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정책 기대감에 힘입어 증시가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상승세가 이어지려면 상법 개정과 배당 확대 같은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결국 기업의 성장이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마켓 트렌드]
중동 지역의 전쟁 위험 고조로 상승세가 잠시 멈췄지만, 증시 전문가들은 반등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이 ‘코스피 5000’과 내수 부양을 공약으로 내건 만큼 임기 중 강세장이 지속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돌아온 외국인
증권 업계는 2021년 사상 처음으로 코스피 지수 3000을 돌파했을 당시보다 더 지속적인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당시에는 ‘제로 금리’에 따른 유동성이 증시를 끌어올렸다면, 이번 랠리는 지배구조 개선 등 구조적 변화에 대한 기대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외국계 투자은행(IB)들도 6월 들어 코스피 지수 3000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을 떠났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6월 첫째 주 국내 유가증권 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약 4조 원 순유입됐다. 개인투자자는 물론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펀드도 유입되며 지수를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프랭클린템플턴, 애버딘인베스트먼트 등은 최근 한국 주식에 대한 ‘매수’ 포지션을 추가하거나 투자의견을 상향 조정했다. 10년 전 일본처럼 한국도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정책을 통해 증시 부양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조너선 파인즈 페더레이티드허메스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저렴한 밸류에이션과 투자 환경 개선에 대한 기대가 맞물리며 글로벌 자금이 한국 증시 비중을 크게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IB들은 긍정적인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JP모건은 “달러 약세, 상법 개정, 지배구조 개선 등 여러 호재가 맞물린다면 코스피 지수는 낙관적 시나리오인 3000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골드만삭스도 최근 코스피 지수 예상치를 2900에서 3100으로 상향했다.
국내 증권사들도 올해 코스피 지수 전망치를 줄줄이 상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6월 12일 올해 하반기 코스피 지수 예상 범위를 기존 2400~2900에서 2600~3150으로 수정했다. 12개월 선행 자기자본이익률(ROE) 9.75%, 자기자본비용(COE) 10%를 적용한 결과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지수가 단기간 급등한 만큼 3분기에는 조정이 예상되나, 4분기 반등 가능성이 크다”며 “저점은 3분기 초중반에 형성될 가능성이 있으며, 조정 시 저가 매수 전략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NH투자증권도 이날 코스피 지수 연간 상단 전망을 기존 3000에서 3100으로 상향했다. 김병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자본시장 개선 정책에 따라 단기적으로 오버슈팅 가능성이 있으며 3100선도 도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7월께 조정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으나 이후 다시 상승 흐름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코스피 지수가 3000선 위에서 안착하려면 수출이 지속적으로 호조를 보이고, 품목별 글로벌 관세 부담이 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 거래 계좌 수, 사상 최대치
국내 증시 랠리에 힘입어 주식거래활동계좌 수도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11일 기준 주식거래활동계좌는 9059만여 개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2024년 6월 11일·8239만3370개)보다 약 10% 증가한 수치다. ‘주식거래활동계좌’란 10만 원 이상을 예치하고 최근 6개월 내 1회 이상 거래가 이뤄진 계좌를 뜻한다.
2022년 6월부터 2024년 2월까지 7000만 개 수준에 머물던 계좌 수는 해외 주식 열풍에 힘입어 지난해 2월 8000만 개를 돌파했다. 이후 5월 중순 대선 정국 본격화와 함께 9000만 개를 넘어섰다.
이 같은 계좌 증가는 대선 이후 증시가 반등하면서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증시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되는 투자자예탁금도 6월 10일 기준 62조 원을 넘어서며 2022년 3월 이후 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업 성장 없이는 5000피 어렵다” 우려도
이 대통령이 배당 확대 등을 통한 증시 부양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며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6월 9~11일 펀드매니저,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연구단체, 학계 등 자본시장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18명(60%)은 이 대통령 임기 내 코스피 지수 5000 돌파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반면 12명(40%)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배당 확대, 세제 개편, 이중 상장 해소 등의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달린 의견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요인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치는 기업지배구조(20명), 낮은 주주환원율(16명)을 꼽았다. 이중 상장 문제와 둔화하는 경제성장률(각 9명)도 주요 과제로 지적됐다. 미국 증시로의 개인투자자 이탈(4명) 역시 국내 증시 상승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언급됐다.
‘코스피 지수 5000 시대를 위한 시급한 과제’로는 상법 개정(18명), 지배구조 개편 및 주주 환원 확대(14명),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세제 혜택(12명), 기업 펀더멘털 개선(10명), 기업 활동 지원 및 규제 완화(4명) 등이 꼽혔다.
한편, 증시 랠리가 중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과거 ‘동학개미 운동’에 힘입어 3000을 넘겼던 코스피 지수가 다시 2000대로 회귀한 전례처럼, 기업 펀더멘털 개선 없이 강세장이 지속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저출생·고령화, 산업 구조의 변화, 낮은 성장률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한계가 증시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코스피 지수 5000 달성을 위해선 규제 완화, 상속세 인하 등 제도 개선과 기업 성장의 동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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