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혁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실험정신’은 로크로몬드의 근간이다.
[위스키 이야기]

로크(Loch)는 게일어(스코틀랜드 토착어)로 호수를 뜻한다. 다시 말해 브랜드명이 호수 이름이다. 스코틀랜드 싱글 몰트위스키의 유명 산지 중 하나인 하일랜드 지역에 자리한 ‘로몬드’는 길이 40km, 넓이 71.1km2에 달하는 영국에서 가장 큰 호수. 산과 호수, 그리고 38개의 섬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녔다. 그 경관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스코틀랜드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선정됐을 정도다.
예부터 스코틀랜드에서는 물 맑고 경관 좋은 곳에 위스키 증류소가 모였다. 로몬드 호수도 예외는 아니어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호숫가에 9개의 증류소가 성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미국의 금주법 등으로 위기를 맞으며 모두 문을 닫았다. 지금은 딱 한 군데만 운영되는데, 1814년 세워진 위스키 증류소 자리 위에 1964년 새롭게 둥지를 튼, 로크로몬드가 그 주인공이다.

다시 이야기를 ‘2024 IWSC’로 돌려 당시 심사위원들은 로크로몬드를 올해의 스카치위스키 증류소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로크로몬드는 뛰어난 위스키 품질에 더해 브랜드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려는 명확한 비전과 노력이 어우러진 집합체다.”
여기서 말하는 비전과 노력이란 ‘실험정신’과 ‘혁신’이라는 말로 귀결된다. 그도 그럴 것이 로크로몬드 위스키에는 ‘스카치위스키 유일’ 혹은 ‘스카치위스키 최초’라는 수식이 유독 자주 따라붙는다.
로크로몬드의 생산 과정을 보면 여느 위스키 브랜드와 다른 점을 여럿 발견하게 된다. 효모만 봐도 그렇다. 위스키 업계에서는 드물게 와인용 효모를 쓴다. 증류용 효모보다 2배는 더 비싸지만 경쾌한 향기가 풍부해지는 것으로 알려진다. 발효 시간도 굉장히 길다. 일반적인 위스키가 60~70시간 동안 발효하는 것에 비해 로크로몬드 증류소는 92시간 동안 발효 과정을 거친다. 발효 시간이 짧을수록 곡물 향이 강하고, 길어지면 과일 향이 진해진다. 로크로몬드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풍부한 과일 풍미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위스키 브랜드에 따라 증류기의 모양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싱글 몰트 증류소는 몸통은 넓고 목이 길어 호롱불과 유사한, 구리로 만든 재래식 단식 증류기(pot still)를 사용한다. 증류 원액이 통과해야 하는 수직 파이프의 길이에 따라 위스키의 맛이 가벼워지기도 하고 무거워지기도 한다. 반면 그레인 증류소는 기둥처럼 생긴 연속식 증류기를 쓴다.
그런데 로크로몬드 증류소에서는 몸통은 단식 증류기, 목은 연속 증류기의 형태를 한, 이른바 하이브리드 증류기를 사용한다. 스코틀랜드에서 오직 로크로몬드에만 존재하는 증류기다. ‘스트레이트 넥(straight neck pot still)’이라 불리는 이 증류기는 이름처럼 목이 일직선으로 뻗은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단식 증류기보다 높은 도수로 위스키 원액을 증류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폭넓은 알코올 도수 범위에서 다양한 개성을 지닌 원액을 만들어낼 수 있다.
로크로몬드 증류소에는 스트레이트 넥 증류기 외에도 구리 단식 증류기와 연속 증류기도 갖추고 있다. 그만큼 여러 종류의 원액으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몰트위스키만 해도 9가지 종류의 원액을 생산하는데, 그중에는 피트 위스키도 포함된다. 한국에도 다양한 싱글 몰트위스키를 출시해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을 듯. 이뿐 아니라 그레인위스키와 블렌디드위스키도 만드는데, 스코틀랜드에서 몰트·그레인·블렌디드위스키를 모두 생산하는 증류소는 로크로몬드가 유일하다.

위스키와 골프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둘 다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위스키 브랜드들이 골프를 마케팅 채널로 활용하곤 한다. 하지만 로크로몬드만큼 골프에 ‘진심’인 브랜드도 드물다.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오른, 골프계의 전설 콜린 몽고메리에게 브랜드 앰배서더를 맡겼을 정도다. 특히 지난 2018년부터는 세계 4대 메이저 골프대회 중 하나이자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디 오픈 챔피언십(이하 디오픈)’의 공식 위스키로 대회를 더욱 빛내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대회가 임박하면 골프 마니아와 위스키 애호가들이 열광하는 디오픈 한정판 위스키도 출시한다. 여느 브랜드의 한정판 위스키와의 차별점은 골프 선수들이 직접 위스키 제작에 참여한다는 것. 이를테면 지난해에는 콜린 몽고메리와 협업한 위스키를 선보였는가 하면, 2022년에는 2010년 개최된 139회 디오픈 우승자 루이스 우스투이젠이 블렌딩에 참여해 탄생한 위스키를 12년의 숙성 기간을 거친 후 출시하기도 했다.

스카치위스키는 원료에 따라 몰트위스키와 그레인위스키로 나뉜다. 원료가 맥아(싹을 틔운 보리) 100%면 몰트위스키, 호밀이나 옥수수 등의 곡물을 함유하면 그레인위스키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스카치위스키협회(SWA)의 규정에 따르면 싱글 몰트위스키는 반드시 단식 구리 증류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로크로몬드가 어떤 브랜드인가. 실험과 연구, 혁신적인 제품 개발에 주저함이 없는 증류소다. 로크로몬드에서는 스카치위스키 중 유일하게 100% 맥아로 만든 원액을 연속 증류기로 증류한 위스키를 출시한다. 단식 구리 증류기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맥아로 만들지만 싱글 그레인위스키로 분류된다. 종류도 다양한데, 논피트와 피트, 그리고 얼마 전 국내 출시한 ‘쿠퍼스 콜렉션’ 등 세 가지로 구성했다. 연속 증류기에서 비롯한 가볍고 산뜻한 맛이 압권. 색다른 위스키를 찾는 사람, 그중에서도 부드러운 위스키를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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