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출범, 중국의 약진,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한국이 저성장 국면을 타개할 수 있을까.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은 현재 국내 경제 위기의 원인과 해결도 결국 미래 가장 큰 먹거리인 ‘AI 산업’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우려 섞인 조언들을 토해냈다.

[리서치센터장 인터뷰]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
사진 = 이승재 기자
사진 = 이승재 기자
지난 1월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의 주인공은 올해도 인공지능(AI)의 몫이었다. 특히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꺼낸 ‘피지컬(물리적) AI’는 이번 행사 최대의 화두였다.

그는 1월 6일 기조연설에서 피지컬 AI 개발 플랫폼 ‘코스모스’를 소개하며 “로봇을 위한 챗GPT의 모멘트가 다가오고 있다. AI의 다음 개척지는 피지컬 AI”라고 말했다. 피지컬 AI는 로봇과 자율주행차 등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AI를 말한다. 실제로 로봇 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재 780억 달러 규모인 세계 로봇 시장은 빠르게 성장해 2029년에는 1650억 달러 수준까지 커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AI 기술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핵심이다. AI에 기반해 고도의 작업 수행, 새 환경에 적응, 인간과 상호작용, 인지·판단·학습 등 로봇 지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엔비디아의 AI 칩과 챗GPT, 제미나이, 코파일럿, 라마 등 AI 기술이 발전한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젠슨 황 CEO의 기조연설에 등장한 협력 업체들의 휴머노이드 14개 중 6개가 중국 제품이었다. 또한 중국은 2030년 350억 달러(약 50조 원) 규모로 성장할 휴머노이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올해부터 휴머노이드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런 흐름에 맞춰 다양한 기술을 내놓고 있지만, 미·중과의 격차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은 “현재 한국은 거대언어모델(LLM), 멀티모달모델(LMM) 등 모든 차세대 AI 산업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특히 AI 전환(AX)은 미국과 중국의 양강구도가 뚜렷해진 상황에서 그다음 3위권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데 오히려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인재 유출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트럼프 2기 시작 이후, 고관세와 고환율, 불안정한 정세, 중국의 약진, 성장 모멘텀 부재 등 당분간 국내 주식 시장이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도 CES에 다녀왔는데, 최대 화두는 무엇이었나요.

“단연 가장 큰 이슈는 ‘피지컬 AI’였죠. 기존의 디지털 AI 기술이 주로 소프트웨어, 데이터 분석, 그리고 언어모델과 같은 영역에 국한됐다면, 피지컬 AI는 물리적 세계에서 활용되는 기술로서 로봇, 자율주행차, 무기 시스템, 첨단 제조업 등에 적용됩니다. 이를 통해 AI 기술이 단순히 가상 공간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서 벗어나 실제 물리적 환경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이러한 기술 트렌드에 맞춰 ‘중국 제조 2025’라는 장기 전략을 통해 첨단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연간 640조 원에 달하는 R&D 예산을 투입, 글로벌 경쟁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하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체 국가 예산이 677조 원인 것과 비교해 엄청난 수치죠.”

중국의 이런 전략이 글로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중국은 전기차, AI, 항공기, 고속철도, 재생에너지와 같은 10대 산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글로벌 경제와 산업 지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전기차 기업인 비야디(BYD)는 세계 시장 점유율을 급격히 높이며 경쟁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칩스법(CHIPS Act)과 같은 정책을 통해 반도체 공급망을 견제하고 있지만, 중국은 자체적으로 칩 기술을 발전시키며 이러한 제재를 극복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패권 경쟁은 단순한 경제적 대립을 넘어 기술적 주도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을 의미합니다.”

그 속에서 한국은 어떤가요.

“과거 한국은 디지털 전환(DX) 시기에 강력한 경쟁력을 보였어요. 초고속 통신망 등 관련 인프라 구축에 투자했기에 그런 결과가 따라온 거거든요. 이에 반해 AI 시대에서는 다소 뒤처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R&D 예산 축소와 인재 유출 문제가 한국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됩니다.

특히 AI 연구자나 첨단 기술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국가 차원의 투자와 정책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과거의 디지털 경쟁에서 선두권에 있었던 것과 달리, 현재는 추격자의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사진 = 이승재 기자
사진 = 이승재 기자
AI 관련 중국과 미국의 경쟁 상황은 어떤가요.

“미국은 민간 기업 주도의 혁신 모델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와 같은 기업가들이 민간과 정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자율주행차나 로봇 개발과 같은 첨단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 모델을 통해 첨단 기술 분야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특히 ‘천인 계획(중국 공산당이 주도한 해외 인재 영입 프로그램)’과 같은 전략을 통해 전 세계의 인재를 유치하고 있으며, 이들을 통해 AI 및 첨단 기술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AI 전쟁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요.

“한국은 혁신적인 전략이 부족하지만, 진화적인 접근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혁신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거나, 기존 산업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획기적인 기술을 말해요. 대표적인 기업들이 미국의 매그니피센트 7(M7)이죠. 그다음이 기존 기술을 기반으로 실질적인 성능 향상과 활용성을 제공하는 진보, 그 뒤가 기존 기술의 성능, 효능성, 사용성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진화예요.

우리나라는 디지털 전환 시대까지는 ‘진보’의 위치에는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역할을 대개 중국이 차지하고 있어요. 이제는 어떻게 ‘진화’하는지가 한국의 생존 전략이 될 거예요. 글로벌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가는 동시에, AI 기술을 기존 산업과 융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 기술에서 글로벌 선도 기업들과 협력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피지컬 AI 기술을 한국의 제조업 강점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죠.”

그 밖의 과제는요.

“R&D 투자 확대와 인재 양성도 시급합니다. AI와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데이터센터 구축, 알고리즘 개발, 물리적 AI 기술 도입 등의 분야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합니다. 또한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협력을 확대하면서도 자체적인 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글로벌 경쟁 속에서도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주식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관세 등 강력한 정책을 쏟아낼 것으로 보입니다. 환율 역시 달러당 150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탄핵정국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당분간 국내 주식 시장을 낙관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주목할 만한 산업은요.

“방위산업과 조선업이 유망하죠. 방위산업은 가성비 높은 무기로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얻고 있으며, 조선업은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미국은 조선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또한 엔터테인먼트 산업도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비교적 독립적이면서도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 비해 밸류업에 대한 관심이 다소 시들어진 모양새입니다. 아직도 유효할까요.

“밸류업은 정권을 떠나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이고, 화두를 던졌으니 기업들의 호응과 거버넌스 변화, 배당 정책 등을 고르게 판단해 할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도 아베 정부부터 10여 년 지속적으로 정책을 일관성 있게 밀어부쳤고, 기업의 실적이 개선된 이후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외국인들 역시 뒤늦게 호응하면서 상승 폭이 커진 것입니다. 이에 한국도 장기적이고 꾸준히 밀어부쳐야 할 정책이고, 무엇보다 국내외 투자자들의 호응을 얻을 때까지 진정성 있게 지속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여윳돈 10억이 있는 자산가들에게 현재 투자 전략을 제안하신다면요.

“미국 국채 금리가 고공행진하고 있는 만큼 미국채에서 의미 있는 수익률을 기대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가장 높은 비중을 두고 싶고, 같은 이유로 미국 테크주가 횡보(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가 낮아진다면 다시 상방을 시도할 수 있을 듯해요. 이에 미국 주식은 횡보 구간을 지나 방향성 모색할 때 재매수 혹은 저가매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한국 주식은 밸류에이션에서 더 이상 하락할 수 없는 싼 구간임엔 틀림없습니다. 반면 미래 성장성에 대한 의문으로 밸류에이션의 할증이 나오긴 어렵죠. 이에 저점매수만 잘하면 양호한 수익을 달성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피지컬 AI 시대 온다…한국 제조업 강점과 결합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