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는 나이 서른에 2400억원을 벌었다. 10대 시절 막노동을 하면서 하루 1달러로만 생활한 극단적 실험을 했다. 부도 권력도 그에겐 화성행 정거장일 뿐이었다. 가진 전부를 몽땅 걸어서라도 꿈과 비전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머스크는 조롱과 비난이 커질수록 이를 악물었다.

[커버스토리]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사진=연합AFP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사진=연합AFP
“게임은 반드시 이긴다. 이기지 못할 게임은 하지도 않는다.”(지난해 11월 일론 머스크 X 글)

그의 위험한 풀베팅은 기어이 성공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2억5900만 달러(약 3700억 원)를 기부했다. 지난해 미국 정치자금 기부액 중 최대 금액이자 미 기업인 역사상으로도 전례 없는 규모다. 그뿐만이 아니다. 머스크는 펜실베이니아 등 경합주에서 유세 현장을 따라다니며 트럼프의 승리를 이끌었다.
돈보다 사명을 좇는 남자…머스크에게 비난은 혁신 연료
머스크의 물심양면 화끈한 지지에 트럼프도 화답했다. 그는 머스크를 새 정부의 자문기구로 신설된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트럼프는 새 행정부의 교통부 최우선 과제로 완전자율주행 법제 마련을 지시했다. 테슬라의 발목을 잡던 자율주행과 로보택시 규제 리스크가 걷히기 시작한 셈이다. 악시오스는 “머스크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선출되지 않은) 민간인이며 권력의 정점에 앉았다”고 평했다.

630배 수익 올린 대선 베팅

트럼프 당선 이후 지난해 말까지 테슬라 주가는 80% 넘게 급등했다. 머스크의 순자산은 지난해 12월 4000억 달러(약 578조 원)를 돌파했다. 역대 그 어떤 억만장자도 도달하지 못했던 재산 규모다. CNN은 머스크가 트럼프 캠프에 기부 금액 대비 630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연방선거위원회(FEC) 자료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 대선 기간 공화당에 정치자금 100%를 기부했다. 애플,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다른 빅테크 기업이 민주당에 압도적으로 많은 정치자금을 기부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물론 그들은 공화당에도 보험을 드는 것을 잊지 않았다.) 테슬라 수장인 머스크의 정치 성향을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올인이었다.·
돈보다 사명을 좇는 남자…머스크에게 비난은 혁신 연료
민간 기업이 선거에서 특정 정파를 100% 지지하는 건 엄청난 리스크다.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지 정당의 집권이 영원할 수도 없다. (과거 인종 문제로 민주당 지지를 요구받았던 마이클 조던은 다음과 같은 말로 본인의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을 거부했다. “공화당원도 운동화를 산다.”)
2024년 10월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대선 선거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함께 무대에 올라 뛰어오르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사진=연합AFP
2024년 10월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대선 선거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함께 무대에 올라 뛰어오르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사진=연합AFP
그럼에도 머스크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최근엔 미국을 넘어 유럽 선거까지 영향을 끼칠 기세다. 비단 정치뿐만이 아니다. 일에 대한 광적인 집착, 끝없는 비용 절감, 대량 해고 사태….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서길 두려워 않는다. 때론 이를 즐기는 듯하다. 이 같은 소위 ‘괴짜 행보’에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머스크는 도대체 왜 그럴까. 필자는 지난 수년간 테슬라와 일론 머스크를 취재하며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혹독했던 어린 시절

외신 보도에 따르면 2022년 트위터 인수 이후 머스크의 근무 시간은 주당 80시간에서 120시간 이상으로 늘어났다. 휴일도 없이 하루 17시간씩 일한 셈이다. ‘하드 워커’ 머스크의 과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머스크는 1971년 6월생이다. 지난 30년간 10개의 사업체를 설립·인수하며 폭풍처럼 달려온 그도 어느새 50세를 넘겼다. 일선에서 한창 일할 나이지만, 건강을 과신하기엔 관리가 필요한 중년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물러서지 않을 듯하다. 머스크는 세계 1위 부자,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잇는 혁신가, 트럼프 당선 1등 공신의 정치가로 부와 명예, 권력까지 거머쥐었다. 이만하면 적당한 ‘워라밸’은 누릴 만하지 않을까. 도대체 무엇이 이 남자를 이토록 채찍질하고 있는가.

머스크 불굴의 추진력과 정신력은 어린 시절에 기인한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에롤 머스크는 툭하면 어머니 메이를 손찌검했다. 1980년 결국 부모는 이혼하고 2년간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생활하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다. 에롤은 매우 괴팍했고 아들을 혹독하게 다뤘다. 학교에선 코뼈가 부러질 정도로 폭력에 시달렸다. 일련의 사건들은 10대 소년에게 심적으로 큰 상처였다. 이후 머스크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삶은 비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때부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의 깡을 키웠다.

머스크는 17세에 모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떠나 ‘어머니의 고향’ 캐나다로 무작정 이주한다. 이때부터 그의 잡초 같은 생활력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캐나다 전역에 흩어져있는 외가 친척들을 찾아다니고 막노동을 하면서 1년을 보냈다. 당시 일화가 하루 1달러 식비로만 생활한 극단적 실험이다.

“싸구려 아파트와 컴퓨터만 있으면 굶지 않고 살 수 있겠더군요. 한 달 30달러 버는 건 쉬우니, 언제든지 하고 싶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페이팔 최고경영자(CEO) 피터 틸(왼쪽)과 창립자 일론 머스크가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위치한 페이팔 본사에서 페이팔 로고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AP
페이팔 최고경영자(CEO) 피터 틸(왼쪽)과 창립자 일론 머스크가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위치한 페이팔 본사에서 페이팔 로고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AP
사무실 바닥에서 쪽잠...창업 7년 만에 억만장자

미국 실리콘밸리로 이주한 머스크는 1995년 동생 킴벌과 ‘집2(Zip2)’라는 웹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한다. 숙소까지 구할 돈이 없어서 밤엔 사무실 바닥에서 잠을 잤다. 이때부터 밤낮으로 일하는 그의 ‘하드코어 근무’ 스타일은 평생을 지속하게 된다. 머스크는 집2 지분을 컴팩에 2200만 달러(약 320억 원)에 매각했고 두 번째 사업인 온라인 금융 서비스 ‘X닷컴’도 ‘페이팔’로 성장시킨다. 이베이가 지분을 인수하며 머스크는 단숨에 1억6500만 달러(약 2400억 원)를 거머쥔다. 그의 나이 31세. 창업 7년 만에 억만장자가 됐다.

머스크의 첫 번째 아내 저스틴 윌슨은 전 남편에 대해 다음처럼 회상한다. “일론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조차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많이 합니다. 밤 11시에나 집에 들어왔고 그 후에도 일했어요. 지금의 자리에 오르려고 일론만큼 사생활을 희생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저스틴은 머스크가 마치 탱크 같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체력이 좋고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도 탁월해요.”

테슬라가 첫 대중 전기차 모델3 양산에 돌입한 2018년에도 머스크는 공장 바닥에서 자면서 주당 120시간을 일했다. 밤낮을 잊은 채 몇 시간 쪽잠을 잔 후 바로 일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만성 수면 부족과 과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 제 두뇌 신경세포들을 다 태워버린 것 같았습니다.”

테슬라 이사를 지냈던 안토니오 그라시아스는 그의 오랜 친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부분 사람은 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일론은 상황이 어려울수록 이성적 태도를 취하고 목표에 집중합니다. 고난을 이겨내는 능력은 정말 최고입니다.”
2010년 6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나스닥 기업공개(IPO) 이후 테슬라 차량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AP
2010년 6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나스닥 기업공개(IPO) 이후 테슬라 차량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AP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이상주의자

2020년대 이후 테슬라 주가가 폭등하면서, 세간엔 머스크를 두고 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천재 사업가’로 평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의 비전과 꿈은 단순히 사업가라는 틀에 가두기엔 스케일이 웅대하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 다행성 종족이 되기 위한 우주 탐사, 인공지능(AI) 위협을 대비한 초지능 인류 프로젝트. 머스크가 일생을 걸고 추구하는 미션이다.

머스크는 2018년 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이런 시각에 대해 해명했다. “사람들은 저를 거물 사업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하는 일의 80%는 기계, 전기, 우주공학 등 엔지니어링과 생산 공정에 관한 것들입니다.”

그는 돈보다 사명(使命)을 좇는 자다. 직원이나 투자자의 신망을 얻는 것은 그의 제1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수단에 가깝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테슬라 모터스>의 저자 찰스 모리스는 “머스크는 돈을 많이 벌기보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이상주의자다. 자신의 꿈이 실현되는 걸 보고 말겠다는 집요함을 갖고 있다. 그는 주문 제작된 듯한 미국의 영웅”이라고 평했다. 이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선 머스크가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목표와 1995년 첫 창업 후 평생을 고군분투해 온 미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머스크는 10대 시절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실존주의 철학책을 독파했다. 2013년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는 “인생의 모든 것이 덧없어 보였던 시기”라며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낙관주의가 세상을 이끈다고 믿었다. 소년 머스크가 가장 좋아한 책은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파운데이션>이었다. 이때부터 머스크는 인류의 긍정적 미래를 위해선 ‘우주를 무대로 활동하는 문명’을 건설해야 한다고 꿈꿨다.

성인이 된 머스크는 실리콘밸리에서 연달아 창업에 성공해 큰돈을 벌었다. 스물여덟 살에 전 세계 62대뿐인 100만 달러짜리 맥라렌 F1 슈퍼카를 뽑고 밤엔 로스앤젤레스(LA) 부촌 벨에어 저택에서 호화파티를 했지만 금세 시들해졌다. 열대 휴양지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인생을 즐기는 갑부들의 삶에 그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2023년 4월 스페이스X의 스타쉽이 텍사스 보카치카의 스타베이스에서 스타쉽과 슈퍼 헤비 로켓이 완전 통합된 상태로 첫 시험 비행을 위해 발사되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론 머스크. 사진=연합UPI
2023년 4월 스페이스X의 스타쉽이 텍사스 보카치카의 스타베이스에서 스타쉽과 슈퍼 헤비 로켓이 완전 통합된 상태로 첫 시험 비행을 위해 발사되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론 머스크. 사진=연합UPI
첫 번째 마스터플랜, 야망의 실현

청년 억만장자는 이때부터 두 가지 미션에 초점을 맞췄다. 우선 화성에 정착지를 건설하고 인류가 다행성 종족이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딛게 한다. 다음으로 인류 유일한 터전인 지구를 최대한 오래가게 한다. 이를 위해선 기후변화의 위협을 줄여야 한다. 머스크는 2002년 민간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를 설립하고, 2004년 전기차 기업 테슬라에 합류한다. ‘20세기 소년’의 꿈은 그렇게 시작됐다.

“테슬라의 초기 제품은 고성능 전기 스포츠카지만 장기 계획은 저렴한 가격의 가족용 자동차를 포함해 광범위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 2006년 8월, <테슬라모터스 비밀 마스터플랜> 중

2006년 7월. 테슬라는 2인승 전기 스포츠카 로드스터를 공개한다. 당시 테슬라는 언론을 타고 약간 이름이 알려진 스타트업이었다. 직원은 고작 100명. 그동안 제작한 로드스터는 20여 대에 불과했다. 양산은 고사하고, 사실상 수작업으로 차를 만든 셈이다. 로드스터는 2009년에 들어서야 500대 생산됐다. 그 누구도 미래의 테슬라가 제너럴모터스(GM)나 포드 같은 글로벌 완성차 기업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면 말이다.

로드스터 공개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머스크는 테슬라의 장기 청사진이자 본인의 비전을 담은 첫 번째 마스터플랜을 올린다. 그는 A4 세 쪽 분량의 글 말미에 다음의 네 개 요약을 덧붙였다. 이 로드맵은 현재까지도 테슬라 사업 전략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1) 스포츠카를 만든다
2) 그 돈으로 저렴한 차를 만든다
3) 그 돈으로 훨씬 더 저렴한 차를 만든다
4) ‘무배출 발전’ 옵션도 제공한다

머스크는 2006년부터 전기차 대량 생산을 통해 지속 가능한 에너지 경제를 이끌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당시 테슬라 직원 중에선 그 전략이 실현될 만큼 회사가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라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머스크의 호언장담은 모두 실현된다. 럭셔리카를 내세워 투자받았고, 그 돈으로 고급 전기차 모델S와 모델X에 이어 대중차 모델3와 모델Y가 모두 양산에 성공했다. 2016년엔 태양광 업체 솔라시티를 인수해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도 진출한다.

두 번째 마스터플랜, 논란의 자율주행

2016년 3월. 테슬라는 준중형 전기 세단 모델3를 공개한다. 가격은 3만5000달러. 신차 발표 하루 만에 11만5000명이 예약금 1000달러를 걸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에 고무됐던 걸까. 그해 7월 머스크는 10년 만에 두 번째 마스터플랜을 올린다.

“미래 어느 시점에 지속 가능한 에너지 경제를 달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석 연료가 고갈되고 문명은 붕괴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 2016년 7월, <마스터플랜, 파트2> 중

1) 통합된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솔라루프
2)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넘어 전기차 제품군의 확장
3) 수동운전보다 10배 안전한 자율주행 개발
4) 차량을 쓰지 않을 때 수익 창출

2025년 현시점에서 보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만한 로드맵이다. 그러나 당시 대중에겐 전기차는 고사하고, 자율주행도 생소한 개념이었다. 게다가 4번 비전은 자율주행을 기반으로 한 차량 공유, 즉 로보택시를 뜻한다. 차가 스스로 움직인다니… 이때부터 미국의 주류 언론과 감독당국은 머스크를 위험한 인물로 여기기 시작했다. 테슬라가 자율주행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자 안전 불감 및 사기 논란이 불거졌다. 2016년 5월 모델S가 오토파일럿 모드로 주행 중 충돌로 운전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당시 미국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고 테슬라를 겨냥한 비판 기사가 쏟아졌다.

머스크는 굴하지 않았다. 그는 틈날 때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에 경쟁자가 보이지 않는다”며 “완전자율주행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테슬라는 매년 안전 보고서를 통해 오토파일럿 기능 사용 시 일반 차량보다 사고 확률이 10배 낮아진다고도 주장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지원 소프트웨어인 FSD(Full Self-Driving)는 현재 북미에서 약 40만 명이 이용 중이다.

마스터플랜 2를 정리하면, 머스크는 1번과 2번을 완수해냈다. 캘리포니아에 ESS 메가팩 공장을 건립했고 에너지 사업은 성장 중이다. 사이버트럭은 2023년 출시했고 세미트럭도 양산을 앞두고 있다. 3번은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기술적으로 상당 부분 진척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꿈만 같았던 4번마저 지난해 로보택시 사이버캡을 공개하고 오는 6월 텍사스에서 서비스를 예고했다. 테슬라 주가는 플랜2 발표 이후 9년간 2400% 이상 올랐다.

“화성에 가야 하는데, 인생이 너무 짧다”

머스크는 본인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선 기술적 난제가 가득한 긴 여정을 걸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기술 개발은 점진적이 아닌,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이뤄져야 한다. 이 때문에 직접 직원들과 밤낮으로 기술 혁신에 투신할 수밖에 없다. 테슬라 공동창업자이자 전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JB 스트라우벨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론은 인생이 짧다는 결론을 일찍 내렸어요. 스스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겁니다.”
2024년 3월 텍사스 보카치카의 스타베이스에 위치한 발사 단지 1(Launch Complex 1)에서 스페이스X의 스타십이 세 번째 시험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UPI
2024년 3월 텍사스 보카치카의 스타베이스에 위치한 발사 단지 1(Launch Complex 1)에서 스페이스X의 스타십이 세 번째 시험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UPI
머스크의 삶을 돌이켜보면, 마치 게임 속 주인공처럼 보인다.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내걸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본인을 한계 상황에 몰아넣는다. 휴일도 없이 하루 17시간을 근무하고, 직원에게도 더 열심히 탁월하게 하라고 압박한다. 이 남자에게 주변의 조롱과 비난은 오히려 이를 악물게 만드는 채찍 혹은 연료와도 같았다. “실컷들 (나를) 미워하라고 하세요. 전혀 상관없습니다. 진짜 약점은 남들의 호감을 얻고 싶어 하는 겁니다.”(2023년 뉴욕타임스 ‘딜북 서밋’ 발언)

머스크가 화성 탐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게 20년 전이다. 당시 그는 1970년대 아폴로 계획(유인 달 탐사) 이후 인류가 여전히 지구 저궤도에만 머물러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리프트 오프> 저자 에릭 버거는 머스크와 인터뷰에서 “스페이스X 설립 후 19년이 흘렀는데 화성엔 여전히 가지 못했다”고 도발하듯 물었다. 머스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네. 화성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게 환장할 만큼 화가 납니다.” 그는 스페이스X의 거대한 스타십 로켓을 바라보며 다짐하듯 덧붙였다. “하지만 저 물건이, 아니면 비슷한 뭔가가 45억 년 만에 처음으로 인류를 다른 행성으로 데려갈 겁니다.”

백수전 <테슬라 리부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