리츠금융의 밸류업 혁신안도 김 부회장이 “진심을 다할 것”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그가 전력을 기울이는 분야 중 하나다. 김 부회장이 주도한 밸류업 혁신의 성과는 기업 가치 제고의 핵심 평가 지표인 ‘총주주수익률(TSR)’로도 확인할 수 있다. 메리츠금융의 기업 가치 제고 계획 이행 현황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메리츠금융의 최근 3년간 연평균 TSR은 58%다. 같은 기간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 평균 TSR이 17%인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주요 손해보험사 평균 TSR(26%)과 비교해도 2배 이상 높다. 메리츠금융에 투자한 주주들은 지난 3년 동안 투자 원금 대비 연평균 58%의 수익률을 올린 셈이다.
TSR은 주가 수익률 외에 배당 소득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일정 기간 동안 주주들이 얻을 수 있는 총 수익률을 뜻한다. 기업의 성장성까지 감안한 종합적인 수치라, 기업의 밸류업 성적표를 확인하기 적합한 지표로 평가받고 있다.
메리츠금융 관계자는 “TSR을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의 목표로 삼고 있다”며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주주 가치 제고에 최적인 자본 배치 전략을 짜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리츠금융은 주가순자산비율(PBR), 자기자본이익률(ROE), 자기자본비용(COE) 등 여러 지표를 분석해 주주 가치 제고 방법을 결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메리츠금융이 말하는 ‘주주 가치 제고에 최적화된 자본 배치’란 무슨 뜻일까. 벅셔해서웨이 방식으로 주주 가치 제고
메리츠금융은 ‘내부 투자 수익률’과 ‘주주 환원(자사주 매입+배당) 수익률’, ‘현금배당 수익률’을 비교해 중기 관점에서 주주 환원 정책을 결정한다. 일차적으로 내부 투자를 하는 것과 주주 환원을 하는 것 중 어느 쪽이 기업 가치 및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데 더 도움이 되는지를 수익률로 판단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주주 환원을 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경우라면 자사주 매입·소각 수익률과 현금배당 수익률을 비교한 뒤, 최종적으로 주가의 저평가 수준을 고려해 자본 배치를 결정하게 된다.
다만 어디까지나 ‘중기적 결정’인 만큼 자본 배치 시나리오는 장기적으로 수정될 수 있다. 김 부회장은 지난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2026 회계연도부터는 정해진 주주 환원 비율이 없다”며 “내부 투자 수익률과 자사주 매입·소각 수익률, 그리고 현금배당의 요구 수익률 간 순위에 따라 주주 환원 규모와 내용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세 비율이 현재와 유사하다면 50% 이상의 주주 환원은 유지될 것”이라며 “내부 투자 수익률이 자사주 매입·소각 수익률이나 요구 수익률보다 높다면 주주 환원 규모는 감소하겠지만, 주주 가치 제고에는 더 효과적인 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메리츠는 전력을 다해 돈을 더 잘 벌고, 자본 배치를 더 잘하고, 주주 환원을 더 진심으로 하고, 모든 주주를 동등하게 대하는 데 집중해서 (다른 상장사와의) 차별화 정도를 더 벌려 나갈 것”이라며 “내부 투자 수익률과 자사주 매입 수익률, 요구 수익률 간 비교를 통해 주주 환원 비율을 결정하는 것은 벅셔해서웨이의 방식이자 주주 가치 제고에 가장 유리한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의 발언대로 메리츠금융은 일단 2023 ~2025 회계연도까지는 연결 당기순이익의 50%를 주주 환원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지난해 메리츠금융의 주주 환원 실행 정도를 알 수 있는 주주환원율은 51.2%였고, 올해도 주주환원율 50% 이상을 목표로 자사주 매입·소각을 진행하고 있다.
메리츠금융은 지난 3월 22일 5000억 원의 자사주 신탁 계약을 체결한 뒤 상반기까지 2584억 원 규모(약 328만8000주)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이는 내년 3월 21일 자사주 취득 신탁 계약 종료 시 전량 소각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약 1조3000억 원의 자사주를 매입한 뒤 이를 전량 소각, 자사주 소각률 100%를 유지하고 있다.
메리츠금융 관계자는 “단순히 자사주 매입에 그치지 않고, 매입 후 소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자사주는 단순 매입과 달리 소각까지 완료해야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감소해 주당순이익(EPS)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자본금을 줄여 자기자본이익률(ROE)도 끌어올린다”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 주주 환원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애플의 기업 가치 제고 방식이기도 하다. 주주평등의 원칙 강조…밸류업 본질에 집중
메리츠금융의 밸류업 계획에서 또 하나의 큰 방점은 ‘대주주의 1주와 일반 주주 1주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대전제에 찍힌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최근 논평에서 메리츠금융이 대주주의 1주와 일반 주주 1주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주주평등의 원칙’을 밝힌 것에 대해 “의미가 깊다”고 평가하고 “주주평등 원칙은 기업거버넌스의 시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업 거버넌스 원칙에 의하면 소수 주주, 외국 주주 포함한 모든 주주는 평등하다”고 강조했다. 또 “모든 상장사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메리츠금융의 템플릿을 따르고 주주 중심으로 경영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사라질 것”이라고도 했다.
시장에서 메리츠금융의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유의미하게 보는 배경도 밸류업의 본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계획의 실행 단계가 디테일하다는 데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메리츠금융의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은 목표와 절차가 명확하다”며 “TSR, 주주환원율, 자본비용, 자본초과수익, 밸류에이션 등 모든 핵심 지표가 포함됐다. A+ 학점을 부여한다”고 평가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도 기업 가치를 올리는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표와 기업의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 교수는 최근 열린 세미나에서 “무조건 큰 규모로 주주 환원을 하는 것이 곧 밸류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장 기업이라고 해서 주주 환원을 당장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주주 환원을 한다고 기업 가치가 꼭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메리츠금융이 각 지표에 따라 주주 환원 방법을 다르게 배치하겠다고 설계해 둔 것처럼, 각 기업의 PBR, ROE, COE 등 주요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업과 주주에게 돌아갈 미래 이익을 측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장 파격적인 주주 환원을 시행하는 것보다는 상황에 따라 기업에 재투자하는 쪽이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와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케이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메리츠금융의 주주 가치 제고는 곧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 5만8400원(1월 2일 시가 기준)으로 출발한 메리츠금융의 주가는 꾸준히 상승해 지난 7월 4일 밸류업 공시를 기점으로 8만 원대에 안착했다. 이후에도 상승세를 지속, 올 상반기 실적 발표와 밸류업 공시가 있었던 지난 8월 14일 이후엔 9만 원을 돌파한 데 이어 10월 21일 10만 원을 넘어섰다.
적극적인 소통 행보…주주 우선주의 철학 담아
김 부회장을 비롯한 핵심 경영진이 전면에 나서 주주 및 투자자와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는 것도 메리츠금융의 밸류업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상장 기업의 적극적인 주주 소통은 밸류업으로 가는 길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지난 8월에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한 간담회 자리에서 “기업들이 최고경영자와 대주주 레벨에서 해외 투자자, 일반 투자자와 소통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언급한 바 있다. 투자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일론 머스크(테슬라)나 팀 쿡(애플), 마크 저커버그(메타) 등 주요 빅테크 기업 수장들이 분기별 실적 발표마다 직접 모습을 드러내 주주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직접 답변하곤 한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우드스탁’으로 불리는 벅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에는 매년 전 세계 주요 주주들이 참석해 워런 버핏 회장, 고(故) 찰리 멍거 부회장 등과 장시간 허물없이 소통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국내 금융권에서는 메리츠금융이 이례적인 주주 소통 행보를 보여 온 기업으로 손꼽힌다. 메리츠금융은 지난해 1분기부터 주주와의 소통을 위해 분기별 실적 발표 후 김 부회장과 최희문 부회장,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 장원재 메리츠증권 대표 등 지주와 각 계열사 주요 경영진이 직접 투자자 질문에 답변하는 콘퍼런스콜을 개최해 왔다. 특히 올해 1분기부터는 ‘주주가 묻고 경영진이 답한다’는 콘셉트 아래 일반 주주 질문에 경영진이 직접 답하는 ‘열린 기업설명회(IR)’를 금융권 최초로 도입했다.
메리츠금융그룹 홈페이지에는 경영 활동에 관련된 모든 정보와 계열사 실적 수치, 배당금과 배당총액, 자사주 매입·소각 금액, 주주환원율 등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주요 투자자뿐만 아니라 일반 주주도 그룹의 실적 수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게 특징이다.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We say growth in Numbers(숫자로 성장을 보여주겠다)’는 문구를 띄워, ‘모든 주주가 인정하는 투명하고 깨끗한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메리츠금융 관계자는 최근의 주주 소통 행보에 대해 “개인투자자에게도 기관투자가와 동등한 정보와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주주 우선주의’ 철학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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