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필요한 오너십은 무엇일까. ‘2026 베스트 오너십’ 조사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종합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뒤를 이으며 2년 연속 ‘톱3’를 지켰다.
[커버스토리] 2026 베스트 오너십
오너십을 평가하는 시장의 잣대는 한층 까다로워졌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일반 주주로 확대하고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담은 개정 상법이 시행되면서, 주주권과 이사회의 독립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제는 기업의 성장만큼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고려하는지,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하는지, 승계와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관리하는지가 중요해졌다. 지배주주 개인의 사법 리스크나 경영권 분쟁이 기업 가치와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점도 주요 평가 요소다.
한경머니가 2013년부터 매년 ‘베스트 오너십’을 선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기적인 실적이나 주가만으로는 기업을 이끄는 리더십의 가치를 온전히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의 장기 성장을 이끄는 경영 전문성과 자질,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 주주·임직원·협력사 등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살펴봄으로써 한국 기업에 필요한 ‘좋은 오너십’의 조건을 짚어보자는 취지다.
'2026 베스트 오너십' 조사에서도 달라진 오너십의 기준이 총수 개개인의 평가에 반영됐다. 올해 조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2026 공시대상기업집단 가운데 동일인이 자연인인 자산총액 상위 30개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했다.
항목별 세부 평가와 오너 리스크 평가를 합친 ‘2026 베스트 오너십’ 종합 평가 1위(총점 98.14)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차지했다. 이 회장은 2년 연속 종합 1위에 올랐다.
이 회장은 세부 평가에서도 고른 점수를 받았다. ‘경영 전문성과 자질’에서 합계 405점으로 1위를 차지해 환산점수 20점 만점을 받았다. ‘이해관계자 경영’에서도 환산점수 35점 만점으로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오너 리스크 증가 지명은 한 건도 없었고 감소 지명은 59건으로 가장 많았다. 지배구조 개선·악화 평가까지 합산한 오너 리스크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10점 만점을 받았다.
특히 장기간 이어졌던 ‘사법·승계 리스크 해소’와 ‘경영 불확실성 완화’가 호평으로 이어졌다. 반도체·인공지능(AI) 실적 회복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배구조 개선에서도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 자사주 소각, 준법·이사회 중심 경영 등이 공통적으로 언급됐다. 반면 노조 이슈 등이 지배구조 악화 사유로 지적됐다.
정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이해관계자 경영’ 1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경영 전문성’은 398점으로 2위, ‘지배구조 투명성과 책임성’에서도 공동 2위를 차지하며, 세 항목 모두에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오너 리스크 평가에선 순증감 62로 3위를 기록했다.
특히 미국 관세 대응과 실적 방어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 또한 지배구조 개편 로드맵을 이행한 점이 좋은 성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배구조에서 차별화됐다. ‘지배구조 투명성과 책임성’ 합계 357점으로 전체 조사 대상 가운데 단독 1위에 올랐다. 이 항목에서 35점 만점을 받은 유일한 오너 경영자다. 오너 리스크 평가에서 지배구조가 개선됐다는 지명도 3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에 구 회장은 2년 연속 한경머니 ‘베스트 오너십’ 지배구조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특히 ㈜LG를 포함한 11개 상장 계열사 전체를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체제로 전환하고,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한 점이 주효했다. 또한 상속회복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한 점, 주주 환원 정책 등이 지배구조 개선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총점(91.53점)으로 보면 구 회장은 종합 3위에 해당한다. 이재용·정의선·구광모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나란히 1~3위를 지키며 상위권을 굳혔다. 1~3위의 강점이 각각 '경영 전문성', '이해관계자 경영', '지배구조'로 갈린다는 점은, 올해 조사에서 평가의 기준이 다층화됐음을 보여준다.
상위권 ‘고착’, 중위권 ‘요동’…오너 리스크가 희비 갈랐다
톱3 바로 뒤에서는 세대교체의 흐름도 눈에 띄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총점 86.09점을 받으며 지난해 기준 7위에서 올해 4위로 세 계단 올라섰다. 오너 리스크 증가 지명과 지배구조 악화 지명이 모두 한 건도 없었다.
정 회장은 특히 회장 승진 과정에서 ‘승계의 투명성’이 대표적인 긍정 키워드로 꼽혔다. 직접 지분 증여 방식으로 승계 과정의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줄었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책임경영 체제 공식화, 세대교체 이후 경영 안정 등이 순위 상승의 배경으로 해석된다.
이어 종합 5위는 최태원 SK회장이 차지했다. 최 회장은 ‘경영 전문성과 자질’, ‘이해관계자 경영’ 부문 3위에 힘입어 지난해 8위에서 올해 5위로 세 계단 상승했고,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지난해와 같은 6위를 유지했다. 박 회장은 경영 전문성에서 합계 376점으로 전체 4위를 기록해 오너 경영 금융그룹 가운데 가장 높은 종합 순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조사 대상 가운데 올해 평가 대상 30개 기업집단만 추려 순위를 다시 산출한 결과 총 15곳이 순위가 상승했고 9곳이 하락했다. 6곳은 순위를 유지했다.
다만 순위 상승을 곧바로 개별 기업의 평가 개선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조사 결과를 뜯어보면 실제 항목 평가가 개선돼 순위가 오른 경우가 있는 반면 다른 기업의 평가 하락에 따른 상대적인 상승도 적지 않았다. 올해 30개 그룹의 항목 평가 평균은 전년 73.39점에서 67.08점으로 낮아졌다.
하락 폭은 더 컸다. 김범석 쿠팡 의장은 지난해 올해 조사 대상 기준 13위에서 올해 29위로 16계단 떨어져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총점도 74.71점에서 44.54점으로 벌어졌다. 오너 리스크 증가 지명은 지난해 4건에서 올해 36건으로 늘었다. 개인정보 유출 대응, 내부통제와 지배구조 문제가 집중적으로 언급됐다.
정용진 신세계 회장도 14위에서 22위로 여덟 계단 내려왔다. 정치적·대외적 발언과 스타벅스 관련 논란 등 평판 리스크가 반복된 점이 오너 리스크 증가 요인으로 꼽힌다. 이재현 CJ 회장은 11위에서 16위로 다섯 계단 하락했다. 한화 김승연 회장과 네이버 이해진 의장도 각각 세 계단씩 떨어졌다.
이 밖에 카카오·한국앤컴퍼니는 ‘오너 리스크’가 ‘기업 리스크’로 전이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카카오는 오너 리스크 증가 45건, 지배구조 악화 35건을 기록했다. 창업자의 사법 리스크, 경영 공백 우려, 인적분할·노사 갈등, 계열사 통제 문제 등이 주로 언급됐다. 다만 1심 무죄를 이유로 ‘리스크 감소’를 지목한 응답도 17건이었다. 한국앤컴퍼니는 오너 리스크 증가 34건, 지배구조 악화 26건으로, 횡령·배임 관련 사법 리스크와 경영 공백이 압도적으로 반복됐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기준은 일반 주주와의 이해상충이다. 두산은 오너 리스크 평가에서 특히 지배구조 악화 지목이 27건으로 세 번째로 많았다. 응답자들은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의 사업 재편 과정에서 불거진 합병·주식교환 비율과 소액주주 권익 문제를 주로 거론했다. 한화에 대해서도 승계 구도가 명확해지고 책임경영 체제가 강화됐다는 긍정 평가와 함께 승계 과정에서 대주주와 일반 주주 간 이해상충 가능성을 지적하는 의견이 동시에 나왔다. 밸류업 시대, 오너십을 평가하는 잣대가 단순히 ‘사업을 잘하느냐’에서 ‘일반 주주와 이해상충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로 넓어졌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로 풀이된다.
올해 조사에서 전체 30개 기업집단 가운데 오너 리스크 점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곳은 절반인 15곳이었다. 특히 중위권에서는 기본적인 경영 평가와 오너 리스크 평가가 엇갈리며 최종 순위를 뒤집는 사례가 나타났다. 기업의 실적이나 사업 경쟁력만큼 지배주주와 지배구조를 둘러싼 리스크 관리가 오너십 평가의 주요 변수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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