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은 가상자산 업계 전체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가상자산 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해서도 스테이블 코인은 필수적인 섹터다.

[가상자산 따라잡기]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 사진=한국경제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 사진=한국경제
스테이블 코인은 한편으론 재미없고 지루한 코인이다. 1코인에 1달러의 가치를 가지는 USDT, USDC 등은 말 그대로 가치가 안정적이다 보니, 트레이딩이나 투자의 대상으로는 흥미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치가 안정적이라는 장점을 바탕으로, 거래의 매개체로 폭넓게 쓰이는 스테이블 코인은 가상자산 산업 전체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 자체로 엄청난 수익성을 가진 이권 사업이기도 하다. 스테이블 코인과 섹터 내 주목할 만한 사업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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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산업의 문지기

가장 역사가 깊은 비트코인이나 다양한 확장성을 처음 제시한 이더리움 등이 많이 알려졌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상자산 업계 전체의 성패가 좌우되는 섹터가 바로 스테이블 코인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코인의 가치가 법정화폐에 연계돼 있어 가격이 안정적이고 거래 매체로 사용하기 용이한 가상자산을 통칭한다. 예를 들면 USDT(테더)나 USDC(USD 코인) 하나가 1달러의 가격을 유지하도록 다양한 메커니즘으로 가치를 연동시켜 놓는 것이다.

여타 가상자산은 변동성이 크고, 화폐보다 자산이나 상품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아 거래의 매체로 쓰기에 적합한 스테이블 코인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가상자산 생태계 내에서 선순환이 일어나기 위해서도 스테이블 코인이 필수적이다. 가상자산과 법정화폐 사이 교환이 인프라 측면에서 여전히 불편한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바이낸스를 위시한 역외 거래소들이 스테이블 코인을 장려하는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있다.

국제무역과 금융 거래에서 달러가 널리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상자산 생태계에서도 달러에 연동된 달러 코인이 가장 널리 쓰인다. 이 점에서 기축통화국이자 제일 강대국인 미국의 스테이블 코인 규제 기조는 가상자산 산업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사안이다.

가상자산 시장 성장에 탯줄과도 같은 스테이블 코인이기 때문에 스테이블 코인의 시가총액 추이는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하기도 한다.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와 비트코인, 이더리움 이미지. 사진=한국경제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와 비트코인, 이더리움 이미지. 사진=한국경제
루나 사태이후 알고리즘 방식 회의론

스테이블 코인은 대체로 다음 중 한 방식을 택하거나 여러 방식을 조합해 가격 안정성을 달성한다.

첫째는 1대1 자산 예치다. 실제 스테이블 코인에 1대1로 대응되는 현금과 국채 등 법정화폐 준비금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경우다. 테더의 USDT, 서클의 USDC가 이 경우에 해당하며, 시장에 통용되는 스테이블 코인의 시장점유율 대부분을 차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1대1 예치의 경우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는 사실상 은행의 역할을 자처하게 되고, 예대마진과 자산 위험 관리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게 된다.

둘째는 교차 자산 예치다. 법정화폐와 기타 자산의 혼합으로 뒷받침된다. 대표적으로는 가상자산을 예치받고 예치 자산의 일정 비율을 스테이블 코인으로 발행하는 경우다. 이 경우 예치 자산 대비 스테이블 코인 발행 비율의 관리와 투자 자산의 수익성 관리가 사업의 핵심이다. DAI를 발행하는 메이커다오가 대표적 사례다.

셋째는 알고리즘 기반이다. 외부 생태계의 예치 자산이 아닌 알고리즘을 통해 가격 안정성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2022년 폭락으로 사라진 루나(Luna) 같은 프로젝트가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프로젝트의 대표적 사례다. 루나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시장의 근본적 신뢰가 알고리즘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가기관처럼 경제 활동에 세금을 징수하고 치안을 다스리는 공권력을 다룰 수 있는 권력 없이는 뱅크런을 극복할 근원적 방법이 없다는 면에서 회의적이다. 현재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루나의 실패 이후 알고리즘 방식에 의존하는 스테이블 코인 프로젝트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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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부럽지 않은 테더 영업이익

가상자산 업계는 물론,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회사가 있으니 바로 스테이블 코인 USDT의 발행사인 테더(Tether)다.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업비트 같은 거래소 사업이나 이더리움 재단 등 코인을 발행하는 재단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스테이블 코인 시장을 장악하면서 그 어떤 회사보다 큰 성공을 누리고 있다.

최근 재무제표 정보에 따르면 테더는 2024년 1분기 순이익 45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삼성전자, 비자, 골드만삭스와 같은 세계적 일류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2024년 1분기에 약 50억 달러(6조6200억 원), 비자는 49억 달러, 골드만 삭스는 41억 달러의 순이익을 발표한 바 있다. 전체 직원 수가 수십 명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수만~수십만 명의 임직원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일류 기업과 비슷한 테더의 수익 규모는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임직원당 904만 달러의 분기 순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비교 회사들보다 수백에서 수천 배 높은 수익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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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더는 역외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파이넥스(BitFinex)의 사업자인 아이파이넥스(iFinex)가 2014년 ‘리얼코인(Realcoin)’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스테이블 코인이다.

테더는 달러 현금 등 고객의 예치금을 받아 동일한 금액의 USDT 코인을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업을 영위하면서 예대마진을 수익으로 취하는 유사 은행 형태의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테더는 조세회피처에 본사를 두고 달러 스테이블 코인 시장에 선두로 진입해 2017년 가상자산 시장 상승세를 타고 발행 규모를 키워 나갔다. 그러나 예치금의 자금세탁 가능성과 자산 운용의 투명성을 둘러싸고 꾸준히 제기된 의문은 2019년 뉴욕주 법무장관이 테더사를 기소하면서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이 위기도 2021년 2월 1850만 달러의 합의금으로 일단락되면서 테더는 계속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테더는 2022년 기준금리 상승기에 접어들면서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수익성 역시 폭발적인 성장기를 맞이한다. USDT 보유자에게는 이자 지급을 하지 않지만, 고객예치금은 미국 국채에 투자하면서 연간 5%에 육박하는 예대마진을 벌어들이게 된 것이다. 2024년 현재 USDT의 총발행액은 약 1100억 달러로, 전체 스테이블 코인 시가총액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테더의 사업 규모와 예대마진 수익 구조를 단기간에 위협할 요인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미국 제도권의 우등생 ‘서클’

서클은 2013년 미국에 본사를 두고 설립된 스테이블 코인 USDC의 발행사업자다. 골드만삭스 등 저명한 미국 제도권 기관을 투자자로 두고 있고 미국 규제 프레임워크에 친화적인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업자다. 미국 규제당국의 지침을 착실히 따르는 모범생이라고 할 수 있다. 서클의 USDC는 상대적으로 불투명한 역외 스테이블 코인으로 인식되는 테더 USDT의 가장 큰 경쟁자다.

일각에서는 미국 달러의 저변을 넓히고, 가상자산 산업을 미국 제도권 영향 아래 두기 위한 효과적 방안으로 스테이블 코인 산업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촉구하기도 하지만, 아직 미국 주류 정책 결정자에게 스테이블 코인은 육성보다는 규제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제도권의 모범생 서클의 USDC 발행액이 2022년부터 축소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은 같은 기간 테더의 계속된 성장에 대비돼 더욱 인상적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가상자산 산업이 성장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하위 산업이다.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투자·투기 수요 급증, 제로금리 환경에서 중금리 환경으로 넘어가는 금리인상기,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미국의 시의적절한 규제 및 육성 방안 부재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테더라는 희대의 ‘황금알 낳는 거위’를 탄생시켰다.

테더를 탄생시킨 요인들이 앞으로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머지않아 금리 환경이 다시 바뀌거나 미국 제도권에서 스테이블 코인 규제 방식이 바뀌는 경우를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스테이블 코인 발행 사업이 가상자산의 성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임과 동시에 엄청난 수익성을 담보하는 대형 이권이라는 점은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가상자산 투자자는 앞으로 스테이블 코인 산업의 지형도가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겠다.

허성필 트리니토 투자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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