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의 대가’ 세스 클라만이 이끄는 바우포스트 그룹이 기술주 비중을 줄이고 저평가 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알파벳을 대거 매도하는 대신 아마존과 핀테크 기업을 신규·확대 편입하며 안전마진 중심의 투자 원칙을 재확인했다.

[대가들의 포트폴리오]
미국 워싱턴주 페더럴 웨이에 있는 아마존 프레시 식료품 매장 외관. 사진=연합AFP
미국 워싱턴주 페더럴 웨이에 있는 아마존 프레시 식료품 매장 외관. 사진=연합AFP
세스 클라만은 ‘가치투자의 대가’로 알려진 월가의 큰손이다. 벤저민 그레이엄과 워런 버핏의 계보를 잇는 정통 가치투자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내재가치 대비 주가의 할인율을 뜻하는 ‘안전마진’을 철저히 확보하는 투자로 유명하다. 미국 보스턴에 본사를 둔 그의 사모투자조합 바우포스트 그룹은 약 246억8000만 달러의 자산을 운용 중이다. 1982년 설립 이후 26년 동안 연평균 20%, 2014년부터는 연평균 4%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랠리 비웃은 클라만의 역발상 베팅
바우포스트는 지난해 4분기에 이전과 달라진 주식 포트폴리오를 공개했다. 최근 미국 주식 시장에서 인공지능(AI) 랠리로 고평가 논란이 일고 있는 기술주를 대거 덜어냈다. 대신 시장에서 소외됐던 이커머스 거대 기업과 단기 악재로 주가가 폭락한 핀테크 주식을 쓸어 담았다.

AI 랠리 속 빅테크 비중 축소

지난 2026년 2월 13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조기 제출된 바우포스트 그룹의 2025년 4분기(12월 31일 기준) 13F(주식 보유 현황) 공시에 따르면, 바우포스트의 미국 상장주식 포트폴리오 총가치는 약 52억7859만 달러로 직전 분기 대비 약 10.2% 증가했다.

이번 분기 포트폴리오는 22개 종목으로 압축됐다. 상위 5개 종목 집중도가 43.73%, 상위 10개 종목 집중도가 72.43%를 차지하는 큰 집중 구조를 띠고 있다. 확신 수준에 비례해 자본을 배분하는 클라만의 원칙이 돋보인다. 산업별로는 기술·핀테크 섹터가 약 24.2%로 단숨에 최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헬스케어·보험(약 18.9%), 소비재(약 17.9%), 산업재·인프라(약 16.0%) 순으로 재편됐다.

이번 4분기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는 빅테크 기업 간 포트폴리오 로테이션이다. 바우포스트는 한때 포트폴리오 2~3위권(비중 약 11.3%)을 차지했던 구글 모회사 알파벳 주식을 77만957주 처분하며 보유 비중을 직전 분기 대비 41.49% 축소했다. 알파벳의 비중은 6.46%로 하락해 7위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알파벳 주가가 65% 급등하고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20배에서 30배로 치솟자, 밸류에이션이 기업의 내재가치를 초과해 안전마진이 소진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알파벳을 대거 매도해 확보한 자본은 아마존으로 향했다. 클라만은 4분기에 아마존 주식 212만1391주를 약 4억8966만 달러에 신규 매수하며 단숨에 포트폴리오 2위(비중 9.28%) 핵심 자산으로 올려놓았다. 바우포스트가 아마존을 다시 편입한 것은 2023년 3분기 전량 매각 이후 처음이다.

월마트 제친 아마존, 신규 편입

지난해 기술주 랠리 속에서도 아마존 주가는 단 5% 상승에 그치며 시장의 소외를 겪었다. 매수 시점 기준 아마존의 선행 PER은 21배로 5년 평균(35배) 대비 51%나 할인된 상태였다. 2027년 예상 잉여현금흐름 대비 배수는 9.8배로 상장 이래 최저 수준이었다.

반면 아마존의 펀더멘털은 정점을 찍었다. 2025년 연간 총매출 7169억 달러(성장률 12.4%)를 기록했다. 라이벌 월마트(7132억 달러·성장률 4.7%)를 24년 만에 제치고 미국 최대 매출 기업으로 등극했다. 아마존 전체 매출의 18%에 불과하지만 전체 영업이익의 57%를 창출하는 클라우드 부문(AWS)은 글로벌 인프라 지출의 28%를 점유하며 전년 대비 24% 성장했다.

바우포스트는 결제 인프라 제공 업체 파이서브 지분을 직전 분기 대비 145.81% 확대해 총 220만 주(약 1억4777만 달러·비중 2.80%)를 확보하기도 했다. 파이서브는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에서 2026 회계연도 가이던스를 하향 조정하고 핵심 플랫폼 클로버의 유기적 성장률 둔화를 예고했었다. 주가는 고점 대비 70~75% 폭락하는 극심한 투매를 겪었다. 그러나 클라만은 파이서브의 대체 불가능한 독점적 지위를 높게 평가했다는 분석이다. 미국 전체 가구의 100%, 전 세계 1만 개 이상의 금융기관과 600만 명의 가맹점에 미션 크리티컬 시스템을 제공하는 지배력에 주목한 것이다.

인플레이션 고착화와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비한 헬스케어 및 보험 클러스터 구축도 이번 분기의 주요 전략적 변화다. 영국의 다국적 리스크 관리 및 보험 중개 기업 윌리스 타워스 왓슨 지분을 24.66% 늘려 약 4억4611만 달러(비중 8.45%) 규모로 3위 종목으로 올렸다. 미국 최대 건강보험사 엘레번스 헬스의 비중은 8.43%로 4위였다. 정부 후원 의료보험 프로그램에 특화된 몰리나 헬스케어 62만5000주(약 1억846만 달러·비중 2.05%)를 신규 매수했다.
지난 2015년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앤컴퍼니 제33회 연례 미디어·테크놀로지 콘퍼런스에 참여한 세스 클라만 바우포스트 그룹 창업자. 사진=연합EPA
지난 2015년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앤컴퍼니 제33회 연례 미디어·테크놀로지 콘퍼런스에 참여한 세스 클라만 바우포스트 그룹 창업자. 사진=연합EPA

부동의 1위는 외식 프랜차이즈

부동의 포트폴리오 1위는 버거킹, 팀호튼스 등을 운영하는 글로벌 외식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브랜즈 인터내셔널(RBI)’이다. 808만 주(비중 10.44%)를 차지했다. 반면 저소득층의 구매력 둔화로 타격을 받고 있는 할인 소매체인 달러 제너럴(DG) 지분은 22.65% 선제적으로 축소했다.

인프라 및 산업재 섹터에 대해서는 냉혹했다.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인프라 지출 테마를 업고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한 아일랜드 기반 건축자재 기업 CRH의 지분을 68.29%(약 231만 주) 대량 매각했다. 금액으로 약 2억8800만 달러 규모다. 주가가 본질 가치에 도달하자 망설임 없이 기계적인 차익 실현을 단행했다는 분석이다. 대신 과점 구조를 갖춘 미국 철도 인프라 기업 유니온 퍼시픽 지분을 8.76% 확대해 5위(7.13%)를 유지했다. 지역 독점력이 강한 건자재 기업 이글 머티리얼스 비중은 26.14% 늘렸다.

클라만 특유의 부실채권 및 ‘특수 상황’ 투자 기법도 재현됐다. 2020년 챕터 11 파산보호절차에 들어간 멕시코 국적 항공사 그루포 아에로멕시코(AERO) 주식 485만5180주(약 1억662만 달러·비중 2.02%)를 신규 편입했다. 북미와 중남미 간의 리쇼어링 인프라 수요를 겨냥한 베팅한 것으로 보인다. 다단계 영양제 기업 허벌라이프는 전환사채를 전량 청산하는 대신 현물 주식을 19.33% 늘려 턴어라운드를 정조준했다. 통신사 케이블원 전환사채와 브라질 핀테크 파그세구로 250만 주 전량은 매도했다.
AI 랠리 비웃은 클라만의 역발상 베팅
AI 랠리 비웃은 클라만의 역발상 베팅
AI 랠리 비웃은 클라만의 역발상 베팅
김주완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