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주가가 4년 5개월 만에 최저가를 찍으며 코로나19 때로 회귀했다.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발표에도 효과는 미미했다. HBM 경쟁력 부족에 트럼프 리스크, 중국 반도체 추격 우려까지 모두 악재로 작용했다. 삼성전자의 추락에 코스피 지수도 동반 하락했다. 주가 반등 가능성이 있을까.

[종목 집중탐구]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국경제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국경제
삼성전자 주가가 맥을 못 추고 있다. 지난 11월 4만 원대로 주저앉으며 시가총액 300조 원이 붕괴한 이후 주가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확산한 영향이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추락에 국내 증시의 저점 논쟁도 불거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등 모멘텀이 보이지 않아 코스피 지수가 당분간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4년 5개월 만에 최저가로 추락

삼성전자의 추락은 지난 11월 본격화했다. 11월 11일부터 4거래일 연속 52주 신저가를 경신하더니 5만 원대가 붕괴했다. 코로나19 공포가 극에 달했던 2020년 6월 15일 이후 4년 5개월 만에 최저가를 찍었다. 시총은 297조8921억 원으로 300조 원대가 붕괴했다. 11월 옵션 만기일엔 마감 10분 전부터 동시호가가 나오며 5만 원대가 깨졌다. 동시호가 시간에 3500억 원어치의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외국인 투자자는 이날 하루 4700억 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주가를 끌어내렸다. 외국인은 10월 말부터 12거래일 연속 삼성전자를 순매도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보유 비중은 8월 말 56%에서 이날 5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시가총액은 넉 달 만에 230조 원이 증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11일 장중 8만8800원, 시총 530조 원을 기록했으나 40% 이상 쪼그라들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역사적 저점인 0.87배까지 떨어졌다.

주가가 급락하자 삼성전자는 주주를 달래기 위한 단기 부양책을 꺼내 들었다. 앞으로 1년간 자사주 매입에 총 10조 원을 투입하는 파격적인 주가부양책을 내놨다. 이 중 3조 원의 자사주는 3개월 내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자사주는 11월 18일부터 내년 2월 17일까지 장내 매수 방식으로 매입해 소각할 계획이다. 소각 물량은 보통주 5014만4628주, 우선주 691만2036주에 달한다. 삼성전자 측은 자사주 매입에 대해 주주 가치 제고 차원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총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은 규모 면에서 역대 두 번째다. 삼성전자는 앞서 2015년에 11조3000억 원, 2017년에 9조3000억 원 규모로 자사주를 매입했다. 당시 매입한 자사주를 모두 소각했다.

시장에선 한국 증시가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시총 1위 기업으로서 정부의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정책에 앞장서 호응한 것으로 평가했다. 자사주 소각 소식이 발표된 직후 삼성전자 주가는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엿새 만에 7.21% 올랐다. 그러나 단기 호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투자 업계의 관측이다.

HBM 뒤처지고 트럼프 리스크까지

삼성전자의 주가가 하락한 원인으로는 경쟁 업체와 HBM 기술 격차가 꼽힌다. 파운드리 사업 대규모 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HBM 경쟁에서 밀려 인공지능(AI) 열풍에 올라타지 못하게 되면서 삼성전자 위기론이 현실화했다. D램도 중국 업체에 추격당하는 상황이어서 본질적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도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삼성그룹의 주축이자 삼성전자의 주축인 반도체 사업이 부진할 것이란 전망도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지난 3분기에 4조 원에 못 미치는 영업이익을 냈다. 파운드리 사업이 부진을 면치 못했고 일회성 비용이 증가한 영향이다. 삼성전자는 10월 말 콘퍼런스콜에서 3분기 D램 비트그로스(Bit Growth: 비트 단위 출하량 증가율)는 전분기와 동일하고 낸드는 한 자릿수 감소했다고 밝혔다. 4분기에는 D램마저 출하량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10월 반도체 생산 증가세가 14개월 만에 꺾이며 연말까지 반도체 공장 가동률이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반도체 사업 환경도 불안해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주요 공약으로 대중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로 중국에 7나노미터 이하 첨단 칩 공급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가 공약대로 중국 수입품에 최고 60% 관세를 매길 경우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인 중국 기업의 반도체 수요가 감소하고 이는 장기적으로 악재가 될 전망이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추격도 삼성전자의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D램 생산능력을 4년 새 5배 끌어 올렸다. 파운드리 기업 SMIC는 올 3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반도체 자립 기대로 중국 반도체 관련주 주가는 급등하고 있다. 홍콩에 상장된 SMIC 주가는 최근 6개월간 60%가량 올랐다.

증권가는 삼성전자의 HBM 매출화 시기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봤다며 목표주가를 잇달아 낮췄다. 미래에셋증권은 목표주가를 기존 11만 원에서 8만4000원으로, 키움증권은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기존 9만 원에서 7만5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다만 하락 폭이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주가는 역사적 저점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 성장성 및 수익성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하락했다"며 "60%가량 추가 상승 여력이 있어 매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투자심리…저가 매수는 기대

삼성전자의 추락에 코스피 지수도 지지부진하다. 유가증권 시장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부진은 국내 증시 전체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했다. 11월 코스피 지수는 8월 5일 ‘블랙 먼데이’ 종가(2441.55) 밑으로 떨어졌고 코스닥 지수도 블랙 먼데이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700선을 내줬다.

일각에선 금융위기 때만큼 투자심리가 악화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올 8월 이후부터 4개월간 외국인 투자자는 삼성전자를 18조 원어치 팔았다. 같은 기간 유가증권 시장에서는 17조442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삼성전자를 집중적으로 팔아치운 것이다.

증권가에선 코스피 지수가 단기 바닥권에 진입했는지 논쟁이 거세다. 한국투자증권은 내년 코스피 지수 연간 예상 범위 하단을 2300으로 제시했다. KB증권도 코스피 지수의 단기 하단을 2300선으로 제시했다.

한화투자증권은 20일 이격도(현재 주가와 20일 이동평균선의 차이를 백분율로 나타낸 값)를 기준으로 코스피 지수가 저점에 도달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역사적으로 지수의 20일 이격도가 95% 밑으로 내려간 시기, 기술적 저점 시기와 맞물렸는데 11월 코스피 지수 20일 이격도가 94%까지 하락했기 때문이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코스피 지수의 20일 이격도가 95% 밑으로 내려간 뒤 1개월간 평균 수익률은 1.9%로 나타났다.

문제는 증시를 끌어올릴 마땅한 상승 동력이 없다는 것이다. 강달러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며 외국인 매도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달러 강세로 환차손 우려가 커진 데다 반도체와 2차전지, 자동차 등 국내 주력 업종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규제 리스크에 노출되며 투자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장사 실적 전망치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코스피를 짓누르고 있다. 국내 수출 지표와 미국 제조업 체감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지수가 크게 반등하긴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본격적인 지수 반전은 이익 전망치 내림세가 멈춘 뒤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면초가’ 삼성전자, 본질 경쟁력에도 의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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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