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후 미국 시민권을 얻은 A씨가 한국과 미국에 상가 건물을 남기고 사망했다. 그는 전 재산을 재혼한 아내에게 준다는 유언을 남겼지만, 한국에 사는 친딸은 상속권을 주장하고 있다. 국적과 재산 소재지가 엇갈리는 국제상속에서 어느 나라 법이 적용될까
[상속 비밀노트]
A씨는 2020년 2월경 사망하면서 한국과 미국 양쪽에 상가 건물을 상속재산으로 남겼다. 그는 사망 1년 전 본인 소유 전 재산을 재혼한 아내인 X씨에게 준다는 유언을 남겼다. 한국에 남겨진 A씨의 딸 C씨는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까.
피상속인의 본국법 준용 원칙
태생은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사람 중에는 한국에 부동산 등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미국 시민권자가 사망하면 미국법과 한국법 중 어느 나라 법에 따라 상속이 이뤄질까. 이것을 준거법(governing law)의 문제라고 한다.
미국의 상속법과 한국의 상속법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준거법이 어디냐의 문제는 상속인 간의 이해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유류분 제도가 존재하지 않지만 한국에는 유류분 제도가 있다. 따라서 사망한 미국 시민권자가 한국에 있는 부동산을 자녀 중 한 사람에게 모두 유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면, 유증받지 못한 상속인 입장에서는 한국법이 적용돼야만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있게 된다.
국제사법에 따르면 상속의 준거법은 사망 당시 피상속인의 본국법을 따르게 돼 있다(국제사법 제77조). 즉, 한국 국적자가 사망하면 한국법에 따라 상속이 이뤄지고, 미국 시민권자가 사망하면 미국법에 따라 상속이 이뤄진다. 다만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으면서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이중국적자가 된 경우에는 한국법이 본국법이 돼 한국법이 적용된다(국제사법 제16조). 따라서 만약 이 사건에서 A씨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으면서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C씨는 X씨를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A씨가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A씨의 본국법인 미국법이 준거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외국법이 준거법으로 지정된 경우 그 외국의 법에 의해 한국법이 적용돼야 할 때는 한국법에 따라야 한다(국제사법 제9조). 이것을 법률 용어로 ‘반정(反定·renvoi)’이라고 부른다. 미국 국제사법의 일반 원칙에 해당하는 ‘Restatement(second) of Conflict of Laws’(이하 리스테이트먼트)에 따르면, 부동산 상속에 관하여는 그 토지의 소재지법이 적용된다고 하고 있다(§236·§239).
부동산은 토지의 소재지법 적용
리스테이트먼트는 주법이 아니라 미국법률가협회가 발행하는 모델법전이라서 그 자체로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는 않지만, 매우 강한 권위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의 구속력을 가진다. 그래서 각 주에서도 리스테이트먼트에 기초해 주법을 만들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시민권자인 A씨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에 부동산을 남긴 채 사망한 경우 그 부동산에 관한 상속에 대해서는 부동산 소재지인 한국법이 적용된다. 따라서 C씨는 X씨를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C씨는 어느 나라 법원에다가 유류분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해야 할까. 당사자 또는 분쟁이 된 사안이 한국과 실질적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한국 법원이 국제재판 관할권을 가진다(국제사법 제2조). 이 사건의 당사자 C씨는 한국에 살고 있고, 분쟁 대상인 상가 건물도 한국에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이것은 준거법과 구별되는 국제재판관할의 문제다. 준거법은 앞에서 본 것처럼 어느 나라의 법을 적용할 것이냐의 문제이고, 국제재판관할은 어느 나라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냐의 문제다. 국제재판관할이 한국에 있어서 한국 법원에서 재판하면서도 준거법은 미국법이어서 미국법에 따라 판결하게 될 수도 있다.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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