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에 따른 투자 수요 및 은퇴 이후 자산관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금융권에서는 수년째 신탁 경쟁이 치열하다. 과연 미래 먹거리로서 신탁의 확장성은 어디까지일까.
[big story]신탁 시장, 경쟁 '후끈'...미술품·증여 등 차별화
“흡사 20년 전 일본의 신탁 시장이 막 부상할 때를 보는 느낌이에요. 우리나라에서도 고령화 문제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만큼 신탁 시장을 차지하려는 공급자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어요.” (은행 관계자)

“아직까지 신탁업이 큰 수익을 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공급자들이 이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시장의 잠재력을 봤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제 상속세 문제도 모두의 일로 확산되고 있잖아요. 신탁을 활용해서 본인 사후에도 재산에 대한 처분권을 지속하고 싶은 분들도 많고요. 다양한 자산관리의 그릇이 될 수 있는 신탁의 경쟁력을 본 거죠.” (로펌 변호사)

최근 수년째 시중은행들 및 증권사들이 신탁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저성장·고령화 시대의 신탁이 ‘만능’ 금융주치의로 부상하면서다. 신탁은 예금, 펀드 등 금융 자산부터 부동산 등 비금융 자산의 관리, 은퇴 이후의 증여·상속 문제까지 해결해주는 만능 자산관리 툴(tool)로서의 기능이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해 신탁 회사의 총 수탁고가 1200조 원을 돌파하며 전년 대비 4.9%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감독원이 올해 4월 발표한 ‘2022년 신탁업 영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60개 신탁 회사의 총 수탁고가 전년 말 대비 57조2000억 원(4.9%) 증가한 1223조9000억 원으로 확인됐다. 은행, 보험, 부동산 신탁사의 수탁고가 크게 증가한 영향이다.

그중 은행, 보험사 수탁고는 각각 541조8000억 원, 19조7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6조4000억 원(9.4%), 1조5000억 원(8.3%) 늘었고, 부동산 신탁사 수탁고의 경우 392조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9조6000억 원(14.5%) 증가했다. 다만 같은 기간 증권사 수탁고는 40조3000억 원(13%)이 줄어든 270조4000억 원으로 나타났다.

증권사의 특정금전신탁이 감소세를 보인 것은 지난 2005년 증권사의 신탁업이 허용된 이래 처음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빨랐던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은행예금에 자금이 몰려, 증권사의 정기예금형 신탁이 급감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각 영역별 성적표는 다소 갈렸지만, 신탁 시장은 여전히 금융사들 사이 미래 먹거리로 지목되고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자산의 관리 및 증식과 사후 상속을 염두에 둔 스마트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눈에 받고 있어서다. 실제로 최근 특별한 세제 혜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언대용 신탁의 수요가 크게 늘고, 부의 세대 간 이전을 넘어서서 상속 대상 자산에 대한 증식에도 큰 관심들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은행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신탁은 주가연계증권(ELS), 채권 등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투자 수단(Vvehicle)에 그쳤지만 영미 등 서구권과 가까운 일본만 해도 신탁은 고객의 부를 관리·운용하고 세대 간 부를 이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급속도로 고령화됨에 따라 신탁이 고객 자산의 관리·운용·이전하는 종합적인 솔루션으로서의 점점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난해 10월 금융위에서 발표된 신탁업 혁신 방안에 따라 우리나라 신탁제도의 개선 방향이 입법화되면, 고객의 종합자산관리, 가업승계 주택신탁 등 고객 니즈에 맞는 특화신탁, 신탁을 통한 자금조달 기능의 활성화 등 신탁 본연의 기능을 통해 다양한 국민들의 금융 활동에 도움이 되면서 신탁업의 활성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화, 각 금융기관들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big story]신탁 시장, 경쟁 '후끈'...미술품·증여 등 차별화
사후관리는 물론 미술품 신탁까지
신탁 시장이 매년 성장하고 있는 만큼 시중은행은 신탁 서비스를 확대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금융당국에서 추진하는 금융혁신 과제에 신탁 시장 확대 방안이 포함되면서 은행들의 사업 강화 움직임에 더욱 탄력이 붙었다. 신탁 시장에서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온 곳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은 2010년 ‘하나 리빙트러스트(Living Trust)’라는 브랜드를 론칭하고 국내 첫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했다.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장 없이도 위탁자 생전에 유언의 효과 및 생전·사후의 재산 관리는 물론 안정적 운용까지 가능한 종합자산관리 상품이다. 유언장보다 더 안전하고 정확한 재산 분배는 물론 미성년 자녀를 위한 재무 보호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하나은행은 올해 3월 국내 최초로 동산인 미술품을 신탁 받아 처분까지 실행하는 ‘미술품 신탁’을 출시해 고객 공략에 나섰다. 하나은행은 미술품 신탁을 필두로 작품 작가, 위탁판매업자, 미술품 애호가 등 고객 저변을 넓혀 아트뱅킹 확장 모델로 신탁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보다 정교해진 자산관리 시장에서 신탁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손님 중심의 신탁 상품 포트폴리오 구축과 차별화된 상품으로 손님 자산관리 시장을 선도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2021년 사전증여, 장기 투자, 절세 혜택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신한 S 라이프 케어(Life Care) 증여신탁’을 출시, 기존 증여신탁의 운용자산인 국고·통안채 및 가치주에 상장지수펀드(ETF)를 운용 자산으로 신규 편입해 상품성을 강화했다. 올해는 ‘신한 SOL 유언대용신탁 상담예약 서비스’도 새로 도입했다. 고객이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상담을 예약하면 신탁 전문가가 직접 전화로 상속·증여 등 재산관리 상담과 유언대용신탁, 부동산증여 신탁 등 상품 상담을 제공하는 비대면 서비스다.

신탁을 통한 기부도 가능하다. KB국민은행의 ‘KB위대한유산 기부신탁’은 기부자가 부동산, 금전 등의 신탁 재산을 은행에 맡겨 생전에는 본인이 신탁 재산을 관리하고 사후에 재산을 사회복지법인, 학교, 병원 등의 공익법인에 기부하는 신탁이다. 특히, 기부재산이 부동산일 경우 본인이 그대로 거주하거나 임대료를 수취해 신탁 이후에도 거주 문제 및 생활비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필요 시 은행 법률 및 세무 전문가의 컨설팅을 통해 기부자의 니즈를 반영한 최적의 상속 및 기부 설계가 가능한 점이 특징이다.

2021년 국내 금융권 최초로 선증여 이벤트형 상품 ‘우리내리사랑GOLD신탁’을 출시했던 우리은행도 신탁 상품을 활용한 안정적인 자산관리와 자산 승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우리내리사랑신탁 파트너스’를 새롭게 선보였다. 기존 영업점 소개 영업과 세무·법률 전문 인력에 의존한 수동적인 마케팅에서 벗어나 직접 고객을 발굴하고 상담과 사후관리까지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