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운용하는 자본의 조직 단위가 기업의 사전적 정의임을 새삼 떠올려 볼 때 이 회사는 꽤나 수상하다. 고용을 위해서 매출을 늘리고 이익이 나면 고용을 늘리는 것이 설립 목적이란다. 직원 채용을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삼는 베어베터의 김정호 대표를 만났다.
[Noblesse Oblige] 발달장애인 채용이 사명인 ‘수상한’ 회사를 아시나요
인쇄, 커피, 제과제빵, 꽃. 이 네 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질문이 너무 어렵다면 이들 사업 아이템은 어떤 연결고리로 엮일 수 있을까. 정답부터 밝히자면 발달장애인이 잘할 수 있는 업무다.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은 베어베터는 여느 회사와는 사뭇 다른 풍경으로 기자를 맞았다. 서울 성수동의 아파트형 공장 8층에 위치한 베어베터는 벽면이 유치원 건물에나 어울릴 법한 동심 가득한 곰 그림 벽화로 꾸며져 있었다. 사무실 왼쪽부터 차례로 제과제빵 공장, 직원 사무실과 휴게실이 함께 있는 중앙홀, 그 옆으로는 묵직한 프린터, 절단기 등의 장비가 늘어서 있는 인쇄사업부가 위치해 있다. 내막을 모르는 이라면 대체 뭐하는 회사인가 하고 궁금증이 생길 만한 곳이다.

김 대표는 애초 인터뷰 요청을 고사했다. 그러나 명함을 주고받은 뒤 기자에게 그다운 ‘돌직구’로 인터뷰 수락을 결정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간 해 온 언론매체와의 인터뷰가 발달장애인 입장에서 취업과 평생직장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머니와의 인터뷰는 경영자, 오너 입장에서 사회적 기업을 경영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단다. 그의 솔직한 말이 꽤나 반가웠다. 장애인을 위한 기부 혹은 시혜 성격을 띤 이벤트성 후원만큼이나 절실한 것은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학교를 졸업한 뒤 취업을 하고 노동의 대가로 돈을 버는 지극히 평범한 삶 안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불가능할 것 같은 무모한 도전은 ‘베어베터’라는 사회적 기업을 통해 현실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됐고 올해 매출 40억 원 흑자를 내다보는 견실한 사업장이 됐다.


NHN 공동 창업자 ‘졸부’의 지속 가능한 착한 일
성인기 장애인 취업이라는 리얼한 현실 장벽에서 출발한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김 대표는 스스럼없이 웃어가며 자신이 ‘졸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운을 뗐다. NHN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김 대표는 2010년 NHN 글로벌게임사업 총괄을 끝으로 NHN을 떠났다. 그의 말마따나 주식 부자가 돼 회사를 퇴직한 후에도 벤처 투자나 장학 사업을 해 왔다. 그러다 지금의 베어베터의 공동 대표인 이진희 대표와 함께 자폐아를 위한 사업 구상을 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제가 착한 척하다가 이 일에 빠져 지금까지 이 길을 걷고 있어요. 회사 다닐 때 이상하게도 제 주변에 자폐아나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동료들이 많았어요. 당시에는 제가 무지했어요. 이진희 대표의 아들도 발달장애인이라 자폐인협회에서 일을 하기에 작은 장학재단이라도 만들까 물어봤습니다. 이 대표가 엄청나게 짜증을 부리더라고요.(웃음) 발달장애인에게는 대학교 다니는 것보다 먹고 살 일이 더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선심성 장학금보다 평생 먹고 살 생업 유지가 발등의 불이지만 어디서도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발달장애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그때부터 그 집안은 그야말로 ‘멘붕’이 오게 되거든요.”

당시 김 대표는 “눈앞의 0.7%라는 숫자가 크게 다가왔다”라고도 말했다. 이는 국내 자폐 성인의 취업률이다. 제로(0)에 가까운 이 수치는 얼핏 생각해도 회사라는 곳에서 업무 수행 능력이 없는 직원을 고용할리 만무하기 때문에 당연시 여길 수도 있다. 최저임금은 고사하고 전단지를 접고 구멍을 뚫는 정도의 소일거리로 한 달에 10만 원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장애인 사업장이 그나마 최소한의 보호시설이 되는 현실이다. 절대적 빈곤 상태인 국내 대다수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는 생존 그 자체이지만 이들이 감당해야 할 체감 장벽은 높기만 하다.

김 대표는 자신이 경영자이기 때문에 문제를 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는 베어베터를 ‘무대뽀’로 추진했다. 2012년 6월에 문을 연 베어베터는 훈련생 5명으로 시작했지만 매달 장애 사원을 뽑아 현재는 전체 직원 110명 중 90명이 장애 사원이다. 그가 일궈 온 사회적 기업이 대박을 낼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그가 조목조목 설명했다. 중간 중간 “확실하게 될 수밖에 없는 사업”이라고도 강조했다.

그의 말인즉슨 베어베터라는 회사가 고속 성장을 한 것은 100인 이상 법인사업장의 장애인 의무 고용법을 역발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전체 직원의 2.7%를 장애인으로 의무적으로 고용하면 정부에서 장려금도 지원해주지만 과태료를 물면서도 장애인 고용 의무를 지키지 않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언론사도 장애인 고용이 힘든 대표적인 곳입니다. 그 대신 이렇게는 가능합니다. 언론사에서 필요한 일 중에 중증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우리 회사에서 공급하는 겁니다. 공급받은 금액의 절반을 정부가 장애인 의무 고용법 과태료에서 제해주는 규정이 있어요. 저는 그 점에서 착안한 거죠. 모든 회사는 직원들 명함이 필요하고 거래처에 장례식이 있으면 조화를 보내야 합니다. 늘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저희 같은 장애인 회사에 오더하면 과태료를 절반만 내도 되는 겁니다. 결국 10만 원 하는 조화를 5만 원에 살 수 있는 논리입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죠.”
[Noblesse Oblige] 발달장애인 채용이 사명인 ‘수상한’ 회사를 아시나요
베어베터가 명함이나 팸플릿 등을 인쇄하고, 원두커피를 볶아 납품하고, 꽃 배달을 하는 등 사업 간 연결이 안 되는 품목을 그러모은 이유도 이 접점에서 모아진다. 발달장애인이 잘할 수 있는 업무인 동시에 구매자인 회사가 꾸준히 소비할 품목의 영역을 찾은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이러한 베어베터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물건을 사 가는 회사가 더 좋아하고 고용노동부에서도 매우 반겨한다는 사실. 김 대표가 쉽게 설명했다.

“‘장애인 회사니까 돈 좀 주세요’, ‘지원해주세요’, 이게 아닙니다. 장애인 회사에서 만든 건데 높은 품질에 가격이 절반이면 누가 마다하겠어요. 사업적으로도 지속성이 있으니까 저는 확신하는 겁니다.”


에르메스·루이비통·IBM이 거래처, 최고의 퀄리티가 경쟁력
그의 말을 보란 듯 증명하는 것일까. 그는 대뜸 스스로를 ‘대박 영업맨’이라고 했다. 베어베터의 영업은 김 대표 홀로 직접 발로 뛰는데 그간 300여 업체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계약을 성사시킨 곳이 110건이라 하니 자화자찬도 무리는 아니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IBM, 다음카카오 등의 업체에서 매년 500만 장의 명함을 찍는다. 거래처 회사가 이사를 가거나 기업이미지(CI)를 변경한다고 하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고 한다. 또 전국 커피빈 매장에 베터쿠키를 납품하고 NHN엔터테인먼트와 이베이 직원은 베어베터가 구운 빵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간혹 외국계 회사의 임원들은 “영업이 왜 필요하냐”라며 의아해한다고 한다. 기업이 부담금을 줄이면서 품질 좋은 회사의 용품을 살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태생적 사업가 마인드를 지닌 김 대표는 일찌감치 세상에는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부분이 늘 산재해 있다는 것을 체득했다. 더불어 장애인 회사라는 편견과도 맞서야 했다. 버튼 하나만 눌러 똑같은 인쇄물을 만드는 단순 작업임에도 일반인과 장애인의 결과물이 다르지 않을까 의구심을 품는 불편한 시선의 싹을 그는 애초 싹둑 잘랐다. 그 돌파구는 품질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정밀 공정 단계에서 찾았다.

“2014년, 2015년에 거래처 재계약 100%를 달성한 이유도 베어베터의 철저한 품질관리 덕입니다. 독일산 인쇄 기계는 6000만 원이나 되지만 칼날의 절삭력이 좋고 보호 장비를 덮고 양손으로 눌러야 잘라집니다. 직원들의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고 제본이 밀리지 않고 깔끔하게 잘려 인쇄 완성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장애인 회사에서 조악한 물건 만든다는 선입견을 깨고 싶어서 사재를 털어 최고 품질의 인쇄 장비를 샀습니다.”

베어베터를 처음 시작할 당시에도 이 같은 고집으로 정부지원금은 한 푼도 받지 않고 100% 김 대표의 개인 돈 25억 원을 투자했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고 했다. 품질 우선 경영 외에 그가 두 번째로 꼽은 베어베터의 승산은 중국에서 만들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은 철저히 기피했다는 것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과 원가, 생산 경쟁이 비교되는 것은 애초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 거래처에 중국 제품보다 비싼 물건을 들이밀며 “장애인 회사에서 만든 거니 팔아 달라”고 말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김 대표의 ‘착한 기업’ 첫발은 중국 NHN 대표를 맡던 시절 중국 공산당 간부인 고위 공무원과 친해지며 시작됐다. 중국에서 비즈니스만 하지 말고 좋은 일도 하라는 이 친구의 말을 듣고 당시에는 단순히 ‘기부’에 뜻을 뒀다. 낙후한 소학교를 현대식 건물로 만들고 컴퓨터도 놓아주는 리모델링 사업을 지원했고 몽골에 자신의 이름을 딴 학교 두 곳도 세웠다. 2004년에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같은 동포인 북한 어린이 기아 상황이 더 시급한 일임을 깨닫게 됐다. 그때부터 지금껏 8년간 함경도 나진에 빵 공장을 운영해 지역 어린이들에게 매일 3000개의 빵을 공급한다. 김 대표의 넉넉한 풍채로 붙여진 별명이 빵 공장 곰아저씨다. 베어베터는 ‘Bear makes world better’의 줄임말이다.


이익은 쌓아두지 않는다, 장애인 직원을 재고용할 뿐
김 대표의 목표는 뚜렷하다. 돈을 많이 벌어 더 많은 장애인 직원을 채용하는 것. 그가 요즘 신규 사업 컨설팅을 하느라 바쁘다. 제2의 베어베터를 꿈꾸는 것이냐 묻자 베어베터를 능가하는 새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했단다.

“렌탈 비즈니스입니다. 고용노동부에서 장애인 고용률이 낮은 대기업에 대해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설립을 적극 유도하고 있는데 장애인 고용 비율을 지키고 협약을 체결한 경우 고용 인원에 따라 최대 10억 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이런 모델의 회사가 몇 군데 생길 겁니다.”

그는 덧붙여 10억 원의 지원금으로 자판기, 인쇄기, 노트북, 각종 전자제품을 구입 후 모회사에 렌탈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신 장애인들이 이들 기기를 관리, 점검하는 업무를 맡길 수 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이 사업 건에 대해 김선희 매일유업 사장을 만나 설명했다면서 이 장애인 자회사 형식의 렌탈 비즈니스가 10년 안에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베어베터를 비롯한 렌탈 비즈니스 사업 모델이 갖는 긍정적 파급 효과의 선순환을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회사에서 남는 이익은 단 한 푼도 가져가지 않고 장애인 직원 고용에 재투자한다는 사실만으로 김 대표의 비전은 장애인 고용 촉진의 가장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작년 연말 흑자가 나면서 이익을 직원 수대로 똑같이 엔(n)분의 1로 나누어 상여금을 지급했습니다. 모두 30만 원의 보너스를 받았죠. 그때 가장 기뻤습니다. 아, 상여금 지급 대상에서 한 명만 빠졌어요. 그게 접니다.”

이익은 쌓아 두지 않는다는 김 대표의 원칙은 앞으로도 변함없다고 한다.


기획 박진영 기자│글 이지혜 객원기자│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