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이 어려운 이유는 돌발변수들이 곳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일로 내가 준 재산을 날리거나, 엉뚱한 사람이 내 재산으로 이익을 보는 일은 허다하다. 상속의 구원투수로 신탁이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상속플래닝]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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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아내와 사별한 후 혼자 외아들을 키웠다. 아들이 결혼하게 되자 A씨는 아들에게 강남의 상가건물 2채와 현금을 증여해줬다. 아들은 며느리와 사이에서 손자를 1명 낳았지만, 심한 불화를 겪었다. 이혼을 하느니 마느니 하며 매일 같이 싸우던 중 아들이 그만 교통사고로 급사하고 말았다. 아들이 사망했을 당시 손주는 겨우 두 살이었다.

이후 A씨가 아들에게 증여했던 강남 상가건물 2채와 현금을 비롯한 아들의 재산은 전부 며느리와 두 살인 어린 손주가 상속받게 됐고, 며느리가 친권자로서 미성년 손주의 재산을 전부 관리하게 됐다. 며느리는 상속 절차를 마무리한 후 A씨와 왕래를 끊었고 손주도 보여주지 않았다.

갑작스런 아들 사망이 부른 비극

나중에 들으니 며느리는 어떤 남자랑 동거하면서 애까지 낳았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고 산다고 했다. 혼인신고만 하지 않으면 나중에 A씨가 죽은 후 A씨의 상속재산을 또 물려받을 수 있지만, 재혼하면 남은 재산을 물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지어 동거남과 사이에서 새로운 자녀가 태어나자 A씨의 손주는 찬밥 신세가 됐고, 친권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손주가 물려받는 재산도 야금야금 팔아 동거남과 그 자녀를 위해서만 쓴다는 소문이었다.

평생 일군 강남 요지 상가건물 2채와 현금이 전부 며느리 손에 떨어져 동거남과 그 자식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남은 재산마저 며느리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A씨는 분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다. A씨는 남은 재산을 전부 기부하기로 작정했다.

기부를 준비하는 A씨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동안 열심히 일군 재산을 미리 준 것뿐인데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아들의 죽음은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인데, 이런 것까지 대비할 방법이 있기나 한 것일까. A씨는 도대체 어떻게 했어야 이런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을까.

인생은 예측하기 어렵다. 최근 이 사례와 유사한 건이 실제로 발생하기도 했다. 어느 중소기업 창업주가 저가 매수, 증여 등등 여러 수단을 이용해 가업승계 요건까지 맞춰 외아들에게 성공적으로 기업을 물려주고 은퇴해서 잘살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를 잘 경영하던 외아들이 40대에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며느리와 미성년 손주가 회사 주식을 몽땅 물려받았다. 너무 성공적으로 승계를 잘해 둔 나머지 정작 창업주에게 남은 주식이 거의 없었다.
‘증여 대신 신탁’…내 재산 제대로 물려주는 법
창업주는 어떡하면 좋겠냐고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들의 재산을 상속인인 며느리와 어린 손주가 물려받았을 뿐이니 며느리가 회사의 주인이 된 것이다. 앞 사례의 A씨도 어쩔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A씨가 그런 지경에 빠지게 된 것은 안타깝다. 문제는 A씨와 같은 단계에 이르러서는 해결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이미 증여된 재산은 해제할 수도, 돌려받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효도계약서도 재산을 물려주면 부모를 부양하고, 부양을 하지 않으면 재산을 반환할 수 있다는 정도이지 정작 재산을 물려받은 자식의 죽음 등 예상하지 못한 상황까지 대비하지는 못한다.

일단 넘기면 끝…주도권 유지해야

이처럼 나의 상속인이 내 재산을 물려받은 후 사망하거나, 이혼으로 재산분할을 당하거나, 파산하는 등 여러 예기치 못한 일로 내가 준 재산을 날리거나, 엉뚱한 사람이 내 재산으로 이익을 보는 일은 허다하다. 이혼 소송에서 고객이 자신이 피땀 흘려 일군 재산을 딸에게 증여했더니 망나니 사위가 재산분할을 청구한다며 이게 사회 정의에 맞고, 법이 맞냐며 비분강개하는 일은 너무도 흔하다.

그러나 이미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준비한다면 몰라도 이미 일이 벌어지고 나서는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재산을 끝까지 잘 지키고 싶고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만 내가 원하는 이익을 누리게 하고 싶다면 재산을 증여해 소유권을 완전히 주는 것은 사실 적절하지 않다. 주면 끝이다.

그보다는 상속인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도 내가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재산을 돌려받거나 다른 사람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하는 주도권을 쥐고 있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가장 유용한 것이 바로 신탁이다. 그동안 영미권에서만 주로 활용돼 왔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신탁이 점점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제 재산 상속과 승계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신탁에 대해서도 반드시 검토해봐야 하는 때가 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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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대체 신탁이란 무엇인가. 신탁이란 쉽게 말하면 내 재산을 믿을 만한 자에게 맡겨 그로 하여금 관리, 처분하고 그로 인한 수익을 수익자에게 주는 것이다. 이때 재산을 맡기는 자를 위탁자, 재산을 맡아서 신탁 계약대로 관리, 처분해주는 자를 수탁자, 맡긴 재산을 신탁재산, 맡긴 재산을 운용해 발생하는 수익을 신탁수익이라고 한다. 신탁수익을 가져가는 사람은 수익자라고 한다.

수익자는 위탁자일 수도 있고, 위탁자 아닌 제3자가 될 수도 있다. 신탁이 되면 신탁재산의 명의는 위탁자에서 수탁자로 변경된다. 수탁자는 ‘신탁 계약에서 미리 정한 대로’ 신탁재산을 관리하고 그 수익을 수익자에게 나눠줘야 하며, 여기 ‘신탁 계약에서 미리 정한 대로’에 바로 신탁의 묘미가 있다.

신탁 계약에서 다양한 경우에 대비해 내가 원하는 바를 미리 정확하게 적어 두면 그대로 승계가 될 뿐만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다르게 승계되는 것으로 변경되기까지 한다. 한 마디로 신탁은 내가 정하기 나름이다. 내가 잘 정하기만 하면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여러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최근 언론에 많이 언급되고 있는 유언대용신탁도 신탁이다. 다만 유언대용신탁은 수익자가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수익자가 사망한 경우의 재산 관리, 수익 배분까지 정하고 있어서 유언과 유사한 효과가 난다고 해 유언대용신탁이라고 불리고 있다.
사례에서 A씨가 만약 아들에게 건물과 현금을 증여한 것이 아니라 신탁했다면 A씨는 아들에게 발생할 불행한 사고(사망도 그렇지만 아들 부부의 불화로 보아 언젠가는 며느리가 이혼에 기한 재산분할로 재산을 가져갔을 수도 있다)로 인해 자신의 재산을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동거남과 그 자녀)이 누리는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신탁의 매력

구체적인 방법은 수탁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약간 다르다. A씨가 재산을 아들에게 증여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에 신탁했다고 가정해보자. A씨의 생전에는 아들이 단독수익자로서 상가 월세와 현금을 사용하되, 아들이 사망하거나 이혼하는 경우 A씨가 살아 있다면 수익자를 A씨로 해서 A씨가 상가 월세와 현금을 다시 사용하게 할 수 있다.

아니면 아예 신탁 자체를 종료해 신탁된 상가와 남은 현금을 전부 A씨에게 반환하게 할 수 있다. 아들이 사망하거나 이혼한 때에 이미 A씨가 사망한 상태라면 수익자를 손주로 지정하되 손주가 만 40세가 넘은 경우에만 신탁재산을 사용하게 하는 것으로도 구성할 수 있다. 신탁 계약으로 A씨의 재산은 A씨와 아들, 손주, 기타 A씨의 혈연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정해 두는 것이다.

금융기관에 신탁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아들을 수탁자로 해 아들에게 직접 신탁해 아들이 관리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가족끼리 신탁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아들을 수탁자로 하는 경우는 주의해야 한다. 아들은 단독수익자는 될 수 없고 공동수익자만 될 수 있다. 즉, 아들 외의 수익자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아들에게 재산을 맡기는 경우라면 A씨의 생전에는 A씨와 아들이 공동수익자가 돼 상가 월세와 현금을 각 50%씩 사용하고, 아들이 이혼하거나 사망한 경우에는 신탁을 종료하고 A씨에게 재산을 반환하게 하는 것으로 구성하면 된다(원한다면 A씨에게 재산을 반환하지 않고 손주가 만 40세가 된 이후 손주에게 이전하는 것으로 구성할 수 있다. A씨가 원하는 대로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

수탁자가 금융기관과 아들인 경우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했지만, 누구를 수탁자로 할지는 선택의 문제다. 물론 금융기관이 수탁자가 돼야 더 안전하고 신뢰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정하기 나름이니 내가 원하는 자를 수탁자로 선택하면 된다.

이처럼 신탁은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내 재산을 사용하는 것을 막는 방법으로도 잘 활용할 수 있으니, 재산을 승계할 때 유언, 사전증여 외에도 신탁이 필요한 상황은 아닌지 전문가와 상의해볼 필요가 있다.

양소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