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참여가 필수다. 우리 대기업은 상당수가 지배주주 중심의 '오너 경영' 체제다. 과연 밸류업 시대에 맞는 오너십은 무엇일까.

[파이낸스] 인터뷰
“지배주주도 주가 상승·배당 확대 반기게 만들어야"
밸류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이해 충돌’ 이슈로 요약된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충돌 문제에서, 기업 저평가가 심화되고 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국내 지배구조 연구의 1인자로 평가받은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에게 해법을 물어봤다.


- 기업들의 밸류업 참여가 왜 중요한가.


“상장 기업이라면 기업 가치 극대화는 당연한 목표다. 우리가 재무 관리에서 기본이라고 가르치는 바다. 미국 기업들은 밸류업을 따로 강조하지 않는다. 원래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정부와 증권거래소가 나서면서 개선이 됐다. 밸류업은 대기업, 중소기업의 이슈가 아니라 모든 상장 기업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기업들이 이 기본을 지키지 않으니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것이다.”


- 우리는 지배주주가 있는 재벌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지배주주가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독특한 구조는 아니다. 미국, 스웨덴, 홍콩 등 많은 나라에도 재벌 기업이 있지만, 한국처럼 기업 가치가 저평가되는 경우는 드물다.”


- 왜 우리만 이런 디스카운트가 발생하는 걸까.


“일단 우리 기업들이 수익성이 좋지 않다. 특히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많이 떨어졌다. 수익성이 요구 수익률보다 낮은데 재투자를 이어 가면 주가를 갉아 먹는다. 회사 입장에서는 자본 비용, 투자자에게는 요구 수익률이다. 자본 비용은 곧 요구 수익률이다. 한국 기업들의 ROE가 평균 5%에 불과한데, 이런 상황에서 재투자를 고집하는 게 하나의 요인이다. 또한 상장 회사의 이익을 다양한 방식으로 빼돌리는 행위, 즉 일감 몰아주기가 만연하다. 지배주주가 개인 회사를 세워 원료나 서비스, 컨설팅 등을 공급하면서 상장사 이익이 빠져 나간다. 상장 기업이라는 건 비즈니스를 위해 외부 자금을 유치한 후, 발생한 이익을 주주들과 N분의 1로 나누는 게 기본 취지다. 그런데 배당으로 나눠야 할 돈이 개인 회사로 흘러가면 당기순이익이 떨어진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 대표적인 사례가 있을까.


“이미 잘 알려진 사례로 SM엔터테인먼트의 ‘라이크 기획’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현대글로비스도 언급할 수 있다. 이런 사례는 규모를 막론하고 흔하다. 불투명한 합병 관행도 문제다. 최근 두산도 계열사 간 합병 문제로 논란이 됐다. 두산 로보틱스는 테마주인데, 그룹의 캐시카우인 두산 밥캣과의 합병을 주식 시장 가격으로 하자는 게 만약 남남이었다면 가능한 일일까. 미국에서는 계열사끼리 합병할 때 매우 독립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번에 셀트리온이 비슷한 시도를 했다. 최근 합병을 시도하다가 특별위원회의 검토에서 문제가 발견돼 중단한 바 있다. 비교적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MZ(밀레니얼+Z) 세대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 시장을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주식을 팔고, 미국 주식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단순히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생존의 문제다.”


- 지배주주들이 주가 상승을 반기지 않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한 재계 인사가 ‘교수님, 주가가 오르면 뭐가 좋은 거죠?’라고 물어보더라. 이게 본심이다. 집을 팔 생각이 없으면 집값이 올라도 의미가 없듯이, 지배주주 입장에서는 주식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 배당을 높이면 지배주주도 수익을 얻지 않나.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상장 기업은 배당이 가장 합리적인 수익 창출 방법이다. 배당은 모든 주주에게 동일하게 분배된다. 그런데 지배주주는 예를 들어 지분율이 20% 정도에 불과한데, 100억 원을 벌어서 다른 주주와 나누는 것보다 일감 몰아주기나 고액 보수를 받는 것을 선호한다. 또 배당 세금이 있고 종합소득세에 합산되기 때문에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근과 채찍이 둘 다 있어야 한다. 먼저 상속세가 해결돼야 한다. 지배주주는 나중에 승계할 때 세금을 너무 많이 내게 된다. 주가가 오를수록 상속세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주가를 낮추는 것이다. 또 배당이 유리해야 할 텐데, 지금으로선 유리한 게 없다. 배당 소득을 분리과세하거나 세제 인센티브를 강하게 제공해야 한다.”


- 특히 상법 개정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일감 몰아주기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으로 규제해 왔다. 부당지원·사익 편취 행위로 규제했는데, 행정법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공정거래법은 지분율 30% 이상이면 과징금을 부과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지분율을 29.9%로 유지한다. 현대글로비스가 실제 이렇게 했다. 그래서 규제 기준을 20%로 낮췄다. 그러면 기업은 어떻게 할까. 19.9%로 더 낮췄다. 공정거래법 규제로 다루면 회사들이 전혀 민망한 게 없다. 당당하게 규제를 피하면 되는 거다. 원래는 민사 이슈이고, 회사법 이슈다. 그래서 이사 충실의무 확대 논의가 나온다. 회사법에 규정을 둬서 계열사 간 합병이나 일감 몰아주기를 못하도록 근본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 충실의무가 회사의 의사결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법 조문에서 회사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병렬적으로 기술돼 있어서 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형식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계열사 간 거래에서 특정 주주의 이익을 위해 다른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게 핵심 원칙이다. 어느 나라나 그렇게 한다. 주주에 대한 공평한 대우·보호는 한국상사법학회에서 대다수 법학 교수님들도 공감을 한 내용이다. 재계에서는 충실의무가 소송을 남발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배당을 높이라는데 투자를 어떻게 하나’,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충실의무는 일반적인 투자 결정에는 적용되는 게 아니라, 이해충돌 상황에서만 작동한다. 일반주주와 지배주주와의 이익이 충돌할 때, 계열사 간 합병이나 일감 몰아주기 사건에 적용되는 거다.”


- 밸류업 시대에 맞는 오너십은 무엇일까.


“‘스튜어드형 오너십’을 가져야 한다. 지배주주가 상장 회사의 지분 20%를 가지고 있다면, 그 회사는 지배주주의 것이 아니다. 20%에 대해 책임감 있게 회사를 운영하고, 나머지 80%에 대해서는 오히려 스튜어드십을 가져야 한다. 경영을 잘해서, 믿고 돈을 맡겨준 투자자들에게 정당한 이익을 돌려주겠다는 게 좋은 오너십이다.”


- 스웨덴 발렌베리재단은 총주주수익률(TSR)을 비즈니스 목표로 밝히고 있더라.


“TSR을 목표로 선언하는 것 자체가 스튜어드십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우리의 목표가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선언한 적이 있다. 그 얘기가 참 반가웠다. 경영권을 후세대에 물려주지 않겠다는 것도 의미 있는 결단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걱정도 된다. 소위 창업자 가문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일이 여러모로 어려워지는 시대다. 4세까지 내려가면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다.”


- 한국 기업은 지배주주 지분율이 평균 약 20%로, 소유와 경영을 겸하는 체제가 특징이다.


“이론적으로 가장 좋은 것은 100% 지분을 갖는 거다. 그러면 문제가 없다. 그렇지 않을 때 , 소위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가 생긴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20% 지분을 보유한 지배주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유 분산 기업에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도나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은 지분이 없는데 창업자처럼 10년, 20년 장기 비전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내린 사례가 없다. 회장님이 감옥에 가거나 부재중이면, 기업 의사결정이 마비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한국은 구조조정을 할 때도 새로운 지배주주를 찾아야만 인수가 된다. 제가 과거 코스닥 기업심사위원회에서 상장폐지 심사를 할 때도, 거래소에서 상장을 유지시키는 중요 조건 중 하나는 경영권 안정이었다. 20~30%의 지분을 가진 지배주주가 있느냐 없느냐를 중요하게 봤다.”


- 일본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모델이라면, 우리는 패밀리 경영 체제에서 밸류업을 해야 하는 게 숙제다.


“일본은 기업의 회장들이 주가 상승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스톡옵션이 있기 때문에 주가 상승을 반긴다. 우리도 금융지주, 또 KT나 포스코 등이 먼저 움직이게 될 것이다. 금융지주 입장에선 밸류업이 반가울 것이다. 과거에는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 금융위원회가 배당을 억제했지만, 최근 입장이 바뀌었다. 핵심은 지배주주가 주가 상승과 배당 확대를 반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제 개편이 필요한 것이다. 누군가 행정 심판 아이디어도 냈는데, 상속세를 매길 때 PBR 1 이하인 경우 주식을 장부가로 평가하자는 의견이다. 그러면 최소한 주가를 억누를 일은 없는 거다. 그만큼 상속세가 왜곡돼 있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기업 가치를 낮추기 위해 상장을 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상장 후 주가를 낮춰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는 세제 개혁과 투자자 보호가 동시에 필요하다.”


-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정의선 회장의 지분율이 상당히 낮은데, 최근 오너십에 대해 좋은 평가가 나온다. 한경머니 ‘오너십 평가’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지분’이 아닌 ‘레거시’로 경영을 하는 좋은 사례다. 승계가 마무리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오너십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른 주주들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사실상 지분 없이 승계된 사례로 볼 수 있다. 하나의 모델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물론, 정 회장도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라는 회사에 개인 지분이 있는데, 앞으로 이해충돌 상황이 생길 것인지 유의깊게 봐야 할 것 같다. 승계를 할 때 여러 검증 절차는 필수적이다. 후손이기 때문에 물려받는 게 아니라, 능력 있는 자가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


- 밸류업에서 거버넌스의 중요성도 빠트릴 수 없을 것 같다.


“미국의 이사회는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고 해임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사회가 CEO 선임이나 보수 결정에 소극적이며, 자문기구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사회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보상위원회를 활성화해야 한다. 보상위원회는 CEO와 최고 경영진의 보수와 스톡옵션을 결정하는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 이사회는 단순 자문기구가 아니라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는 조직이다. 예를 들어,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는 외부에서 다양한 요청을 걸러내는 역할도 한다. 이를 통해 기업이 외부 압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사회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투자자 추천 후보들이 이사 후보로 선출될 수 있어야 한다. 풀무원의 경우 차기 CEO 선출 과정에서 창업자의 개입 없이 사외이사들이 독립적으로 결정했다. 결국 지배구조 개선이 밸류업의 핵심이다.”
“지배주주도 주가 상승·배당 확대 반기게 만들어야"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