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스 노트]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42개 퇴직연금 사업자를 전수 평가했습니다. 최종 결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증권사의 초강세입니다. 종합 점수 1위부터 6위까지를 증권사가 차지했습니다.

물론 예견된 결과이긴 합니다. 2024년 10월 실물이전 제도 시행으로 보유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도 계좌를 통째로 옮길 수 있게 됐습니다. 수익률 비교가 쉬워지자 돈을 더 불려줄 수 있는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다만 그 강도가 상상 이상입니다. 지난해 증권업권의 퇴직연금 적립금 증가율은 26.5%로 은행(15.4%)의 2배에 가까웠습니다. 553조 거대 시장의 무게중심이 실제로 기울고 있다는 뜻입니다. 은행 창구에 묶여 있던 노후자금이 상장지수펀드(ETF)와 펀드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머니무브'의 최대 수혜자가 된 증권업은 오랫동안 '천수답'으로 불렸습니다. 투자자의 주문을 대신 처리하고 받는 중개수수료가 수익의 뼈대였습니다. 장이 좋으면 벌고 식으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습니다. 비 오기만 기다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농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골드만삭스'나 '글로벌 투자은행(IB)'은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킨 상징적 인물이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입니다. 1987년 동원산업에 입사해 2년을 일한 뒤 일본 게이오대로 유학을 떠난 그는 1991년 귀국하면서 가업 복귀 대신 증권사를 택했습니다. 아버지 김재철 회장이 세계 정상급으로 키워 놓은 원양어업 회사를 뒤로하고, 업계 6~7위에 머물던 한신증권(동원증권 전신) 명동지점 대리로 출근한 것입니다. 이미 꽉 찬 ‘보름달’이 아니라 차오를 여지가 남은 ‘초승달’을 고른 셈입니다.

이후 35년은 뚝심의 기록입니다. 2005년 자기보다 덩치가 큰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했고, 2017년에는 증권사 최초로 발행어음 사업자 인가를 받아 자기자본의 200%까지 자금을 조달할 길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실탄은 인수금융과 기업 신용공여, 메자닌 같은 모험자본으로 흘러갔습니다. 리테일 편중에서 벗어나 IB와 운용, 자산관리가 고르게 버티는 포트폴리오도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갈 길은 남아 있습니다. 자기자본 11조 원대는 국내 1위지만, 100조 원을 훌쩍 넘기는 글로벌 톱티어와는 여전히 체급 차가 큽니다. 수조 원짜리 위험을 직접 짊어져야 하는 대형 딜의 세계는 자본이 곧 입장권입니다.

김 회장은 사람에 대한 고집도 남다릅니다. 외부 노출은 꺼리면서도 대학 채용설명회에는 2003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직접 나섭니다. 금융업은 결국 사람이라는 지론입니다. 한번 맡긴 사람은 끝까지 믿는 그의 리더십 덕분에 한국투자금융그룹에는 유독 장수 최고경영자(CEO)가 많습니다.

결과는 숫자로 돌아왔습니다.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사 최초로 영업이익(2조3427억 원)과 순이익(2조135억 원) 모두 2조 원을 넘겼습니다. 올해 2분기 순이익 9464억 원은 우리은행(8427억 원)과 NH농협은행(6052억 원)을 앞질렀습니다. 은행보다 돈을 더 버는 증권사가 등장한 것입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이 성적표가 증시 활황이 만든 일시적 성과인가, 판이 바뀐 결과인가. 이번호 스페셜 리포트가 그 답을 가늠하는 실마리가 되길 바랍니다.
[에디터스 노트] 보름달 대신 초승달
장승규 한경머니 편집장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