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오직 '원칙' 하나로 시장을 견뎌온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대한민국 가치투자의 살아 있는 역사다. 그는 단기 수익보다 손실 회피를 중시하며 '절대 잃지 않는 투자'를 철학으로 삼아왔다. 그가 정의하는 진짜 부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커버스토리-인터뷰]
그는 단기 수익보다는 장기 생존을, 높은 수익률보다는 손실 회피를 더 중시한다. 이 같은 철학은 국내 최초의 가치주 펀드를 만들고, 라이프자산운용을 창업한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이 회사는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도 탄탄한 누적 수익률을 기록하며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 왔다.
이런 그가 생각하는 부자는 무엇일까. 이 의장은 자산의 크기보다는 ‘돈을 대하는 태도’가 부자를 가른다고 말한다. 수많은 자산가들을 곁에서 지켜본 그는, 진짜 부자일수록 돈을 절실하게 쫓기보다 소중히 여기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준비된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진짜 부자의 조건’부터 ‘지속 가능한 투자 철학’, 그리고 ‘신뢰받는 자산운용사의 역할’까지, 그가 오랜 실전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들을 깊이 있게 들어봤다.
어릴 때부터 ‘부자’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나요.
“사실 어릴 때는 ‘부자’라는 개념 자체가 딱히 없었어요. 그냥 철이 없었던 시기죠. 저에게는 ‘부자가 되고 싶다’라는 갈망보다는, 샐러리맨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런데 그 샐러리맨이 어떤 이미지였냐면, 양복 입고 넥타이 매고 멋진 정장을 입고, 세단 타고 다니는 대기업 중역 같은 모습이었죠. 일반적인 월급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엘리트. 말하자면 그게 저만의 ‘부자’ 이미지였던 셈이에요. 그 꿈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도, 대학 때도, 그래서 당연히 전공도 경영학을 택했고요. 그저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멋지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을 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일종의 ‘부자’가 되는 갈망을 내 식대로 해석한 거였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는 ‘부자’는요?
“전 이걸 굉장히 단순하게 봐요. 평균보다 훨씬 뛰어난 자산을 축적한 사람, 그게 부자죠. 철학적 정의도 아니고, 낭만적인 개념도 아니에요. 요즘 보면 ‘마음이 부자다’, ‘행복한 사람이 진짜 부자다’ 이런 표현들이 있잖아요. 물론 의미는 있지만, 자산의 절대적 수준이 동반되지 않는 부는 현실적이지 않아요. 그리고 단순히 돈이 많은 게 아니라,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상태, 즉 싫은 일을 안 해도 되는 자율성을 가진 사람, 그게 진짜 부자예요.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사람. 누구에게 굽실거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 정도의 자산과 선택지를 가진 사람은 확실히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워런 버핏’이란 평가에 동의하시나요.
“글쎄요. 너무 부담스러운 평가예요. 버핏은 세계적인 투자자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자산을 보유한 창업가이고 사업가예요. 본인의 기업을 직접 만들고, 지분도 지키고, 회사 전체를 통제하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창업이라는 걸 50대 후반이 돼서야 처음 해본 사람이에요. 그전까지는 철저하게 월급쟁이였고, 제 자산도 월급으로 꾸준히 쌓아 온 정도예요. 물론 지금은 그 덕분에 경제적 자율성을 어느 정도 갖췄고,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온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자산의 절대적 규모나 영향력으로 보면, 버핏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죠. 그냥 저는 제 일을 꾸준히 해 온 펀드매니저일 뿐이에요.”
오랜 시간 수많은 부자 고객들을 만났을 텐데요. 그들은 ‘돈’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나요.
“아주 명확하게 보이는 특징이 있어요. 돈에 대한 ‘절실함’이 아니라 ‘소중함’을 갖고 계세요. 이 두 단어의 차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절실함은 생존에 가까운 개념이에요. 하지만 진짜 자산가들은 생존이 아니라 보존과 확장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그분들은 100원을 쓰더라도 ‘이 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해요. 아무리 자산이 많아도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오히려 그렇게 소비하는 이들은 운 좋게 자산을 얻었거나, 상속받은 경우가 많아요. 로또 당첨자나 유산 상속인처럼, 부를 스스로 쌓은 경험이 없는 경우죠. 반면 피땀 흘려 부를 이룬 분들은 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요. ‘이 1원이 어떤 가치를 갖고 움직일까’, ‘이 투자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항상 고민합니다. 돈이란 그들에게 있어서는 노동과 인내의 결정체니까요. 그래서 단 100원도 가볍게 쓰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의 삶을 보면 ‘돈이 절실한 게 아니라 소중하다’는 걸 몸으로 보여줍니다.”
“1988년 한신증권(옛 동원증권)에 공채로 입사하면서였어요. 사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어요. 경영학 전공이니까 당연히 금융사나 무역 회사에 가야 한다고만 생각했죠. 그저 증권사가 인기가 좋다길래 들어갔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매일매일 기업들이 살아 움직이고, 기업공개(IPO)가 쏟아지고, 어떤 회사는 망하고 어떤 회사는 다시 살아나고. 마치 생명체처럼 변화를 겪는 이 시장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주식은 정적인 숫자 덩어리가 아니더라고요. 시대의 테마에 따라 흥망성쇠가 갈리고, 기업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주가가 출렁이죠. 그런 역동성을 매일매일 접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잘하면 성과가 바로 수치로 나오는 구조. 그게 저한테 딱 맞았던 것 같아요.”
당시엔 어떤 투자를 주로 하셨나요.
“처음엔 철저한 모멘텀 투자자였어요. 가치가 싸다, 이런 개념보다는 당장 ‘오를 종목’을 찾는 데 집중했죠. 당시 가장 뜨거웠던 테마가 ‘트로이카’였는데, 지역개발·건설·금융이었어요. 특히 증권주가 엄청났죠. 매일 상한가를 치던 시절이었어요. 상한 폭이 3%였는데도 ‘상, 상, 상’이 이어지던 때였죠. 그 시절에 저도 고객들에게 그런 종목들을 추천했고, 스스로도 매수했어요. 그런데 결국 신용, 미수 다 써 가며 들어갔다가 계좌가 ‘깡통’이 되는 대참사를 겪었죠. 당연히 고객들에게도 큰 손실을 안겨 드렸고요. 그때 정말 큰 실패를 경험했어요.”
그 실패 이후 바로 가치투자로 전향하신 건가요.
“아니요, 바로는 아니에요. 실패는 했지만, 본격적인 전환점은 1997년 외환위기였어요. 그때 펀드를 운용 중이었고, 수익률이 -40%까지 빠졌어요. 그런데 코스피는 -60%였으니까 상대적으로 잘한 거였죠. 당시 성과로 보너스를 600%나 받았어요. 수익률 1등이었거든요.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 보면, 손실은 손실이에요. 엄청난 항의가 쏟아졌죠. ‘내가 잘했는데 왜 항의를 받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아니더라고요. 고객은 벤치마크보다 잘했는지엔 관심 없어요. 결국 돈을 잃었냐, 안 잃었냐 그게 전부죠. 그때 읽은 책이 있었어요.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였죠. 그 책을 읽고 ‘돈을 잃지 말라. 그리고 그 원칙을 잊지 말라’는 문장에서 번개를 맞은 느낌을 받았어요. 마침 제 속에 깔려 있던 보수적 성향과도 맞아떨어졌죠. 그게 제 인생의 진짜 전환점이었어요.”
가치투자가 유전자에 새겨진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셨죠.
“네. 제 안에 원래 그 DNA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돈을 쪼개 쓰던 버릇이 있었어요. 용돈 300원을 받으면 100원씩 세 군데 다른 주머니에 넣었어요. 심지어 100원은 비밀 주머니를 만들어 허리춤 안쪽에 숨기기도 했어요. 그 정도로 리스크 관리에 철저했죠. 어머니 말로는 제가 기어다니던 아기 시절부터 조심성이 대단했다고 해요. 다른 아기들은 막 기어다니다 떨어지곤 하잖아요. 저는 절대 그런 게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중요한 문서가 생기면 무조건 복사본 두 개 만들어서 하나는 집, 하나는 회사에 놔두고요. 리스크를 분산하는 습관이 어릴 적부터 몸에 배어 있었던 거죠.”
가치투자는 결국 그런 성향과 맞닿아 있었던 거군요.
“맞아요. 어찌 보면 겁도 좀 있고, 보수적인 사람에게 어울리는 투자법이 가치투자예요. 특히 저는 신용을 싫어해요. 카드도 안 써요. 카드값은 결국 월말에 나갈 돈이잖아요. 그건 빚이죠. 저는 가능한 한 현금으로 씁니다. 투자도 마찬가지예요. 빚내서 투자하는 건 절대 안 해요. 외환위기 때 크게 손실을 본 고객의 계좌도 4년간 천천히 복구했어요. 신용을 끊고, 남은 자금 700만 원으로 증권주를 샀는데 그게 나중에 10배 넘게 올랐죠. 결국 원금을 다 회복했어요. 그때 느낀 게 있어요. ‘절대 빚지지 말자’, ‘휩쓸리지 말자’. 그 두 가지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제 투자 원칙이에요.”
그렇게 쌓은 철학이 ‘대한민국 최초의 가치주 펀드’로 이어진 건가요.
“맞습니다. 1998년 12월, 제가 회사에 건의해서 만든 게 ‘동원밸류 1호’예요. 지금은 누구나 아는 개념이지만, 당시엔 생소했죠. 이상하게도 반대는 없었어요. 모두가 동의해줬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홍보해줬어요. 그때부터 진짜 의미 있는 투자 인생이 시작된 것 같아요.”
고물가·고금리 시대, 지금의 시장에서는 어떤 포트폴리오가 유리하다고 보시나요.
“지금은 시장의 패러다임 자체가 완전히 바뀐 시점이에요. 과거 10년을 돌아보면 저금리·디플레이션 시대였죠. 돈을 싸게 빌릴 수 있었고, 사업하기도 쉬웠어요. 새로운 기술을 가진 회사가 IPO로 자금을 조달하고, 경쟁자보다 좋은 부지에 더 좋은 공장을 짓는 게 가능했죠. 기업 입장에서는 아주 유리한 환경이었고, 후발주자라도 승부를 걸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고금리·고물가 시대로 접어들었어요. 어떤 회사는 예전 같으면 100억이면 지을 수 있었던 공장이 지금은 200억이 들고, 심지어 공시상으론 1900억이 들어간다고 했는데 실제론 3000억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자금 조달 자체가 어려워진 거예요. 후발주자가 유리할 수 없는 구조죠. 그래서 지금은 이미 현금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 차입금 부담이 적고, 좋은 부지와 설비, 인력 등 생산 요소를 갖춘 기업, 즉 선발 우량주가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자산이 탄탄하고, 이익 창출력이 높으며, 경쟁력이 입증된 기업에 집중해야 해요. 더 이상 ‘미래 가능성’에만 투자하는 시기는 아니죠.”
위기 시 부자들의 행동은 어떤가요
“제가 30년 넘게 지켜본 부자들의 공통점은 ‘위기에 대처하는 게 아니라 애초 준비돼 있다’는 점이에요. 갑자기 주가가 폭락한다고 해서 허둥대는 사람은 없어요. 그들은 자산이 애초에 분산돼 있어요. 주식, 부동산, 채권, 현금 같은 실물과 금융자산이 균형 있게 나뉘어 있고, 특히 주식 쪽도 섹터와 업종을 분산해 놓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현금 비중이에요.
대부분이 전체 자산의 10% 정도는 항상 현금으로 남겨 둡니다. 왜냐하면 진짜 위기가 오면, 그 현금 10%가 전체 포트폴리오를 살려줘요. 예컨대 외환위기 같은 위기가 오면, 주식이 10배씩 오르기도 하잖아요. 그때 현금으로 우량주를 사면, 10배 수익이 나서 나머지 손실을 다 메꿔주는 거죠. 저희 라이프자산운용도 같은 전략을 씁니다. 펀드의 주식 편입비를 100%까지 채우지 않고, 항상 90% 언저리에서 멈춰요. 나머지 10%를 여력으로 남겨 두는 거죠. 그렇게 해야 위기가 왔을 때 ‘현금을 가진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는 투자 철학을 실현할 수 있으니까요.”
“주주협력주의의 핵심은 ‘신뢰’입니다. 기업과 우리 사이에 신뢰가 없으면 대화조차 불가능해요. 예를 들어 어떤 기업에 접근하려고 해도,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면 아예 미팅 자체를 거부하죠. 그래서 먼저 만나줄 수 있는 기업을 선별합니다. 처음부터 거절하면 그냥 제외하면 돼요. 모든 기업을 상대로 협상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또한 저희가 상대하는 기업은 변화의 가능성이 있어야 해요. 경영진이 ‘좋은 제안이네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기업들만이 우리의 파트너가 될 수 있어요. 그 기업들과는 이사회 구성, 재무 구조 개선,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발굴, 배당 정책 또는 자사주 매입 전략 수립 등을 함께 논의합니다. 그렇게 2~3년 장기적으로 함께하며 주가가 제 가치를 찾으면 저희는 엑시트(exit)하는 구조예요.”
낮은 ESG가 투자 실패의 원인이 된 경험도 있다고 하셨죠.
“맞아요. 예전에 제가 가치주라고 생각하고 투자했던 종목들이 있어요. 너무 싸서 투자했는데 10년이 지나도 더 싸지더라고요. 왜 그럴까요. 알고 보니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엉망이었어요. 환경오염 유발 업종에, 기업설명회(IR)도 안 하고, 대주주는 아예 소통 자체를 거부하고, 지배구조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기업은 애초에 ‘가치주’가 아니라 ‘가치의 함정’이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ESG를 반드시 봐야 해요. 소통하려 하지 않는 회사는 주가가 오르기를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 주가 상승과 배당 확대를 원하지만, 그 쪽은 승계 때문에 주가를 낮게 유지하길 바라죠. 그런 기업은 협상이 안 됩니다. 그래서 ESG는 단지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투자 실익의 핵심 요소예요.”
부자 고객들은 기대수익률을 어떻게 설정하나요.
“대부분 놀랍도록 보수적이에요. ‘나는 연 10%만 벌면 돼’, ‘금리만 이기면 만족해’ 이런 마인드가 많아요. 반대로 어떤 펀드가 지난해 30% 수익을 냈다고 해도 의심부터 해요. ‘그게 지속 가능하냐’는 거죠. 오히려 꾸준히 연 10% 수익을 내는 펀드가 있으면, 엄청난 자금이 유입됩니다. 부자들은 ‘잃지 않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봐요. 연 10% 수익보다 중요한 건 마이너스를 피하는 것, 즉 ‘자본 보존(capital preservation)’이에요. 그게 되면 복리가 작동하죠. 예를 들어 연 10% 수익률을 10년간 복리로 쌓으면 원금이 2배가 넘어요. 복리의 마법이죠. 결국 ‘크게 벌려고 하기보다 안 깨지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라’, 이게 부자들의 투자 마인드예요.”
라이프자산운용의 실제 성과는요?
“2021년 7월 창업 당시 코스피는 3300이었고, 지금은 2600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4년 가까이 지수는 하락했죠. 그 기간 동안 저희는 누적 80% 수익을 냈어요. 방법은 단순했어요. 안 깨졌어요. 예를 들어, 창업 첫 해인 2021년 하반기엔 코스피가 -8%였는데 우리는 +3.5%. 2022년엔 코스피가 -25% 빠졌는데 우리는 +0.9%.
당시 국내 롱온리 펀드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과를 낸 펀드였습니다. 1년 5개월 누적 수익률이 +4.4%, 코스피는 -34%였어요. 이건 ‘손실을 피한 전략’이 만든 결과예요. 2023년엔 코스피가 +18.7% 오를 때 우리는 +34% 수익을 냈고, 지난해엔 코스피가 -9.6%인데 우리는 +16.7%였어요. 폭발적 수익보다는 꾸준함과 방어력을 중시한 결과입니다. 펀드는 손실을 내면 복구에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러니 ‘수익률보다 손실률’이 더 중요하다는 게 저희 철학이에요.”
부자에게 ‘운’과 ‘준비’, 둘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운이 중요한 건 맞습니다. 누구에게나 우연히 찾아오는 결정적 기회가 있죠. 하지만 그 운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결국 준비가 돼 있어야 가능한 일이에요. 저는 운의 영향력을 한 30% 정도로 봅니다. 그 이상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운도 결국 노력과 준비가 만든 결과물이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복권도 사야 당첨되잖아요.
복권을 사지 않고는 절대 당첨되지 않죠. 마찬가지로 시장이 갑자기 폭등했을 때, 현금을 준비해 두지 않았다면 그건 아무런 기회도 아니에요. 준비된 자만이 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법입니다. 제 경우에도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운은 매일같이 시장을 보고, 기업을 분석하고, 리스크를 철저히 점검하며 쌓아 온 노력의 결과였어요. 운이 왔을 때 그걸 알아보고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이미 충분히 준비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자란, ‘기회를 알아보는 눈’과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사람들이더라고요.”
계속해서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동력은 뭘까요.
“돈 때문이라기보단, 성과와 명예, 즉 ‘명리(名利)’ 중에 ‘명(名)’에 더 가까운 이유인 것 같아요. 비율로 따지자면 7대3 정도로 ‘명’ 쪽이 큽니다. 만약 제가 돈에 욕심이 있었더라면, 부동산도 했을 거고, 다양한 재테크 수단에 뛰어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평생 펀드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어요. 부동산 투자도 안 했고, 주식 외엔 자산을 운용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집도 그냥 살고 있는 집 하나만 있어요.
저에게 중요한 건 ‘내가 만든 펀드가 좋은 성과를 내는가’, ‘그걸로 고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가’예요. 어떤 숫자를 찍어내는 쾌감보다는,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이 시장에서 입증됐을 때의 기쁨, 그리고 남의 돈을 소중히 다뤘다는 도덕적 책임감에서 오는 만족감이 훨씬 더 큽니다. 그래서 지금도 펀드 성과가 조금만 흔들려도 잠을 설쳐요. 결국 돈이 아닌, 성과로 존재감을 증명받는 삶을 살고 싶었던 거죠.”
평소 존경하는 부자가 있으신가요.
“특정 인물을 꼽기보단 일정한 공통된 특징을 지닌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예를 들어, 평생 성실하게 일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정당하게 세금 내고, 도덕적 기준에 맞게 부를 축적한 사람. 그런 분들이 진짜 존경할 만한 부자예요. 가끔은 아프리카까지 가서 봉사활동 하는 게 멋지게 보일 수 있지만, 진짜 감동적인 사람은 옆집 사람이 어려울 때 바로 반응하는 사람이에요. 지나가다 ‘아, 저 사람 힘들겠다’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바로 행동하는 사람. 따뜻한 말 한마디든, 소액 기부든, 물건을 사주든, 자기가 가진 걸 나누려는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 그게 제가 생각하는 진짜 부자입니다. 사회에서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숫자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그 숫자를 어떻게 다뤘는지가 분명한 사람이에요.”
향후 목표가 궁금해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애는 것, 두 번째는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펀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단순히 시장의 구조적 문제만은 아니에요. 상법과 세법의 구조적인 문제가 얽혀 있어요. 가령 상속세율이 60%에 달하면 대주주는 주가가 오르길 원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배당을 줄이거나, 자사주 매입을 피하고 투자자 입장에서 기업 가치가 저평가된 채로 방치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상법 개정과 세법 개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그 두 가지가 바뀌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겁니다.
기업들이 배당도 더 하고 주가도 오르고 투자자도 웃고요. 그게 진짜 의미의 밸류업(value-up)입니다. 두 번째 목표는 보수적이고 소박한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자산을 맡길 수 있는 운용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라이프자산운용을 만든 이유도 그거예요. 함께 창업한 강대권 대표나 남두우 대표도 저와 같은 철학을 공유해요. 저희 셋은 소위 ‘깨지는 걸 너무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손실이 나면 잠을 못 자요. 그래서 우리는 연 10% 수익률이 목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절대 잃지 말자’예요. 그 철학을 지키는 운용사가 돼야만 고객의 돈을 내 돈처럼 소중히 다룰 수 있고 또 이 회사가 제 은퇴 이후에도 명맥을 유지하며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