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신탁’이 자산관리의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경머니는 국내 3대 금융지주 은행의 신탁 부문 책임자들과 함께 좌담회를 진행했다.
[머니토크]
강대오 신한은행 자산관리솔루션그룹 부행장, 곽종규 KB국민은행 신탁부 변호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5월 14일 한국경제신문 본사 회의실에서 열린 ‘머니 토크’에서는 신탁 제도의 다양한 현안을 짚었다.
세 명의 신탁 분야 전문가들은 “신탁은 단순한 수탁이 아니라, 고객의 삶과 사후까지 설계할 수 있는 가장 유연하고 실질적인 자산관리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 먼저, 신탁 개념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이재철 하나은행 신탁투자상품본부 부행장(이하 이 부행장) “신탁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신탁에는 여러 장점이 많다. 제가 생각하는 신탁의 본질은 자금을 모으고 축적하는 것. 그렇게 모은 자금을 개인의 생애 주기에 맞춰 필요한 시점에 공급하는 것. 사용하고 남은 자산은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사람에게 이전하는 것이다. 또한 사후에도 신탁을 통해 일정한 책임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만큼 신탁은 ‘토털 라이프 케어’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신탁을 ‘금융 상품’으로 접근하면서단기적 수익을 내는 데 집중된 측면이 있다. 금융기관들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신탁 본연의 기능을 되살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웰리빙’부터 ‘웰다잉’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관점의 신탁으로 진화하고 있다.”

곽종규 KB국민은행 신탁부 변호사(이하 곽 변호사) “근거법은 두 가지다. 신탁법, 그리고 자본시장법이다. 신탁법에서는 신탁재산의 종류에 대해 별도의 제한을 두고 있지 않지만, 자본시장법상 일곱 가지로 한정하고 있다. 금전, 부동산, 부동산 관련 권리, 유가증권, 채권, 부채, 재산권 등이 그것이다. 모든 재산을 종합적으로 맡기고 싶은 고객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제한이 아쉽게 느껴질 수 있다. 현재 금융당국에서도 담보권, 채무 등 신탁 가능한 재산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

강 부행장 “현재 국내 신탁재산 규모는 약 1310조 원 수준이다. 다만 절대적 규모로 보면 미국, 일본과는 차이가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신탁자산 비율이 미국은 약 120%, 일본은 270% 수준인 데 비해 한국은 약 50~55%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부행장 “과거에는 대부분 은행들이 주가연계증권(ELS) 위주로 신탁 수익을 창출해 왔다. 하나은행은 2001년부터 수익 다변화를 목표로 채권, 상장지수펀드(ETF), 재산신탁, 담보신탁 등 파이프라인을 다양화하는 데 집중했다. 신탁을 시장 점유율이나 수수료뿐만 아니라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갖추고 있는지, 상품과 서비스를 출시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고 있는지도 같이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다.”
- 일본의 신탁 제도와 비교해본다면 어떤 차이가 있나.
이 부행장 “가장 큰 차이는 ‘신탁자산의 범위’에 있다. 일본은 2006년 신탁법 개정을 통해 ‘포괄주의’로 전환했다. 신탁 가능한 자산을 열거식으로 제한하기보다, 예외적으로 불가능한 것만 규정한 것이다. 이후 일본 신탁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또한 일본은 개인보다 법인 중심의 신탁이 발달했다. 특히 포괄신탁이 가능한 구조 덕분에, 법인 자산을 하나의 신탁 계약에 통합해 운용할 수 있다. 한국은 세제나 법적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법인 중심 포괄신탁을 단숨에 도입하기는 어렵다. 대신 개인 중심의 특화된 신탁을 확대시켜 가는 게 실질적인 신탁 발전의 지름길이라고 본다.”
- 은행은 신탁과 자산관리 기능을 어떻게 통합해 운영하고 있나.
이 부행장 “금융 상품의 구조를 다양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ELS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원화·외화 채권, 또 단기·중기·장기 채권,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담보신탁, 금전채권신탁, ETF 등 고객 니즈에 따라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또 한 축으로 고객의 연령과 니즈에 맞게 캐시 플로를 설계하는 기능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연금형 신탁 상품을 통해 일정 시점이 되면 자동으로 생활비가 지급되는 구조를 구현할 수 있다. 마치 타깃데이트펀드(TDF)처럼 신탁을 운용하는 거다. 또 사후에는 후견인 제도나 지급 청구 대행 등을 통해 남은 재산을 원하는 방식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1인 가구 전용 상품도 출시했다.”
강 부행장 “신탁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 상품 설계의 유연성에 있다. 각자의 상황과 니즈에 맞는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사회초년생은 자산 형성 단계인 만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인형퇴직연금(IRP) 등의 상품을 신탁이라는 ‘비히클’을 통해 제공할 수 있다. 중년층은 자산관리 및 증식이 목적으로 가치주 신탁, ETF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유연한 설계로 신탁 상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부분이 경쟁력이다.”
- 신탁은 자산을 맡기는 개념인데, 실생활에서 어떤 방식으로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나.
강 부행장 “현재 주로 활용되는 특정금전신탁은 계좌별로 관리된다. 예컨대 A고객의 계좌와 B고객의 계좌는 서로 섞이지 않고 따로 관리된다. 하지만 이 방식은 계좌 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관리에 따른 대가로 보수가 높아지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그래서 일정 조건을 갖춘 계좌끼리 묶어서 관리하면 효율성을 높여 신탁 보수를 낮출 수 있다.”
곽 변호사 “신탁은 맞춤형 계약이다. 일반 금융 상품과 같은 표준화된 상품이 아니라, 고객의 다양한 니즈에 맞게 맞춤형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관리할 수 있는 도구다. 예를 들어 수익률을 높이고 싶은 고객의 요청이 있다면 특약으로 특정 고수익 상품을 포함시킬 수 있다. 종합자산관리로서, 여러 자산 가운데 수익률이 높은 것으로 리밸런싱이 가능하다. 일반 상품처럼 단기 운용에 그치지 않고 생애 전반에 걸쳐 활용할 수 있다. 유언대용신탁 같은 종합자산관리 신탁은 부동산을 신탁으로 맡겨 두었다가 현금이 필요할 때 해지하고 다시 금전으로 맡기는 식으로 유용하게 관리가 가능하다. 일정 수익률에 달성하면 안전자산으로 바꾸고, 장기로 관리할 수도 있다. 또 사후에는 본인이 지정한 사람에게 재산을 이전하는 기능까지 있기 때문에 생전·사후 자산관리 방식으로 가장 효율화돼 있다고 볼 수 있다.”
- 최근 ETF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기관별 특성이 반영돼야 할 신탁도 일반 자산과 똑같이 ETF나 특정 자산에 쏠리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 부행장 “특정 자산에 쏠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핵심성과지표(KPI)로 관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령의 고객에게는 고위험 상품을 권유하지 않도록 하고 있고, 투자가 이뤄질 때에는 실적에서 제외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특정 상품의 쏠림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00세 신탁’ 상품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10억 원을 맡기면 그 안에서 정기예금, ETF, 채권, 펀드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 리스크가 적절히 통제되면서 평균 수익률을 높여 갈 수 있다. 현재 1조6000억 원 이상 모집됐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
- KPI 같은 내부 규제로만으로 충분할까. 은행 자율에만 맡기기보다 법적 구속력이 필요하지 않나.
곽 변호사 “책임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고령화 시대에 고위험 상품에 가입하는 부분을 막기 위한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신탁은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업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법적 규제를 받는다. 설명 의무, 적합성 판단, 절차 준수 등의 요건은 펀드나 다른 금융 상품과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특히 신탁에 다양한 자산이 포함될 경우, 그중 금융 투자 상품 각각에 대해 법적 절차와 규제를 적용받는다.”
강 부행장 “신탁의 안정적 운용 철학에 부합하고, 특정 종목에 쏠리지 않도록 ‘비예금 상품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ETF 상품은 자산운용사와 사전 협의를 거쳐 내부 심사를 통과해야만 신탁에 편입되며, ‘비예금 상품위원회’에서 리스크 관리, 소비자 보호 부서 등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되면 아무리 인기 있는 상품이라도 부결된다. 신한은행은 2004년부터 은행권 최초로 가치주 중심의 신탁을 운용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우수하고, 저평가돼 있으면서 배당 여력이 높은 기업에 장기 투자를 하는 전략으로, 현재까지 연평균 수익률이 약 11.4%에 달한다. 변동성이 심할 때도 보수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미성년 자녀를 위한 증여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 최근 관심이 커지고 있는 보험금 청구권 신탁이란 무엇인가.
곽 변호사 “생명보험금을 금융기관이 대신 수령해 수익자인 미성년 자녀나 장애 자녀에게 일정한 기준에 따라 생활비 등으로 지급하는 신탁 제도다. 2024년 11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허용됐다. 기존에는 거액의 생명보험금이 미성년 자녀나 장애 자녀에게 한번에 지급되면, 친척이나 주변인에 의해 재산이 남용되거나 횡령당할 위험이 있었다. 이제는 신탁 회사가 보험금을 수령한 후, 자녀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거나 자립이 어려운 경우에는 평생에 걸쳐 생활비 형태로 일정 금액씩 지급하는 방식으로 관리가 가능하다. KB증권은 제도 시행 초기부터 전용 약관을 마련해 관련 법적 요건을 충족시켰고, 실제 보험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절차도 구체화했다. 특히 장애 자녀를 둔 부모, 한부모 가정 등을 중심으로 가입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 신탁에서 최근 주목을 받는 부분이 유언대용신탁이다. 유언대용신탁과 유언은 어떤 차이가 있나.
이 부행장 “자산을 물려주는 수단으로서 동일한 효과를 낸다. 하지만 실행 단계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유언은 작성이 쉽지 않다. 법적으로 자필, 녹음, 공증 등 까다로운 형식을 갖춰야 하고, 일반인이 접근하기엔 진입장벽이 있다. 설령 유언장을 작성했더라도 훼손되거나 진본 여부를 두고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최종 유언장인지 확인도 필요하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하나은행은 ‘리빙트러스트’, 즉 유언대용신탁이라는 브랜드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생전에는 평생을 거쳐 일군 알토란 같은 내 재산을 나를 위해 쓰고, 병원비 같은 지출은 지급청구대리인을 통해 처리하고, 사후에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특정 자녀에게 더 많이 줄 수도 있는 구조다. 신탁 계약이기 때문에 유고 시 은행이 계약대로 집행한다. 이런 확정성과 신뢰성이 있기 때문에, 4조5000억 원 규모의 시장 중 약 4조3000억 원을 저희 하나은행이 맡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 유언과 유언대용신탁이 충돌하면 어떤 게 우선하나.
곽 변호사 “논란의 여지는 있다. 유언은 언제든 철회가 가능하다. 유언 이후에 유언대용신탁을 체결하고 재산을 수탁자에게 이전했다면 이는 계약으로서의 구속력이 생긴다. 즉, 유언장보다 신탁 계약이 나중에 체결됐다면 실제 효력은 유언보다 신탁이 우선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재산 처분이 완료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강 부행장 “공증을 받은 유언장이 있더라도, 은행 입장에선 상속인 전원의 동의를 요구한다. 가족관계증명서에 나온 모든 상속인의 합의가 있어야 유언장을 근거로 집행된다. 반면 유언대용신탁은 은행 명의로 이미 신탁 상태에 있기 때문에, 사후에는 기존 계약대로 은행이 직접 집행할 수 있다. 특히 종합재산신탁의 형태로 금전, 부동산 등을 포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면 훨씬 간편하게 분배가 가능하다.”
신탁으로 맡기면 유류분 문제에서 자유로운가.
강 부행장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장과 동일한 법적 효과를 지니면서 좀 더 편리하고 원활한 상속 집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유류분을 100% 방어할 수 있다고 확정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유언 우선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고, 유류분이라 함은 법정상속분 전부가 아니라 최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만 반환하게 된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형제, 자매 등 3순위 상속권자에 대한 유류분 반환 청구의 위헌 판결에 따라 특히 1인 가구의 경우에는 유류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유언대용신탁은 매우 강력한 제도다.”
이 부행장 “결론적으로 유언대용신탁이라 하더라도 유류분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실제 판례가 두 개로 갈렸다. 어떤 판례는 신탁재산은 유류분 대상이 아니라고 보기도 하고, 어떤 판례는 포함된다고 보기도 한다. 대법원 판례가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고객에게도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안내하고 있다. 따라서 신탁 설계 시 유류분을 감안해 분쟁이 없도록 조정하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다.”
곽 변호사 “법적상속분과 다르게 상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크게 유언과 유언대용신탁이 있다. 유언은 특정인에게 줄 수 있지만 유류분을 침해하면 전체 재산이 유류분 분쟁 대상이 된다. 유언대용신탁의 경우에도 재산이 이미 신탁 계약으로 처분됐다고 보더라도, 일부 판례에서는 유류분에 포함된다고 본 경우도 있다. 아직 대법원 확정 판례가 없기 때문에 유류분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지해야 한다.”
- 지금까지 신탁 업무를 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가 있다면.
강 부행장 “지난 3월, 매우 인상 깊은 유언대용신탁 사례가 있었다. 60대 중반 미혼 여성 고객으로, 평생을 열심히 일하며 서울 반포에 아파트를 마련하신 분이었다. 가족이 따로 없어, 사후에 본인 재산이 의미 있게 사용되기를 원하셨고, 상담을 통해 아파트를 사후에 월드비전에 기부하는 유언대용신탁을 체결했다. 월드비전도 이런 고액 기부는 처음이라며 매우 감동했고, 감사의 손편지를 작성해 전달해 드리기도 했다.”
이 부행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안타까운 사례다. 80대 독거 어르신 고객을 꾸준히 응대하며 유언대용신탁도 여러 차례 권유드렸지만 그분은 ‘나중에 하지 뭐’라며 계속 미루셨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병환으로 쓰러지셨고, 이후 의사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평소 교류가 없는 먼 사촌들에게 재산이 넘어갔다. 신탁이 있었더라면,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산을 쓰고 남은 재산을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던 사례다. 또 다른 사례로는 남편이 먼저 사망하면서 부인에게 자산이 승계됐고, 안타깝게도 얼마 후 부인이 암 판정을 받게 되면서 유언대용신탁을 체결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자녀들은 아직 초등학생이었다. 현재는 외삼촌이 신탁을 통해 자금을 관리하고 있고, 자녀들이 성년이 됐을 때 해당 자산을 순차적으로 집행할 계획이다. 극단적 상황 속에서도 자녀 보호와 자산관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의미 있는 사례였다.”
곽 변호사 “한 고령 고객의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90세가 넘는 남성 고객으로, 그분은 본인의 전 재산 중 일부인 10억 원을 떼어 가족 장학회를 설립하셨다. 해당 금액을 신탁으로 맡긴 후, 사후 수익자를 가족 장학회로 지정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운영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손자녀가 대학에 진학할 때마다 장학회에 청구하면 은행이 자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그분이 생전에 강조하셨던 교육에 대한 철학과 실천이 신탁을 통해 안정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신탁업 발전을 위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곽 변호사 “특히 미국이나 일본처럼 신탁이 발달한 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한 편이다. 예를 들어, 신탁 회사가 부동산을 수탁받은 뒤 이를 전문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에게 재위탁하려 해도 현행 법 체계에선 제한이 많다. 이러한 재위탁 제한이 완화된다면 신탁이 더 많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강 부행장 “특히 부동산 신탁과 관련해 제도적인 허들이 여전히 높다. 최근 전세사기 등 부동산 이슈가 커지면서, 신탁계약서 내용이 등기부 원본에 모두 공개되도록 돼 있다. 예컨대, 유언대용신탁의 경우 수익자, 분배 방식 등 민감한 내용이 포함되는데, 이게 등기에 그대로 기재돼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되는 구조다. 이는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등기 실무 개선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신탁 가능한 자산의 제한이다. 현재 IRP나 농지법상 전답 등은 신탁 수탁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퇴직금 관련 법이나 농지법 등의 제약을 풀어줘야, 신탁이 진정한 종합자산관리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행장 “신탁 가능 자산을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전환해주시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또 가업승계를 목적으로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할 때, 주식을 수탁하면 의결권 행사에 15% 제한이 걸리는 문제가 있다. 이 제한을 완화해주면 가업승계 신탁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고, 자산가들의 수요도 훨씬 늘어날 것이다. 최근 유언대용신탁에 소액으로 가입하는 사례도 많다. 예를 들어 3억, 5억 수준의 소규모 유언대용신탁을 합동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면, 운용 효율성과 비용 부담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등기 실무의 개선도 필요하다. 현재는 신탁계약서의 수익자나 분배 내용이 등기부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유언장의 대안으로서의 비밀성과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신탁을 규율하는 신탁법과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시급하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신탁은 실질적 자산관리 수단으로서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 정리 이현주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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