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일반적인 지급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 세계적인 무역 국가인 한국도 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외환 관리와 무역통계, 수탁과 환전, 기업 보안과 내부통제, 자금세탁 방지, 은행과 가상자산사업자의 역할까지 서로 다른 제도를 한꺼번에 연결해야 한다.

[가상자산 따라잡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인 지니어스법(GENIUS Act)에 서명했다. 사진=A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인 지니어스법(GENIUS Act)에 서명했다. 사진=AP연합
2025년 우리나라의 연간 수출액은 7093억 달러를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70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수입액 6319억 달러까지 합치면 한 해 동안 한국의 국경을 오간 무역 규모는 1조3000억 달러가 넘는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역 국가다. 그만큼 한국 경제는 매일 엄청난 규모의 달러를 받고 또 지불한다. 지금까지 이 돈은 대부분 은행을 중심으로 구축된 외환결제망을 통해 움직였다. 수출기업은 해외 거래처가 보낸 달러를 국내 외국환은행을 통해 받고, 수입기업 역시 은행을 통해 해외로 대금을 지급한다.

100만 달러가 계좌 아닌 지갑으로

그런데 앞으로 이 결제 수단의 일부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한국의 수출기업이 미국이나 동남아시아 거래처에 제품을 납품한 뒤 100만 달러의 대금을 은행 계좌가 아니라 달러에 가치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으로 받는 것이다. 테더(USDT)나 서클(USDC) 같은 스테이블코인의 전송에는 원칙적으로 미국 은행의 영업시간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네트워크도 필요 없다. 상대방의 지갑에서 우리 회사의 지갑으로 블록체인상 자산이 이동하면 된다. 이는 이미 낯선 미래의 이야기도 아니다. 2024년에는 국내 무역 거래의 약 10%가 이미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추정까지 언론에 등장했다.

관세청은 이미 가상자산을 이용해 수출입 대금을 지급하거나 받는 사례를 적발해 왔다. 2024년 공개된 사례 가운데에는 홍콩에 금제품을 수출한 국내 업체가 외국환은행을 통하지 않고 약 5000억 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수출대금으로 받은 경우도 있었다. 관세청이 적발한 가상자산 관련 불법 외환 거래 규모는 2022년 5조6717억 원, 2023년에도 1조4568억 원에 달했다. 지금까지 이런 거래는 주로 ‘가상자산을 이용한 불법 외환 거래’의 관점에서 다뤄졌다.

하지만 미국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본격적으로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지난해 제정된 ‘지니어스법(GENIUS Act)’은 준비자산, 발행자 자격, 자금세탁 방지 등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칙을 마련했고, 이 법은 2027년 1월 18일, 또는 연방 규제기관의 최종 시행규칙 공표 120일 이후 중 더 이른 시점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세계 최대 경제국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금지할 대상이 아니라 제도화할 지급 수단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은 중요하다. 해외 기업들이 이를 달러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막대한 규모의 수출입 대금을 달러로 주고받는 한국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코인으로 받은 수출대금, 누가 지키나
수탁 등 손봐야 할 문제 산적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손봐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무역과 외환 관리 체계부터 달라져야 한다. 수출기업의 지갑에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들어왔을 때 이를 어느 시점에 수출대금 수령으로 인정할지 기준이 필요하다. 수출 신고 내용과 블록체인상 입금내역을 연결하는 방식도 마련돼야 한다. 기업이 받은 스테이블코인을 다시 달러나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면 기존 외환 거래와는 다른 정보 흐름이 만들어진다.

정부도 최근 ‘외국환거래법’을 개정하며 국경 간 가상자산 이전을 외환 관리 체계 안으로 편입하기 시작했다. 다만 거래를 신고하고 통계를 잡는 것과 기업이 실제로 수천만 달러의 스테이블코인을 안전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금융 인프라를 갖추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은 수탁이다. 무역대금의 규모가 수천만 달러 이상으로 커지면 기업 재무팀이 직접 지갑을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국내 가상자산수탁사업자에게 대규모 기업자금을 맡기는 것도 단순한 결정은 아니다. 현재 이들은 기존 은행에 비해 대부분 업력이 짧고 규모도 작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기술적 보안뿐 아니라 사고 발생 시 책임능력, 내부통제, 장기간의 사업 안정성까지 따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은행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경우, 은행이 고객의 스테이블코인을 보관하고, 필요하면 환전과 해외 이전까지 제공하는 구조가 요구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기존 금융 회사와 가상자산사업자의 경계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이 문제는 산업 정책과도 연결된다. 정부의 규제 아래 디지털자산 기업들이 투자하고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진 뒤 안전성을 이유로 대부분의 업무를 기존 금융 회사에 넘긴다면 초기 시장을 개척한 사업자들의 역할은 크게 축소될 수 있다. 최근 토큰증권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나타난 논란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신산업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스타트업과 기존 금융 회사 사이의 역할을 어떻게 배분할지는 앞으로 반복해서 등장할 문제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 사진=연합뉴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 사진=연합뉴스
잘못 보내면 되돌릴 수 없다

게다가 모든 거래가 전문 수탁사를 통해 이뤄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직접 지갑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디지털자산 보안이 재무팀의 일상적인 내부통제 문제가 된다. 지갑의 서명 권한, 일정 금액 이상 송금에 대한 다중승인, 담당자 변경 시 권한 회수, 거래처 지갑주소 검증 같은 절차가 새롭게 필요해진다.

기존 기업금융에는 송금한도, 다중승인, 이상거래탐지, 사고 대응 등 수십 년간 축적된 안전장치가 있다. 블록체인 결제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기업용 통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잘못된 주소로 전송한 자산은 은행 송금처럼 쉽게 취소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실무적 부담은 더욱 크다.
자금세탁 방지 역시 지금과 다른 차원의 문제다. 거래 상대방이 정상적인 해외 기업이라고 해서 보내온 스테이블코인의 거래 이력까지 문제가 없다는 보장은 없다. 이전 단계에서 해킹 자금이나 불법 도박, 제재 대상 주소와 연결된 자금이 섞여 있을 수 있다.

블록체인은 거래 기록이 공개돼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기록을 해석하고 위험도를 판단하려면 별도의 분석 인프라가 필요하다. 기존 은행권의 고객 확인과 자금세탁 방지 체계에 블록체인상의 지갑 분석과 거래 추적이 추가돼야 하는 셈이다. 어느 수준까지 기업이 책임지고, 어디부터 수탁사나 금융기관이 담당할지에 대해서도 공통된 기준이 필요하다.

더 큰 문제는 환율…‘두 개의 달러 시장’

그리고 어쩌면 더 큰 문제는 환율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관리하고 관찰해 온 달러 가격의 중심에는 달러·원 외환 시장이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상당한 규모의 수출대금을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받기 시작하면 국내에는 또 하나의 달러 시장이 생긴다. 수출기업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대금을 받더라도 국내에서 임금과 세금, 원재료비를 지급하려면 상당 부분을 원화로 바꿔야 한다. 거래 규모가 커질수록 스테이블코인과 원화를 대규모로 교환할 수 있는 유동성과 금융 인프라가 필요해진다. 기존 달러·원 외환 시장과 스테이블코인·원화 시장의 가격 차이, 대규모 기업 환전 수요, 그리고 이 자금 흐름을 외환당국이 어떤 방식으로 파악할지까지 새로운 정책 과제가 될 수 있다.

지금 국내 스테이블코인 논의의 중심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있다. 누가 발행할 것인지, 은행에 어느 정도의 역할을 줄 것인지, 준비자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다. 모두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한국이 먼저 마주할 변화는 우리가 만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글로벌에서 유통되고 있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문제다.

한국 기업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물건값을 받는 데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안은 필요하지 않다. 해외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일반적인 지급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 세계적인 무역 국가인 한국은 불가피하게 그 영향을 받는다. 그 순간 필요한 준비는 하나의 법이나 하나의 라이선스로 끝나지 않는다. 외환 관리와 무역통계, 수탁과 환전, 기업 보안과 내부통제, 자금세탁 방지, 은행과 가상자산사업자의 역할까지 서로 다른 제도를 한꺼번에 다시 연결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누가 만들 것인지를 놓고 논쟁하는 동안, 정작 더 서둘러 준비해야 할 것은 이미 만들어진 ‘디지털 달러’가 한국의 무역과 외환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박태우 스페이스바 벤처스 대표 tw@spaceba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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