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적립금이 550조 원을 넘어서고 실적배당형 비중이 처음으로 35%를 돌파했다. '스스로 굴리는 노후 자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경머니가 42개 퇴직연금 사업자를 5개 분야 12개 지표로 정밀 평가해 업권별 '명가'를 가렸다.

[커버스토리] 베스트 퇴직연금 2026
규모가 아니라 실력…퇴직연금 순위 다시 짰다
퇴직연금 시장이 '노후 설계'를 넘어 ‘자산 증식’의 무대로 재편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 원으로, 처음으로 500조 원을 돌파했다. 성장세는 올해 들어 더 가팔라졌다. 올해 2분기 말 적립금은 553조9000억 원으로 전 분기(508조7000억 원)보다 8.9% 증가했다.

퇴직연금의 운용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던 자금이 빠르게 실적배당형으로 이동하면서, 2분기 원리금비보장형(실적배당형) 적립금은 197조7000억 원으로 전체의 35.7%를 차지했다. 2022년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 2024년 실물이전 제도 시행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했다.

퇴직연금 자금의 ‘머니무브’로 사업자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타깃데이트펀드(TDF)와 상장지수펀드(ETF)가 퇴직연금의 핵심 상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금융 회사들의 자산 배분 역량과 운용 전략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경머니는 퇴직연금 정보 제공 기업 한국퇴직연금데이터(글라이드)와 함께 '베스트 퇴직연금' 조사를 두 번째로 시행했다. 올해는 2026년 2분기 기준 국내 42개 퇴직연금 사업자를 대상으로, 운용 성과·상품 포트폴리오·만족도·운영 관리·비용 5개 분야 12개 지표를 100점 만점으로 평가했다.

ETF·TDF가 순위 갈랐다…증권사 초강세

평가 체계는 지난해보다 한층 정교해졌다. 상품 포트폴리오 배점을 25점에서 30점으로 키우면서 디폴트옵션·TDF·ETF 세 분야로 세분화했고, ETF 비중을 10점에서 15점으로 확대했다. 특히 가장 많은 배점을 둔 것은 디폴트옵션 수익률(20점)이다. 디폴트옵션 제도의 정착이 장기 투자 문화의 핵심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업자 만족도 조사(서베이)’를 통해 가입자들의 실제 평가도 반영했다. 지난 7월 27~28일 설문조사 기관인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퇴직연금 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업자 만족도 조사를 진행했으며, 이를 15점 배점으로 비중 있게 반영했다. 이는 정량 평가와 더불어, 실제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사업자에 대해 평가한 정성 평가로서 의미가 있다.

올해 평가에선 수상은 중복 수상을 허용하되, 동점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① 평가 기간 중 퇴직연금 관련 금융감독원 제재 이력이 없는 사업자, ② 종합점수가 높은 사업자 순으로 순위를 가렸다.

올해 평가 결과 특징적인 부분은 업권 간 점수 격차다. 전체 42개 사 중 상위 6위까지를 증권사가 차지했다. 특히 상품 포트폴리오 항목에서 ETF·TDF 경쟁력을 앞세운 증권사가 높은 점수를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베스트 퇴직연금 하우스
KB국민은행·미래에셋증권·교보생명…종합 점수 2년 연속 업권별 1위


먼저 종합 점수 1위에 해당하는 '베스트 퇴직연금 하우스'는 은행 부문 KB국민은행, 증권 부문 미래에셋증권, 보험 부문 교보생명이 선정됐다. 모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종합 평가 1위를 차지한 퇴직연금 명가들로 분류된다.

은행 부문 ‘베스트 퇴직연금 하우스’는 KB국민은행이 총점 73.53점을 획득하며 1위에 올랐다. 이어 NH농협은행(69.46점), 신한은행(64.73점), 우리은행(63.26점) 순이었다. 특히 KB국민은행은 운용 성과(30점 만점 중 26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KB국민은행은 2026년 2분기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53조4808억 원으로, 주요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올해 퇴직연금 비대면 서비스를 전면 개편해 고객 중심의 디지털 혁신을 강화하고, 홈 화면부터 상품 탐색·거래·조회·인증까지 전 과정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사용자 경험(UX)을 개선했다.

증권 부문의 주인공은 미래에셋증권이다. 총점 80.09점으로 14개 증권사뿐만 아니라, 전체 사업자 가운데서도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어 증권 부문 2위는 신한투자증권(77.53점), 3위 한국투자증권(74.91점), 4위 NH투자증권(74.72점)이었다.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상반기 적립금이 52조 원으로 증권사 최초 50조 원을 넘어섰다. 특히 2분기 확정기여(DC)형 적립금은 전체 퇴직연금 사업자 가운데 금융권 1위를 달성했다. 글로벌 자산 배분 기반의 상품 라인업과 맞춤형 포트폴리오 서비스, 고객 친화적 디지털 서비스 강화 전략 등이 배경으로 꼽힌다.

보험 부문에서는 교보생명이 총점 72.48점으로 16개 보험사 중 1위를 차지했다. 운영 관리 부문(20점 만점 중 16점)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다. 뒤이어 삼성생명(64.85점), 미래에셋생명(55.64점), 한화생명(54.63점)이 상위권에 올랐다.

교보생명은 1976년 국내 최초로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을 개발한 이래 퇴직연금 분야에서 다수의 최초 타이틀을 쌓아 왔다. 장기적 관점에서 안정적인 수익률을 추구하는 운용 철학이 교보생명 퇴직연금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규모가 아니라 실력…퇴직연금 순위 다시 짰다
베스트 디폴트옵션
최적 자산 배분의 바로미터…삼성생명·신한투자증권·KB국민은행


‘베스트 디폴트옵션’은 단일 지표 가운데 가장 많은 배점(20점)을 둔 디폴트옵션 수익률 부문 수상자들이다. 이 지표는 상품을 위험등급(안정형·안정투자형·중립투자형·적극투자형)별로 나눠 산출했다.

그 결과 보험 부문에서는 삼성생명이 19점으로 전 업권을 통틀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베스트 디폴트옵션 부문에 선정됐다. 삼성생명은 상품 유형별로 서로 다른 위험관리 방식을 적용하는 등 위험관리에 무게를 둔 안정적 성과가 강점이다.

증권 부문 1위는 신한투자증권(18점)이 차지했다. 신한투자증권은 4개 위험등급 전반에서 고르게 상위권을 유지했다.

은행 부문에서는 KB국민은행(16점)이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KB국민은행은 종합 평가에서 은행 1위에 선정된 데 이어 베스트 디폴트옵션까지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규모가 아니라 실력…퇴직연금 순위 다시 짰다
가입자 추천 대상
가입자 1000명이 매긴 점수…미래에셋증권 '추천 1위’


올해 조사에서 유일한 정성 평가 지표인 가입자 만족도 조사 부문이다. 가입자 설문에 기반한 유일한 항목이라는 의미를 살려, '가입자 추천 대상'으로 명칭을 정했다.

이 부문의 주인공은 미래에셋증권이다. 설문조사에서는 추천 의향, 수익률 만족도, 비용 가치, 상품 라인업, 서비스 품질, 정보 제공 등을 물었고, 미래에셋증권은 핵심 문항인 '추천 의향'에서 5점 만점에 3.73점을 받아 42개 사 중 1위에 올랐다.

미래에셋증권은 종합 평가인 ‘베스트 퇴직연금 하우스(증권)’에 선정된 데 이어 ‘가입자 추천 대상’에서도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베스트 상품 포트폴리오
선택지의 폭이 곧 경쟁력…우리투자증권 최고점


베스트 상품 포트폴리오는 디폴트옵션·TDF·ETF를 아우르는 30점 배점 지표로, 가입자에게 얼마나 넓은 선택지를 제공하는지를 평가한다. 상품의 다양성을 볼 수 있는 항목이다.

수상의 영예는 우리투자증권에 돌아갔다. 우리투자증권은 상품 포트폴리오 29점으로 삼성증권·KB증권·미래에셋증권 등과 동점을 이뤘는데, 이들 가운데 평가 기간 중 금융감독원 제재 이력이 전혀 없는 유일한 사업자였다.

세부 지표에서도 고르게 앞섰다. ETF 부문에서는 증권사 특유의 실시간 매매 강점을 앞세워 전 종목 취급, 매매 편의성까지 만점(15점)을 받았고, TDF 라인업에서도 상위권에 들었다. 디폴트옵션·TDF·ETF 세 축 모두에서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갖췄다는 평가다.

베스트 TDF

생애주기 투자의 중심…KCGI·교보악사·KB자산운용

퇴직연금 투자의 중심으로 떠오른 TDF 부문에서는 평균 백분위(빈티지별 수익률 순위를 백분위로 환산해 평균한 값) 기준으로 3개 운용사를 선정했다. 42개 사업자 이외에, TDF 운용을 책임지는 자산운용사들을 대상으로 한 결과다.

최고의 성과를 낸 주역은 KB자산운용, 교보악사자산운용, KCGI자산운용이다. 각각 'KB 온국민TDF', '교보악사 평생든든TDF', 'KCGI프리덤TDF'가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KB자산운용의 ‘KB 온국민 TDF’는 글로벌 초분산 자산 배분을 기반으로 낮은 보수와 안정적인 운용을 추구한다. 환헤지형과 환노출형을 구분하는 등 다양한 투자 수요에 맞춰 상품 구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교보악사자산운용은 ‘교보악사 평생든든TDF’을 앞세워 TDF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금융 시장에 분산투자를 하면서 시장 상황에 따라 자산 배분과 다양한 초과 수익 전략을 병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KCGI자산운용 ‘KCGI프리덤TDF’는 한국인을 위한 맞춤형 글라이드패스로 주목받는다. 한국인의 평균 은퇴 시점, 연령대별 가처분소득 및 저축 여력, 국민연금 수령 패턴 등을 반영해 자체 모델을 설계했다.
규모가 아니라 실력…퇴직연금 순위 다시 짰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박스] '베스트 퇴직연금' 어떻게 평가했나
상품 포트폴리오 30점…ETF는 매매 편의성까지


퇴직연금 적립금이 계속 불어나고 있다. 국민 노후 자산의 핵심이자 자본시장의 한 축이라는 위상은 이제 논쟁거리가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적립금이 많다고 좋은 연금은 아니며, 단기 수익률이나 누적 순위만으로 가입자의 노후 안정성을 설명할 수 없다.

한경머니와 한국퇴직연금데이터(글라이드)가 공동으로 진행한 2026년 평가는 지난해의 문제의식을 이어받되, 측정 방식을 상당 부분 다시 짰다. 42개 사업자를 100점 만점으로 평가했다. 2026년 6월 진입한 키움증권은 사업 개시 1년이 되지 않아 제외했다.

올해의 원칙은 하나다. 규모가 순위를 좌우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올해 원리금보장형 평가는 예금성과 시장성을 나눠 평가했다. 정기예금과 주가연계채권(ELB)은 금리 수준대가 달라, 한꺼번에 평균하면 '금리를 후하게 주는가'가 아니라 '고금리 유형을 많이 파는가'를 재게 되기 때문이다. 은행·증권·보험을 나눠 순위를 매긴 것도 같은 이유다. 세 업권은 조달 구조가 달라 금리 수준대 자체가 다르다.

배점도 재조정했다. 운용 성과 30점, 상품 포트폴리오 30점, 만족도 15점, 운영 관리 20점, 비용 5점이다.

가장 큰 변화는 상품 포트폴리오다. 25점에서 30점으로 늘리면서 디폴트옵션·TDF·ETF 세 분야로 세분화했다. TDF는 단순 시리즈 개수 대신 빈티지 다양성과 라인업 완성도를 본다. 가입자는 자신의 은퇴 시점에 맞는 빈티지를 골라야 하는데, 시리즈를 몇 개 들여왔느냐보다 빈티지를 통째로 갖췄느냐가 실제 선택권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ETF는 10점에서 15점으로 강화하고 '취급 종목 수'와 '매매 편의성'으로 나눴다. 장중 실시간 매매가 ETF의 본질인 만큼, 증권·은행·보험의 플랫폼 제약 차이를 반영해 업권별 만점을 달리 뒀다.

지난해 전 사업자 0점을 부여했던 '적합성·성과 모니터링'은 폐지하고 그 배점을 ETF로 이전했다. 모두가 0점인 항목은 평가 기능을 하지 못한다.

결과는 업권 간 구조적 격차를 드러냈다. 증권 평균 70.8점, 은행 55.9점, 보험 47.1점이다. 증권의 최저 점수(61.6)가 보험 평균보다 높고, 전체 상위 6위가 모두 증권사다.

진원지는 상품 포트폴리오다. ETF에서 증권 14개 사가 전원 만점을 받았고 TDF에서도 증권사가 상위를 점유했다. 반면 보험사 10곳은 TDF·ETF를 사실상 취급하지 않아 30점 중 0~6점에 그쳤다. 회사의 역량 차이인 동시에 업권별 사업 구조의 차이여서, 시상은 업권별로 운영하는 것이 타당하다. 업권 1위는 증권 부문이 미래에셋증권(80.09점), 은행 부문이 KB국민은행(73.53점), 보험 부문이 교보생명보험(72.48점)이다.

가입자가 눈여겨볼 지점도 나왔다. TDF2060은 42개 사 중 24개 사만 취급한다. 은퇴가 먼 젊은 가입자일수록 선택지가 좁다는 뜻이다. 만족도 조사에서는 '비용가치' 항목의 사업자 간 차이가 사실상 0으로 나타났다. 실제 총비용부담률은 뚜렷이 갈리는 데도 응답이 이를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자신이 부담하는 수수료를 정확히 아는 가입자가 많지 않다는 신호다.

가입자 교육자료 조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확인됐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상 의무인 만큼 대부분 사업자가 자료를 갖추고 있지만, 비로그인으로 열람할 수 있는 곳과 사이버창구 안에만 묻어 둔 곳의 격차가 컸다. 갱신이 10년 넘게 멈춘 자료도 있었다.

퇴직연금 시장의 방향은 분명하다. 판매보다 관리, 단기보다 장기다. 그러나 관리의 질을 가입자가 확인할 수 있어야 시장이 움직인다. 수수료가 어디에 공시돼 있는지, 내 은퇴 시점에 맞는 상품이 있는지, 교육자료가 언제 갱신됐는지를 가입자가 쉽게 알 수 있을 때 비로소 경쟁이 작동한다.

퇴직연금의 진짜 경쟁은 상품을 갖추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갖춘 것을 가입자에게 닿게 하는 일이 남아 있다.

영주 닐슨 한국퇴직연금데이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