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은 적립금 431조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원리금 보장형 편중 등으로 실질 수익률이 거의 제로 수준에 머물렀다. 국민연금은 위험자산에 분산 투자하고 정기적 리밸런싱을 활용하고 있다. 개인들도 ETF를 통한 개인 퇴직연금 운용으로 수익률 개선이 가능하다
[커버스토리] 퇴직연금 운용 팁
예를 들어 퇴직연금의 10년 평균 수익률은 DB형 2.22%, DC형 2.54%, IRP형 2.38%로, 모든 유형이 2% 초반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난다. 참고로 DB는 확정급여형으로, 기업이 알아서 근로자의 퇴직연금을 굴리는 시스템이다. 반면 DC는 확정기여형으로, 근로자가 알아서 자신의 퇴직연금을 굴리는 형태다.
‘저수익의 늪'에 빠진 퇴직연금
같은 기간(2015~2024년) 한국의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약 2%대 중반 수준임을 감안하면, 퇴직연금의 실질 수익률은 운용 방식에 상관없이 제로에 수렴하는 셈이다. 물론 투자 환경이 나빠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국민연금은 같은 기간 6% 후반의 성과를 기록했으니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낮다는 사실을 마냥 부인하기는 어렵다.
노후 대비를 위해 미리 퇴직금을 쌓아 두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는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도 상황이 비슷하다. 기존에는 연금저축과 합산해 연간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가 가능했으나, 2023년 이후 최대 900만 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게 돼 상품 가입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23년과 2024년 연속 30% 이상 증가해, 2024년 말 기준 적립금 규모는 98.7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IRP 계좌의 운용 방식은 DB형이나 DC형 퇴직연금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2024년 말 기준, IRP 적립금의 66.5%가 원리금 보장형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IRP가 주식 등 이른바 ‘위험자산’에 최대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는 제도적 한계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지만, 연말정산 혜택에만 중점을 두고 어떻게 자산을 운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게을리한 부분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개선할 방법이 없을까’라는 고민을 가진 근로자들에게 국민연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2025년 7월 말 국민연금의 자산 배분 현황을 보면, 주식 비중이 51.1%에 이르며, 대체자산 투자가 16.3%로, 이른바 ‘위험자산’에 총 67.4%를 투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퇴직연금의 대부분이 은행예금이나 국채 같은 안전자산에 치중돼 있는 반면, 국민연금은 위험자산 비중이 전체의 3분의 2를 넘어선 것이 수익률 격차를 가져온 가장 직접적인 원인임을 알 수 있다.
레고랜드 사태란 강원도가 보증한 프로젝트 채권의 상환을 거부하며 시장 신뢰가 붕괴된 사건으로, 시장금리가 한때 6%까지 상승하며 채권과 주식 가격이 동반 하락한 사건이다. 2022년 국민연금의 국내 채권 비중이 34.9%에 이르렀기에, 손실을 피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국민연금은 국내 채권의 비중을 줄이면서 주식과 대체자산의 비중을 확대하는 중이었는데, 국내 채권 시장에서 국민연금의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 나아가 2021년 초에 발생한 ‘국내 주식 중단 사태’도 국민연금의 손실을 확대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20%에 육박해, 리밸런싱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리밸런싱이란, 가격이 상승한 자산을 일부 매도해 가치가 폭락한 자산을 저가 매수하는 전략을 뜻한다. 2021년 초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을 대거 매도하고 해외 주식 및 대체자산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국민연금이 주식을 매도해서 시장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일부 투자자들의 반발을 정부가 수용하면서 리밸런싱이 중단되고 말았다. 결국 2022년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목표 비중보다 훨씬 많이 들고 있는 상태에서 주가 폭락 사태가 출현함으로써, 연 8%의 손실을 입은 셈이다. 따라서 적기에 국내 주식 리밸런싱만 했더라면, 연 8%의 손실은 겪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리밸런싱이 적절하게 이뤄진 경우가 훨씬 더 많다. 2023년과 2024년 국민연금은 각각 13.6%와 15%라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하면서 손실을 순식간에 만회했다. 국민연금이 강력한 수익 방어에 성공한 이유는 적절한 리밸런싱 때문이다. 리밸런싱이란, 가격이 상승한 자산을 일부 매도해 가치가 폭락한 자산을 저가 매수하는 전략을 뜻한다.
가장 대표적인 리밸런싱이 2024년 말부터 시작된 국민연금의 주식 매수다. 2024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11.5%까지 줄어들었다가 2025년 7월에는 15.3%까지 상승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2025년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이 14.9%인데, 11.5%까지 떨어지자 약 3.4%포인트에 이르는 리배런싱이 발생했던 셈이다.
적절한 자산 배분, 그리고 리밸런싱의 성과는 높은 수익으로 보상받았다. 2009년 국민연금과 원리금보장형 DB, 실적배당형 DC에 각각 100만 원 투자했다면, 2024년에 얼마로 불어났을까. 국민연금은 250만 원, 실적배당형 DC는 176만 원, 원리금보장형 DB는 151만 원으로 자산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참고로 1988년 설립 이후의 국민연금 연평균 운용 수익률은 6.82%에 이른다.
미국 주가지수에 대한 투자는 물론 골드나 실버 등 다양한 대체자산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운용사들의 경쟁 덕분에 수수료도 매우 저렴하다는 게 장점이다. 물론 테마형 ETF 혹은 레버리지 ETF 등 파생상품을 활용한 상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게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비용이 저렴한 인덱스펀드에 투자할 기회를 열어주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훨씬 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이나 한국, 그리고 중국의 대표적인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저렴한 ETF에 절반 정도의 자산을 배분하고, 나머지 절반을 골드와 국내외 채권에 분산해 투자하면 국민연금의 성과를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연 1회 정도만 원래 목표 비중으로 리밸런싱하기만 해도 국민연금 못지않게 평탄한 성과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전에는 DC형 퇴직연금의 ETF 투자가 어려웠지만, 점차 규제가 완화되면서 일부 파생형 ETF를 제외하고는 투자할 길이 열린 것도 좋은 소식이다.
지나친 안정 추구는 오히려 노후 빈곤이라는 더 큰 위험을 불러올 수 있음을 기억하고, ETF가 연 새로운 투자의 세계를 맞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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