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오브제처럼 빛을 발해 누구나 한 번쯤 뒤돌아보게 되는 차,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럭셔리의 꼭짓점. 롤스로이스의 오너가 된다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롤스로이스모터카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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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 롤스로이스 위스퍼스

롤스로이스는 1906년 찰스 롤스와 헨리 로이스가 만든 자동차 회사다.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호사스럽고 비싼 자동차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가장 저렴한(?) 모델의 시작 가격은 대략 5억 원. 흔히 하는 말로 집 한 채 값이다.
신차가 등장할 때마다 가격을 둘러싸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나오지만, 롤스로이스 차 가격에 대한 시시비비를 들어본 적은 없다. 왜일까? ‘롤스로이스만큼 크고 빠른 자동차가 없어서?’ 자동차를 단순히 숫자나 수치로 나열한다면 롤스로이스보다 크고 빠른 자동차는 많다. 롤스로이스만큼 고급스러운 자동차도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롤스로이스의 가격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바로 롤스로이스이기 때문이다. 롤스로이스가 늘 강조하듯, 롤스로이스는 단순히 자동차를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다. 럭셔리, 그것도 럭셔리의 꼭짓점에 있는 브랜드다. 무엇보다 롤스로이스는 성공의 또 다른 이름이다. 롤스로이스는 만인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지 않지만, 만인이 선망하는 브랜드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런 점에서 롤스로이스 오너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성취를 이뤄낸 사람이 스스로에게 수여하는 일종의 ‘트로피’다.
궁극의 럭셔리는 소유가 아닌 경험에서 오지만, 어떤 럭셔리는 알아보고 가질 수 있는 사람들끼리의 ‘문화’일 것이다. 사업가와 왕족, 창업자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이끌어가는 최고 스타 등으로 구성된 롤스로이스 오너는 예술 후원자이자 자선 활동가이며, 희귀한 아이템을 수집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특별한 집단이다. 롤스로이스 오너들은 같은 브랜드의 자동차를 탄다는 사실만으로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롤스로이스를 구매한 고객만 가입할 수 있는 모바일 앱 ‘위스퍼스(Whispers)’가 대표적이다. 롤스로이스 고객은 이 앱을 통해 다른 오너들과 관심사, 취향, 의견 등을 공유할 수 있다. 물론 롤스로이스 본사 차원의 고객 관리도 이뤄진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오너만의 관계 형성을 돕기 위한 사교의 장을 주선하기도 한다. 모임 장소는 매우 특별하다. 뉴욕 필하모닉의 비공개 공연이나 미국 그래미 어워드 백스테이지, 아트 바젤 VIP 프리뷰 등으로 오너들을 초대한다. 그뿐 아니라 직접 고객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는데, 영국 굿우드에 위치한 롤스로이스 본사에서 파티를 열거나 신제품을 공식 출시 전 살펴볼 수 있는 행사 등이 대표적이다.
롤스로이스를 소유한다는 것
롤스로이스모터카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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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초청 행사에서 만난 블랙 배지 스펙터

지난 6월 일본에서 열린 ‘Infinity Unleashed 2025’도 그런 행사 중 하나였다. 롤스로이스 최초 전기차 스펙터의 고성능 모델 ‘블랙 배지 스펙터(Black Badge Spectre)’의 성능을 두 눈으로 확인시키기 위해 VIP 고객을 한데 모은 자리였다. 최근 한국은 롤스로이스 아시아·태평양 시장의 핵심 거점이자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시장 중 한 곳으로 꼽힌다. 특히 2023년 스펙터 출시 당시 아태 지역 주문 물량의 절반 이상이 한국일 만큼 스펙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에 롤스로이스는 한경 <나인투나인>을 비롯해 국내 럭셔리 문화를 선도하는 매체들을 이 행사에 초대했다.
롤스로이스의 세심함은 장소 선택에서부터 빛을 발했다. 행사가 진행된 곳은 일본 도쿄 남쪽 지바현 미나미보소에 위치한 ‘더 마가리가와 클럽(The Magarigawa Club)’. 2023년에 문을 연 이곳은 회원만 이용할 수 있는 아시아 최초의 프라이빗 드라이빙 클럽으로, 세계 최상급 주행 서킷을 갖췄다. 롤스로이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능을 지닌 블랙 배지 스펙터를 고객에게 소개하기 위해 서킷을 달려볼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한 것이다. 롤스로이스, 그것도 롤스로이스의 전기차를 서킷에서 몰아보는 경험은 오너에게조차 매우 이례적인 경험일 터. 그만큼 블랙 배지 스펙터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잠깐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흔히 롤스로이스 하면 쇼퍼드리븐, 다시 말해 기사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펙터는 운전자가 중심인 오너드리븐을 강조하는 모델로 젊어진 롤스로이스를 상징한다. 실제 스펙터의 오너 대부분은 동승자 없이 단독으로 차를 운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만큼 운전 재미도 뛰어나다. Infinity Unleashed 2025의 주인공인 블랙 배지 스펙터는 그 재미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모델이다. 롤스로이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최고출력 659마력(485kW), 최대토크 109.6kg·m(1075Nm)의 압도적 성능을 지녔다. 슈퍼 스포츠카와 비견할 만한 수치지만, 운전 경험은 스포츠카와는 결이 다르다. 전기차를 만들면서도 특유의 감성과 승차감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삼은 롤스로이스는 기본 주행 모드에서 회생제동을 최소화했다. 덕분에 전기차 특유의 꿀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거의 없다.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돌릴 때도, 가속페달을 깊숙이 밟을 때도, 브레이크 페달을 급하게 밟을 때도 그 감각은 다른 롤스로이스를 탈 때와 정확히 똑같았다. 현장에서 만난 아이린 니케인(Irene Nikkein) 롤스로이스모터카 아태 지역 총괄은 “가장 중요한 것은 스펙터가 전기차라는 사실보다 이 차가 ‘롤스로이스’여야 한다는 점”이라며 “전동화라는 기술 변화에도 불구하고 고객은 여전히 롤스로이스만의 고요함과 정교함,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마가리가와 클럽의 총 3.57km 서킷 코스는 22개 코너로 구성돼 있었다. 특히 지형이 몹시 가파른데, 심한 곳은 높낮이 차이가 250m에 달할 정도였다. 덕분에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산속을 오르내리며 박진감 넘치는 주행 경험을 선사했는데, 놀랍게도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페달을 반복해 밟을 때도 차체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거나 몸이 앞뒤로 쏠리지 않아 주행이 편안했다. 롤스로이스가 강조하는 ‘매직 카펫 라이드(Magic Carpet Ride)’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했다. 말 그대로 마법의 양탄자를 탄 것 같은 승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직선 코스에서 가속할 때는 블랙 배지 스펙터의 진가가 더욱 도드라졌다. 특히 블랙 배지 스펙터에 새롭게 적용한 ‘인피니티 모드’와 ‘스피리티드 모드’도 시도해볼 수 있었다. 인피니티 모드는 쉽게 말해 일종의 부스트 모드다. 스티어링 휠에 자리한 ‘∞’ 버튼을 누르면 최대 659마력의 힘을 단숨에 쏟아낸다. 반면 스피리티드 모드는 가장 극적인 가속력을 선사하는데, 정지 상태에서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양발로 동시에 밟으면 자동으로 활성화된다. 여기서 왼발만 떼면 3톤에 육박하는 자동차가 4.3초 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한다. 크리스토퍼 하디(Christopher Hardy) 롤스로이스모터카 스펙터 제품 매니저는 “새롭게 도입한 인피니티 모드와 스피리티드 모드는 강력한 출력을 직관적으로 이끌어내며 폭발적 가속감과 몰입도 높은 주행 경험을 선사한다”며 “배터리를 낮게 깔 수 있는 전기차는 무게 배분 면에서도 유리하고, 우리가 원하는 매직 카펫 라이드를 재현하는 데도 최적”이라고 덧붙였다.
롤스로이스를 소유한다는 것
롤스로이스모터카 사진 제공
롤스로이스모터카 사진 제공
세상에 단 한 대뿐인 차, 비스포크 서비스

Infinity Unleashed 2025가 특별한 점은 또 있었다. 짧게나마 롤스로이스가 자랑하는 비스포크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 이를 위해 ‘롤스로이스모터카 프라이빗 오피스 서울’에 상주하는 전문 디자이너와 고객 경험 매니저가 일본을 찾았다. 고객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직접 찾아간다는 것이 롤스로이스의 설명이다.
세상에 똑같은 롤스로이스는 단 한 대도 없다는 말이 있다. 맞춤 슈트를 주문할 때 원단부터 핏까지 섬세하게 고를 수 있는 것처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를 개인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최원근(Jeffery Choi) 클라이언트 익스피리언스 매니저는 “롤스로이스를 사는 고객 대부분은 차고에 차량이 많아 옷처럼 기분과 상황에 맞춰 차를 골라 타는 사람들이다”라며 “그들이 롤스로이스를 소유하고자 하는 이유는 크리에이티브한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서다”라고 설명했다.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11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 전문 디자이너와 협업해 세상에 하나뿐인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프라이빗 오피 스’를 오픈했다. 영국 굿우드 본사를 제외하면 두바이와 상하이, 뉴욕에 이어 전 세계 네 번째다. 프라이빗 오피스는 고객과 영국 롤스로이스 본사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일종의 창구 역할을 하며, 나만의 롤스로이스가 탄생하기까지 여정을 함께한다. 한마디로, 비스포크의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구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서울의 노을을 모티프로 한 모델이 존재할 정도. 제임스 바준(James Bazun) 롤스로이스 리저널 디자이너는 “롤스로이스 비스포크 서비스는 디자이너, 엔지니어와 상의하며 나만의 꿈(자동차)을 구현해나가는 과정”이라며 “고객의 꿈만이 우리의 한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롤스로이스의 프라이빗 오피스는 기술적이거나 법적인 것을 제외한,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을 실현해주는 공간이다.


일본 =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