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혼란에 빠진 건 전 세계 미술계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024년 말이었다. 한 미술계 지인이 “소더비 매출이 크게 줄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사실 당시만 해도 그 얘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소더비인데, 설마…’. 하지만 그 말을 실감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소더비의 2024년 매출은 약 60억 달러로, 전년 대비 20% 이상 감소했다. 특히 미술품에 집중된 파인 아트(Fine Art) 부문 매출은 무려 31% 급락했다. 미술 경매의 또 다른 축인 크리스티 역시 2024년 매출이 57억 달러로 전년 대비 30% 이상 줄었다. 소위 트로피 아트(Trophy Art, 소유 자체가 슈퍼카처럼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상징물이 되는 초고가 미술품) 거래가 크게 위축되었기 때문이다.<월스트리트 저널>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1000만 달러 이상 미술품의 경매 판매는 지난해 40% 이상 감소했고, 2025년에도 여전히 저조하다. 과거에는 저금리를 기반으로 예술품에 대한 투자나 대출이 활발했지만, 지금은 금리가 오르며 수익률 측면에서 매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2025년 미술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은 일명 ‘해방의 날’ 조치를 발표하며 전 세계 수입품 대부분에 기본 10%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수지 등에 따라 국가별로 추가 관세를 적용하는 체계를 도입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대혼란을 겪고 있다.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 광범위한 품목에서 직간접적 비용 상승과 물가 상승 우려가 보고되고 있다. 미술계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원래 미국은 미술, 사진, 포스터 같은 ‘정보적 성격의 물품’을 별도 분류해 세금을 매기지 않았다. 지난 4월 관세 폭탄 속에서도 미술품은 예외였다. 하지만 이번 국면에서의 문제는 ‘세관의 해석’에 따라 면세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전보다 불확실성이 훨씬 커졌다. 혼합 재료를 쓴 작품이나 기능적 성격이 강한 디자인 오브제가 (세관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순수 미술품으로 인정받지 못할 경우 관세를 두들겨 맞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중국 출신 세계적 설치미술가 아이웨이웨이(Ai Weiwei)의 대표작 중 하나인 <Through>는 명나라 시대 고가구를 해체해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순수 조각품으로 인정받지만, 한편으로 가구적 성격이 있는 오브제로 볼 여지도 있다. LED와 스크린이 들어가는 미디어 아트 작품은? 당연히 전자제품으로 분류될 수 있다. 세관이 ‘걸면 걸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딴지를 걸 경우, 통관 분류가 바뀌면서 관세와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요즘처럼 디자인과 가구, 예술의 경계에 걸친 작품이 많아진 경우 리스크가 더 커진다. <LA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갤러리와 운송사들은 작품 설명, 소재, 에디션, 거래 이력 같은 세부 서류를 전보다 훨씬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전해진다. 관세율 자체보다 작품이 어떤 코드로 분류되느냐, 서류를 제대로 꾸몄느냐가 더 중요해진 셈이다.
물류 환경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선적 후 서류 보완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서류가 완벽히 준비되지 않으면 출고 자체가 지연된다. 심사 강도가 높아지고 서류 분량이 늘어나면 전체 소요 시간과 비용이 동반 상승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게다가 포장용 목재, 프레임 자재, 운송 장비, 전시 운영 물품 등은 일반 소비재 코드에 해당하기에 트럼프 관세가 적용될 수 있다. 작품 하나가 움직일 때 따라붙는 모든 부속품의 통관 절차가 까다로워지고, 추가 비용이 쌓인다. 결국 트럼프의 관세 정책 발표 후 세계 미술계는 ‘느리고, 비싸고, 신중한 거래’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외신들의 평가다.
이해를 돕기 위해 미국의 한 컬렉터가 중국의 현대미술 작품을 1000만 달러에 구입한다고 가정해보자. 작품 자체에는 원칙적으로 관세가 붙지 않지만, 설치미술이나 가구형 작품처럼 분류가 모호하면 관세 부과 위험이 따른다. 포장재나 전시 장비에는 일반 소비재 관세가 붙고, 작품 가격이 높을수록 보험료와 창고 비용도 급증한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율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수시 조정하기에 계약 시점과 선적 시점의 세율이 달라질 위험도 있다. 트럼프가 갑자기 모든 미술품에 엄청난 관세를 물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결국 컬렉터는 많게는 작품 가격의 30~40%를 더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부유한 컬렉터라면, 요즘 같은 시기에 굳이 리스크를 안고 작품을 사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가 미술계에 미치는 영향
정리해보자. 2025년 미술 시장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를 겪고 있다. 첫째, 고가 미술품 판매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등 시장 상황 자체가 좋지 않다. 둘째,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작품에 사용된 재료와 통관 분류 리스크가 커지면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셋째, 디자인 오브제의 경우 순수 미술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을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면 관세 대상이 되는 상황이 빈번해졌다. 물류 과정에서는 선적 전 단계에서부터 완벽한 서류 준비가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기에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은 무조건 문서로 남겨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컬렉터와 갤러리 사이에 새로운 원칙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체 프로세스가 크게 느려지고 있다.
결국 트럼프의 관세는 ‘예술품 자체는 관세 면제’라는 원칙 아래서도 새로운 마찰을 만들어내고 있다. 거래 속도를 늦추고, 갤러리와 경매사의 운영비를 높인다. 이는 작품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테고 말이다.
트럼프의 임기는 2029년까지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를 견딜 수 있는 건 더 신중하고 숙련된 시스템을 갖춘 이들이 될 것이다. 국내에 그런 시스템을 갖춘 곳이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다.
* 한국 관세법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순수 미술품에는 관세를 매기지 않는다. 미국 작가의 작품을 한국으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관세는 없다는 뜻이다. 다만 부가가치세(VAT)가 있다. 한국은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 부가세를 부과하고 있다.
글이기원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정태검 |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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