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페이가 스톡옵션 '먹튀' 논란으로 한때 주가가 10분의 1 수준까지 폭락했지만 이후 반전에 성공했다. 선불충전금을 다량 보유하고 있어 스테이블코인 발행 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분석이다. 2030년에는 운용수익이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종목 집중탐구]
카카오페이는 지난 6월 주가가 4배 급등했다가 빠지며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였다. 지난 4월 2만6350원까지 떨어졌던 이 회사는 지난 6월 25일 장중 최고 11만4000원을 찍었다. 시가총액은 단숨에 13조 원을 돌파했다.
금융당국 제동에도 주가 4배 폭등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한국거래소는 카카오페이를 투자 경고 종목으로 지정하고 두 차례 매매를 정지했다. 하루 동안 공매도 거래가 금지되기도 했다. 한국은행도 스테이블코인의 잠재적 리스크 요인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면서 7월 카카오페이 주가는 7만~8만 원대로 주저앉았다. 고점 대비 30%가량 빠졌다. 주가가 점차 안정화되는 모양새다.
주가가 반등했지만, 카카오페이 임직원들은 웃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회사는 2021년 11월 상장 이후 대표이사와 임직원의 ‘스톡옵션 먹튀’ 사태로 주가가 폭락했다. 당시 주가는 25만 원대까지 치솟았다가 2만 원대로 10분의 1 토막이 났다. 그 사이 공모가 9만 원에 우리사주를 받은 임직원들은 의무보유기간인 1년 동안 주식을 팔지 못해 속앓이해야 했다. 당시 카카오페이 임직원 850여 명은 총 340만 주의 우리사주를 받았다.
증권가에선 지난 6월 우리사주 물량의 일부가 차익 실현을 위해 시장에 풀린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페이는 그동안 별다른 호재가 없어 주가가 지지부진했다가 스테이블코인 테마주로 묶이며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장세를 연출하고 있다”며 “우리사주를 강제로 장기 보유하고 있던 임직원들에겐 다행이지만, 공모가를 뚫은 이후 주가가 다시 하락하고 변동성이 커져 매도 타이밍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카카오페이는 선불충전금이 많아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올 1분기 기준 약 5919억 원의 선불전자지급수단 잔액을 보유하고 있다. 네이버페이(1576억 원), 토스(1375억 원)보다 3배 이상 많다. 조태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 비즈니스 모델에서는 담보 자산을 보유한 만큼 운용수익을 더 낼 수 있기 때문에 선불충전금 규모가 클수록 유리하다”며 “카카오페이는 ‘월렛에 충전 후 송금-결제’ 구조로 스테이블코인을 가장 자연스럽게 시스템에 녹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카카오 그룹사 내에서 선불충전 잔액만큼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도 2030년 예상 운용수익이 1조 원을 상회한다”고 했다.
증시 핵으로 떠오른 스테이블코인
증권사들도 카카오페이의 목표주가를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NH투자증권은 카카오페이의 목표주가를 기존 3만8000원에서 13만 원으로 올렸다. 윤유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페이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에 참여한 이력이 있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가능성에 대비해 발 빠르게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며 “카카오그룹 내 메신저, 은행, 증권 플랫폼 등을 보유한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이 증시를 뒤흔들면서 다른 전자결제 기업의 주가도 일제히 상승했다. 다날, NHN, KG이니시스 등은 지난 6월 줄줄이 신고가를 경신했다. 지난 4월 주가가 2420원까지 내려갔던 다날은 7000원대로 치솟았다. 국내 3위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인 KG이니시스도 4월 주가가 7970원까지 내려갔다가 1만 원을 넘어섰다. 디지털자산은 시장 선점 효과가 커 전자결제 시스템 관련 밸류체인을 보유한 기업들이 수혜를 누릴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전자결제 기업은 스테이블코인이 신규 결제 수단으로 추가되면 소비자와 가맹점에 결제망을 제공해 양측에서 수수료를 수취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될수록 수익이 확대되는 구조다.
증권가는 당분간 스테이블코인이 주식 시장의 주요한 테마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도입 초기엔 발행과 결제 기업에 이목이 쏠리고 점차 유통, 보관, 보안 특화 기업으로 시장의 관심이 이동할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코인 테마주’로 엮인 종목들의 주가 변동성이 커지고 있어 투자하기 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스테이블코인이란 기존 화폐에 고정 가치로 블록체인에서 발행되는 디지털자산을 말한다. 그동안 주로 달러화의 시세를 추종하는 암호화폐를 뜻했다. 테더가 발행한 USDT와 서클이 발행한 USDC가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이다. 이름에 ‘코인’이 들어가 있지만 다른 암호화폐와 성격이 다른 자산으로 분류된다. 투자 대상도 아니다. 달러에 기반한 스테이블코인을 매수하는 것은 곧 달러를 매수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새 정부 들어 법제화 논의 탄력
국내에선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원화 가치를 추종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법제화 논의가 진행되면서 스테이블코인이 증권 시장의 주요 테마로 부상했다. 민병덕 의원이 지난 6월 11일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발의한 것이 불씨가 됐다. 그동안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이창용 한은 총재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인 것도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줬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지난 6월 6일 이 대통령이 김용범 정책실장을 임명한 것을 두고 디지털자산 공약 이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기획재정부 1차관 출신인 김 실장은 가상자산 벤처캐피털(VC) 해시드 산하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이사를 지낸 경력이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24년 연간 미국 단기채 매수 주체 1위는 미국 머니마켓펀드(MMF), 2위는 중국, 3위가 스테이블코인이었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의 제도권 진입으로 금융 시스템 산업에 지각 변동이 나타나는 가운데 어떤 주체가 최종 승자가 될지 아직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며 “이미 산업을 선점하는 코인 기업과 뺏기지 않으려는 은행 등 전통 금융 기업, 새 기회를 보고 신규 진입하는 비은행 기업 등 여러 주체들의 경쟁 구도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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