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한 대형 금융사의 인수합병(M&A) 행보가 두드러지고 있다. 교착 상태에 빠졌던 우리금융그룹의 보험사 인수는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고, 교보생명은 지주사 전환을 선언하며 SBI저축은행 인수를 발표했다.
[이슈]
그랬던 분위기가 최근 들어 달라졌다. 우선 ‘빅딜’로 꼽혔던 우리금융지주의 동양·ABL생명 인수가 극적으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며 자회사 편입을 코앞에 뒀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2일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자회사 편입을 승인했다. 대신 금융위는 우리금융이 제출한 내부통제 개선 계획과 중장기 자본관리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고, 이행 실태를 2027년 말까지 반기별로 금융감독원에 보고하도록 했다. 이번 승인에 ‘조건부’라는 단서가 붙은 이유다.

금융위가 이런 조건을 건 배경은 한동안 내부통제 부실 이슈로 시끄러웠던 우리금융의 내부 사정에 있다.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건이 금융권을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전현직 경영진을 향한 ‘책임론’이 불거진 것이다. 우리금융이 보험사를 인수할 자격을 둘러싸고 업계 안팎의 의구심이 짙어지면서, 한때 인수가 무산될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금융지주회사 관련 법령에 따르면 자회사 편입 승인 요건에는 ‘금융지주회사의 재무·경영 관리 상태의 건전’이 규정돼 있다. 또 금융지주회사 감독 규정에 따라 종합평가등급을 2등급 이상 받아야 한다. 우리금융은 부당대출 사건의 영향으로 금감원의 경영실태평가가 3등급으로 떨어졌다.
다만 경영실태평가가 3등급으로 나온다고 해도 인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자본금 증액, 부실자산 정리 등 예외 조건을 충족하고 경영 상태가 건전하다는 판단을 받으면 금융위가 자회사 편입을 승인할 수 있다. 결국 금융위는 우리금융으로부터 지적사항 개선 계획, 내부통제 개선 계획, 중장기 자본관리 계획을 제출받았고, 이 계획의 이행을 전제로 자회사 편입 승인안을 통과시켰다.

비은행 강화…종합금융그룹 위용 재건
보험사 인수는 우리금융의 오랜 숙원이었다. 임 회장이 취임한 이후 강조해 온 사업 방향도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다. 이번 보험사 편입이 마무리되면 우리금융은 생명보험 업계 5위의 보험사를 계열사로 지니게 된다. 지난해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을 합친 우리투자증권을 출범한 데 이어, 보험업 재진출에 시동을 걸게 된 것이다. 우리금융은 그룹의 핵심이랄 수 있는 은행은 물론이고 증권, 보험, 카드, 캐피털, 저축은행, 자산운용 등을 보유한 종합금융그룹으로서의 진용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지난 2014년 민영화를 진행하며 우리아비바생명(현 iM라이프)을 매각한 이후 11년 만이다.
물론 금융그룹다운 모습으로 도약하는 데는 향후 계열사 간 시너지를 얼마나 극대화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우리금융은 보험사 인수를 계기로 방카슈랑스(은행에서 파는 보험) 채널 활성화뿐만 아니라 보험사의 자산을 우리자산운용에 맡기거나, 유휴 은행점포 등을 활용한 요양, 헬스케어 사업을 추진하는 방향을 고민 중이다. 일단 우리금융은 동양생명 대표 후보로 성대규 우리금융지주 생명보험사 인수단장, ABL생명보험 대표 후보로 곽희필 신한금융플러스 GA부문 대표를 각각 추천한 상태다. 이들은 오는 7월 초로 예정된 동양·ABL생명보험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후 각 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할 예정이다.

저축은행 인수를 계기로 금융지주로의 전환을 공식화한 금융사도 있다. SBI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하는 교보생명이다. 교보생명은 4월 28일 이사회를 열고 SBI저축은행 지분 50%+1주를 오는 2026년 10월까지 단계적으로 인수하기로 결의했다. SBI저축은행 최대주주인 SBI홀딩스로부터 SBI저축은행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이며, 인수금액은 약 9000억 원이다. SBI저축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자산 14조289억 원, 자본총계 1조8995억 원, 거래 고객 172만 명을 보유한 업계 1위 저축은행이다.
교보생명은 저축은행 운영 경험이 없는 점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지분을 취득하기로 했다. 우선 금융당국으로부터 대주주 승인을 받은 후, 올 하반기 중으로 30%(의결권 없는 자사주를 감안한 실제 의결권 지분 35.2%)의 지분을 취득할 예정이다. 이후 내년 10월 말까지 50%+1주(의결권 58.7%)를 인수할 예정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2027년부터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상당 기간 공동 경영을 할 계획”이라며 “1등 저축은행으로 키운 현 경영진을 교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교보생명이 SBI저축은행을 인수하면 보험과 저축은행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확장될 전망이다. 교보생명 측은 보험 계약자들에게 저축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저축은행 고객들에게 보험 상품을 연계하는 맞춤형 금융 솔루션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계여신 규모를 1조6000억 원 이상 확대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저축은행 계좌를 보험금 지급 계좌로 활용하고, 보험사가 대출을 거절한 고객을 저축은행으로 유입하는 방식이다. 저축은행의 예금을 교보생명의 퇴직연금 운용 상품으로 활용하는 것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다.

교보생명의 저축은행업 진출은 지주사 전환과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위한 조치다. 현재 교보생명은 교보증권, 교보자산신탁,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 교보악사자산운용 등 17개 계열사를 지닌 대형 금융사지만, 그중 예·적금 등 수신 업무를 주요하게 다루는 회사가 없다는 점은 일종의 걸림돌이었다. 금융지주사 전환에 맞춰 우량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더불어 교보생명은 손해보험사 인수 등 비보험 금융 사업으로의 영역 확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내년 저축은행 인수를 완료하고 지주사 전환까지 마치면 보험과 증권, 저축은행이라는 세 가지 축을 큰 발판으로 삼아 종합금융그룹으로의 도약을 시도할 수 있다. 그동안 경영권 분쟁 등을 이유로 진행하지 않았던 기업공개(IPO)나 승계 플랜에도 속도가 날지 관심이 집중된다.
금융그룹 차원에서 M&A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물밑에서 인수를 타진하려는 신호도 꾸준히 감지된다. OK금융그룹은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를 검토하며 물밑 협상을 벌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OK저축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 업계 총자산 순위 2위(13조5889억 원)로, 상상인저축은행(2조3765억 원)을 인수하면 총자산이 16조 원으로 뛴다. 현재 1위인 SBK저축은행을 넘어서는 몸집이 된다. 한국투자금융지주도 BNP파리바카디프생명 인수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은 “여러 검토 사항 중 하나”라고 선을 그었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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