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감축과 AI 확산으로 전세계 전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편에선 늘어난 재생에너지 전력이 전력계통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스페인 대정전과 같은 사태를 피하려면 송배전망, 변압기 등 낡은 전력 인프라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스페셜] 밸류체인으로 본 전력 산업
전력 생산보다 중요한 인프라 확충
발전 단계에서는 공공 또는 민간 발전사가 원자력·석탄화력·가스복합의 화석연료 기반 발전 방식 외에도 수소를 포함한 신에너지, 수력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발전을 통해 전기를 만든다. 생산된 전기는 변전소로 수송되는 송전을 거친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협의의 송전이란 발전소에서 직접 연결된 배전용 변전소까지의 전력 수송을, 광의의 송전은 발전소에서 일반 가정까지의 전력 수송을 의미하는데 이 글에서는 협의의 송전 개념을 따른다.

승압 변전소는 대체로 발전소 쪽에 위치해 송전 과정에서 전력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 전압을 올리는 역할을 한다. 변전소를 거친 전기는 배전 단계를 통해 최종 수요처까지 간다. 일반적으로 154킬로볼트(kV) 변전소에서 소비자까지의 전력 공급을 배전이라 칭한다. 최종 수요처까지 도달한 전기는 산업용, 상업용, 주택용, 기타 분야에서 사용된다. 최근에는 발전~송배전을 거쳐 최종 수요처에 도달한 전력이 아니라 주택·산업단지에서 태양광 설비로 전력을 생산하기도 한다.
전기를 활용하려면 단순히 전기를 많이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생산된 전력을 손실 없이 최종 수요처까지 수송해야 하고 수요처에서도 이를 안전하고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전력망 전체에서 인프라를 확충해야만 한다. 이러한 인프라를 구성하기 위해 회전기(발전기·전동기 등)와 정지기(변압기·정류기·인버터 등)로 구분되는 전기기기, 그리고 전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전력 산업 밸류체인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각 단계별로 나타나는 주요 이슈를 살펴본다.

그리드 안정성 위협하는 재생에너지 발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달성의 필요성이 점차 강화되면서 저탄소 및 무탄소 발전원의 역할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저탄소·무탄소 발전원인 태양광 및 풍력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의 발전량과 발전 비중이 높아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력(electricity) 2025’에 따르면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2023년 8969테라와트시(TWh), 2024년 9848TWh다. 이 수치는 2025년 1만1067TWh, 2026년 1만2164TWh, 2027년 1만3250TWh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서는 ‘신뢰도(reliability)’, ‘적정성(adequacy)’, ‘안전성(security)’ 확보가 필수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고시한 ‘전력계통 신뢰도 및 전기 품질 유지 기준’에 의하면 신뢰도는 전력계통을 구성하는 제반 설비(발전·송배전·변전) 및 운영 체계 등이 주어진 조건에서 의도된 기능을 적정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적정성은 정상 상태 또는 고장 발생 시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전력 수요를 공급해줄 수 있는 능력을, 안전성은 예기치 못한 비정상 고장 시 계통이 붕괴되지 않고 견디어낼 수 있는 내구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태양광과 풍력은 변동성 재생에너지로서 석탄화력, 원자력 같은 기존 발전원과 다른 특징을 가진다. 바로 변동성, 불확실성, 낮은 관성으로 인한 예비력 확보 필요 등이다.

즉, 변동성 재생에너지는 현재 대비 미래 시점에서 변화하는 정도가 크고, 특정 미래 시점에서의 변화 값을 예측하기가 어려우며, 관성 수준이 낮아 비정상 상태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변동성 재생에너지는 전력계통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신뢰도, 적정성, 안전성 측면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그리드의 약화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송배전망 절대 부족…연결 대기 중 전력 ‘눈덩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고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 생산뿐만 아니라 전력을 최종 수요처까지 효율적으로 수송하는 송배전망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송배전망이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거나 기존에 구축된 송배전망의 노후화로 인해 전력 수송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전력 산업 밸류체인 전반의 원활한 운영을 저해하고 있다.
산업, 교통 등 전 분야에서 전기화가 지속되고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이 강화되면서 청정에너지(재생에너지·원자력·저탄소 발전 등)를 중심으로 발전용량이 증가해 왔다. IEA에 따르면 청정에너지 투자 중 발전 분야(재생에너지·원자력·저탄소 발전 및 CCUS)에 대한 투자는 2015년 3670억 달러에서 2023년 7480억 달러까지 연평균 9.3%씩 증가했다고 조사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투자는 전력 산업 밸류체인 단계별로 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청정에너지 발전 분야에 투자가 매년 급증한 것과 다르게 송배전망 분야 투자 금액은 2015년 3250억 달러에서 2023년 3310억 달러로 매년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자 금액의 차이는 청정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데에만 집중됐고 이를 전력계통에 연계하는 분야에는 관심이 낮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청정에너지로 전기를 만드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만 청정에너지 활용 목적인 탄소중립 달성에 도움이 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송배전망 부족은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동시에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하려면 재생에너지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재생에너지를 적기에 공급하기 위해서 재생에너지 발전과 송배전망에 대한 투자는 얼마나 확대돼야 할까. IEA의 ‘세계 에너지 투자(World Energy Investment) 2024’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발전과 송배전망 대상으로 2030년 필요한 투자 금액은 2023년 투자 금액의 2배인 2조2180억 달러 수준이다. 이 중 송배전망 분야에 필요한 투자 금액은 7300억 달러로 지난 8년간 약 3000억 달러로 유지돼 온 투자 금액에 비해 큰 폭으로 확대돼야 하는 상황이다.
지역은 이미 전력 독립…잉여 전력 어쩌나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발전량이 늘어나면 송배전망을 비롯한 전력계통의 유연성 확보가 더욱 필요하다. ‘계통 유연성’은 전력 수급의 변동성, 불확실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계통의 능력을 의미하는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태양광 및 풍력과 같은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이 증가하면 계통 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저해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계통 유연성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발전부터 소비까지 전 단계에서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 글에서는 송배전망에 한정해 유연성 부족 이슈를 살펴본다.
계통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결국 전력계통이 경직돼 있다는 것이다. 송배전망의 경우, 앞서 살펴본 것처럼 변동성 재생에너지 증가는 기존에 구축된 송배전망의 경직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특히 재생에너지의 발전이 활발한 지역, 즉 전력 자립을 이룬 지역은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에너지가 다 소비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인근 수요처로 남는 전력을 전송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유연한 송배전망 구축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전력 자립을 이룬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잉여 전력을 보내야 하고, 전력 자립을 이루지 못한 지역에서는 전력 자립을 이룬 지역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아야 해 송배전망의 유연성은 양방향성을 띤다. 만약 잉여 전력을 주거나 모자란 전력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전체 전력망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을 저해하지 않기 위해 발전소 가동을 강제로 차단하는 ‘출력 제어’가 필요하다.
실제로 국내에서 출력 제어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2023년 1월부터 6월까지 제주도에서 실시한 재생에너지 출력 제어는 133회로 2022년 연간 출력 제어 횟수인 132회를 6개월 만에 초과하기도 했다. 이에 송배전 단계에서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간 계통 및 시장 연계, 초고압직류송전(HVDC)이나 유연송전시스템(FACTS) 등의 새로운 송전 기술을 도입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한다.


송배전 단계에서 향후 전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살펴봐야 하는 또 다른 이슈는 기존 송배전망 인프라의 노후화다. IEA에 의하면 땅 밑에 매립하는 지하·해저 케이블(underground·subsea line) 수명은 일반적으로 약 40~50년이다. 또한 케이블을 매립하지 않고 철탑 등의 지지물을 거쳐 공중으로 높이 설치하는 가공 케이블(overhead line)의 수명은 일반적으로 50~60년이다. ‘일반적인 수명’이 의미하는 바는 케이블 내 일부 부품을 반드시 교체해야만 하는 시점이 도래하기 전까지의 사용 기간을 뜻한다. 그러나 부품 고장으로 반드시 교체해야 하는 시점까지 놔두는 것은 전력 인프라의 안정성 및 신뢰성에 상당한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케이블 교체 시기를 고려할 때 전기화를 일찍 시작한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교체 수요가 높다. IEA가 선진국 및 개발도상국을 각각 하나의 그룹으로 구분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선진국은 사용 가능 햇수가 20년을 초과한 노후 케이블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때 20년을 초과한 케이블의 실제 사용 기간을 추정한다면, 선진국이 전력 인프라를 운영해 온 기간이 이미 50년 이상 됐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대다수는 케이블의 교체 주기인 26년 이후 시점에 있고, 일부는 교체 주기 최대치인 40년을 넘겼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전기화를 빠르게 시작한 또 다른 지역인 유럽 역시 미국과 유사한 상황이다. 유럽집행위원회는 2023년 11월 기준 유럽 전력망 가운데 40%가 40년 이상 돼 노후화됐다고 밝혔다. 유럽 역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므로 노후화된 전력망의 개선이 급선무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10년 내 구축된 송배전 케이블 비중이 약 40%를 차지하면서 노후화 측면에서 선진국 대비 덜 심각한 상황이다. 인도는 전체 송배전망 중 약 45%의 사용 기간이 10년 이내로 집계됐고, 중국은 ‘서동부 전력 송전 프로젝트(The West-East Electricity Transmission Project)’와 같이 자국 내 도심과 외곽 지역을 잇는 그리드 개선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새로운 송배전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10년 이내 설치된 송전선의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로 꼽히고 있다.
[변전]
최대 5년 기다려야…공급 달리는 대형 변압기
변전은 전기를 발전소부터 소비처까지 수송할 때 적당한 전압으로 바꾸는 과정을 의미한다. 앞서 본 ‘전력 산업 밸류체인’ 도표에는 변전 과정이 발전부터 소비까지 이르는 과정 중 하나로 나타나 있지만 실제로 변전은 전기 수송 과정에서 여러 차례 이루어진다. 발전소에서 송전할 때 전기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전압을 올리는(승압) 과정, 고압 전기를 부하가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전압을 내리는(강압) 과정 모두가 변전에 해당한다.
이때 변전에 활용된 설비를 변전 설비 또는 변전소라고 한다. 변전소를 구성하는 주요 기기로는 변압기, 조상설비(무효전력을 조정하는 설비), 개폐기(일반적인 상황에서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회로를 열고 닫을 수 있게 만드는 전기기기), 계기용 변성기(전압 또는 전류 레벨을 분리하거나 변환하는 데 사용되는 고정밀 등급 전기기기)에 더해 계통에서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한 보호 계전기 및 차단기가 설치되고, 이외에도 배전반 등의 다양한 기기들이 더해진다.

변전에 활용되는 전기기기들은 다양하지만 변전이 뜻하는 바가 전기 수송 과정에서 각 단계별 적합한 전압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변전소의 다양한 기기들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설비는 변압기다. 다양한 기준으로 변압기를 분류하는데, 이 글에서는 전력 변압기(power transformer), 배전 변압기(distribution transformer)로 구분한다. 전력 변압기는 승압과 강압을 모두 지원하는 변압기로 장거리 송전 시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초고압 변압기부터 최종 소비처에서 전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저전압 변압기까지 포함한다.

변압기의 특성과 전압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정격 용량(capacity rating) 단위인 VA(Voltage-Amperes)도 알아야 한다. 정격 용량은 변압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출력단에서 제공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전력 용량을 말한다. 2006년 발간한 미국 DOE 보고서에 따르면 100MVA 이상을 ‘Large Power Transformer(High Power Transformer)’, 10~100MVA는 ‘Medium Power Transformer’, 1~10MVA는 ‘Small Power Transformer(Low Power Transformer)’, 5kVA~5MVA는 ‘Distribution Transformer’로 나눈다.
정격 용량으로 구분된 변압기별로 앞서 구분한 전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100MVA 이상의 정격 용량을 가지는 대형 변압기(Large Power Transformer·LPT)는 입출력 전압 중 높은 쪽의 전압이 115kV 이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LPT는 MV, HV, EHV, UHV의 송전 시스템에서 사용될 수 있는데, 이는 곧 LPT가 송전 시스템에서 전력을 최대한 손실 없이 보내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5kVA~5MVA 사이 정격 용량을 갖고 입출력 전압 중 높은 쪽의 전압이 35kV 이하인 변압기는 배전 변압기다. LPT가 먼 거리까지 대용량 전력 수송에 필수적이라면 배전 변압기는 비교적 짧은 거리에서 구석구석까지 전력을 원활하고 안전하게 보내는 데 필요하다. 이처럼 LPT와 배전 변압기는 명확하게 활용도가 구분되므로 LPT와 배전 변압기 시장과 관련한 주요 이슈를 살펴본다.

전 세계적으로 순전력소비량이 증가하면서 발전시설의 용량도 확대돼 왔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전 세계 발전시설 용량이 2022년부터 2050년까지 연평균 2%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 가운데, 이를 지역별로 나누어봤을 때 미주,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각각 2.1%, 2.5%씩 성장하면서 미주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성장률이 전 세계 평균 성장률을 상회할 것으로 예측했다.


먼저 LPT는 제품이 고객의 상세 조건에 맞춰 제작되기 때문에 리드타임이 상당히 긴 편에 속한다. 2010년 기준 미국 DOE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제조된 LPT의 경우 리드타임은 5~12개월, 미국 외 국가에서 제조되는 LPT는 6~16개월 수준의 리드타임을 예상한다고 밝혔는데, 만약 수요가 공급보다 높을 경우 이 기간이 18~24개월까지 증가할 수 있고 핵심 부품의 조달 부족 등의 상황에서는 5년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전기기기 산업이 호황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2024년은 어떨까. 2024년 7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가 작성한 미국 변압기 시장 동향에 따르면 변압기 제조 리드타임은 지난 2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해 평균 115~130주(약 28~32개월)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변전소 전력 변압기, 발전기 승압 변압기와 같은 대형 변압기의 리드타임은 120~210주(약 30~52개월)에 달하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공급자 우위의 시장 현상이 한층 더 강화됐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LPT 공급량을 더욱 늘리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LPT는 제조 공정 특성상 숙련된 노동력이 필요해 단시간 내 공급량을 늘리기 어렵다. 변압기 제조 공정을 구체적으로 보면 권선 공정, 철심 가공 공정, 철심 적층 공정, 본체 조립 공정, 본체 진공 건조 공정, 총 조립 공정, 최종 시험으로 나뉜다. 권선 공정은 구리를 가공해 전류가 흐를 수 있도록 원형의 권선기(자동으로 코일을 감아주는 기계)에 감아 권선을 제작하는 것이다. 이때 고객별 요구 사항에 맞춰 제작되기 때문에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철심 가공 공정은 전기강판(electric steel)을 절단하는 공정을 말하고, 철심 적층 공정은 가공된 전기강판을 자기 회로 구성을 위해 쌓는 작업을 말한다. 이후 적층된 철심에 권선을 넣고 조립해 메인 회로를 구성하게 되는 본체 조립 공정을 거치는데, 조립 과정에서 오차가 발생하면 제품의 안전성과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으므로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조립이 완료되면 진공 건조로에 넣고 수분을 제거한 후 외함(tank)에 넣고 조립하게 해 최종 검증에 들어간다.
변압기 제조 공정은 전반적으로 수작업 비중이 높아 노동집약적이다. 특히 권선 공정, 철심 적층 공정, 본체 조립 공정, 최종 시험 등에서 수작업이 요구되며 업계에서는 보통 3개월 이상의 숙련과 1년 이상의 실무 경험이 있어야만 생산라인에 투입될 수 있다고 판단하므로 투입 가능한 인력이 제한적이다. 또한 전력기기는 제품에 대해 높은 안전성과 신뢰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각 단계마다 고객의 다양한 요구 사항에 정확히 대응하면서도 안전성과 신뢰성에도 부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량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특성을 토대로 볼 때 변압기 공급은 비탄력적 구조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이유는 전력 소모량이 많은 AI가 각 산업에 확대돼 적용되고 있고 공장이나 기업으로 확산되면서 기존에 사용했던 배전 변압기보다 더 높은 용량의 배전 변압기가 많이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IEA는 미국 내 데이터센터로 인한 전력 소비량이 2028년에 325~580TWh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러한 추세를 전 세계로 확대하면 데이터센터로 인한 전력 소모량은 기존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최소 10만 대의 서버를 초고속 네트워크로 운영하는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가 증가하면서 빠르게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유는 기존에 사용했던 배전 변압기의 수명이 다하면서 이를 교체해야 하는 시기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IEA가 2023년 10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송전 및 변전 인프라를 대상으로 노후화 수준을 비교한 바에 따르면 선진국의 송전 및 변전 인프라의 경우 20년 이상 노후화된 인프라의 비중이 50%를 넘는 데 반해, 개발도상국의 경우 그 비중이 37% 미만으로 나타났다.
IEA가 구분한 선진국에는 전기화를 일찍 시작한 미국, 유럽, 일본 등이 포함되는데, 이 중 전기화의 선두 주자인 미국은 배전 변압기 노후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2024년 미국의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가 미국 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배전 변압기 6000만~8000만 대(해당 배전 변압기 전체의 정격 용량은 대략 2.5~3.5TVA)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55%가 33년 이상 사용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45%는 33년 미만의 사용 가능 햇수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10년 미만 배전 변압기 비중은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에는 없었으나 새롭게 배전 변압기를 쓰게 되든 기존에 사용하던 변압기가 노후화돼 교체하게 되든 배전 변압기가 새로 필요하다는 점은 동일하다. 이는 현재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 배전 변압기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나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개발도상국에서도 이러한 시점에 도달할 것임을 뜻한다. 왜냐하면 모든 전기기기는 수명이 유한해 결국 교체 시점에 도달할 것이고 AI 등의 영향으로 전기화가 더욱 강화되는 만큼 배전 변압기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수요는 증가하는 데 반해 공급량이 그에 맞게 늘어나지 않고 있어서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전력망을 구성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토대로 배전 변압기 분야의 수급 불균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NREL이 2024년 2월에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유례없는 배전 변압기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으며 이는 배전 변압기 리드타임과 가격 변동을 일으켰다. NREL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유틸리티 분야는 2022년 이전 배전 변압기 리드타임과 비교했을 때보다 약 4배가 늘어 최대 2년까지 리드타임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내 언론 보도에서도 2020년과 2022년을 비교했을 때 배전 변압기의 리드타임이 429% 증가했다고 나왔는데 이는 NREL이 발표한 결과와 유사하다.

전체 전력망에서 배전 변압기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하면, 배전 변압기 부족은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일례로 리드타임 증가와 높은 가격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공공 유틸리티 프로젝트 중 약 20%가 배전 변압기 부족으로 인해 취소되거나 연기되기도 했는데, 공공 유틸리티 프로젝트 취소나 연기는 일상생활에서 전기가 원활하게 공급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중차대한 일이다. 더 나아가서 전력망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전기를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로 퇴행하는 일을 겪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급증하는 수요에 비해 배전 변압기 공급이 부족한 것은 산업적으로 중요한 이슈라 할 수 있다.

P2P로 전력 거래…‘에너지 프로슈머’ 등장
전력 산업 밸류체인의 마지막은 최종 수요처로 전기가 흘러가 ‘소비’되는 단계다. 과거에는 발전부터 소비까지 일방향으로 전기가 흘러가는 양상이었으나 이제는 에너지의 소비자가 곧 생산자가 되는 ‘에너지 프로슈머(prosumer)’가 활성화되며 전기의 양방향 수송이 가능해졌다. 또한 기존에는 전기를 받아 소비만 했던 주체가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잉여 전기를 다른 사람 또는 기존 전력 공급사에게 판매하게 됐다.

에너지 프로슈머의 거래 방식을 볼 때 이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양방향을 넘어 다중방향으로 전력 거래가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게 됨을 알 수 있다. 즉, 전력 산업의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특히 P2P 거래에서 나타나는데,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P2P 전력 거래 모델은 그리드 전체에서 재생에너지 수용도와 유연성을 높이고 보조 전력 서비스로서 기여한다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전력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좀 더 세분화해보면 소비자가 직접 에너지를 만들고, 만든 에너지를 직접 판매하게 된다는 것에 방점이 있다. 먼저 에너지를 직접 만드는 변화를 살펴보자. 개인은 에너지 생산을 위해 발전기가 필요하다. 장소, 비용 등 제약 사항으로 인해 개인은 재생에너지, 그중에서도 태양광 발전기를 선택하는 비중이 높아 많은 수는 소규모 태양광 모듈을 주택의 지붕이나 공터에 설치해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에너지 프로슈머는 생산된 에너지를 저장하고 에너지 가격이 비싼 시점을 택해 판매할 수 있으므로 에너지 저장을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도 필요하다. 따라서 전력 인프라 관점에서 볼 때, 소비 주체의 에너지 생산은 태양광 발전기의 수요 증가, ESS 수요 증가 및 전력계통과 잉여 전력의 연계 이슈 등과 연관될 수 있다.
블록체인 활용해 거래 비용 낮춘다
또한 에너지를 직접 판매할 때 생기는 변화를 살펴보면, 판매 대상이 전력 회사인 경우 잉여 전력을 전력계통에 송출 및 연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개인에게 판매할 경우 개인 간 거래를 지원할 수 있는 플랫폼을 확보해야 한다. IRENA는 2020년 보고서를 통해 P2P 전력 거래 모델은 물리적인 인프라 구축뿐만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 구축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개인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데이터가 수집되면 전력 시스템의 신뢰도와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석돼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2021년 직접전력구매제와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PPA)이 도입되면서 한국전력공사가 전력 소매를 담당하는 구조에서 변화가 관찰되고 있다. 규모는 작더라도 개인이 에너지 생산 및 판매하는 변화가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더 나아가 스마트그리드(smartgrid)와 같은 새로운 모델을 견인하고 있다. 2025년 3월 말 정부는 ‘전력직접구매제도 정비를 위한 규칙개정(안)’을 의결했다. 규칙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전력 수요 기업은 한국전력공사를 거치지 않고 전기를 직접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전력직접구매를 최초로 신청한 기업인 SK어드밴스드는 향후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사가 생산한 전기를 직접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이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 소비 단계의 구조적 변화가 전력 산업 내 주요 이슈로 더욱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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