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자 출생과 친양자 파양이 늘어나면서 상속 문제의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 뒤늦게 드러난 친자 관계나 파양 여부가 재산 분배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사례가 잇따른다. 가족의 형태 변화 속에서 상속 분쟁은 더 이상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실이 되었다
[상속 이슈]
심지어 혼인신고를 했을 때의 혜택이 적고 오히려 1세대 1주택에 부여되는 세금 혜택을 비교하게 되면서, 결혼식은 하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로까지 여겨지기도 한다. 따라서 단순히 결혼식만 올리거나 동거만 하면서 아기를 낳는 혼인 외 출생아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뒤늦게 나타나 ‘고인의 자녀’ 주장
이렇게 혼인 외 출생아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혼외자의 경우 상속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하여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배우 정우성이 모델 문가비가 출산한 아들의 친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혼외자의 경우 어떠한 법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세간의 관심이 컸는데 여러 법적 혜택과 관련해, 특히 상속의 경우 혼외자와 관련해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 민법은 모든 직계비속을 공동상속인으로 균분하므로(배우자는 가산분), 혼외자 차별은 허용되지 않는다. 1997년 헌법재판소가 “혼외자의 상속분을 혼인 중 자녀의 절반으로 제한한 민법 규정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이후, 모든 자녀는 동일한 상속분을 인정받는다.
다만 혼외자의 경우 부자(父子) 관계는 원칙적으로 ‘부의 인지’로만 성립하므로, 부가 사망한 경우에는 ‘그 사망을 안 날부터 2년 이내’ 검사(국가)를 상대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이다(대법원 2021년 선고). 참고로 당사자 쌍방이 모두 사망해 제3자가 친생자관계존부를 다투는 경우에는 ‘양 당사자 모두의 사망 사실을 안 날부터 1년’ 내 검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해야 한다(대법원 2004년 선고).
실무에서 다수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혼외자의 존재가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다. 예컨대 재산이 상당한 피상속인이 사망한 뒤, 장례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나도 고인의 자녀다”라고 주장하는 이가 등장하는 것이다. 우리 민법은 1014조에서 “상속 개시 후의 인지 또는 재판의 확정에 의해 공동상속인이 된 자가 상속재산의 분할을 청구할 경우에 다른 공동상속인이 이미 분할 기타 처분을 한 때에는 그 상속분에 상당한 가액의 지급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해, 법적 절차를 통해 친자임이 인정되면 이미 나눠 가진 상속재산도 다시 계산해야 한다.
10년 넘어도 상속가액 반환 청구 가능
만약 피상속인이 유언을 통해 상속재산 대부분을 배우자나 특정 자녀에게 몰아준 후라면, 혼외자는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통해 자신이 받았어야 할 최소한의 몫을 받을 수도 있다. 고액자산가, 기업 오너, 연예인·스포츠 스타 등을 둘러싼 사건에서 이러한 분쟁이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2024년 6월 27일 헌법재판소는 ‘늦게 인지된 자녀의 가액지급청구권에 10년 제척기간 일률 적용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앞에서 설명한 민법 제1014조는 침해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소멸했었는데, 고인 사망 후 기존 상속인들이 분할·처분을 마쳤고, 수십 년 뒤에야 인지 판결이 확정된 자녀를 ‘분할·처분일로부터 10년 경과’를 이유로 봉쇄하는 것은 재산권·재판청구권 침해라는 결정이다. 다만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의 제척기간은 여전히 적용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로써 상속재산분할·처분이 10년을 지난 후 뒤늦게 인지된 혼외자라 할지라도, ‘인지 확정 후 3년’ 안에 가액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기존 공동상속인에게는 불확실성이 생길 수 있으나, 헌재는 기여분 제도(민법 제1008조의2) 등으로 이해관계 조정 가능성을 근거로 들었다.
최근 방송인 김병만이 전처의 딸 A씨와 친양자 관계를 파양했다는 소식 또한 단순한 가족 관계 정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바로 상속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병만 씨는 전처와 이혼 후에도 재산 다툼, 폭행 고소 등 민·형사 소송을 이어왔고, 딸 A씨는 어머니 측에 서서 증언했다. 그러나 폭행, 상해, 강간치상 등 모든 혐의는 무혐의로 종결됐고, 이에 김병만 씨는 친양자인 딸이 자신에게 패륜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부당한 대우 등도 상속권 상실 사유
그런데 가정법원은 ‘패륜행위’는 판단하지 않고, 6년 동안 얼굴 한 번을 못본 부녀 관계이고, 이혼·형사 사건으로 친밀감이 깨졌으며, 부모 갈등 속 장기적인 심리 압박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세 번의 파양 소송을 종합적으로 보아 ‘자녀 복리’를 이유로 파양을 인용했다.
이와 관련해 민법 제1004조의2 상속권 상실이 신설돼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것도 향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기존에는 상속인이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살해, 유언 방해를 한 경우에만 상속 결격이 인정됐는데(민법 제1004조 참조), 앞으로는 ‘피상속인에게 중대한 범죄행위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만으로도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가족의 형태가 변하면서 뒤늦게 드러난 친자 관계가 상속의 판을 다시 짜기도 한다. 2024년 헌재 결정은 ‘늦게 밝혀진 진실’을 이유로 권리를 봉쇄해서는 안 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김병만 씨 사건을 보아도 가정법원이 자녀 복리를 어떠한 잣대로 해석하는지를 보여주며 친양자 관계와 파양 여부가 상속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보여준다.
곽준영 법무법인 웨이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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