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학년 겨울 명태잡이 원양어선에서 40년 계획을 세웠던 청년은 자기자본 13조 원 증권사를 이끄는 금융그룹 회장이 됐다. 은행 없이 은행계 금융그룹을 위협해 온 김남구 회장의 다음 승부수는 ‘보험’이다.

[대한민국 금융그룹 대해부] 한국투자금융그룹
지난 2021년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진행한 비대면 채용설명회 모습. 사진=한국투자금융지주
지난 2021년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진행한 비대면 채용설명회 모습. 사진=한국투자금융지주
김남구 회장의 35년 뚝심…아시아 대표 IB 정조준
한국투자금융그룹(한투금융그룹)은 국내에서 유일한 ‘투자은행 중심’의 금융지주로 꼽힌다. 특히 ‘은행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증권사’로 꼽히는 한국투자증권(한투증권)이 핵심 계열사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한투금융그룹의 운용자산(AUM)은 607조4000억 원에 달한다.

은행계 금융그룹을 위협하는 한투금융그룹의 이 같은 발돋움에는 오너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한투지주) 회장의 뚝심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경영으로 한투지주를 국내 굴지의 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킨 김 회장은 금융계에서 ‘전문경영인보다 더 전문경영인 같은 오너 최고경영자(CEO)’로 정평이 나 있다.

명태잡이 배에서 배운 경영

김 회장은 동원그룹과 한투지주의 초석을 만든 김재철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밑바닥 현장에서부터 실무를 익히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대학 4학년이던 1986년 겨울 미국 알래스카행 명태잡이 원양어선에서 선원으로 일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이때 험한 바다에서 하루 18시간 일하고 6시간 자면서 “앞으로 40년간 어떻게 살 것인가 계획을 세웠고 그 이후 가능한 한 그 플랜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동원산업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2년간의 실무 경험을 거친 후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귀국한 김 회장의 앞에는 두 가지 갈림길이 있었다. 안정적인 선택지였던 동원산업으로 들어가 가업을 승계하거나, 업계 6~7위권이었던 동원증권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김 회장은 당시 모험에 가까웠던 동원증권 명동지점 대리로 1991년 입사했다. 이미 글로벌 수준에 올라 있던 원양 회사를 뒤로한 채,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이 더 큰 증권업에 도전한 것이다.

김 회장은 이후 채권, 정보기술(IT), 기획, 뉴욕사무소 등 증권업의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1998년 자산운용본부 상무에 올랐고 이어 전무, 부사장, 전략기획실장을 거쳐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 2004년 동원증권 대표(겸임)를 차례로 맡았다. 2005년 동원증권보다 몸집이 큰 한투증권(구 한국투자신탁) 인수를 성공시켜 업계를 놀라게 한 그는 2011년 부회장으로 승진했으며, 그 후 9년 만인 2020년 한투지주 회장에 올랐다.
김남구 회장의 35년 뚝심…아시아 대표 IB 정조준
한투금융그룹은 한국 금융의 역사를 새로 써 가고 있다. 지난해 핵심 자회사인 한투증권이 국내 증권 업계 최초로 연간 영업이익과 순이익 2조 원 시대를 열었다. 올해 들어서도 상반기에 이미 2025년 연간 실적에 육박하는 성과를 올리며 순항하고 있다.

한투증권은 그룹 내 수익 기여도가 가장 높은 자회사다. 한투증권의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9.1% 늘어난 2조1701억 원, 당기순이익은 68.9% 증가한 1조7311억 원으로 그룹 전체 이익의 90% 이상이 증권에서 발생하고 있다. 같은 기간 한국금융지주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19.7% 증가한 2조4505억 원, 당기순이익은 91.6% 늘어난 1조915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 2024년 고려대 채용설명회 연단에 선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사진=한국투자증권
지난 2024년 고려대 채용설명회 연단에 선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사진=한국투자증권
규모 아닌 구조…수익 설계를 바꿨다

한투증권은 2024년부터 국내 증권 업계 최고 실적을 연이어 갈아치우며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일회성 실적 반등이 아니라, 수익 구조 자체가 업그레이드된 결과라는 평가다. 한투증권의 약진은 ‘규모 확장’이 아니라 ‘수익 구조의 재설계’에서 비롯됐다. 특정 업황이나 단일 사업에 기대지 않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업계 내 격차를 벌리는 동시에 이익의 레벨 자체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성장 모멘텀이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한투증권은 JP모건, 골드만삭스, 칼라일, 만(MAN)그룹 등 글로벌 금융사들과 협력 관계를 강화하며 해외 시장에서 유통되는 양질의 자산을 소싱해 국내 투자자에게 공급하는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단기 실적을 넘어 ‘글로벌 스탠더드’를 향한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한투증권은 이미 지난 2017년 자기자본 4조 원을 돌파하며 초대형 투자은행으로 도약했다. 2023년에는 자기자본 8조 원을 넘어 종합투자계좌(IMA) 신청 자격을 확보했다. 2025년 11월 금융위원회는 한투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을 IMA 1호 사업자로 지정했고, 두 회사는 같은 해 12월 첫 IMA 상품을 내놨다. 현재 한투증권은 22조4700억 원 규모의 발행어음과 2조9400억 원의 IMA 자금을 운용 중이다. 또 올해 상반기 기준 자기자본 13조 원 규모로 성장해 글로벌 투자은행들과 본격적인 경쟁이 가능한 체력을 갖추게 됐다.
김남구 회장의 35년 뚝심…아시아 대표 IB 정조준
흔들림 없는 이정표…‘아시아 대표 금융그룹’

김 회장은 그동안 ‘아시아를 대표하는 투자은행’을 목표로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자산관리(WM) 등 투자은행(IB) 부문 경쟁력에 집중해 왔다. 해외 사업 확장은 물론, 내부 인프라 고도화에도 공을 들이며 선진 금융기관에 버금가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히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업 다각화에 따라 발생 가능한 복합적 리스크에서 고객과 회사를 보호하는 체계적인 관리 역량을 강화했다.

신사업에 적극 진출하며 사업 영역 확장에도 꾸준히 힘을 실었다. 그 결과 자산운용사, 저축은행, 벤처캐피털 등 전 사업 부문에서 성장을 이어가며 업계를 선도하는 금융그룹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2014년 한국투자캐피탈 설립과 2016년 카카오뱅크 설립에 대주주로 참여해 카카오뱅크의 성공적인 출범과 시장 안착을 이끈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2017년 사모펀드 운용사 이큐파트너스를 계열사로 편입하고 2019년 한국투자부동산신탁을 설립하는 등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한투지주 관계자는 “현재 한투금융그룹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투자은행 중심’의 금융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그룹으로 전방위 금융 영역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며 “탄탄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그룹의 핵심 경쟁력을 끊임없이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투금융그룹을 선두 종합금융그룹으로 만들기 위한 김 회장의 다음 청사진은 무엇일까. 김 회장은 지난 3월 열린 한투지주 정기 주주총회에서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도 아시아 대표 금융그룹이라는 명확한 이정표를 향해 흔들림없이 전진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기업 성장의 전 과정을 아우르며 각 단계별로 최적화된 선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밸류체인을 기반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선점하고, 자본시장의 신뢰를 공고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투금융그룹은 계열사 간 시너지를 활용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특히 벤처기업 생애주기를 아우르는 ‘토털 밸류체인’ 모델을 구축했다. 기업의 창업 초기부터 성장, IPO, 자산관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시스템이다. 기업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맞춤형 자본 공급과 인프라 지원을 통해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김남구 회장의 35년 뚝심…아시아 대표 IB 정조준
씨앗부터 상장까지…한투식 밸류체인

초기 기업을 위한 자본 공급은 그룹의 전문 액셀러레이터인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한투AC)가 주도하고 있다. 한투AC는 2022년 출범 이후 지난해 말까지 총 120개 기업에 408억 원을 투자했다. 스타트업이 본격적인 날개를 펴기 전 ‘최초 기관투자자’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초기 보육을 마친 기업들이 본격적인 성장에 들어서면 벤처캐피털(VC)인 한국투자파트너스(한투파)가 바통을 받는다. 한투파는 성장 가능성이 검증된 포트폴리오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지속 투입하는 ‘리업(Re-Up) 시리즈’ 펀드 등을 활용해 기업의 지분 희석 부담을 줄이면서도 확실한 스케일업을 지원한다.

또 한투증권은 상장 단계에 이른 기업을 위한 종합 솔루션을 제공한다. 자기자본(PI) 투자 역량을 바탕으로 상장 전 지분투자(pre-IPO)를 집행해 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고, VC 대상 투자 설명회를 개최해 후속 투자 유치를 직접 이끈다. 더불어 한투증권의 자산관리 부문도 시너지를 내고 있다. 유망 기업이 성장을 통해 창출한 성과는 공모주 투자, 신기술투자조합, 랩어카운트 등 한투증권의 리테일 및 WM 금융 상품으로 가공돼 일반 투자자와 고객에게 공급된다. 혁신 기업 발굴로 창출된 경제적 가치가 자산관리 고객의 수익으로 환원되고, 다시 이 자본이 자본시장과 새로운 초기 스타트업으로 흘러 들어가는 선순환 구조다.

한투증권 관계자는 “한투금융그룹의 밸류체인은 한투AC의 시드 투자부터 한투파의 스케일업, 한투증권 IB의 상장 지원과 WM의 자산관리에 이르기까지 기업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독보적인 금융 인프라”라며 “앞으로도 계열사 시너지를 더욱 강화해 국내 유망 기업들이 글로벌 유니콘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전방위적 자본 공급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KDB생명 본사. 사진=한국경제
서울 용산구 KDB생명 본사. 사진=한국경제
마지막 퍼즐 ‘보험’…‘한국판 벅셔해서웨이’ 될까

그동안 투자은행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그룹을 키워 온 강점은 뚜렷하지만, 증권업에 편중된 한투금융그룹의 수익 구조가 장기적으로는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특히 계열사 중 보험사가 없다는 점은 종합금융그룹으로서의 위치를 굳혀 나가는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한투지주도 지난해부터 보험사 인수를 검토해 왔다. 지난해 BNP파리바카디프생명과 롯데손해보험 인수를 검토한 데 이어, 올해는 KDB생명과 예별손해보험 공개입찰에 참여하며 적극적인 보험사 인수 의지를 보였다. 최근 한투지주가 KDB생명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연내에 생명보험사를 품에 안을 가능성이 커졌다.

한투지주의 KDB생명 인수가 현실화하면 보험사가 상품 판매로 조달한 자산을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장기 운용하며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판 벅셔해서웨이’ 모델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메리츠금융그룹, 미래에셋그룹 등 국내 비은행 금융그룹들은 보험 계열사를 통해 조달 비용 없이 장기 자금을 확보하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또 생보사가 내놓는 보험 상품을 자산관리 사업과 연계할 수 있어, 그룹 내 시너지 효과를 만들수 있다.

다만 KDB생명은 과거에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까지 진행됐다가 매각이 수차례 무산된 전례가 있다. 지난 2023년에는 하나금융지주가 KDB생명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실사 과정에서 대규모 자본 투입에 대한 부담 등을 이유로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한투지주는 KDB생명 인수 시 최대 1조 원가량의 자본을 확충하는 방안을 KDB산업은행 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희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 이익 창출 목적의 M&A가 아닌 장기 조달 파이프라인 확보를 위한 딜”이라며 “아직 인수 가격, 증자 규모 등 세부 조건은 미확정인 가운데, 그룹 이익 기여의 실익은 제한적이지만 장기 운용 구조 확보 측면에서 구조적 성장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임 연구원은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증권, 자산운용, 저축은행, 캐피털, 사모펀드(PE), 부동산신탁에 이어 보험사까지 갖추며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이 기대된다”며서 “경쟁 금융그룹들이 이미 보험을 주요 축으로 활용하고 있어 경쟁사와의 사업 구조 간극 축소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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