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500의 12개월 선행 PER이 22.3배로 역사적 고점 수준이지만, AI 중심 기술주 호황과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버블 형성 조건을 만들고 있다. 개인투자자 매수세와 투기성 자금 유입이 강화되며 오버슈팅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마켓 리더의 시각]
지난 7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Fed 의장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현재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건물을 둘러보는 동안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7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Fed 의장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현재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건물을 둘러보는 동안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균형’과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투자 세계관에서, 향후 미국 주식 시장의 운명은 밝아보이지 않는다. 비싸기 때문이다. 2025년 8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12개월 선행 주가순자산비율(PER)은 22.3배에 위치했다. 지난 40년간 상위 5% 수준이다. 1980년 이래 현재보다 PER이 높았던 시기는 1999년 닷컴 버블, 2020년 팬데믹 직후 장세밖에 없다.
Fed 금리 인하는 유동성 버블의 신호탄
이를 뚫어내고 강세장을 전망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우회 루트는 기업 이익 개선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기업 이익과 동행하는 경제지표들(ISM 제조업지수·소비자신뢰지수)은 지금 부진하다.

두 번째 우회 루트는 금리 인하로 PER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현재 시장은 연내 2회 인하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금리 인하로는 22배를 상회하는 PER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술주의 구조적 강세가 존재하는 국면에서 오버슈팅과 버블은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적 경험이며, 가능성이다.

‘낙관적 충격’이 버블의 선결 조건
Fed 금리 인하는 유동성 버블의 신호탄
고전적인 자산 가격 버블 모델은 다섯 가지의 발전 단계를 가진다고 본다.

첫 번째 단계는 변위(displacement)다. ‘새로운 투자 기회가 창출되는’ 단계라고 정리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 제도 변화, 규제 완화, 금리 인하 등의 외부 충격으로 인해 투자 환경에 변화가 발생하는 단계다. 두 번째 단계는 호황(boom)이다. 긍정적 뉴스와 큰 수익을 거둔 사례들이 퍼지면서 투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세 번째 단계는 광기(euphoria)다. 시장참여자들은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믿으면서 비이성적인 투자에 몰입한다. FOMO(Fear Of Missing Out·소외 공포)가 심리를 지배하고, 대중적인 투자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며 투자자들은 레버리지 사용을 늘린다. 네 번째 단계는 이익 실현(profit taking)이다. 일부 선도적인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지막 단계는 붕괴(panic·crash)다. 신용경색과 투자자산에 대한 신뢰 붕괴로 투자자들이 동시에 탈출을 시도한다.

살펴보면 자산 가격 버블의 선결 조건은 변위, 즉 구조적이고 낙관적인 충격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주식 시장의 역사적인 버블이 발생했던 1929년, 1999년, 2020년은 모두 기술 혁신에 의한 구조적이고 낙관적인 충격이 선행했다. 1929년의 버블에는 전기와 자동차·가전의 폭발적인 보급과 2차 산업혁명이라는 혁신이 있었고, 1999년은 PC와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기술(IT) 혁명이 한창이었다. 2020년은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혁명이 있었다.

세 번의 사례 모두 경기 상황이 썩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기술주로 대변되는 주도주들의 업황은 너무나도 강했다. 이로 인해 심지어 경기가 순환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투자자들은 '뉴노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새로운 투자 아이디어에 집중하게 된다. 대세 상승 심리의 형성이다.

현재 상황이 아주 흡사하다. 많은 투자자들이 스태그플레이션, 관세, 경기, 물가 등의 거시적 우려 요인을 떠올리고 있지만 이러한 거시적 우려에서 자유로운 기업들이 인공지능(AI) 관련 밸류체인에서 속출하고 있다. 경제는 강하다고 볼 수 없지만 AI는 호황이며, 4월 이후 투자자들은 매크로 이슈로 인한 조정이 발생할 때마다 ‘바이 더 딥(저점 매수)’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세 상승 심리가 형성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와의 협업을 위해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운영 중인 데이터센터 모습. 사진=마이크로소프트 제공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와의 협업을 위해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운영 중인 데이터센터 모습. 사진=마이크로소프트 제공
Fed 금리 인하는 유동성 버블의 신호탄
불가능한 상황에도 금리 인하 현실화

찰스 킨들버거는 금융 버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공리 1) 인플레이션은 통화량의 증가에 달려있다. 공리 2) 가격 버블은 신용(유동성) 증가에 달려 있다.

킨들버거와 민스키가 정리한 금융 버블의 발전 단계를 굉장히 축약하면 1) 기술혁신 등으로 인해 구조적이고 ‘낙관적 충격’이 발생한 이후, 2) 투자자들이 이것이 구조적 호황이라는 것을 인지한 이후, 3) 유동성과 신용 확대가 동반되면서 자산 가격이 버블로 비화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낙관적 충격’은 필수불가결한 선결 조건이다. 그리고 유동성·신용 확대는 ‘기폭제’ 역할을 담당한다.

통상 유동성·신용 확대를 주도하는 통화 정책은 보통 경기 역행 정책 성격을 띠기 때문에, 기술 혁신을 비롯한 낙관적 충격으로 인해 구조적인 강세장이 만들어진 상황이라면 금리 인하는 녹록지 않다. 그러나 만약 모종의 이유로 금리 인하가 실현된다면 이는 향후 1~2년은 이어질 버블로 비화할 수 있다. 1929년, 1999년에 형성됐었던 역사적인 주가 버블은 정확히 이러한 수순을 통해 전개됐다.

중요한 것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모종의 이유다. 1929년 버블에 선행한 1927년의 금리 인하는 미국 경기가 부진해서가 아니라 금본위제 복귀 후 어려움을 겪던 영국 경제를 구원하기 위해 이뤄졌다. 1999년 버블에 앞선 1998년의 금리 인하는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전염을 막기 위해 이뤄졌다. 두 번의 사례 모두 순환적 지표은 둔화했지만 실업률 상승 조짐은 없었고, 주도 산업(자동차·전기·라디오, 테크·인터넷)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주가는 이전 2~3년간 많이 오른 이후였다.

9월 이후 금리 인하 시작되나

7월 고용 보고서 이후 미국 경기에 대한 시각은 하향 조정되고 있다. 워낙 7월까지 고공행진하면서 기술적 피로감이 많이 누적됐고, 8~9월 계절성이 부정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주식 시장은 경기에 대해 당분간 부정적 시각을 견지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 결과를 확인한 이후 9월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고조된다. 그런데 이는 과거 버블에 선행했던 금리 인하들과 겹쳐진다. 1) 순환적 지표들은 약화하나 실업률 상승은 없다. 단기 모멘텀이 약해졌을 뿐 추세는 유지되고 있다. 2) 실적 시즌에서 AI를 비롯한 다수 산업이 강력한 실적을 보고했다. 일부 AI 밸류체인 기업들은 일생일대의 기회일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3) 올해 주식 시장은 신고가를 16회 경신할 만큼 강했다.

최근 글로벌 M2 증가율이 이미 순환적으로 반등 중인 국면에서,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 인하는 초과 유동성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구경제가 아닌 기술주가 중심이 된 주식 시장에 역실적 장세의 신호탄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중기 관점에서 향후 버블을 불러일으킬 조건들이 완성돼 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최근 미국 주식 시장은 기관투자가의 수급 영향력이 약해진 반면 개인투자자들의 매수 심리가 강화되고 있고, 심지어 옵션이나 신용 매수를 경유한 투기성도 표출되고 있다. 금리 인하는 역실적 장세가 아니라 유동성 버블의 신호가 될 공산이 크다. 이번 금리 인하 사이클이 종료된 이후 오버슈팅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투자전략부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