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150조 원 국민성장펀드를 앞세워 부동산에서 자본시장으로 돈의 물길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역대급 규모와 첨단 산업 집중 투자가 강점으로 꼽히지만, 녹색성장, 통일대박, 뉴딜로 이어진 정책성 펀드의 실패 공식을 깰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커버스토리]
한 관계자가 서울 여의도 국민성장펀드 사무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 관계자가 서울 여의도 국민성장펀드 사무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핵심 정책으로 내걸었다. 부동산 시장과 가계대출에 고여 있던 돈의 흐름을 기업, 첨단 산업, 자본시장으로 돌리겠다는 메시지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도 이런 정책 방향에 힘을 실었다.

돈이 비생산적 분야에 머물지 않고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의 생산적 금융과 비슷한 결의 정책이 과거 정권에서도 반복됐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기술금융’, 문재인 정부의 ‘생산적 금융’도 벤처, 4차 산업 등 기업 지원을 주요 과제로 설정한 바 있다.

녹색성장·통일대박·뉴딜…정권마다 실패 반복

특히 시장에서는 정권마다 반복됐던 ‘정책성 펀드’의 잔혹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정부가 생산적 금융의 일환으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대표 정책 중 하나가 정책성 펀드인 ‘국민성장펀드’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국민성장펀드는 향후 5년간 국내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 백신, 로봇, 수소, 2차전지, 디스플레이, 미래차, 방산 등 첨단전략산업에 150조 원의 자금을 공급한다는 목표로 만들어졌다.
역대급 150조 규모…국민성장펀드의 성공 조건
국민성장펀드는 공공부문 75조 원과 민간부문 75조 원으로 구성되며, 올해부터 매년 30조 원의 자금을 5년간 공급한다는 목표다. 세부적인 자금 구성은 직접투자 3조 원, 간접투자(펀드) 7조 원, 인프라 투·융자 10조 원, 초저리대출 10조 원 등으로 구분되는데, 그중에서도 간접투자(펀드) 자금 중 6000억 원은 일반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국민참여형’으로 조성된다. 원금 손실이 발생하면 정부가 1200억 원(20%)을 보전하는 형태로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했다.

“국민성장펀드에 우리 경제와 금융의 명운이 걸렸다”는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말은 국민성장펀드의 성공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권 부위원장은 국민성장펀드의 출범과 관련해 “정부와 금융, 산업계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향후 20년을 이끌어 갈 신성장 전략과 메가프로젝트의 마련을 통해 경제가 재도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금융권의 풍부한 유동성이 부동산·담보대출에 치중되지 않고 인공지능(AI) 대전환을 비롯한 첨단 산업 및 생산적 영역에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 정책성 펀드의 실패를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가장 큰 과제로 꼽힌다. 일단 가장 비슷한 사례로 문재인 정부가 2021년 출시한 ‘뉴딜펀드’가 거론된다. 뉴딜펀드는 5년간 총 20조 원을 뉴딜 관련 기업(창업·벤처기업, 대·중소기업)과 뉴딜 프로젝트(뉴딜 관련 민자사업·뉴딜 관련 프로젝트) 등 첨단 분야에 투자한다는 목표로 만들어졌다. 세제 혜택이 적용되는 국민참여형 펀드를 조성하고, 정부의 재정출자로 투자금 손실을 흡수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국민성장펀드와 비슷하다. 뉴딜펀드는 4년 만기, 국민성장펀드는 5년 만기로 일정 기간 목돈이 묶인다는 것도 동일하다.
지난 2021년 3월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서 촬영한 뉴딜펀드 관련 간이투자설명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1년 3월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서 촬영한 뉴딜펀드 관련 간이투자설명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뉴딜펀드 수익률, 예금 금리에도 못 미쳐

뉴딜펀드의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이 펀드의 일반 국민 평균 수익률은 연간 2.37%로,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에도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간 수익률에서 손실을 낸 펀드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펀드’도 장기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창조금융’과 ‘통일대박’을 슬로건으로 삼은 이 펀드는 출범 초기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2016년 개성공단 폐쇄 등 남북관계 경색으로 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가며 존재감을 잃었다. 결국 출시 2년 만에 대부분의 펀드가 설정액 50억 원 미만의 자투리 펀드로 전락했다. 지금은 모든 펀드가 청산한 상태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펀드’는 녹색성장을 내걸었던 당시 정부 주도 아래 배당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주는 형태로 민간부문 펀드를 조성했다. 2009년 출시한 녹색성장펀드 역시 초기에는 높은 수익률로 화려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으나, 임기 말인 2011년에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한때 50개 이상 운용되던 이 펀드의 수는 현재 10개 아래로 줄었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과거 정책성 펀드의 론칭 초기 성과를 보면 단기적으로 투자심리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녹색성장펀드의 경우 2009년 4월 미래에셋 녹색성장 펀드가 론칭됐고, 이후 3개월가량 코스피 수익률을 초과했다”면서도 “이후 성과는 코스피와 유사한 흐름을 보이다가 점차 수익률이 둔화됐고, 대부분의 펀드가 청산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일 펀드도 2015년까지 견조한 흐름을 보이다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청산 단계로 이어졌다”며 “코스닥 벤처펀드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펀드의 경우 견조한 성과를 장기간 이어갔지만, 뉴딜펀드는 수익률이 부진하자 인기가 빠르게 식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25년 12월 국민성장펀드 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IR센터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출범식에서 발언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
지난 2025년 12월 국민성장펀드 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IR센터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출범식에서 발언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
수익률 따라 돈 움직여…제도 지원은 일시적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성 펀드의 연속성이 끊길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 한계도 있다. 그동안의 정책성 펀드는 산업 생태계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생산적 금융으로 돈의 물길을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지만, 자연적으로 유도하는 게 좋지 인위적으로 조성하려다 보면 지속하기가 어렵다”면서 “특히 돈은 수익률에 따라 움직인다. 정부가 아무리 제도적으로 지원한다고 해도 일시적일 뿐, 장기적으로는 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돈이 흐르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국민성장펀드의 전례 없는 규모는 이전 정책성 펀드들과의 확실한 차별점이다. 산업과 정책 기조의 전환이라는 큰 흐름 아래 굵직한 첨단 섹터에 집중 투자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뉴딜펀드 등 과거 정책성 펀드는 규모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면서 “지금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양자컴퓨터 등 첨단전략사업이라고 불리는 특정 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집중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미래 기술 패권을 주도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도 과거 정책성 펀드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뉴딜펀드는 자펀드 규모가 모두 200억 원으로 동일해 투자 전략이 유사한 면이 있었다. 당시 투자 요건을 보면, 60%를 뉴딜 관련 산업으로 제한해 신규 산업 위주로 자금이 공급됐다. 그 영향으로 비상장 기업으로의 쏠림 현상이 생겼다. 또 투자 회수 기간이 4년 만기로 비교적 짧았는데,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엑시트(회수)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수익률이 낮아진 측면도 존재한다.

반면 국민성장펀드는 투자 구조를 다변화한 점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나혜영 금융위 국민지역참여지원과장은 “이번에는 대형·중형·소형 자펀드로 구분하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전문성 있게 설계할 수 있도록 했다”며 “만기를 4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자율 투자 비중도 40%까지 허용해 안정적으로 수익률을 가져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결국 중요한 것은 산업이 성장해서 글로벌에서 경쟁력을 갖고, 수출과 실적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국민성장펀드의 론칭은 단기 투자심리에 긍정적이나, 장기적인 주가는 해당 업종과 기업이 정부 지원을 통해 성장해 수출과 실적이 우상향 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역대급 150조 규모…국민성장펀드의 성공 조건
‘무늬만 생산적 금융’ 우려…숫자 채우기 반복되나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에 발맞춰 국내 주요 은행들도 생산적 금융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담보 위주의 보수적인 대출 관행을 타파하고,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기술력을 평가해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부동산 등 유형 자산 담보에 기대기보다 기업의 기술과 미래 가치를 신용평가 요소로 반영하는 것이 핵심으로 꼽힌다.

일각에선 과거 정부에서 비슷한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제기됐던 각종 우려가 이번에도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생산적 금융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이 없어 ‘무늬만 생산적 금융’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는 정부의 생산적 금융 행보에 동참하기 위해 80조5000억 원을 공급할 방침인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각 금융기관별로 생산적 금융을 구분하는 업종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달라, 자칫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방향으로 사업이 지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 때도 기술금융 실적을 올리기 위해 기존 대출을 기술금융으로 구분하는 식의 ‘무늬만 기술금융’이 문제로 떠오른 바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이름만 바뀔 뿐, 정책당국의 압박에 못 이긴 은행들이 ‘실적 부풀리기’에 몰두하는 현상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체계화된 신용평가 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생산적 금융을 밀어붙일수록 부작용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혁신 기업 등을 평가할 내부 역량 없이 대규모 자금을 집행하려 한다면, 결국 ‘아는 기업’에 자금이 집중되거나 담보 위주의 심사가 반복될 것”이라며 “이 역량을 단기간에 은행 시스템 안에 구축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생산적 금융에 맞춰 기업대출을 늘리면 위험가중자산(RWA) 관리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거듭되고 있다.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지주들은 4월 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한 연차보고서에 생산적 금융, 포용금융 확대가 건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공시에는 반영하지 않은 내용이 뒤늦게 알려진 것인데, 논란이 커지자 이들 금융지주사는 입장문을 내고 “특정 투자자에게 추가 정보를 제공하거나 국내 투자자를 차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미국 증권법상 요구되는 ‘완전한 정보공개(full disclosure)’와 소송 리스크 대응 체계에 따른 공시 방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김 교수는 “생산적 금융 확대 이전부터 이미 은행 건전성이 악화되는 중”이라며 “결국 생산적 금융의 성패는 ‘얼마나 많이 공급했느냐’가 아니라 ‘부실 없이 얼마나 지속 가능하게 공급했느냐’로 평가돼야 한다. 정책 목표와 건전성 관리 사이의 명확한 선을 정책당국이 먼저 그어주지 않으면 은행은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