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시대, 국내 60개 그룹 지배구조 점수는

[스페셜리포트] 2022 지배구조 랭킹
서울 용산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그룹 본사 전경.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서울 용산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그룹 본사 전경.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지속 가능 경영의 잣대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떠오르면서 전 산업 영역에서 ESG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G’, 바로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다. 한경비즈니스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급변하는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현황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기 위해 올해로 4회째 ‘기업지배구조 랭킹’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부단한 노력으로 지속 가능 경영의 닻을 올린 기업들과 상대적으로 아쉬운 성적을 보인 기업들의 지배구조 변화를 들여다봤다.
<종합 순위>
네이버·현대중공업 ‘톱10’ 신규 진입
최고의 지배구조 모범생 ‘아모레퍼시픽’…네이버·현대重 순위 급상승
아모레퍼시픽그룹이 2년 연속 ‘기업지배구조 랭킹’ 종합 1위에 올랐다. 한경비즈니스가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시 대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아모레퍼시픽은 277.4점(300점 만점)을 받았다. 조사 대상인 2021년 공시 대상 기업집단 60개(대우조선해양·대우건설 제외) 중 단연 1위다.

아모레퍼시픽은 평가 항목인 사외이사 비율 분야에서 5위(93.5점),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 분야에서 1위(100점), 소수 주주권 보장에서 11위(83.9점)를 기록하며 고루 상위권에 올랐다. 전체 60개 그룹 중 55곳의 순위 변동(상승 19개, 하락 28개, 신규 진입 8개) 속에 이룬 성과다.

이 회사는 2018년 10월 기업지배구조 헌장을 도입했고 2019년 11월 본격적으로 이사회 내 내부거래위원회와 보상위원회를 설치하며 지배구조 개선에 나섰다. 이를 통해 2020년 조사 당시 34위(148.1점)에서 지난해 1위로 올라선 뒤 올해에도 왕좌를 지켰다. 특히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 분야 항목 중 올해 처음 평가에 포함된 ESG위원회 설치율에서 설치율 100%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 1위 수성에 큰 역할을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21년 4월 ESG 경영 추진 고도화를 위해 ESG위원회를 설립하며 지배구조 체계를 강화했다.

종합 2위는 한화그룹이 차지했다. 한화는 총점 269.4점으로 2위에 올라 지난해와 같은 순위를 유지했다. 1위와는 8점 차로 전년도 11점 차에서 점수 차를 좁히며 아모레퍼시픽을 바짝 뒤쫓고 있다. 사외이사 비율 항목에선 17위로 비교적 낮은 순위를 기록했지만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 부문은 4위, 소수 주주권 보장은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종합 2위를 유지했다. 특히 소수 주주권 보장 항목 중 집중투표제 도입률은 톱10 기업 중 1위로 가장 높았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1주 1표가 아니라 선임하려는 이사의 수만큼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소수 주주권의 권리를 키우는 매우 강력한 제도다.

종합 3위는 지난해 4위였던 두산그룹이 차지했다. 소수 주주권 보장 부문에서 한화에 이어 2위, 사외이사 비율 부문에서 5위를 기록하며 한 단계 순위가 상승했다.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 부문은 18위로 비교적 낮았다. 다만 두산은 지난해 CRS위원회를 ESG위원회로 명칭을 바꾸며 ESG 경영에 박차를 가하는 등 내년 순위 상승을 노리고 있다.

톱3의 변화가 비교적 미미했다면 4·5위는 그야말로 지각변동이다. 지난해 10위권의 기업들이 무려 13~14계단 오르며 톱5에 안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주인공은 네이버와 현대중공업이다. 양 사 모두 지난해 전자투표제를 처음 도입하며 소수 주주권 보장 강화에 나섰다.

먼저 네이버는 지난해 17위에서 13계단 오르며 종합 4위에 자리했다. 특히 소수 주주권 보장 부문이 지난해 39위에서 11위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뒀다. 2021년 정기 주주 총회에서 처음으로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것이 주효했다. 네이버는 그동안 의결권 대리 행사를 권유하고 서면 의결권 행사를 유도하며 주주 의결권 행사를 위해 보안책을 마련해 왔지만 전자투표를 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자투표제는 주주 총회가 개최될 때 주주들이 외부에서 인터넷으로 접속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로, 소액 주주의 주총 참여를 끌어올리고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시스템이다.

종합 5위에 오른 현대중공업그룹은 순위가 전년도 19위에서 14계단 뛰었다. 현대중공업 역시 소수 주주권 보장 부문에서 네이버와 공동 11위를 기록해 지난해 39위에서 크게 상승했다. 현대중공업은 6개 상장사 모두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며 도입률 100%를 자랑했다.

특히 네이버와 현대중공업은 전자투표제 실시율도 100%를 자랑했다. 전자투표제는 전체 상장사 274개사 중 75.2%가 도입했지만 실시율이 100%에 달하는 곳은 네이버와 현대중공업을 포함해 25개 그룹에 불과하다.

이 밖에 교보생명은 전년보다 순위가 한 계단 하락한 6위에 올랐고 한국앤컴퍼니(구 한국타이어)는 3계단 오른 공동 7위를 차지했다. 현대차는 전년도와 동일한 공동 7위를 기록했다. 이어 한국투자금융이 6계단 하락해 9위를 기록하며 톱10 자리를 지켰다. 10위는 CJ로 전년과 동일하다.

전년도 톱10의 영광을 누렸지만 올해 순위 변화로 밀린 기업들도 있다. KT&G가 6위에서 11위로 5계단 하락했고 하림은 8위에서 12위로 밀렸다. 하락세가 단연 도드라지는 기업은 카카오다. 카카오는 지난 조사에서 종합 9위에 올랐지만 이번 조사에서 40위로 무려 31계단 하락했다. 경쟁 기업인 네이버가 톱10 반열에 오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카카오는 잇단 계열사 상장으로 상장사 수가 1개에서 3개로 늘어나면서 모든 부문에서 비율이 낮아졌다.
최고의 지배구조 모범생 ‘아모레퍼시픽’…네이버·현대重 순위 급상승
<부문별 평가> 사외이사 비율
한국투자금융 75%로 1위, 이랜드 꼴찌

부문별 성적표는 또 다르다. 첫째 항목인 ‘사외이사’는 외부 전문가를 이사회에 참여시켜 경영진과 대주주의 독단 경영과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는 제도다. 한국은 1998년부터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는데 투명 경영이 강조되면서 점차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5년간(2017~2021년) 분석 대상 기업집단 소속 상장사의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은 약 50∼51%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올해는 전년(50.9%)에 비해 0.1%포인트 오른 51.0%를 기록했다.

사외이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한국투자금융그룹이다. 전체 이사진 8명 중 6명이 사외이사(사외이사 비율 75.0%)로 평균을 크게 웃돈다. 이에 따라 한국투자금융은 종합 순위에선 6계단 미끄러졌지만 톱10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투자금융은 사외이사 선임 의무가 없는 비상장사에도 사외이사를 최다 선임했다. 비상장사 사외이사 비율이 35.1%로 비상장사 중 가장 높다.

이어 금호석유화학그룹이 70.0%로 부문 2위에 올랐다. 사외이사 비율이 70%를 넘긴 곳은 한국투자금융그룹과 금호석유화학그룹 등 두 곳뿐이었다. 이어 사외이사 비율이 높은 곳은 KT&G·한진 순이다.

반면 평균(51.0%)에 크게 미치지 못한 기업들도 있다. 이랜드는 16.7%로 상장 계열 회사가 없는 5개 기업(부영·호반건설·중흥건설·한국GM·장금상선)을 제외하고 꼴찌를 기록했다. 총 12명의 이사진 중 사외이사 수가 2명에 불과하다. 이어 넥슨(25.0%), 동원(30.8%), IMM인베스트먼트(33.3%) 등도 사외이사 비율이 낮았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번 조사에서 14계단 오른 종합 5위를 차지했다. 사진은 지난 11월 1일 현대중공업그룹이 제1차 ESG자문위원회를 개최, 분야별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한 ESG자문그룹.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번 조사에서 14계단 오른 종합 5위를 차지했다. 사진은 지난 11월 1일 현대중공업그룹이 제1차 ESG자문위원회를 개최, 분야별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한 ESG자문그룹.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
<부문별 평가>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
ESG위원회 설치율 추가…아모레퍼시픽 904.8%로 1위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 여부도 지배구조에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감사위원회 도입이 의무화돼 있고 보상위원회·내부거래위원회·ESG위원회는 기업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처음으로 ‘ESG위원회’ 설치 여부를 평가에 추가했다. ESG위원회는 ESG 경영 관련 주요 사항을 심사하고 승인하는 곳으로, ESG 경영 수준을 판단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한경비즈니스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감사위원회·보상위원회·내부거래위원회·ESG위원회 등 5개의 위원회 설치율과 각각의 위원회 내 사외이사 비율 등 총 10개 항목을 종합해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 부문’ 순위를 매겼다.

1위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이다. 종합 순위 1위인 아모레퍼시픽은 총 5개 위원회를 모두 설치해 설치율 100%를 자랑했고 위원회 내 사외이사 비율은 평균 81%에 달했다. 특히 신규 분석 대상이자 자율 설치 대상인 ESG위원회를 지난해 4월 발빠르게 설립했다. 아모레퍼시픽의 10개 항목의 누적 비율은 총 904.8%다.

이어 네이버가 누적 비율 896.7%로 2위에 올랐다. 다음으로 한진(872.9%), 한화(321.3%), 삼성(815.4%) 순이다. 이들의 성적을 가른 것은 신설된 ESG위원회 설치율이다. 아모레퍼시픽과 네이버는 100%를 기록했지만 한진(60.0%), 한화(29.0%), 삼성(31.0%)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부문별 평가> 소수 주주권 보장
1위 한화, 10대 그룹에서도 독보적


마지막 평가 항목인 소수 주주권 보장 부문은 집중투표제·서면투표제·전자투표제 등 세 가지 제도를 통해 조사했다. 모두 소액 주주권 보호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다.

집중투표제·서면투표제·전자투표제 도입 현황을 토대로 소수 주주권 보장 평가 점수를 산출한 결과 1위는 한화그룹이다. 한화는 전자투표제 100%, 서면투표제 42.9%, 집중투표제 14.3%로 종합 157.2%를 기록하며 부문 1위에 올랐다. 한화는 상장 계열사의 주주 권리 보호를 위해 전자투표제 도입을 각 계열사에 적극 권고하며 총 7개 계열사가 모두 도입을 마무리했다. 또한 서면투표제는 7개 상장사 중 3개사가 도입함으로써 10대 그룹(총수 있는 집단 기준) 중에서도 1위에 올랐다. 현대차·롯데·CJ는 계열사 1개만이 서면투표제를 도입했고 삼성·SK·LG·GS·현대중공업·신세계는 한 곳도 도입하지 않았다.

가장 강력한 보호 수단으로 여겨지는 집중투표제는 한화 계열사 1곳(한화생명)이 도입을 완료했다. 수는 적지만 10대 그룹에서는 고무적인 조치다. 10대 그룹 중 한화를 비롯해 SK·신세계·CJ 등 4개 그룹이 모두 각각 1개사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다. 이어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기업은 코오롱·태영·포스코·KT·KT&G 등이다.

반면 소속 상장사 중 집중·서면·전자투표제 중 어느 하나라도 도입한 회사가 없는 기업집단은 한진·HDC·넷마블·세아·동원·한라·IMM인베스트먼트·금호석유화학·하이트진로 등 총 9개 그룹이다.

전문가들은 잇달아 불거지고 있는 오너 리스크를 막기 위해서도 소수 주주권 보장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집중투표제 도입 확대 시 견제와 감시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집중투표제는 공시 대상 기업집단 소속 상장사의 96.0%, 즉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를 정관에서 배제하고 있다. 도입한 회사들도 ‘주주들이 집중투표제를 청구하지 않았음’ 등을 이유로 집중투표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최고의 지배구조 모범생 ‘아모레퍼시픽’…네이버·현대重 순위 급상승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