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작은 상점에서 시작해 세계적 하이 주얼리 하우스로 성장하기까지. 189년간 쌓아온 티파니앤코의 찬란한 유산

[브랜드 스토리]
19세기에 제작된 티파니 블루® 박스
19세기에 제작된 티파니 블루® 박스
가장 로맨틱한 컬러의 탄생

특정한 색을 보는 순간 하나의 브랜드가 떠오르는 사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푸른빛이 감도는 독특한 블루는 예외다. 사람들은 이 색을 보면 자연스럽게 ‘티파니앤코’를 떠올린다. 실제로 미국인의 90% 이상이 이 색에서 티파니앤코를 연상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야기는 18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티파니앤코의 창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는 미국 최초의 우편 카탈로그인 <블루 북(Blue Book)>의 표지에 이 색을 처음 사용했다. 왜 하필 이 색이었을까. 당시 영국과 미국의 상류사회에서는 결혼식에 ‘섬싱 블루(Something Blue)’를 지니는 풍습이 있었다. 신부가 파란 것을 몸에 두르면 결혼 생활에 행운과 사랑이 깃든다는 믿음이었다. 상류층에게 인기를 얻던 터키석(튀르쿠아즈) 역시 이 청록빛과 맞닿아 있었다. 터키석은 빅토리아 시대 결혼식에서 신부와 들러리들이 주고받는 기념품으로도 사용했다. 티파니앤코가 선택한 블루는 창립 당시의 주얼리 문화와 깊이 연결된 색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티파니 블루®’는 1998년 티파니앤코의 상표로 등록됐다. 티파니앤코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이 색을 상표로 등록해 보호하고 있다. 오랜 시간 일관되게 사용하며 소비자에게 고유한 이미지로 각인시킨 결과, 특정 색을 브랜드가 독점하는 드문 사례가 되었다. 이후 팬톤과 함께 고유 색상인 ‘1837 블루’로 표준화되면서 티파니앤코만의 색으로 자리 잡았다. ‘1837’은 티파니앤코가 창립한 1837년을 의미한다.

티파니 블루®는 가장 로맨틱한 컬러로도 꼽힌다. 이 박스를 본 여성의 심박수가 약 22%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대와 설렘을 불러내는 하나의 신호가 된 셈이다. 오랫동안 이 티파니 블루® 박스가 열리는 순간은 곧 프러포즈를 상징해왔다.
찰스 루이스 티파니의 ‘티파니 세팅’ 링
찰스 루이스 티파니의 ‘티파니 세팅’ 링
그렇다면 티파니앤코는 어떻게 프러포즈의 대명사가 됐을까. 결정적 계기는 1886년에 선보인 ‘티파니® 세팅’이었다. 당시 반지는 금세공이 중심이었다. 다이아몬드 역시 금속에 낮게 고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스톤은 단단히 자리 잡았지만, 빛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은 그만큼 제한적이었다. 티파니앤코는 이 관습에 새로운 답을 내놓았다. 다이아몬드를 밴드에 매립하는 대신 6개의 프롱(다이아몬드를 고정하는 발톱 모양의 금속 장치)으로 고정해 반지 위로 들어 올렸다. 스톤을 둘러싼 금속을 최소화하고 사방에서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어 다이아몬드의 반짝임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후 6프롱 세팅은 프러포즈 반지의 대표적 형태로 자리매김했고,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다이아몬드 솔리테어 반지의 원형이 되었다. 무엇보다 티파니® 세팅은 다이아몬드를 주인공으로 끌어올렸다.

다이아몬드의 왕, 찰스 루이스 티파니
다이아몬드를 반지의 장식에서 주인공으로 끌어올린 사람, 그가 바로 티파니앤코의 창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다. 1837년, 스물다섯 살의 찰스는 뉴욕 브로드웨이에 은 제품과 팬시용품을 판매하는 작은 상점을 열었다. 대부분의 거래가 외상으로 이뤄지던 시절, 그의 상점은 오직 현금 거래와 정찰제를 고수했다. 그럼에도 매장은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진귀한 물건이 많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19세기 럭셔리의 기준은 유럽에 있었다. 주얼리와 장식품의 유행은 파리와 런던에서 시작됐고, 미국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장에 가까웠다. 하지만 찰스는 다른 길을 택했다. 유럽의 디자인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새로운 미국만의 취향을 만들고자 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디자인이었다. ‘아름다운 디자인은 아름다운 삶을 만든다’는 신념 아래 티파니앤코만의 모던하고 도시적인 감각을 선보였다. 뉴욕의 상류층은 이에 빠르게 반응했다.
티파니앤코의 설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
티파니앤코의 설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
전환점은 1848년에 찾아왔다. 유럽 전역을 휩쓴 혁명으로 정세가 흔들리자 보석 시장도 급격히 위축됐다. 몰락한 귀족들은 대대로 물려받은 다이아몬드를 시장에 내놓았다. 대부분의 상인이 몸을 사리던 그때, 찰스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가진 돈을 쏟아부어 유럽 귀족들의 다이아몬드를 대거 사들인 것이다. 몇 년 뒤 그 판단은 막대한 수익으로 돌아왔다. 유럽의 굵직한 보석들이 미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1867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는 미국 회사 최초로 8개 메달을 수상하며 유럽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는 미국의 작은 상점에서 출발한 티파니앤코가 유럽의 럭셔리 하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름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이아몬드를 향한 그의 집념은 1877년 다시 한번 드러났다. 남아프리카 킴벌리 광산에서 발견된 287.42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를 매입한 것이다. 찰스는 이 거대한 원석을 그대로 보존하는 대신 과감한 커팅을 택했다. 절반 이상의 중량을 덜어내고 128.54캐럿의 쿠션 브릴리언트컷으로 완성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크기보다 다이아몬드의 광채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가였다.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다이아몬드 중 하나로 남아 있는 ‘티파니 다이아몬드’는 이후 뉴욕 매장에 전시되며 하우스의 명성을 드높였다.
287.42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를 128.54캐럿의 쿠션 브릴리언트컷 다이아몬드로 커팅하기 위한 스케치
287.42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를 128.54캐럿의 쿠션 브릴리언트컷 다이아몬드로 커팅하기 위한 스케치
찰스의 승부수는 1887년 다시 한번 드러났다. 프랑스 왕실이 보유하던 보석 가운데 상당 부분을 매입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왕실의 유서 깊은 보석들은 티파니앤코의 손길을 거쳐 미국적 감각으로 탄생했고, 이를 계기로 유럽에서도 티파니앤코라는 이름이 더욱 널리 알려졌다. 당시 언론이 그에게 붙인 별명이 바로 ‘다이아몬드의 왕’이었다.

다이아몬드를 넘어선 예술적 확장

찰스가 다이아몬드를 향한 안목으로 티파니앤코를 세계적 브랜드로 키웠다면, 그의 아들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는 하우스에 예술적 언어를 새겨 넣은 인물이다. 화가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색과 빛에 대한 자신만의 감각을 쌓아갔다.

1870년대 후반, 루이스는 유리라는 소재에 매료됐다. 값싼 젤리 병이나 유리병에 남아 있던 미네랄 불순물이 오히려 독특한 색감을 낸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는 이를 재현할 유리 제조사를 찾지 못하자 직접 유리 공방을 세워 제작에 나섰다. 이곳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파브릴 유리Favrile Glass’다. 손으로 만든다는 뜻의 옛 영어 ‘fabrile’에서 따온 이 이름처럼, 베네치아 유리 기법을 바탕으로 한 오묘한 무지갯빛 광택은 곧 그의 시그너처가 되었다.

1902년, 아버지 찰스가 세상을 떠나자 루이스는 티파니앤코의 첫 번째 디자인 디렉터로 취임했다. 그가 집중한 부분은 예술성이었다. 뉴욕 5번가 티파니앤코 매장에 아트 주얼리 부서를 신설하고, 아버지가 반세기에 걸쳐 쌓아 올린 주얼리 하우스에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더하기 시작했다.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가 선보인 아르누보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 램프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가 선보인 아르누보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 램프
그의 선택은 아르누보였다. 잠자리, 포도덩굴, 야생 당근꽃 같은 자연의 유기적 형태를 주얼리의 모티프로 끌어들였다. 오팔·투르말린·문스톤 등 색색의 보석과 에나멜, 금속을 자유롭게 조합해 그 특유의 색채와 생동감을 주얼리 위에 옮겨왔다. 골드와 다이아몬드의 광채에 집중하던 기존 주얼리와는 다른 접근 방식이었다.

자연을 보석으로 옮긴 남자, 쟌 슐럼버제

루이스의 유산은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티파니앤코 곳곳에 흐른다. 자연에서 발견한 형태와 색채, 빛을 다루는 방식은 이후 티파니앤코가 주얼리를 통해 예술적 상상력을 표현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티파니앤코는 오래전부터 디자이너의 개성과 창의성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일례로 1955년부터 1980년까지 하우스를 이끈 월터 호빙은 디자이너들에게 이런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당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디자인하라. 그걸 파는 것은 우리의 일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반 데이 트뤽스, 엘사 퍼레티, 그리고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딸 팔로마 피카소 같은 걸출한 디자이너들이 티파니앤코를 거쳐 갔다. 그중에서도 티파니앤코의 디자인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쟌 슐럼버제다.
티파니앤코의 전설적 디자이너 쟌 슐럼버제
티파니앤코의 전설적 디자이너 쟌 슐럼버제
1956년에 합류한 슐럼버제는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독창적인 주얼리로 풀어내며 티파니앤코의 디자인 영역을 넓혀갔다. 그의 스케치는 언제나 자연에서 시작됐다. “나는 각각의 작품이 성장하고 변화하며, 자유롭게 살아 숨 쉬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자연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역동성을 발견한다.” 이 말은 그가 평생 작업을 대해온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잠자리와 새, 꽃과 잎사귀를 자유롭게 변주한 그의 주얼리는 기존 주얼리 문법과 달랐다. 금과 다이아몬드의 가치만을 드러내는 대신 색색의 보석과 에나멜을 과감하게 조합해 하나의 작은 조각 작품을 빚어냈다. 자연의 생동감과 상상력을 주얼리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티파니 다이아몬드’ 역시 그의 손에서 새로운 얼굴을 얻었다. 티파니앤코는 세계적 명성을 지닌 티파니 다이아몬드의 새로운 세팅을 슐럼버제에게 맡겼다. 슐럼버제는 리본으로 감싼 네크리스, 날개 모티프의 클립, 다이아몬드를 층층이 쌓은 브레이슬릿까지 세 가지 세팅안을 스케치했다. 그중 네크리스안이 1961년에 선보인 ‘리본 로제트 네크리스Ribbon Rosette Necklace’다. 배우 오드리 헵번이 이를 착용하고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홍보 사진을 찍으며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남았다.
쟌 슐럼버제의 대표 작품인 ‘버드 온 어 락’ 브로치
쟌 슐럼버제의 대표 작품인 ‘버드 온 어 락’ 브로치
1965년에는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작은 새가 커다란 보석 위에 내려앉은 형상의 ‘버드 온 어 락Bird on a Rock’이 탄생했다. 자연을 관찰해 얻은 생동감과 유머를 주얼리로 옮긴 이 작품은 이후 슐럼버제의 가장 상징적인 디자인이 되었다.

티파니 다이아몬드와 버드 온 어 락의 만남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1995년에 이루어졌다. 파리 장식미술박물관에서 열린 슐럼버제 회고전을 위해 티파니 다이아몬드를 버드 온 어 락 브로치에 세팅한 것이다. 이 회고전에서는 그의 방대한 드로잉 아카이브도 함께 소개되며,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발굴한 다이아몬드와 슐럼버제가 만든 상징적 디자인이 하나의 작품으로 만났다.

그의 디자인은 윈저 공작부인, 그레타 가르보, 바비 페일리 같은 당대 최상류층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고대 에나멜 기법인 파요네Paillonné를 독자적으로 되살려 만든 팔찌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즐겨 착용하며 ‘재키 브레이슬릿’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58년, 슐럼버제는 코티 미국 패션 비평가상을 받은 최초의 주얼리 디자이너로, 1977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 슈발리에 등급을 받았다.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유산

티파니앤코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했다면,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는 색과 빛을 주얼리의 언어로 끌어들였다. 쟌 슐럼버제는 자연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발견한 형태와 움직임을 주얼리로 옮겼다. 티파니앤코의 주얼리는 그렇게 한 사람의 유산에 머물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변주돼왔다.
쟌 슐럼버제가 1959년에 선보인 크로스 스티치를 모티프로 한 ‘티파니 식스틴 스톤 링’
쟌 슐럼버제가 1959년에 선보인 크로스 스티치를 모티프로 한 ‘티파니 식스틴 스톤 링’
2026년 <블루 북> 컬렉션 ‘히든 가든’은 그 계보의 현재를 보여준다. 아카이브 속 꽃과 새, 리본과 잎사귀는 그대로 복원되지 않고 새로운 소재와 형태를 만나 하나의 주얼리로 탄생했다. 과거 디자인을 되풀이하는 대신, 그 안에 담긴 시선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특히 이번 컬렉션은 슐럼버제가 1962년에 선보인 허밍버드 클립과 1964년 플라워 클립에서 영감받았다. 이처럼 티파니앤코의 유산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거치며 끊임없이 새로 쓰인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한경 프레스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