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가 2028년을 놓고 갑론을박 하는 사이, 30년 넘게 반도체 기술 현장을 지켜 온 학계 원로의 답은 달랐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는 “메모리 시장이 언제 피크를 칠지 알려면 최소한 2029년은 지나봐야 한다”며 그때까지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커버스토리] 반도체, 정점을 묻다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는 적어도 2029년까지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공급 부족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의 자료를 보면 2045년까지도 메모리 웨이퍼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당분간 다운턴(하강 국면)이 우려되지는 않는다는 분석이다.
박 교수는 “거대언어모델(LLM)에서 인공지능(AI) 에이전트, 피지컬 AI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반도체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다만 피지컬 AI 이후에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로 포화 상태가 되면 다운턴이 올 수 있다. 과거 사이클에서 많이 경험해봤던 일”이라고 내다봤다.
- 최근 반도체 사이클을 어떻게 보십니까.
“AI 확산에 따라 고대역폭메모리(HBM), 서버 D램, 데이터센터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2026년 대비 메모리 웨이퍼 수요는 2030년 1.8배, 2035년 2.3배, 2040년 2.9배, 2045년 3.7배로 증가할 전망입니다. 시장이 그만큼 성장하기 때문에 다운턴(하강 국면)을 볼 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LLM에 의한 AI 데이터센터, AI 에이전트에 의한 소규모 데이터센터, 피지컬 AI에 의한 대규모·중소 규모 데이터센터를 시장에서 계속해서 필요로 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 빅테크들이 AI에 뛰어들면서 더 많은 데이터센터가 필요해졌고, 지난해 6월부터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새 공장을 짓고 반도체 수율을안정화시키는 데는 적어도 3년 이상이 걸리거든요. 공급은 부족해지고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이크론의 경우 장기공급계약(LTA)을 통해 2029년까지의 주문을 다 받았다고 합니다. 증산을 계획하고 있긴 하지만 그 물량까지도 장기 계약이 다 완료된 겁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입니다. 2029년까지는 계속해서 메모리 공급 부족 상태를 유지할 겁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언제 피크를 칠 것인지 알 수 있으려면 최소한 2029년은 지나봐야 하는 거죠. 그때까지는 공급자가 손해 보지 않는 조건으로 가격 계약을 맺을 수가 있다는 거죠. 일각에서는 반도체 업체의 이익률 증가가 앞으로 좀 둔화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저는 왜 반도체 가격이 계속 올라가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만약 신규 공장을 짓지 않는다면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이익률도 늘어날 수 있겠죠. 그런데 총매출액은 어떻게 되겠어요. 가격을 올린 만큼만 늘어나는 거죠. 생산 확장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반도체업의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 2029년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길게는 2045년까지도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데이터를 제시하셨는데요.
“그 이후에는 소위 말하는 피지컬 AI가 시작될 겁니다. 피지컬 AI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분야는 어디일까요. 로봇입니다. 꼭 사람처럼 서 있는 형태가 아니라, 로봇에 손만 달려 있는 모습이라 하더라도 제조 산업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제조업에 로봇이 들어가려면 자체적으로 AI 가속기를 갖고 있어야 하고, 그 주변에 AI 데이터센터도 있어야겠죠. 센서를 통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해석하고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니까요. 정부도 ‘3대 메가프로젝트’ 중 하나로 피지컬 AI를 내세우고 글로벌 최고 수준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어보자고 하고 있죠. 왜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업이 가능한 걸까요. 대한민국은 반도체, 철강, 조선 등 제조 산업을 하는 나라입니다. 가장 좋은 테스트베드죠. 피지컬 AI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해외에 수출을 하는 미래까지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 과거의 반도체 사이클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스마트폰 산업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애플이 스마트폰을 내놓은 이후 기기 보급이 크게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포화되면서 신규 출하량이 과거에 비해 줄었습니다. 그럼 스마트폰 제조사는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할까요. 고가 제품군을 팔거나, 아예 저가 제품군을 만드는 정책으로 차별화를 합니다. 그런데 제품 가격은 점점 올라가는데 신규 스마트폰의 숫자는 안 늘어납니다. 제조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사의 이익을 위해 메모리 반도체 가격을 깎으려 하겠죠. 신규 사업이 성장을 하지 못하면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시장은 결국 수요자 우위의 입장에서 움직이게 됩니다. 반도체 라인은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면 오염이 되기 때문에 수율이 떨어집니다. 반드시 24시간 가동을 해야 해요. 대신 웨이퍼 투입 수를 최소로 줄이죠. 너무 많이 생산하면 가격이 떨어지니까요. 그래서 코로나19 이후 심각한 다운턴이 왔을 때는 웨이퍼 투입 수를 30% 이상 줄였습니다. 그럼에도 스마트폰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반도체 공급은 과잉이 됐고, 그게 다운턴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AI 시대가 오면서 다시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주도했던 반도체 사이클과는 다릅니다. LLM에서 AI 에이전트, 피지컬 AI로 넘어갈수록 반도체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상으로는 2040년까지 쭉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후에 업황이 다시 내려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인공일반지능(AGI) 시대가 오면 AI 스스로가 최적화하려고 할 테니 특이점이 올 수도 있겠죠. 아마 피지컬 AI 이후에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로 포화 상태가 되면 다운턴이 올 수 있습니다. 과거 사이클에서 많이 경험해봤던 일입니다. 1980년도에 존재했던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회사 14개 중에서 D램 업체는 현재 3개밖에 안 남았잖아요. 소위 말하는 치킨 게임을 했던 거죠.”
- 공급 차원에서의 또 다른 변수는 없을까요.
“지금은 반도체 칩을 만드는 데 기술의 난도가 너무 높아져서,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공정의 난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탓에 칩을 생산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겁니다. HBM 같은 경우는 5개월 이상 걸리잖아요. 시장이 원하는 반도체 칩의 수는 점점 증가하는데, 기술의 난도도 증가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 보니 원하는 만큼 빨리 공장을 지어 생산을 안정화시키기 어려워집니다. 물리적으로 생산을 늘리기 어렵다 보니 어떻게 되겠어요. 공급이 부족해집니다. 반도체 전문가가 아닌 분들은 올해 파는 D램이나 내년에 파는 D램이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같은 공장을 짓는다고 해도 생산되는 칩 수는 (기술의 난도 증가로)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요인이죠.”
“빅테크들도 이윤이 창출돼야 추가적인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모든 이윤을 다 끌어모아 AI 데이터센터를 확보하고 있죠. 얼마 전 메타의 경우 ‘이제 우리도 돈을 벌어야 되니, AI 데이터센터의 일부를 임대하는 클라우딩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나섰는데요. 사실 LLM 분야에서 메타는 오픈AI, 구글보다 훨씬 뒤처져 있잖아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죠. 저는 오히려 이 결정이 AI 시장을 더 크게 만든다고 봅니다. 작은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메타 같은 큰 기업의 좋은 데이터센터를 이용하면서 AI 추론 사업은 더 커지고, 그로 인해 데이터센터가 추가로 또 필요해집니다. 선순환 구조를 가지는 겁니다. 빅테크들이 이윤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을수록 AI 산업이 더 크게 육성되는 구조인 거죠.”
- 중국 반도체 업체의 추격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각 분야별로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의 특성이 다릅니다. AI는 속도와 저전력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중국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와 기술 격차가 2년 반 이상 나고 있습니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 양쯔메모리(YMTC)가 잘 만든다고 해도 그 제품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있고, 아닌 분야가 있습니다. 중국은 메모리 속도가 좀 느리더라도 소프트웨어로 보상을 하는 기술이 앞서다 보니 그런 면에서는 빠르게 추격을 하고 있죠. 어쨌든 반도체는 멈춰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성장하는 물체입니다. 우리나라 업체 입장에서는 기술 격차를 계속해서 벌려 나가도록 개발이 지속돼야겠죠. 다음 기술을 빨리 개발해 생산하고, 이익을 만들어 회수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다음 기술을 또다시 개발할 수 있고, 지금과 같은 격차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습니다.”
- 중국 업체의 기술력이 비약적으로 개선돼 AI 반도체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소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 건가요.
“그런 일은 생기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의 D램은 2차원적으로 만들고 있는데요. 이제는 이 기술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2029년 정도가 되면 D램을 3차원적으로 만들어야 해요. 이를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엄청난 인력을 투입해 연구하고 있거든요. 그 기술의 격차를 따라잡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3차원 D램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개발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중국이 금방 추격해 올 겁니다. 그런데 반도체 시장이 더 커져 가는 상황에서 이 시장을 우리나라가 모두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AI 가속기, 데이터센터에는 우리나라 업체 제품이 주로 들어가겠지만, 생산력에 한계가 있는 와중에 굳이 가전제품에 들어갈 메모리까지 팔아야 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지능형 냉장고(스마트 냉장고)에도 메모리가 들어가는데요. 그 점유율을 중국이 가져가는 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HBM이 훨씬 더 가격이 비싸고 이익이 크죠. 우리는 공장을 지을 수 있는 만큼 최대로 지어서 더 난도 높은 기술로 제품을 생산하고, 매출액을 최대로 만들면 되는 거예요. 그게 반도체업의 특성입니다.”
- 앞으로 반도체 업체의 성장세나 실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첫 번째로는 앞서 말씀드린 기술의 격차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두 번째는 인프라 구축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인프라 구축을 미리 해줘야 합니다. 삼성전자가 참여하는 용인 국가산단은 기존보다 팹 가동 시점을 7년 단축하고,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용인 일반산단은 12년 앞당기겠다고 하잖아요. 광주 반도체 팹 조성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2040년 이후에는 지금보다 메모리 수요가 3배 이상 늘어날텐데,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인프라를 구축해놔야 한다는 겁니다. 용인에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을 보면, 공사가 문제가 아니라 전력, 용수 등을 끌어오기 위한 허가를 받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용인 팹 구축이 끝나고 나서 광주 팹을 시작하려고 하면 너무 늦습니다. 일단 전력·용수·토지와 같은 인프라만 미리 구축돼 있으면 기업이 공사하는 시점은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절할 수 있죠. 다시 말하면 기업은 최고의 기술력을 유지해야 하고, 이를 통해 큰 이익을 내서 공장을 계속 지어야 하는데 여기엔 정부의 역할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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