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상속시대’. 상속이 더 이상 특정 부유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모든 국민에게 해당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입니다. 일본은 ‘대상속시대(大相續時代)’, 미국은 ‘거대한 부의 이전(Great Wealth Transfer)’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부를 보유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에 이어 사망기에 접어들면서 상속이 중요한 사회·경제 화두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65세이상 인구가 보유한 순자산은 처음 4000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앞으로 20~30년에 걸쳐 자녀세대가 이 거대한 부를 상속받게 됩니다.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인 1955년생이 올해 만 70세입니다. 기대수명(80세)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상속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준비 안 된 상속은 재앙일 수 있습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이혼보다 상속 재판으로 법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대법원 사법통계에 따르면 2023년 상속 사건은 5만7567건으로 이혼 사건(2만 7501건)을 훨씬 앞질렀습니다. 2016년 처음 순위가 바뀐 이후 매년 격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속재산을 둘러싼 다툼은 가족의 유대감을 송두리째 무너뜨립니다. 유언 없는 죽음이 분쟁을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상속 준비나 유언 작성이 우리에겐 아직 낯선 것이 사실입니다. 일본은 상속 분쟁을 줄이기 위해 유서 공적관리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상속에는 항상 상속세가 따라는 다닙니다. 우리나라 상속세 과세 대상은 최근 3년 새 2배 늘었습니다. 부동산 값이 폭등한 결과입니다. 현재 서울 아파트 평균매매가는 13억 원대입니다. 배우자와 자녀 1명이 있을 경우(기본공제 2억 원·배우자공제 5억 원 적용), 상속재산이 7억 원을 초과하면 상속세를 내야 합니다. 서울에 웬만한 아파트를 갖고 있으면 상속세를 피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새 정부는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 완화를 약속합니다. 전국민 상속시대의 도래와 함께 상속세를 둘러싼 논란은 갈수록 더 뜨거워질 게 분명합니다.
세계경제포럼(WEF)는 2024년 보고서에서 2045년까지 베이베붐 세대 등이 젊은 세대에게 72.2조 달러를 넘겨줄 것으로 예상하며 금융 자문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전국민 상속시대는 상속이 부의 출발점이 되는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실용적인 대응을 넘어 ‘상속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도 필요합니다. 상속은 단순한 돈의 이동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남긴 설계도입니다. 지금이라도 상속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장승규 한경머니 편집장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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