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 인터뷰

김인만 소장 “당분간 월세 시대…임대차 시장 트리거는 금리”
전에 없던 ‘월세 시대’가 새롭게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 특유의 임대차 계약 방식인 전세 거래가 크게 줄고, 대신 월세 수요가 급격하게 늘었다. 전세 대출을 받아 고금리 이자를 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월세를 내는 게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8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국내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51.6%로 전년 동기(42.6%) 대비 9%포인트 늘었다. 8월 들어 전세 거래량은 전년 동월 대비 7.5% 감소한 10만7796건에 그쳤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10월 첫째 주 진행한 한경 머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줄곧 저금리 시대에만 살았다”며 “고금리 시대에 전세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처음 경험해보는 시대가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지금 젊은 층은 그동안 걸어가본 적 없는 길을 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인만 소장 “당분간 월세 시대…임대차 시장 트리거는 금리”
최근 전세 시장이 위축되는 추세인데. 왜 그런가.
“몇 달 전만 해도 전셋값이 오르고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금리가 변수로 작용했다. 그동안은 금리가 낮게 유지되면서 전세가 월세보다 유리한 상황이 이어졌지만, 최근 전세 대출 이자가 월세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월세가 더 저렴해지는 상황이 됐다.”

당초 전세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유는.
“우선 당시에는 금리가 지금만큼 높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 올 8월 계약갱신청구권 만료가 시작되면, 4년 치 전세를 한꺼번에 올려받는 집주인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이번에도 전세금을 못 올리면 앞으로 4년 동안 더 못 올리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올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오히려 전세금을 올려받지 않고 월세를 더 올려받는 상황이 됐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어떤 상황이라고 해석하나.
“집주인들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다. 대부분의 임차인이 전세 대출 이자보다 월세를 선택하는 게 유리해진 상황에서, 임대차 가격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가 없다. 신규 계약뿐만 아니라 전세 계약을 갱신할 때도 마찬가지다. 세입자가 추가 대출을 받기 부담스러워하는 와중에 전세금을 올리느니, 월세를 높여 받는 쪽이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특히 지금은 전세금 5000만~1억 원을 더 받아 갭투자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월세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전세는 좀 약세인 상황이 됐다.

한편으로는 이런 측면도 있을 것 같다. 집을 팔아야 되는 집주인의 경우 지금 시점에 전세로 임대를 주기가 굉장히 부담스럽다. 전세 계약 갱신을 고려하면 앞으로 4년(2+2년) 동안은 전세를 낀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투자 목적으로 집을 매수하려는 사람들에게만 팔 수 있다.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사려는 사람들에게는 팔지 못하는 셈이니, 집이 잘 안 팔리는 거다. 최근 같은 부동산 시장 분위기에 누가 투자 목적으로 전세를 끼고 집을 사겠나. 결국 전세로 임대를 준다는 것은 집을 안 팔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어진 거다. 집주인 입장에서도 이런 측면이 부담스러워지니 단기 월세를 주거나, 아니면 아예 공실로 비워두는 경우도 꽤 있다.”

전세에 기대서 ‘갭투자’를 했던 집주인들은 여전히 전세 계약을 원할 텐데.
“그런 집주인들이 진퇴양난이다. 월세로 세입자를 받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전세 세입자를 받아야 하지만 들어오려는 사람은 없고, 대출을 받기 힘든 상황에서 높은 금리까지 맞물리다 보니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케이스다.”

월세 선호 현상은 언제까지 지속될것으로 보는가.
“지금처럼 고금리 상황에서는 매매를 하기도, 전세 세입자로 들어가기도 부담스러워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월세가 유리하겠지만, 금리가 좀 내려가면 다시 전세가 선호될 수도 있다. 당분간은 금리가 임대차 시장의 트리거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세 제도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양날의 검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는데.
“전세 제도보다는 전세자금 대출이 근본적인 악순환의 고리라고 본다. 사실 MB 정부 이전에는 전세자금 대출이라는 제도가 없었다. 금리가 올라도 전세 시장은 크게 영향을 안 받는 구조였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취지로 전세자금 대출이 생겼다. 당초 의도는 세입자의 전세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전세금을 저리로 대출해주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제도로 인해 전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집주인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전세금을 올려도 세입자가 대출을 받아 돈을 마련하는 게 가능한 상황이 된 거다. 실제로 2012~2013년에 서울 집값은 바닥이었지만 전세 가격은 계속 올랐다. 집값과 전세가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갭투자 환경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특히 2013~2014년 즈음에는 서울에 몇 천만 원짜리 아파트가 많았는데 2000만~3000만 원 정도의 자본으로 갭투자를 하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MB 정부 이전에는 전세 가격이 우리 소득과 비례해 올랐지만, 전세 대출 레버리지가 붙어 버리니까 가격 상승 속도가 너무 빨라진 거다. 이렇게 급등한 전세 가격이 최근 몇 년간 집값 상승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이후 매매 가격을 따라 전세 가격이 오르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전세자금 대출은 시행하지 않았어야 했던 제도라고 본다.”

전세 대출 제도가 만들어지기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가.
“이제 와서 전세자금 대출을 없앨 수는 없다. 나쁘게 말하면 독버섯처럼 퍼져 버린 상황이라, 갑자기 이 제도가 사라지면 거의 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어느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문제가 돼 버렸다. 사실 전세자금 대출이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역할을 하려면 저리 대출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저리 대출을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인가. 지금처럼 금리가 올라가면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는 제도지만, 서민층 삶과 복잡하게 얽힌 문제가 많아 해결이 쉽지 않다.”

전세 소멸론이 심심찮게 거론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앞으로 전세 시장 구조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에 10~20년 내에 없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다만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상당한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 과거의 인식을 생각해보면, 전세는 돈을 잠시 맡겼다가 되찾아 가는 개념이었던 반면 월세는 ‘날리는 돈’이라는 인식이 컸다. 특히 월셋집에 살면 ‘못 사는 사람’, 전셋집에 살면 ‘좀 괜찮게 사는 사람’, 본인 집에 살면 ‘꽤 있는 사람’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월세로 산다고 해서 과연 돈이 없는 사람일까. 돈이 있어도 강남 지역에 월세로 살 수 있고, 소득 높은 전문직들도 월세로 산다. 자동차도 비슷하지 않나. 예전에는 렌트카라고 하면 돈 없는 사람들이 타는 차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대표이사들이 타는 차라는 쪽으로 이미지가 달라졌다.

또 전세 시스템이 그리 안전하지 않다는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는 너무나 당연하게 ‘전세는 안전한 제도’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최근 연달아 생겨나는 전세 사기도 따지고 보면 전세 제도의 구조적인 문제다. 쉽게 말해 집주인과 계약서 한 장 쓰고 많게는 10억 원씩 맡기는 셈이다.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70% 이하인 안전한 집에만 잘 들어가면 굉장히 좋은 제도지만, 지금처럼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가는 굉장히 위험해질 수 있다.”

실제로 최근 깡통전세, 전세사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임차인들에게 조언해준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깡통전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월세를 선택하는 거다. 해외 선진국들이 왜 월세 제도를 도입했겠나.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 전세 사기가 일어나는 경우는 잘 없다. 하지만 신축 빌라 같은 경우는 무조건 월세로 들어가라고 조언하고 싶다. 신축 빌라에 전세로 들어가는 사람은 본인 책임이라고 본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굳이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격이다. 그만큼 신축 빌라는 사기가 일어나기 쉬운 구조다. 전세 제도의 마지막 카드가 강제로 경매에 넘겨 버리는 건데, 그 단계까지 가도 내 전세금을 못 찾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도 꼭 전세로 들어가고 싶다면 보증보험은 필수다.”

전세 제도의 위험성을 상쇄할 방법이 필요해 보이는데.
“어느 정도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전세 계약에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를 적용하는 방안이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임차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아 보관하고 있다가, 집주인의 세금 체납, 주택 보유 현황 등을 전수조사한 뒤 괜찮다고 판단되면 그때 입금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HUG가 그 정도까지 타이트하게 조사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는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 중 30%를 유보금 개념으로 HUG가 보관하는 방안이다. 전세금은 어차피 돌려줘야 하는 돈이다. 집주인 개인이 전액을 보관하도록 하는 것보다는, 30% 정도를 유보금으로 둔다면 차후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어느 정도 안전장치가 돼줄 수 있다. 이 방안을 통해 갭투자도 줄어드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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